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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사랑한 세계명작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 세계명작

0. 헨리,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빅토르 위고, 슈테판 츠바이크, 워싱턴 어빙, 찰스 디킨스 (지은이), 박승규 (엮은이)
생각의나무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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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사랑한 세계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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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 세계명작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독일소설
· ISBN : 9788964601211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11-01-17

책 소개

세계적인 대문호들의 작품 중에서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오 헨리, 찰스 디킨스, 슈테판 츠바이크 등 교과서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전 연령층의 교양필독서로 손꼽히는 작품들을 선별하여 실었다. 그리고 전 세계인들에게 널리 읽혀온 명작들을 우리의 인생을 구성하는 여러 테마에 맞춰 구성하였다.

목차

들어가는 글

첫 번째 이야기: 헌신
레 미제라블 _빅토르 위고

두 번째 이야기: 만족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_톨스토이

세 번째 이야기: 선행
세 가지 의문 _톨스토이

네 번째 이야기: 연애
가난한 연인들 _도스토옙스키

다섯 번째 이야기: 희망
마지막 잎새 _오 헨리

여섯 번째 이야기: 양심
죄와 벌 _도스토옙스키

일곱 번째 이야기: 회개
코르네이 바실리예프 _톨스토이

여덟 번째 이야기: 우정
20년 후 _오 헨리

아홉 번째 이야기: 착각
황혼 _ 슈테판 츠바이크

열 번째 이야기: 이상향
립 반 윙클 _워싱턴 어빙

열한 번째 이야기: 용서
크리스마스 캐럴 _찰스 디킨스

열두 번째 이야기: 사랑
크리스마스 선물 _오 헨리

저자소개

오 헨리 (지은이)    정보 더보기
미국 단편소설 작가로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ydney Porter)이고, 노스캐롤라이나 주 그린즈버러에서 내과의사인 아버지 알게몬 시드니 포터와 어머니 메리 제인 버지니아 와인 포터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어려서 양친을 잃어 숙모가 교사로 있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1882년 텍사스로, 1884년에는 오스틴으로 이주하면서 목장 관리, 제도사, 기자, 은행원 등의 직업을 전전하였다. 1887년 아솔 에스테스와 결혼했으며, 1891년 오스틴은행에 근무하면서 아내의 내조를 얻어 주간지를 창간했으며, 지방신문에 유머러스한 일화를 기고하는 등 문필생활을 시작하였다. 1896년 2월 은행 공금횡령혐의로 기소되었다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온두라스로 도피했으나 아내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와 체포되었다. 1898년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는 교도소의 병원에서 약제사로 일하면서 딸의 부양비를 벌기 위해 글을 썼고, 즉각 잡지 독자들로부터 인기를 얻었으며, 출감하면서 이름을 오 헨리란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1903년 12월부터 1906년 1월까지 뉴욕의 《월드(World)》지에 매주 글을 기고하였다. 최초의 소설집 《캐비지와 왕(Cabbages and Kings)》(1904)을 시작으로, 《400만(The Four Million)》(1906), 《손질 잘한 램프(The Trimmed Lamp)》(1907), 《서부의 마음(Heart of the West)》(1907) 등의 단편집을 계속해서 출간했다. 헨리의 말년은 악화된 건강, 금전상 압박과의 싸움, 알코올 중독 등으로 얼룩졌다. 1907년에 한 재혼은 불행했다. 1910년 6월 5일, 과로와 간경화, 당뇨병 등으로 뉴욕 종합병원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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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21년 모스크바에서 의사였던 아버지와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 슬하의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공병학교를 졸업하였다. 1842년 소위로 임관하여 공병 부대에서 근무하다 1844년 문학에 생을 바치기로 하고 중위로 퇴역한다. 도스토옙스키는 톨스토이와 투르게네프 같은 작가들과는 달리, 유산으로 받은 재산이 거의 없었기에 유일한 생계 수단이 작품을 쓰는 일이었다. 1849년 4월 23일 페트라솁스키 금요모임사건으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는다. 사형집행 직전 황제의 사면으로 죽음을 면하고 시베리아에서 강제노역한다. 1854년 1월 강제노역형을 마치고 시베리아에서 병사로 복무한다. 1858년 1월 소위로 퇴역하고 트베리에서 거주하다 1859년 12월 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한다. 1857년부터 불행한 결혼생활을 함께했던 아내 마리야 이사예바가 1864년 4월 폐병으로 사망한다. 그해 6월 친형이자 동업자였던 미하일이 갑자기 사망한다. 1866년 잘못된 계약으로 급히 소설을 완성해야 했던 작가는 속기사 안나 스니트키나를 고용하여 《도박사》와 《죄와 벌》을 완성하고 이듬해 1867년 2월 속기사와 두 번째로 결혼한다. 1867년 아내와 함께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유럽의 여러 도시를 떠돌며 《백치》, 《영원한 남편》, 《악령》 등을 쓴다. 해외에서 거주하는 동안 세 아이가 태어난다. 