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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91159922312
· 쪽수 : 296쪽
책 소개
목차
내 삶을 구하지 못한 친구에게
해설: 닉네임_김현
리뷰
책속에서
소문만 무성하던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내게 처음으로 꺼낸 이는 빌이었다. 1981년이었을 것이다. 빌은 출장차 다녀왔던 미국에서, 관련 잡지를 들추다가 그 질병으로 발생한 죽음에 관한 첫 임상 보고서를 읽었다. 그는 스스로도 반신반의하며 무슨 미스터리라도 되는 것처럼 그 병을 언급했다. 빌은 백신을 생산하는 대형 제약 연구소에서 관리자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튿날 나는 뮈질과 단둘이 저녁을 들면서 빌이 퍼뜨린 공포스러운 소식을 전했다. 뮈질은 발작적으로 웃음을 터트리다가 급기야 몸을 비틀며 소파 밑으로 굴렀다. “동성애자들만 걸리는 암이라니. 허무맹랑한 것도 정도껏이어야지. 웃겨 죽겠네!” 그때 뮈질은 이미 에이즈 원인 바이러스인 레트로바이러스에 감염되었던 듯하다.
1983년 가을, 뮈질은 세미나에서 돌아와 각혈을 했고 밭은기침 속에서 점차 쇠약해졌다. 하지만 기침하는 사이사이 샌프란시스코의 사우나에서 벌였던 마지막 광란을 회상하며 즐거워했다. 나는 말했다. “에이즈 때문에 거기도 이젠 쥐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을 줄 알았어요.” 그가 대답했다. “모르는 소리. 외려 사우나에 그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몰린 적은 일찍이 없었어. 그야말로 특별해진 거지. 그곳에 감도는 위험이 새로운 공모감과 새로운 애틋함, 새로운 결속감을 만들어냈거든. 전에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던 이들이 이젠 대화를 해. 다들 자기가 왜 거기에 와 있는지 아주 잘 아니까.”
1983년은 쥘이 멕시코에서 목의 림프절종으로 고생한 해였다. 1984년은 마린 그리고 내 편집자가 나를 배신한 해이자, 뮈질이 죽은 해였고, 일명 ‘이끼절’이라고 하는 교토의 사원 사이호지에서 소원을 빈 해였다. 1985년은 우리의 이야기에서 아무런 자리도 차지하지 않는다. 1986년은 사제가 죽은 해였다. 1987년은 대상포진이 발병한 해였다. 1988년은 절망적인 가운데 내 병을 발견하고 석 달 뒤, 내게 구원을 믿게 했던 우연에 희망을 건 해였다. 스테판에 따르면, 잠복기가 네 해 반에서 여덟 해에 이르고 이제는 자각하게 된, 그 여덟 해에 걸쳐 내 곁에 어른거리며 나를 위협하던 그 병의 징조들의 연대기에서 육체적 이상(異常)들은 성적인 만남들보다 덜 결정적이지 않았고, 예감 또한 그 예감들을 지워버리려는 시도였던 기도보다 덜 결정적이지 않았다. 이 연대기는, 병의 진행이 방탕에서 비롯되었음을 발견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나의 도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