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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읽기의 즐거움 2

고전 읽기의 즐거움 2

(이천만 동포에 고하노라)

김택영, 류성룡, 이광수, 장지연, 최익현, 한용운, 황현, 고종후, 권근, 김성일, 김종서, 김진양, 문무왕, 민영환, 박상충, 설총, 오사충, 윤회종, 을지문덕, 이존오, 이한응, 전봉준, 최명길, 최승우, 최치원, 홍익한 (지은이), 조수익, 박찬수 (옮긴이)
솔출판사
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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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읽기의 즐거움 2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고전 읽기의 즐거움 2 (이천만 동포에 고하노라)
· 분류 : 국내도서 > 고전 > 우리나라 옛글 > 산문
· ISBN : 9788981337506
· 쪽수 : 247쪽
· 출판일 : 2005-02-01

책 소개

역사의 전환기에서 이를 의연히 맞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조상들의 글을 시대순으로 정리하여 묵었다. 살수대첩의 명장 을지문덕의 시, 설총의 '화왕계', 최치원의 '황소에게 보내는 격문'을 비롯하여, 장지연의 '오늘 통곡한다', 한용운의 '조선 독립의 서' 등이 실려 있다.

목차

머리말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준 시 ㅣ 을지문덕
당나라 총관 설인귀에게 보내는 글 ㅣ 문무왕
모란꽃을 경계하다 ㅣ 설총
황소에게 보내는 격서 ㅣ 최치원
견훤이 고려왕에게 부치는 글 ㅣ 최승우
고려왕이 견훤에게 답하는 글 ㅣ 작가 미상
고려는 결코 원의 직할지가 될 수 없음을 고한 글
신돈을 논박하는 소 ㅣ 이존오
북원 사신을 물리칠 것을 청하는 소 ㅣ 박상충
이숭인을 구원하는 글 ㅣ 권근
우왕과 창왕의 목을 벨 것을 청하는 소 ㅣ 윤희종
이색을 논박하는 소 ㅣ 오사충
정도전과 그의 무리에 대한 처벌을 청하는 소 ㅣ 김진양
사병 없애기를 청하는 글 ㅣ 권근
오진의 형세를 논한 소 ㅣ 김종소
고경명의 해남.강진 두 고을 원에게 보내는 격문 ㅣ 고종후
진주대첩을 아뢰는 장계 ㅣ 김성일
시무를 아뢰는 차자 ㅣ 유성룡
후금 사신의 목을 베라는 상소 ㅣ 홍익한
척화파의 공격을 받고 화친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소 ㅣ 최명길
무장 동학당 포고문 ㅣ 전봉준
시사에 대하여 올리는 소 ㅣ 황현
유서 ㅣ 이한응
오늘 통곡한다 ㅣ 장진영
이천만 동포에 고하노라 ㅣ 민영환
각국 공사관에 보내는 글 ㅣ 민영환
일본 정부에 부친다 ㅣ 최익현
안중근전 ㅣ 김택영
동경 유학생 독립선언문 ㅣ 이광수
조선 독립의 서 ㅣ 한용운