작가가 46세일 때 태어난 첫 달 소피야는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사망한다. 작가에게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 안나 스니트키나는 작가의 마지막 날까지 든든한 옆지기로 남는다. 1881년 1월 28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부를 구상하고 있던 도스토옙스키는 앓던 폐기종이 악화되어 숨을 거둔다. 1881년 2월 1일 장례식을 찾은 6만여명의 인파가 떠나는 작가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도스토옙스키는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 티흐빈 묘지에서 안식하고 있다. 대표작은 《가난한 사람들》, 《백야》, 《분신》,《죽음의 집의 기록》, 《지하에서 쓴 회상록》, 《도박사》,《죄와 벌》, 《백치》, 《악령》, 《미성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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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28년 9월 9일 러시아 툴라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태어났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친척들 손에 자란 톨스토이는 16세에 카잔대학교에 입학했지만, 형식적인 교육에 실망해 그만두었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을 오가며 방황하던 톨스토이는 1851년 형 니콜라이를 따라 군에 입대한다. 군대에 복무하면서 〈어린 시절〉 등 자전적 삼부작을 발표해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1850년대 후반에는 농민들의 열악한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교육에 있다고 판단, 야스나야 폴랴나 농민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열고, 교육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병행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다양한 영역에 대한 평론을 썼으며,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 등의 문학작품을 통해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자기완성과 악에 대한 무저항, 사적 소유 부정이라는 철학적 관점에 기초하여 《고백》 《인생에 대하여》 《예술론》 등을 저술하고 당대 러시아 사회와 종교를 강렬하게 비판했다. 이로 인해 러시아 정교에서 파문을 당하고 정부의 압박을 받았지만, 모든 걸 가졌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러시아 황제와 달리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지만 모든 걸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러시아 황제로 불릴 만큼 민중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만년에 이르러 술·담배를 끊고 채식주의자가 되었으며 농부처럼 입고 노동하며 생활했다. 생전에 수많은 톨스토이주의자가 야스나야 폴랴나에 몰려와 농민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했다. 톨스토이는 말년에 조용한 피난처를 찾아 집을 나선 며칠 후, 1910년 11월 7일 아스타포보 역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 그의 가출은 현실에 대한 극복이자 다른 삶을 향한 마지막 도전으로 상징된다. 작가이자 폭력을 거부한 평화사상가, 농민교육가이자 삶의 철학자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주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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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 나폴레옹 휘하의 군인인 아버지와 왕당파 집안 출신인 어머니의 셋째아들로, 당시 아버지의 임지였던 브장송에서 태어났다. 이후 파리, 나폴리, 마드리드 등을 전전하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학창 시절 독서와 시 창작, 문예 비평에 열중하다 스무 살이 되던 1822년 첫 시집《송가와 여러 시》를 발표했다. 1823년 첫 장편소설《아이슬란드의 한Han》에 이어 1827년 운문 희곡〈크롬웰〉등을 발표하여 낭만주의 작가로 자리매김했고 1830년 초연된 희곡〈에르나니〉로 고전주의자들과의 싸움에서 주도권을 획득했다. 1831년 발표한 역사소설《파리의 노트르담》으로 대성공을 거두었고 루이 필리프의 7월 왕정 시기에 정치성을 띤 시집을 다수 발간했다. 현실 참여적인 지식인이자 인도주의자로서 사형제 폐지와 빈민 구제를 주장한 위고는 공화파 정치가로도 활약했다. 1851년 나폴레옹 3세가 쿠데타로 제정을 수립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다 국외로 추방되어 브뤼셀 등지에서 19년간 망명 생활을 했다. 그 기간 동안 작품 집필에 몰두하여《명상시집》과《레 미제라블》을 비롯한 걸작들을 남겼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으로 나폴레옹 3세가 몰락하면서 파리에 돌아온 후 1876년 상원 의원으로 선출되지만 1878년 뇌출혈로 건강이 악화되어 정계에서 은퇴했다. 1885년 파리에서 폐울혈로 사망한 그의 장례는 국민적인 애도 속에 국장으로 거행되었고 시신은 팡테옹에 안장되었다. 대하소설《레 미제라블》에 여담 형태로 삽입된 ‘워털루 전투’ 이야기는 위고가 벨기에 전적지에서 두 달간 머무르며 곳곳을 답사하는 노력 끝에 집필한 것이다. 