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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단편소설 걸작선

러시아 단편소설 걸작선

니콜라이 고골,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 레오니트 안드레예프, 블라지미르 꼬롤렌꼬 (지은이), 양장선 (옮긴이)
  |  
행복한책읽기
2010-09-09
  |  
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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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단편소설 걸작선

책 정보

· 제목 : 러시아 단편소설 걸작선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러시아소설
· ISBN : 9788989571681
· 쪽수 : 355쪽

책 소개

'행복한책읽기 세계단편소설걸작' 3권 '러시아' 편. 러시아 단편문학의 정수들을 모았다. 이 단편집에 수록한 작가와 작품의 선정은 보다 폭넓은 러시아 문학의 이해를 위해 러시아 문학사에서 의미 있게 다루는 것들에 중점을 두었다. 격랑의 세기를 위태롭게 헤쳐 나와야 했던 러시아 민중들의 삶과 내면을 흥미롭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집이다.

목차

옮긴이의 말·4

구시대의 지주들_ 니꼴라이 고골·11
마까르의 꿈_ 블라지미르 꼬롤렌꼬·57
사람에겐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_ 레프 똘스또이·113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_ 안똔 체호프·143
새 별장_ 안똔 체호프·179
별장의 뻬찌까_ 레오니드 안드레예프·211
꾸사까_ 레오니드 안드레예프·231
사흘_ 예브게니 자먀찐·249
안또노프 사과_ 이반 부닌·295
정결한 월요일_ 이반 부닌·325

