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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해방전후사/한국전쟁
· ISBN : 9788997305032
· 쪽수 : 440쪽
· 출판일 : 2013-05-30
책 소개
목차
총론: 한국전쟁과 동아시아 상(象)의 연쇄 / 백원담
1부 냉/열전과 국민의 탄생
한국전쟁과 신중국의 정치운동―신민주주의체제의 폐기와 인민민주전정의 강화 / 이남주
평화염원과 정치동원: 1950년의 평화서명운동 / 청카이
번신하는 국민과 냉전: 항미원조 시기 중국의 반미대중운동 / 임우경
“중국”의 재발견―신애국주의운동과 신중국의 국제관을 통해 형성된 중국의 “자기”이해 / 허지시엔
신중국 노동국민의 형성과 전 국민 동원의 현실―항미원조 시기 ‘마헝창 소조’의 형성 배경과 그 사상적 의미 / 허하오
2부 여러 ‘중국’들
‘민족’에서 ‘국민’으로―‘조선족’과 ‘조선전쟁’ / 최일
‘반공’의 희망에서 망각된 전쟁으로: 대만의 한국전쟁 기억 / 란스치
홍콩의 냉전문화와 한국전쟁 / 로윙상
말라야에서의 한국전쟁―말라야 공산당 투쟁과 신촌 기억에 관한 재고찰 / 판완밍 & 천띵후이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과 동아시아 분단체제의 탄생 / 김학재
저자소개
책속에서
“남한에서 한국전쟁은 흔히 ‘동족상잔’이라는 이미지에 갇혀 단지 남북한의 문제로만 인식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 대만, 일본이 함께 치른 전쟁이었으며, 심지어 30여개국이 참여한 세계전쟁이기도 했다. 냉전시대 첫 열전이라 불리는 한국전쟁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적 냉전체제를 고착시킨 결정적 계기였다. 한국전쟁으로 미국은 대일정책을 전환하여 일본을 아시아 반공기지로 삼고 재무장하기 시작했다. 또 중국은 원치 않는 전쟁에 개입하면서 ‘대만 해방’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됐으며 대만이 일본, 남한과 함께 미국의 아시아 방어 전략기지로 편입됨에 따라 중국 양안의 분단도 고착되기에 이르렀다. 동시에 중국은 한국전쟁에서 세계 최강의 미군을 한반도 이남까지 격퇴시킴으로써 국제무대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를 수 있었고 대내적으로는 사회주의 정권을 공고히 하면서 그 정치경제적 기반을 압축적으로 확립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의 경험을 일국화하는 습관적 태도나 심지어 그에 대한 발언의 ‘주권’이 남북한에게만 있다고 여기는 민족주의적 시각을 넘어서 한국전쟁을 아시아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이 바로 정전협정을 주도한 당사자이자 세계적 냉전질서 속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해 온 중국이다.”-서문에서
“아시아에서 냉전연구 그리고 한국전쟁연구는 국제정치학이나 관계학의 맥락에서 냉전적 전략연구로 수렴되는 구조가 강력한 자장을 이루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화연구의 영역에서는 천꽝싱이 식민-지리-역사유물론을 문화연구의 새로운 분석틀로 제기하고 문화연구의 아시아적 전치(轉置)를 역설하는 가운데 박래품이 아니라 자기근거를 가지는 진보운동과 비판적 사상전통의 현재적 개진의 맥락 위에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식민화와 냉전의 내재화맥락을 탈경계적으로 마주-세움과 같은 관계의 다각화와 관계의 다면화의 추동이 곧 아시아에서 탈식민적 탈냉전적 학지를 건설하는 중요한 경로가 아닌가 한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공고한 학과체계에 구속되지 않는 다소 유연한 구조, 문화연구로의 정향은 불가피한 것이 아닌가 한다.”(백원담, "한국전쟁과 동아시아 상의 연쇄"에서)
“최근 중국에서도 신민주주의체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소위 자산계급민주주의를 수용하지 않으면서도 중공이 영도하는 정치체제의 경직성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으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도 단순히 신민주주의체제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실현가능한 민주적 형식과 메커니즘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필요하다. 신중국에서 전판운동과 산판운동이 전개되기 이전에도 이미 기층의 급진주의와 정치사회적 안정을 추구하려는 중앙의 정책기조 사이에도 긴장관계가 출현하고 있었다. 인민민주전정에서는 이러한 긴장을 관리하고 조절할 수 있는 정치사회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고 결국 중공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전판운동과 산판운동을 발동하며 그 긴장관계를 해소시켰고, 급진주의는 민주주의의 확장이 아니라 전정이라는 형식으로만 신중국 정치에 수용되어갔던 것이다.”(이남주, "한국전쟁과 신중국의 정치운동―신민주주의체제의 폐기와 인민민주전정의 강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