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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0978233
· 쪽수 : 245쪽
· 출판일 : 2005-11-01
책 소개
목차
소설
은빛 송어
은은한 빛
가을
봄옷
엉겅퀴의 장
수필
춘향전 내연 무렵
대륙의 껍질
물 위
유도 소식
주을 소묘
복도에서
겨울 여행
오월의 하늘
수목에 대하여
- 작품 해설
- 엮은이의 글
- 옮긴이의 글
책속에서
물밑이 하얀 모래이며 멀리까지 얕은 곳이어서 어느 쪽으로 흐르고 어디를 헤엄쳐 가든 배의 뜻대로이고 물 마음이다. 깊숙이 몸을 잠그고 얼굴만 드러내 호수처럼 조용한 수면 멀리 응시하면, 무성한 수목과 하얀 구름만 보인다. 온갖 인위적인 협잡물은 사라지고 아름다운 자연의 정취만이 신선한 터치로 눈에 스며든다. 수면과 수목과 구름ㅡ이만큼 회화적인 배치도 없다. ... 사상이나 지성, 이런 것은 역시 책상 위의 소꿉장난 같다는 기분이 든다. 부끄러운 일도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을 잃어버린 것이야말로 불행이다. 미를 보고 감동을 받아 침묵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솔직하게 칭찬을 피로하고 영탄하는 것도 좋다. 이러한 동심을 잃어버리는 것이야말로 무지이고 두려워해야 할 일이다. -- 본문 161쪽에서
자나깨나 주류(主流), 주류라고 안달하는 자가 있다. 자기가 쓴 문학을 항상 시대의 선두로 내세우려는 어처구니없는 야심가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제목을 찾아서는 뚝배기 깨지는 소리로 선전하는 모습은 근성이 나쁜 저널리스트이다. 작가가 아니다. 자신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다루려는 것은 더없이 어리석은 짓이다. 작가에게는 각자 특색이 있다. 서로 그것을 존중하고 키워주어야 한다. 역사를 쓰는 것도 좋고 시정(市井)을 그리는 것도 좋으며 서정을 노래하는 것도 좋다. 왜 다른 사람들의 비난에 골치를 썩는가. 진폭이 큰 다양성이야말로 문학의 세계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 본문 177쪽에서
사립전문학교 문화 교실에서 어학을 강의하고 있는 문의 경우에도, 화가인 최의 경우에도, 방송국에 근무하는 문학청년 김의 경우에도, 테이코가 내뿜는 에그조티즘에는 두말 없이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검은 눈동자와 하얀 이마에, 갈고 닦은 이지와 근대적인 센티멘트의 결정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한없는 감동과 애착을 금할 수 없는 그들이었다.
평소 품고 있는 꿈의 재현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어쨌든 황폐한 환경 속에서 어느 정도의 꿈을 충분히 충족시켜주는 유의 여자였고, 이것은 그녀가 사라지고 나서 점점 확실하게 의식되었으며, 그녀가 없는 공허함이 모두의 가슴에 터무니없이 크게 와닿았다. 어떻게 그녀를 외계로부터 떼어내 구별하고 그 한 점에 의식을 집중시켰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고, 어디에나 있는 흔해빠진 여자가 아니라고 여기며 갑자기 애정이 점점 더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우리들 이거 어떻게 된 거 아냐, 라고 탄식까지 하게 되었다. -- 본문 13~14쪽, '은빛 송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