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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전 100선 1차분

우리고전 100선 1차분 (1~5권) + 6권

(말똥구슬/길 위의 노래/욕심을 잊으면 새들의 친구가 되네/우주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개구리 울음소리 + 풀이 되고 나무가 되고 강물이 되어)

김시습, 신흠, 이규보, 홍대용, 유금 (지은이), 박희병 (엮은이)
돌베개
4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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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전 100선 1차분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우리고전 100선 1차분 (1~5권) + 6권 (말똥구슬/길 위의 노래/욕심을 잊으면 새들의 친구가 되네/우주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개구리 울음소리 + 풀이 되고 나무가 되고 강물이 되어)
· 분류 : 국내도서 > 고전 > 우리나라 옛글 > 산문
· ISBN : 9788971992616
· 출판일 : 2006-11-30

책 소개

도서출판 돌베개에서 기획한 '우리고전 100선'의 1차분이 출간됐다. 세계에 대한 성찰, 현실 문제에 대한 풍부한 고민, 다양한 사실의 정교하고 치밀한 기록. 우리 고전에 녹아 있는 선인들의 경험과 사유를 정제된 문장으로 옮기고, 각 권마다 충실한 해설과 작품평을 실었다. '21세기 한국인이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아름다움과 깊이를 갖춘 국민독본을 만드는 것'이 이 총서가 추구하는 기본 방향이다.

저자소개

김시습 (지은이)    정보 더보기
1435~1493. 조선 초기의 문인, 학자. 자는 열경(悅卿), 호는 동봉(東峰)·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매월당(梅月堂), 법호는 청한자(淸寒子; 혹은 청한淸寒), 법명은 설잠(雪岑)이다. 반궁(泮宮) 북쪽의 초가집에서 부친 김일성(金日省)과 모친 울진 장씨(張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1439년(세종 21), 5세 때, 정승 허조(許稠)가 집으로 찾아와 김시습의 시재(詩才)를 확인하였고, 이후 조정의 고관들이 김시습을 보기 위해 자주 집으로 찾아왔다. 김시습이 ‘오세신동’으로 불린 것은 여기에서 연유한다. 1443년(세종 25), 9세 무렵 세종이 승정원 승지 박이창(朴以昌)으로 하여금 김시습을 대궐로 불러 그 재능을 확인케 했는데, 김시습은 박이창 면전에서 시구를 짓고 글씨를 썼으며, 세종은 박이창을 통해 김시습에게 금포(錦袍: 비단 도포)를 하사하고 ‘훗날 이 아이를 크게 쓰겠다’는 말을 전한다. 1455년(단종 3, 세조 1), 21세 때, 삼각산 중흥사에서 과거 공부를 하던 중 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았다는 소식을 듣자 문을 닫고 3일을 나오지 않다가 홀연 통곡하고 책을 다 불태워 버린 후 미친 시늉을 하며 측간에 빠졌다가 달아났다. 이후 삭발한 후 중이 되어 법명을 설잠이라 하였다. 1463년(세조 9), 29세 때, 경주 금오산(남산) 용장사(茸長寺)에 우거하였는데, 이후 1467년경,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쓴 것으로 보인다. 1481년(성종 12), 47세에 환속했지만, 성종이 계비(繼妃) 윤씨를 폐비(廢妃)하고 사사(賜死)하는 사건을 보고 2년 만에 다시 승려의 복장을 하고 관동으로 향했다. 1493년(성종 24), 59세 때 「자사진찬」(自寫眞贊)을 짓고, 곧바로 이 해 2월, 무량사에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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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흠 (지은이)    정보 더보기
1566~1628.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문장가이자 정치가이며 사상가이다. 선조대에서 인조대에 걸쳐 주요 관직을 역임하면서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조선의 재건을 위해 힘썼다. 성리학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양명학과 노장 사상 등 비주류의 학문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사상적 대안을 모색하였다. 만물의 고유성을 인정하는 유연한 관점을 지녀 다양한 색깔의 글을 남긴바, 그의 글은 주제가 호한하면서도 자유롭고 섬세한 감성을 보여 준다. 호는 상촌이며, 문집으로 <상촌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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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 (지은이)    정보 더보기
고려 무인정권 시기의 문신. 본관은 황려(黃驪). 첫 이름은 인저(仁氐)였는데 스물두 살 때 과거를 앞두고 꿈에 규성(奎星)을 만난 뒤 규보로 개명했다. 별명이 여럿 있는데 부친을 잃고 개경의 천마산에 우거하면서 스스로 백운거사(白雲居士)라고 불렀고, 노년에는 시, 거문고, 술을 미칠 정도로 좋아한다는 뜻인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으로 불리기도 했다. 흥이 나서 사물에 감각이 열리면 시벽(詩癖)이 있다고 할 정도로 병적으로 시를 썼다. 별명이나 시벽에서 알 수 있듯이 낭만적 기질이 농후한 시를 썼고 그런 삶을 살았다. 스물 둘에 국자감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진사시에 들었으나 관직에 나가지 못하다가 마흔에 최충헌의 모정에 불려가 「모정기(茅亭記)」를 지은 뒤 벼슬길이 열려, 일흔에는 최고위직인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른다. 문집으로 아들 이함이 편찬한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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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 (지은이)    정보 더보기
북학파의 선구자 혹은 과학사상가로서 ‘지구가 자전한다’는 지전설을 주창한 홍대용은 1731년(영조 7) 충청도 천안군 수신면 장산리 수촌에서 태어났다. 마음만 먹으면 출세를 보장받는 가문 출신이지만, 순수한 학문의 길을 선택하여 과거시험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12세에 석실서원에 들어가 23년간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유학자 김원행 아래에서 수학하였으며, 천문학·수학·역산학·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관심을 가졌다. 홍대용의 일생에서 가장 전환점이 된 사건은 중국 연행이다. 1765년 홍대용은 서른다섯의 나이로 중국 땅을 밟기 위해 압록강을 건넜다. 이때 북경 유리창에서 만난 항주의 선비 엄성과 반정균, 육비와 시공을 초월한 우정을 나누면서, 그리고 천주당과 관상대를 방문하여 서양의 문물을 접하면서 홍대용은 서서히 새로운 세계관을 가진 인물로 탈바꿈되어갔다. 불멸의 명저 『의산문답』은 중국 연행을 다녀 온 후 쓴 책이다. 40대에 들어서 음직으로 관직에 나갔고 정조 임금이 왕위에 오르기 전 17개월 동안 세자익위사에서 근무하면서 그 경험을 바탕으로 『계방일기』라는 글을 남겼다. 어머니의 병을 구실로 고향에 돌아와 있던 홍대용은 1783년 10월 23일에 생애를 마감했다. 꼭 52년하고도 7개월 남짓의 길지 않은 일생이었다. 그의 본관은 남양南陽, 호는 홍지弘之라 했고, 자는 덕보德保, 당호로는 담헌湛軒을 썼기 때문에 오늘날 그의 문집은 『담헌서湛軒書』란 이름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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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금 (지은이)    정보 더보기
시인, 실학자. 1741년에 태어났다. 연암일파의 일원이며, 유득공의 작은아버지다. 기하학과 천문학에 조예가 깊고, 거문고와 해금 연주에 뛰어났으며, 전각에서도 일가를 이루었다. 이렇듯 문학과 예술과 자연 과학에 두루 탁월했지만, 신분적 제약 때문에 평생 불우한 삶을 살았다. 1788년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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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병 (옮긴이)    정보 더보기
국문학자, 사상사 및 예술사학자. 1996년부터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오랜 시간 깊이 있는 고전문학 강의를 해오며 인생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학생들에게 지침이 되어주었다. 주요 저서로 『통합인문학을 위하여』 『한국고전소설 연구의 방법적 지평』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범애와 평등』 『나는 골목길 부처다』 『연암과 선귤당의 대화』 『저항과 아만』 『유교와 한국 문학의 장르』 『연암을 읽는다』 『한국의 생태사상』 『엄마의 마지막 말들』 등이 있으며 다수의 편역서 및 논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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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선비는 진퇴를 결정하기에 앞서 반드시 나의 진퇴가 의리에 부합하는지, 나의 진퇴로 말미암아 도를 실현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헤아려 보아야 한다. 벼슬에서 물러났다 해서 현명한 것도, 벼슬에 나갔다 해서 의심스러운 것도 아니요, 은거한다 해서 고상한 것도, 세상에 나와 이름을 떨쳤다고 해서 구차해지는 것도 아니다.