위고 특유의 비장미 넘치는 문체가 돋보이는 이 글은 일세를 풍미한 영웅 나폴레옹의 패배 과정을 극적이고도 박진감 넘치게 그려내는 동시에 전투의 역사적 의미를 일깨우며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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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8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김나지움 시절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빈과 베를린 대학에서 독일문학과 프랑스문학을 전공했다. 1901년 첫 시집 『은빛 현』을 출간하며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1914년 제1차세계대전 당시 자원입대하여 군 신문의 기자로 활동했고, 전쟁 종식 후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세 거장』 『악마와의 투쟁』 『세 작가의 인생』 『로맹 롤랑』 등 유명 작가들에 대한 평전을 발표했다. 또한 역사적 인물을 통찰하는 심도 있는 전기 『조제프 푸셰』 『마리 앙투아네트』 『메리 스튜어트』 등을 집필하며 세계 3대 전기 작가 중 한 사람으로서 명성을 떨쳤다. 무엇보다 「불타는 비밀」 「아모크 광인」 「감정의 혼란」 등, 프로이트의 영향하에 욕망하는 인간의 내면과 인간관계에서의 심리작용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완성도 높은 중단편들로 평단과 대중을 모두 사로잡았다. 유대인으로서 나치의 금서 탄압과 압박에 시달리다, 1934년 런던으로 피신해 영국 시민권을 획득했다. 이후 유럽을 떠나 브라질로 망명했다. 1939년 소설 『초조한 마음』을 발표했고, 1941년 자전적 회고록 『어제의 세계』와 소설 「체스 이야기」를 완성했다. 1942년 정신적 고향인 유럽의 자멸로 우울증을 겪다 유서를 남기고 아내와 함께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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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어빙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세기 미국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소설가이자 전기 작가이다. 어릴 때부터 낯선 인물과 풍습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열일곱 살 때 허드슨강 가를 여행하면서 수많은 전설을 접했다. 이때 들은 전설을 바탕으로, 그 유명한 '립 밴 윙클'과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이 담긴 <스케치북>을 출간했다. 1806년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법조인이 되기보다는 저작 활동에 더 깊은 관심을 두었다. 《샐머건디 (Salmagundi)》라는 문학 잡지 창간을 도왔으며, 매호 문학비평을 기고하였다. 1809년에는 <뉴욕의 역사>를 ‘디트리히 니커보커(Diedrich Knickerbocker)’라는 필명으로 출간했는데, 이 책으로 그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도록 한 <스케치북>은 1819년부터 1820년까지 영국에 체류하며 집필하여 출간하였다. 이 책 에는 수필과 기행문을 비롯해 영국의 전통과 미국의 전설 을 담은 수십 편의 단편을 실었다. 1826년에는 마드리드 미국공사관으로 임명되어 에스파냐 에 체류했다. 그때 겪은 경험과 전해 들은 전설을 책으로 엮었는데, 그것이 바로 <알함브라 궁전의 이야기(Tales of the Alhambra)>이다. 이 책은 ‘가장 낭만적인 에스파냐 여행 기’라는 찬사를 받으며, 어빙의 대표작이자 전 세계적으로 지금까지 사랑받는 고전이 되었다. 그 후에도 <대초원 여행>, <조지 워싱턴전(傳)> 등의 여행기 와 전기 등을 활발히 집필하였다. 그 밖의 주요 도서로는 <콜럼버스의 일행들>, <그라나다의 정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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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12년 영국 포츠머스의 해군 경리국에서 근무하는 하급 관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열두 살 때, 호인이었으나 생활력이 없었던 아버지가 빚을 지고 투옥하는 바람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구두약 공장에서 열 시간씩 일하게 되었다. 이때의 경험이 훗날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다. 열다섯 살에 변호사 사무소의 사환, 법원 속기사를 거친 끝에 신문기자가 되어 의회에 관한 기사를 쓰게 되었다. 또한, 청소년기부터 고전을 탐독하면서 일찍이 문학에 눈을 떴고 이에 기자 생활을 하며 쌓은 경험이 더해져 풍부한 관찰력과 식견을 갖추었다. 1833년 잡지에 단편을 투고해 당선된 데 힘입어 계속해서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1836년 발표한 단편을 모아 《보즈의 스케치》를 출간했다. 그는 스물네 살에 신진작가로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했다. 다음 해에 완성한 장편소설 《피크위크 클럽의 기록》(1837)에는 그의 뛰어난 유머 감각이 발현돼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다음 작품인 《올리버 트위스트》(1838)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작가로서 확고한 위치를 확립했다. 그 후 영국과 미국의 각계각층 독자의 호응에 보답해 《니콜라스 니클비》 (1839)《골동품 상점》(1842) 〈크리스마스 캐럴〉(1843) 등 중.장편소설을 연이어 발표해 명성을 떨쳤다. 몸소 체험한 사회 밑바닥 생활상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세상의 부정과 모순을 용감하게 비판했던 그는 1850년부터 이전 작품과 성격이 조금 다른《데이비드 코퍼필드》(1850) 《황폐한 집》(1852) 《위대한 유산》(1861) 등을 집필했다. 이외에도 다수의 소설과 수필을 남겼다. 작품을 쓰는 일뿐만 아니라 잡지사 경영, 자선 사업, 연극 상연, 자작품 공개 낭독회, 각 지방의 여행 등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 1870년 6월 9일 세상을 떠났다. 소박한 평민이나 교양 있는 사람들, 빈민층을 막론하고 누구나 동감하는 작품을 써서 생전에 폭넓은 인기를 누렸던 그는 현재 영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소설가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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