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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서양사 > 서양중세사
· ISBN : 9791164389681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21-06-21
책 소개
목차
7장 모든 것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에서 시작되다
황제와 코무네 / 브레시아 공방 / 교향악 지휘관처럼 / 파문(세 번째) / 멜로리아 해전 /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진장 / 성 베드로의 자산 / 궁지로 몰아넣다
간주곡(intermezzo)
여자들 / 자녀들 / 협력자들 / 간부 후보생 / 친구들 / 멜피 헌장 / 카스텔 델 몬테 / 《매사냥의 서》 / 이탈리아어의 탄생 / 동시대 ‘미디어’의 평가
8장 격돌 재개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 / 도망친 교황 / 리옹 입성 / 이단 재판 / 리옹 공의회 / ‘리옹’ 이후 / 교황의 ‘긴 손길’ / 음모 / 포획물을 덮치는 매 / 재구축 / 빅토리아 소실(燒失) / 피에르 델라 비냐 / 엔초, 붙잡히다 / 마지막 일 년 / 마지막 매사냥 / 유언 / 죽음
9장 그 후
불안 / 교황들의 집념 / 콘라트의 죽음 / 시칠리아 왕 만프레디 / 프랑스 왕의 변심 / 왕제 샤를 / 만프레디의 죽음 / 시칠리아의 만종 / 종언의 땅
연표
도판 출전 일람
참고문헌
리뷰
책속에서
‘무인’과 ‘정치가’의 차이는 뛰어난 무장과 뛰어난 통치자의 차이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예로 들면, 독주자와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차이 아닐까.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그 생애를 통해 교향악 지휘자였다. 그의 행동을 좇고 있자면 참 잘도 이렇게 많은 생각을 동시에 하고 동시에 대처했구나 싶다. 연구자라면 그런 점들을 자세히 서술하는 게 의무일 테지만 그러면 역사 서술에 꼭 필요한 흐름이라는 것을 표현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무성한 나뭇가지를 과감히 잘라내듯 생략하며 쓰고 있는데 같은 시대의 다른 황제와 왕들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스타일이었냐 하면 전혀 아니다. 평생 교향악 지휘자로 살았던 프리드리히가 중세 후기라는 시대에서는 특이한 존재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
지휘자 같은 프리드리히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맛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중세라는 시대를 비추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브레시아에서 철수한 다음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어떻게 실행에 옮겼는지 열거해보겠다.
(…)
생각해보면 중세 후기의 거인이자 르네상스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성 프란체스코와 황제 프리드리히는 로마 교황이 생각하는 만큼 이질적인 존재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아시시의 프란체스코가 시종일관 주장한 것은 예수 시절의 그리스도교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황제 프리드리히가 계속 주장한 것은 예수가 말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신의 것은 신에게”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또 제5차 십자군에 동행한 프란체스코는 알 카밀에게 가서,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평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프리드리히도 제6차 십자군을 이끌고 오리엔트로 향하는데 역시 알 카밀과의 사이에서 강화, 즉 평화 수립에 성공한 것이다. 나이가 열두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고, 게다가 나란히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두 사람이 어디선가 만난 적은 없을까, 연구자들은 필사적으로 찾았으나 아직도 그것을 실증할 사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혹시 만났더라면 수도사와 황제라는 위치를 넘어서 함께 공감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교황은 태양이고 황제는 달’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교황 그레고리우스보다도 더 서로 공감하지 않았을까.
15일이나 휴회한다고 하니 공의회 참석자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리옹을 비우고 있었다. 영국 왕의 대리는 이 기회를 이용해 왕과 협의해야겠다며 본국으로 건너가 협의를 끝내긴 했으나 아직 도버 해협을 건너지 못한 상태였다. 다행히 타데오는 리옹에 머물면서 동료 피에르 델라 비냐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7월 17일에 갑자기 소집된 공의회의 참석자는 원래 모였던 150명에서 대거 줄어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교황은 강행한다.
출석한 사람만 모인 자리에서 교황은 재판관의 판결을 읽어내려갔다. 공소권을 인정하지 않은 교회법에 근거하는 이상 그것이 최종 판결이 된다.
재판장이기도 한 인노켄티우스 4세는 검사 역을 맡은 세 명의 스페인인 주교가 주장한 황제의 죄상을 다 인정했다. 그에 대한 타데오의 반론은 모두 기각했다. 이날 교황의 판결 요지는 다음과 같다.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그가 차지한 높은 지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다. 그런 그가 한 모든 짓은 이단 행위이고 그 자신이 속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완전히 반하고 있다. 이제까지 그에게 내렸던 파문도 이 ‘교회의 적’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따라서 더욱더 엄격한 처벌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한 교황은 계속했다.
나는 독일의 선제후들을 비롯한 제후 전원에게 진언한다. 프리드리히를 대신할 황제 선출을 서두르라고.
다만 시칠리아 왕국의 장래를 결정하는 것은 이 왕령의 진정한 소유자인 로마 교황에 권리가 있는 이상 왕국의 왕이 될 자는 내가 생각하겠다.
이 판결을 들은 타데오 다 세사는 손도 안 들고 일어나 넓은 대성당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소리쳤다.
“디에스 이스타 디에스 이라에, 칼라미타티스 에 미제리아에(Dies ista dies irae, calamitatis et miseriae)!”
“오늘 이 순간 신이 분노의 불길을 일으켜, 인간이 고통받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주군과 항상 같은 생각을 해온 타데오 다 세사였다. 그런 그가 내뱉은 라틴어의 의미를 생각하면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이다. 즉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신의 것은 신에게, 라고 말한 예수의 가르침에 명백하게 반하는 행동에 나선 교황 인노켄티우스에 신이 분노해, 이로 인해 결정적인 일이 된 황제와 교황의 항쟁으로 관련 없는 사람까지 고통을 받는 시대가 온다고. 초원에서 거대한 코끼리끼리 격돌할 때의 폐해는 중소 동물들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