간교한 신하가 보다 큰 이익을 탐하여 벼슬을 사양하는 체하며 임금의 마음을 얻는 일도 있고, 가짜 선비가 명성을 얻고자 은거하는 체하며 궁벽한 곳으로 몸을 숨기는 일도 있다. 이보다 더욱 심한 자는 재주도 없고 덕도 없기에 세상에서 버림받은 처지이면서 스스로 궁벽한 곳에 은거한다 하고, 스스로 뭔가를 이룰 만한 능력은 조금도 없으면서 남이 이룬 일에 대해서는 미주알고주알 흠을 잡으며, 주위 사람들에게는 오만한 태도로 이렇게 말한다. "나 역시 세상을 버리고 은거하는 사람이다!" - 김시습, <길 위의 노래> 중에서


기이한 것 좋아하는
- 유금

기이한 것 좋아하는 영숙이 왔네
노복도 없이 눈 맞으며 나귀 타고서.
들으니 술 엄청 좋아한다지만
가난해 돈이 없어 모른 체하네.
커다란 모과만한 일본 다관은
윤씨 집에서 빌려 온 거지.
접때 병이 있어 형암에게 갔더니
한 움큼 명란차를 내게 주었네.
흰 눈을 다관에 넣고 끓여서
차를 우려내니 맛이 참 좋군.
어떤 농부가 계란을 주는데
짚으로 엮은 것이 꼭 콩깍지 같네.
화로에 불이 있고 여흥이 다하지 않아
다관에다 몇 개 넣어 삶아 보았네
거문고 불사르고 학 구워 먹은 이 있다 하더만
나라에 보탬이 되는 재주 내게는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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