저자소개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 (지은이)    정보 더보기
체호프, 푸시킨과 더불어 러시아의 대문호로 일컬어지는 니콜라이 고골은 1809년 우크라이나 폴타바의 소지주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친러시아적인 우크라이나-러시아 정교 문화를 접하며 성장했다. 10대에 러시아 낭만주의 문화를 접하기도 했던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상경해 하급 관리로 생활하면서 낭만주의적인 우크라이나 창작 설화집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Vechera na khutore bliz Dikan’ki)』를 발표한다. 이 설화집은 푸시킨, 주콥스키 등 당시 최고 문인들과 벨린스키 같은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고, 고골은 이내 러시아 문단의 총아로 떠오른다. 그는 문학 비평과 역사 비평을 수행하며 페테르부르크에서 역사 교사와 역사학 교수를 지내다가 키예프대학교의 역사학 교수에 지원하는데, 그 자리를 얻지 못하자 ‘작가로서도 사회에 봉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는다. 1835년 초 우크라이나를 배경으로 한 소설집 『미르고로드(Mirgorod)』와 문화-역사 비평 에세이들로 구성된 『아라베스크(Arabesques)』를 출간하고, 1836년에는 희곡 「감찰관(Revizor)」과 단편 소설 「코(Nos)」를 발표하면서 푸시킨과 함께 러시아 최고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독자와 관객들이 「감찰관」을 사회 풍자 혹은 가벼운 소극(笑劇)으로만 인식하고, 일부 관객은 이를 러시아에 대한 모독이라고 분개하는 데 상처를 받고 1836년 말 유럽으로 떠나 1848년까지 로마에 거주하면서 창작 활동에 전념한다. 1842년에 장편 소설인 『죽은 혼』 1부를 발표했으며 이후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를 다녀온 직후 모스크바에 정착하여 종교적인 정진에 힘쓰면서 2부에 전념하여 1851년 완성본을 탈고한다. 고골은 자신의 영적 지도자였던 정교 수도사에게 『죽은 혼』 2부의 평을 부탁했으나 부분적으로 미약하다는 비판을 받고 낙담해 원고를 불태웠다. 이후 생의 의미를 잃어버린 고골은 정교의 대정진 기간에 금식을 극단적으로 수행하다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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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28년 9월 9일 러시아 툴라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태어났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친척들 손에 자란 톨스토이는 16세에 카잔대학교에 입학했지만, 형식적인 교육에 실망해 그만두었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을 오가며 방황하던 톨스토이는 1851년 형 니콜라이를 따라 군에 입대한다. 군대에 복무하면서 〈어린 시절〉 등 자전적 삼부작을 발표해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1850년대 후반에는 농민들의 열악한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교육에 있다고 판단, 야스나야 폴랴나 농민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열고, 교육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병행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다양한 영역에 대한 평론을 썼으며,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 등의 문학작품을 통해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자기완성과 악에 대한 무저항, 사적 소유 부정이라는 철학적 관점에 기초하여 《고백》 《인생에 대하여》 《예술론》 등을 저술하고 당대 러시아 사회와 종교를 강렬하게 비판했다. 이로 인해 러시아 정교에서 파문을 당하고 정부의 압박을 받았지만, 모든 걸 가졌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러시아 황제와 달리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지만 모든 걸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러시아 황제로 불릴 만큼 민중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만년에 이르러 술·담배를 끊고 채식주의자가 되었으며 농부처럼 입고 노동하며 생활했다. 생전에 수많은 톨스토이주의자가 야스나야 폴랴나에 몰려와 농민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했다. 톨스토이는 말년에 조용한 피난처를 찾아 집을 나선 며칠 후, 1910년 11월 7일 아스타포보 역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 그의 가출은 현실에 대한 극복이자 다른 삶을 향한 마지막 도전으로 상징된다. 작가이자 폭력을 거부한 평화사상가, 농민교육가이자 삶의 철학자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주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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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은이)    정보 더보기
우크라이나 아조우해의 항구 도시 타간로그에서 태어나 엄격하고 종교적인 가풍 속에 성장했다. 열세 살 때 처음으로 자크 오펜바흐의 오페라 <아름다운 엘렌>을 관람하고 문학과 연극에 빠져들었다. 1876년 아버지의 파산으로 가족이 모스크바로 이주한 가운데 홀로 타간로그에 남아 1879년 타간로그 김나지움을 졸업했다. 같은 해 모스크바 의대에 진학했으며, 이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풍자와 유머가 담긴 이야기들을 잡지에 기고하며 ‘안토샤 체혼테’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후 ‘환자 없는 의사’, ‘삼촌’, ‘내 형제의 형제’ 등 수십 개의 필명을 사용한 바 있다. 1887년 작품집 <황혼>이 푸쉬킨 상을 받으며 러시아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의 반열에 올랐으며 1888년 중편소설 <대초원>으로 이전과는 차별화된 작품 세계를 열었다. 1890년 죄수 수용소가 있는 사할린섬을 방문하여 거의 1년간 체류한 경험이 이후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가장 잘 알려진 단편들인 <6호실>(1892), <대학생>(1894), <다락이 있는 집>(1896), <나의 삶>(1896), 희곡 <갈매기>(1896), <바냐 삼촌>(1896) 등이 그 후에 나온 작품들이다. 1898년 폐결핵 진단을 받고 건강이 나빠지자 1899년 크림반도의 얄타로 이주했다. 이 시기에 쓴 작품 중 대표적인 단편들로는 <귀여운 여인>(1899),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1899) 등이 있고 희곡은 <세 자매>(1900), <벚꽃 동산>(1903)이 있다. 1904년 지병인 폐결핵으로 독일의 바덴바덴에서 숨을 거두었다. <사냥이 끝나고>는 1884년 8월부터 1885년 5월까지 신문 <노보스티 드냐>에 실렸던 연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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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84년 중앙아시아의 작은 마을 레베잔에서 태어났다. 뻬쩨르부르그 대학 재학 중 볼셰비끼 당에 입당했다는 이유로 1905년 체포되어 유배되었고, 이후 몰래 뻬쩨르부르그로 잠입하여 동 대학의 조선학과를 졸업했다. 1911년, 지방의 거칠고 가난한 삶을 풍자한 단편 '지방 생활'을 발표, 2개월 동안 3백여 편의 서평을 받으며 주목 받는 데뷔를 했다. 1914년에는 시베리아 주둔군의 생활을 그린 <변경에서>의 출간으로 역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군대에 대한 중상모략이라 간주되어 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 1917년 혁명 이후에는 고리끼와 블로끄, 쉬끌로프스끼 등 당대 쟁쟁한 문인들과 함께 열렬한 문학 활동을 펼쳤으나 새로운 소비에뜨 사회에 걸었던 기대와 열정은 곧 불안과 혐오로 바뀌었고, 자먀찐은 다시 작품 활동을 통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1932년 파리로 망명하여 계속해서 작품 활동에 전념, 역사 소설 <천벌>을 집필했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생활고와 병고에 시달리다 1937년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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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부닌 (지은이)    정보 더보기
