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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눈물을 참고 있나요

지금도 눈물을 참고 있나요

박인환, 이광수, 이상, 이효석, 노자영 (지은이)
판테온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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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눈물을 참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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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지금도 눈물을 참고 있나요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4943305
· 쪽수 : 204쪽
· 출판일 : 2016-06-13

책 소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우리 문학사의 내로라하는 작가 11명이 기억의 갈피 속에 곱게 접어 넣어뒀던 아름답고 애잔한 사랑 이야기를 전해준다. 특히 사랑에 관한 피상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온몸으로 겪고, 사무쳤던 사랑에 대해서 진솔하게 고백하고 있어 남다른 울림이 있다.

목차

프롤로그 송두리째 삶을 뒤흔들고 간 사랑에 대한 기억과 단상!

행복이라는 꽃이 피었습니다 _ 노자영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 _ 노자영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_ 노자영
당신의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_ 노자영
마음이 텅 빈 것만 같아 _ 노자영
단 하루를 살더라도 _ 노자영
울고만 싶을 뿐 _ 노자영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_ 노자영
누가 사랑을 달다고 했나 _ 노자영
사랑에 관한 참회록 _ 이효석
안타깝고, 아름답고, 슬픈 _ 이효석
동해의 여인(麗人) _ 이효석
당신 없이는 _ 박인환
욕망은 애정의 하위 개념 _ 박인환
잊을 수 없는 일 분 _ 이광수
봉아의 추억 _ 이광수
그 아이의 죽음 _ 이광수
봄이면 생각나는 사람 _ 김남천
엄마를 잃은 어린 두 딸에게 _ 김남천
그 뒤의 어린 두 딸 _ 김남천
슬픈 독백 _ 이 상
단발머리 소녀 _ 이 상
이상한 인연 _ 이익상
잊을 수 없는 여인 _ 현진건
이탈리아 소녀 _ 홍난파
고운 유혹에 빠졌다가 _ 채만식
슬픈 우상 _ 정지용

