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우리나라 옛글 > 산문
· ISBN : 9791139716672
· 쪽수 : 232쪽
· 출판일 : 2024-03-06
책 소개
목차
만복사의 저포놀이_만복사저포기
이생이 담 너머 아가씨를 엿보다_이생규장전
술에 취해 부벽정에서 노닌 이야기_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 이야기_남염부주지
용궁 잔치에 다녀온 이야기_용궁부연록
김시습 깊이 읽기
해제
김시습 연보
리뷰
책속에서
전라도 남원(南原)에 양생(梁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부모를 일찍 여읜 그는 여태 혼인도 못 하고 만복사(萬福寺)의 동쪽 방에서 혼자 살았다. 방문 밖에는 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때마침 봄을 맞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 모습이 꼭 옥으로 만든 나무에 은 덩어리가 달린 것 같았다. 양생은 달이 뜨는 밤이면 어김없이 그 나무 밑을 서성거리면서 낭랑하게 시를 읊었다.
한 그루 배꽃은 외로이 서 있는데 / 가련해라, 달 밝은 밤 져버리다니.
젊은이는 외로운 창가에 홀로 누웠는데 / 어디서 아름다운 이는 퉁소를 부는가.
-만복사의 저포놀이
“도련님께서는 의심하지 마시고, 황혼 녘에 만나기로 약속하시지요”[將子無疑 昏以爲期].
이생은 쪽지에 적힌 대로 저녁노을이 질 무렵 그곳을 찾아갔는데, 갑자기 복숭아꽃 가지 하나가 담장 밖으로 나와 한들거렸다. 그가 가서 살펴보니 대나무 바구니가 그네 매는 줄에 묶여서 늘어져 있었다. 이생은 그것을 잡고 기어올라 담장을 넘었다.
때마침 동산에 달이 막 떠올라서 꽃 그림자는 땅에 드리워 있었으며, 참으로 맑고도 사랑스러운 향기가 났다. 이생은 마치 신선 세계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속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기뻤지만, 남녀 간의 비밀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터럭이 모두 쭈뼛 서는 듯했다.
-이생이 담 너머 아가씨를 엿보다
홍생은 계단에서 내려와 담장 틈에 숨어서 그녀의 거동을 지켜보았다. 미인은 남쪽 다락에 기대서서 달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시를 읊조렸는데, 풍류로운 태도에는 엄연한 법도가 배어 있었다. 시녀들이 비단 방석을 펴자 미인은 얼굴빛을 고치고 자리에 앉아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서 시를 읊던 분은 어디 계신가요? 저는 꽃과 달의 요물도 아니고 연꽃 위를 걷던 여인도 아니랍니다. 다행히 오늘 밤, 만 리나 되는 하늘이 구름 걷혀 드넓고, 달이 높이 뜬 데다 은하수는 맑으며, 계수나무 열매 떨어지고 구슬 같은 백옥루는 차갑습니다. 술 한 잔에 시 한 수 읊으면서 마음속 깊은 정을 펼치고 싶군요. 이처럼 좋은 밤을 어찌 보낼까요?”
-술에 취해 부벽정에서 노닌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