혁명 전 러시아 고전 문학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한 작가로 여겨진다. 보로네시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1933년에는 러시아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부닌의 작품은 러시아어권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사후가 아닌, 살아생전에 명성을 떨쳤던 흔치 않은 러시아 작가 중 한 명이다. 김나지움을 중퇴했지만, 친형의 지원과 노력으로 집에서 중등 교육 과정을 이수한 후 신문사 편집국에 입사했다. 부닌은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집필 활동을 시작하여 수많은 시, 단편소설, 평론 등을 발표했다. 1897년 페테르부르크에서 첫 시집 『세상 끝으로(На край света)』를 발표했고 이듬해 두 번째 시집 『열린 하늘 아래서(Под открытым небом)』가 모스크바에서 출간되었다. 이 시집을 읽은 비평가들과 독자들은 부닌의 문학성을 높이 평가했고 수많은 찬사를 쏟아냈다. 1900년에 발표한 시집 『낙엽(Листопад)』도 좋은 반응을 얻어 1903년에는 이 시집으로 페테르부르크 과학아카데미가 제정한 푸시킨 문학상의 첫 수상자가 되었다. 1917년 혁명 이후 부닌은 페테르부르크를 떠나 모스크바, 오데사, 콘스탄티노플(현재 이스탄불) 등지를 거쳐 1920년 3월 파리로 망명했다. 특히 1918년 오데사에서는 혁명과 볼셰비키 정권의 실체를 폭로한 회고록 「저주받은 날들(Окаянные дни)」을 쓰기 시작하여 1920년에 발표했다. 이 회고록과 1925년에 발표된 단편 「일사병(Солнечный удар)」은 러시아 영화감독 니키타 미할코프(Никита С. Михалков)가 2014년에 만든 동명의 영화 〈일사병〉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부닌은 프랑스 망명 중에도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여 「예리코의 장미(Роза Иерихона)」(1924), 「미짜의 사랑(Митина любовь)」(1925), 「아르세니예프의 인생(Жизнь Арсеньева)」(1930), 「어두운 가로수길(Тёмные аллеи)」(1937-1945, 1953) 등을 발표했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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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니드 안드레예프 (지은이)    정보 더보기
대부분의 유년 시절을 가난한 빈민촌에서 보낸 안드레예프는 이때의 인상을 자신의 작품들에서 묘사하고 있다. 1891년, 페테르부르크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한 안드레예프는 생활고로 인한 호구지책으로 문학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1892년 그는 잡지 <별>에 굶고 있는 학생을 묘사한 최초의 단편소설 <가난과 부>를 발표했다. 1893년, 학비를 못내 페테르부르크대학교에서 제적된 후 그는 모스크바대학교 법학부에 편입했다. 1894년, 또다시 사랑에 실패한 안드레예프는 자살을 시도해 그 결과 만성 심장병을 얻게 되었다. 1897년 변호사 자격을 획득하고 모스크바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한 그는 잠시 변호사로 일하다가 <모스크바 통보>의 법정 통신원으로 근무했다. 같은 해 말 그는 신문 <파발꾼>에 법정 관련 기사를 쓰고, 체계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 단편들에서 안드레예프는 소외된 계층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따라서 가난에 시달리며 기쁨을 잃어버린 아이들,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 하층 관리들, 기술자, 부랑자, 거지, 도둑, 창녀, 아이, 어른 등 부르주아 도시의 무산자들과 이들에게 가중된 삶의 무게, 괴로운 노동, 계속되는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그린다. 이와 더불어 안드레예프는 인간의 개성을 억압하고 인간의 정신적 독자성을 획일화하는 사회체제에 대한 부정적 시각, 고립된 인간과 단절된 인간관계를 그리고 있기도 하다. 안드레예프는 혁명과 정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자유롭고 독자적인 문학, 비정치적 예술을 추구했다. 1919년 9월 12일 뇌출혈로 핀란드의 시골 마을 네이볼에서 사망했다. 스탈린 시대에 안드레예프는 판금 작가로 분류되며, 1930년 이후 그의 작품은 소련에서 출판되지 않았다. 스탈린 사후 1956년 복권되어 재평가되며, 그의 유해는 레닌그라드(현재 페테르부르크)로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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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갈락티오노비치 코롤렌코 (지은이)    정보 더보기
시아의 인도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언론인, 사회비평가, 사회활동가. 1853년 우크라이나의 서부 즤토미르에서 카자크 혈통의 재판관인 아버지와 폴란드 지주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초?중등학교를 졸업하고 모스크바의 페트로프 농림업 아카데미에 입학하였으나 인민주의 학생 운동에 가담하여 퇴학 처분과 함께 유형에 처해졌다. 그 후 곤궁한 삶 속에서도 당대의 변혁 운동에 동참하였고 8여 년에 걸쳐 참혹한 시베리아 유형을 겪으면서 삶에 대한 불굴의 의지와 자유와 정의에 대한 강렬한 지향을 길렀다. 1886년 결혼한 후 1895년까지 10년 동안 언론과 사회 비평은 물론이고 문학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는데, 이 시기에 「마카르의 꿈」을 필두로, 「나쁜 패거리」 「맹인 악사」 「숲이 술렁거린다」 「플로르에 관한 이야기」 「강물이 노닌다」 「역설」 등의 대표작들을 집필하였다. 1890년대 후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기거하며 잡지 『러시아의 부』 편집에 관여했고, 중편 「마루샤의 땅」 「순간」 등을 발표했다. 1900년 폴타바로 이주하고 「추위」 「마지막 불빛」 「군주의 마부들」 「카자크들에게서」 「무섭지 않은 것」 「하구에서」 등을 창작했다. 또한 차르 체제의 전횡과 반동 정책을 비판하고 볼셰비키들의 반인간적 수법과 내전의 야수성을 질책하며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정의를 옹호하는 일련의 논평을 발표했다. 1906년부터 쓰라린 삶의 체험과 심오한 철학적 성찰을 집대성하는 자전적 작품인 『나의 동시대인의 역사』에 매진하였으나, 제4권을 집필하던 중 1921년 폐결핵으로 68세의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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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선 (옮긴이)    정보 더보기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과와 같은 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노과를 졸업하고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산하 언어학연구소 언어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는 『러시아 단편소설 걸작선』이 있다. 러시아 관영 국제 미디어 프로젝트 Russia Beyond The Headlines(RBTH)의 한국어판 『Russia포커스』의 게스트 에디터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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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노부부는 구시대 지주들의 오랜 습관대로 먹는 것을 굉장히 즐겼다. 새벽 동이 트고 (그들은 언제나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 안의 문짝들이 불협화음의 음악회를 열기 시작할 때면 부부는 벌써 식탁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커피를 실컷 마시고 나면 아파나시 이바노비치는 현관방으로 나가서는 손수건을 흔들면서 거위들에게 “훠이, 훠이! 계단에서 내려가, 인석들아!” 하고 소리쳤다. 마당에 나가면 으레 마름과 마주쳤다. 그럼 대개는 마름과 이야기를 시작하고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묻고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지시를 내리는데 그때 그가 보여주는 농사일에 대한 지식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라 신참내기라면 이런 형안의 주인 재산 중에 뭐라도 훔친다는 것은 상상조차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마름은 능청맞기 짝이 없는 자인지라 주인의 마음에 들게 대답하는 법, 아니 어떻게 이 집 안에서 주인 행세를 할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 구시대의 지주들