저자소개

박인환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26년 강원도 인제 출생, 1956년 서울 세종로에서 생을 마쳤다. ‘마리서사’를 운영하며 문학 예술 언론인들과의 교분을 넓혀, 청년문학가협회 시 낭독회 참여, 국제신보 등에 신작을 발표하면서 시작 활동을 시작했다. 자유신문, 경향신문 기자로 일했고 6.25전쟁이 일어나자 종군기자로도 활약했다. 신문사 퇴직 후 당시 우리나라 최대 화물선 남해호를 타고 미국 여행을 다녀와 「아메리카 시편」 등을 발표했다. 모더니즘 경향의 동인지 『신시론』 앤솔로지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 참여했다. 1955년 개인 시집 『박인환 선시집』을 출간했다. 1956년 3월 17일부터 사흘간 ‘이상(李箱) 추모회’를 열어 폭음 끝에 3월 20일 9시에 심장마비로 급사했다. 만 30세, 시력(詩歷) 10년이었다. 1976년 10주기를 맞아 장남인 박세형 씨가 추모 시집 『목마와 숙녀』를 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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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2. 3. 4. 평북 정주 출생. 호는 춘원(春園). 소작농 가정에서 태어나 열한 살 때 부모를 잃고 고아로 자람. 1905. 일본 메이지 중학부에서 공부하면서 소년회(少年會)를 조직해 《소년》 지 발행. 1910. 귀국해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음. 1915. 다시 일본에 가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입학. 1917.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을 〈매일신보〉에 연재. 1919. 도쿄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서를 작성한 후 이를 전달하기 위해 상하이로 건너갔으며, 도산 안창호를 만나 민족독립운동에 공감하고 여운형이 조직한 신한청년당에 가담. 1921. 귀국. 1910년 중매로 결혼한 백혜순과 이혼하고 1918년 결핵 치료에 도움을 준 의사 허영숙과 결혼. 1928-1929. 〈동아일보〉에 『단종애사』 연재. 1937.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석방 1950.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가 자강도 만포시에서 병사. 『개척자』 『선도자』 『재생』 『마의태자』 『단종애사』 『군상』 『흙』 『무정』 『유정』 『이순신』 『그 여자의 일생』 『이차돈의 사』 『그의 자서전』 『사랑』 『원효대사』 등 60여 편의 소설과 시, 수필, 평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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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0년 9월 23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신명학교와 동광학교·보성고보를 거쳐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30년 소설 「12월 12일」의 발표를 시작으로 이후 일문시 「이상한 가역반응」·「조감도」 등을 발표하는 등 본격적인 창작에 나서게 된다. 1933년 각혈로 배천온천에 요양을 가서 금홍을 만났으며, 서울에 돌아와 동거를 하게 된다. 그녀와의 삶을 바탕으로 「지주회시」·「날개」·「봉별기」를 썼다.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를 발표하였으나 독자들의 거센 반발로 15편 연재로 그만두게 된다. 1935년에는 성천을 기행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산촌여정」과 「권태」를 내놓게 된다. 1936년에 『시와 소설』을 편집하였고, 「날개」를 발표하여 일약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으며, 「위독」·「동해」·「종생기」 등 뛰어난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10월에 동경으로 건너갔으며, 「실화」·「동경」 등을 창작하였다. 1937년 2월 불령선인으로 체포되었으며, 4월 17일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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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7년 강원도 평창에서 한성사범학교 출신의 교사였던 아버지 이시후의 1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평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경,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후 일생의 벗이자 문학적 동지였던 현민 유진오를 만나면서 그와 더불어 문학에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경성제국대학에 함께 진학하여 더욱 활발한 문학 활동을 펼쳤다. 그는 대학 재학 중인 1928년 『조선지광』에 단편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유진오 등과 함께 경향소설을 쓰며 동반자 작가로 불리기도 했다. 이효석이 작품 세계에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경성농업학교 교사로 재직할 무렵이었다. 이후 평양으로 직장을 옮긴 그는 안정된 집필 환경 속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였고,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도 이 시기에 발표되었다. 해마다 10여 편의 소설을 발표하던 그는 1940년 아내와 아들의 잇단 죽음으로 실의에 빠져 잠시 만주 등지를 방랑하다가 돌아왔으며, 다시 창작에 대한 의욕을 불태웠지만 뜻을 펼치기도 전에 1942년 결핵성 뇌막염으로 35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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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영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9년 한성도서주식회사(漢城圖書株式會社)에 입사했으며,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서울≫·≪학생≫지의 기자로 있으면서 감상문 등을 발표했다. 1925년경 일본으로 넘어가서 니혼대학[日本大學]에서 수학하고 귀국하였으나 폐질환으로 5년간 병석에 있었다. 1934년 ≪신인문학(新人文學)≫을 간행하였으나 자본 부족으로 중단되었다. 1935년 조선일보사 출판부에 입사하여 ≪조광(朝光)≫지를 맡아 편집하였다. 1938년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청조사(靑鳥社)를 직접 경영하기 시작하였다. 작품 활동은 1919년 8월 ≪매일신보≫에 '월하(月下)의 몽(夢)'이, 그 해 11월에 '파몽(破夢)'·'낙목(落木)' 등이 시부분에서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했다. 1921년 ≪장미촌≫, 1922년 ≪백조≫ 창간 동인으로 가담하여 ≪백조≫ 창간호에 시작 '객(客)'·'하늘의 향연(饗宴)'·'이별한 후에'를 발표했고, ≪백조≫ 2호에 '우연애형(牛涎愛兄)에게'라는 수필을 발표했다. 1923년 소설 ≪반항(反抗)≫, 1924년 첫 시집 ≪처녀(處女)의 화환(花環)≫, 1928년 제2시집 ≪내 혼(魂)이 불탈 때≫, 1938년 제3시집 ≪백공작(白孔雀)≫ 등을 간행하였다. 1940년 10월 6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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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내 정신은 완전히 당신에게 빼앗기고 말았지요. 그 후 당신의 그림자라도 보고 싶어서 당신 집 앞에서 얼마나 서성거렸는지 모르실 겁니다. 그런데 당신은 내 이름은 고사하고, 내 존재마저 모르는 듯했습니다.
- 노자영,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 중에서

당신은 이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나무 한 그루, 돌 한 개 없어지지 않았건만, 내게는 세상이 모두 변하고, 모든 것이 텅 빈 것만 같았습니다.
- 노자영, <마음이 텅 빈 것만 같아> 중에서

사랑에 관한 한 나는 두꺼운 참회록을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의문이다. 한 구절도 빼지 않고 진실을 말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제쯤이면 충분히 고백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또 그날을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는 걸까.
- 이효석, <사랑에 관한 참회록> 중에서

당신이 내 곁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당신 옆에서 떠난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당신의 품 안에서 울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사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나만 혼자서 이렇게 바닷바람을 마시고 있는지.
- 박인환, <당신 없이는> 중에서

나는 정신 잃은 사람처럼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소중한 것을 갑자기 잃어버린 듯도 했고, 머리를 문지방에 부딪친 사람처럼 멍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본 듯했습니다.
- 이광수, <잊을 수 없는 일 분> 중에서

세상의 모든 종교와 철학, 전설이 왜 있는지 이제 알았다. 사랑하던 이가 죽으면 그 견딜 수 없는 슬픔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것이 바로 모든 종교와 철학, 전설의 근본 문제임을 이제 알았다. 그러나 아가, 나는 그중에 어떤 것을 믿어야 옳으냐? 어느 것이든 나는 네가 살아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을 믿으려 한다.
- 이광수, <봉아의 추억> 중에서

만일 이 무능력한 아빠가 너희들의 전진에 둘도 없는 장애가 된다면 과감하게 나의 손을 뿌리치고 달아나라. 그러다가 만일 내가 다시 기운을 내어 쫓아오거든 너희들의 대오 속에 나를 넣어주려무나. 하지만 나를 생각하는 마음에 결코 걸음을 멈추거나 뒤돌아봐서는 안 된다. 나는 장애물일 뿐이니, 나를 떨치고 과감하게 전진해야 한다.
- 김남천, <엄마를 잃은 어린 두 딸에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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