늙은 토이온은 선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까르는 가슴이 너무 답답할 때면 그의 얼굴을 보았고 그러면 마음이 가벼워졌다.
마까르의 가슴이 답답해진 이유는 갑자기 자신의 인생 전부가 세세한 것 하나까지 모두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모든 행동, 도끼질 하나, 자신이 벤 나무 하나하나, 그가 했던 모든 거짓말, 그가 마신 보드카 잔, 모두가 기억이 났다.그러자 마까르는 수치심과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늙은 토이온의 얼굴을 보자 다시 용기가 생겼다.
용기가 나자 마까르는 어쩌면 자신이 지은 죄 중에 일부는 감출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기도 했다.
늙은 토이온은 그를 쳐다보고는 그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 이름이 뭔지, 나이가 몇인지 물었다. 마까르가 대답하자 늙은 토이온은 물었다.
“살아서 무엇을 했느냐?”
“벌써 알고 있잖아. 장부에 다 기록이 돼 있을 텐데.”
마까르는 늙은 토이온에게 자신의 행실이 모두 기록된 장부가 진짜로 있는지 떠보기 위해서 짐짓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 마까르의 꿈


“안녕하십니까.”
그를 보자 그녀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얘졌고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다시 한 번 공포에 질린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는 손에 든 부채와 오페라글라스에 힘을 주는 것이 졸도라도 할까봐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다. 두 사람 다 말이 없었다. 그녀는 앉아 있었고 그는 선 채로 그녀의 반응에 놀란 나머지 옆에 앉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바이올린과 플루트의 조율이 시작되었고 불현듯 지정석에 앉은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에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 순간 그녀가 벌떡 일어나더니 빠른 걸음으로 출구 쪽을 향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고 두 사람이 말 없이 복도와 계단을 이리저리 오르내리는 동안 하나같이 무슨 배지를 단 법관, 교사, 왕실임야국 관리 제복을 입은 자들과 여인들, 옷걸이에 걸려 있는 모피 코트들이 그들의 눈앞을 스쳐갔고, 어디선가 담배꽁초 냄새가 섞인 바람이 코앞을 스쳤다. 쿵쿵대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구로프는 생각했다.
‘오 하나님! 이 사람들, 이 오케스트라는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것입니까…….’
-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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