지은이 소개

저자소개

김택영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50~1927. 호는 창강(滄江). 조선 말기의 학자로, 한말 3대문장가이자 3대 역사가. 17세에 성균초시에 합격했다. 1891년에 42세로 진사가 되고, 1894년 편찬국주사로 기용되어 주로 역사편찬에 참여했다. 대표적인 것으로 <증보동국문헌비고>, <역사집략>, 박지원 문집인 <연암집> 등이 있다.1905년까지 각종 국사관련 국가기관에서 사서(史書)를 편찬하다가 1908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중국의 진보적인 지식인 장건의 도움으로 본격적인 국사 및 한국문학사 정리에 헌신하였다. 지은책으로 <여한구가문초> <한국소사> <교정삼국사기> <창강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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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 (옮긴이)    정보 더보기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다. 156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벼슬길에 나섰다. 전적, 공조좌랑 등을 거쳤으며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壯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어 이조참의를 거쳐 부제학, 대사간, 우부승지, 도승지를 거쳤다. 1583년 다시 부제학이 되어 「비변오책(備邊五策)」을 지어 올렸다.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으로 기축옥사가 일어나자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려놓으려 했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않았다. 1590년 우의정에 올라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에 녹훈되고 풍원부원군(豊原府院君)에 봉해졌다. 이후 왜란이 있을 것에 대비하여 형조정랑 권율(權慄)과 정읍 현감 이순신(李舜臣)을 각각 의주 목사와 전라도 좌수사에 천거하였으며, 진관법鎭管法을 예전대로 고칠 것을 주장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조판서를 겸하고, 도체찰사로 군무(軍務)를 총괄했다. 이어 영의정이 되어 선조를 모시며 평양으로 파천했다. 이때 나라를 그르쳤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유로 반대파의 탄핵을 받고 면직되었는데, 의주에 이르러 평안도 도체찰사가 되었다. 명나라의 장수 이여송(李如松)과 함께 평양성을 수복한 뒤 충청·경상·전라 3도의 도체찰사가 되어 파주까지 진격했다. 이여송이 벽제관(碧蹄館)에서 패배하고 퇴각하려 하자 이를 만류했으며 일본과 화의에도 반대했다. 유성룡은 전란 기간 내내 군대 양성과 더불어 훈련도감 설치, 화포를 비롯한 각종 무기의 제조, 성곽의 수축을 건의하여 군비 확충에 노력했으며, 소금을 만들어 굶주리는 백성을 진휼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록되고 다시 풍원부원군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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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지은이)    정보 더보기
한국 현대소설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매우 중요한 작가이면서, 일제강점기의 소설가이자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조선왕조의 국운이 기울어가던 구한말에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하여, 일찍 부모를 여의고도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유학을 통하여 근대사상과 문학에 눈뜨고 이를 한국적 사상 및 문학 전통에 접맥시켜 새로운 문학의 시대를 열어나갔으며, 한국전쟁 와중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붓을 놓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놀라운 창작적 삶을 이어간 작가였다. 그는 『무정』, 『재생』, 『흙』, 『유정』, 『사랑』 등으로 연결되는 본격 장편소설들을 통하여 한국 현대소설의 ‘제1형식’을 창출하였고, 『매일신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의 한글 신문과 『조선문단』, 『동광』 등의 한글 잡지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문필 활동을 펼침으로써 현대 ‘한국어 문학’의 전통을 수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나아가 그는 『마의태자』, 『이차돈의 사』, 『단종애사』, 『이순신』, 『세조대왕』, 『원효대사』, 『사랑의 동명왕』 등 삼국시대로부터 조선왕조에 이르는 시대적 사건과 인물을 소설화함으로써 민족적 위기의 일제강점기에 역사의 기억을 소설의 장에 옮겨 민족적 ‘자아’를 보존하고자 했다. 요컨대, 그는 한국 현대소설의 성립을 증명한 『무정』의 작가요, 도산 안창호의 유정 세계의 꿈을 이어받은 사상가요, ‘2·8 유학생 독립선언’을 주도하고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에 가담한 민족운동가요, 민족적 ‘저항’과 ‘대일협력’의 간극 사이에서 파란만장하고도 처절한 생애를 살아간, 험난한 시대의 산증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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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연 (지은이)    정보 더보기
언론인, 애국계몽운동가. 호는 위암(韋庵)·숭양산인(崇陽山人). 《황성신문》 창간 기자였고, 만민공동회 간부로도 활동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황성신문》에 국권 침탈 조약을 규탄하는 글 <시일야방성대곡>을 써서 체포, 투옥되었다. 1909년에는 《경남일보》 주필로도 활동했다. 조선 시대 중인을 비롯한 하층민들의 전기를 모아 편찬한 《일사유사(逸士遺事)》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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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현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33에 태어났다. 조선 말기 애국지사로 호는 면암. 1855년 명경과에 급제, 승문원 부정자로 벼슬길에 오른 후 1870년에 승정원 동부승지를 지냈다. 1876년에는 '병자지부소'를 올려 강화도 조약을 반대하다가 흑산도로 유배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망국의 조약에 참여한 박제순 등 5적의 처단을 주장했다. 1906년 윤4월에 전라북도 태인에서 궐기하여 8도 사민에게 포고문을 내고 항일투쟁을 호소하여 순창에서 의병을 이끌고 일본군과 관군을 상대로 싸우다가 체포되어 쓰시마로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 적이 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 하여 단식하다가 1906년 세상을 떠났다. 지은 책으로 <면암집> 40권, 속집 4권, 부록 4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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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79년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태어났다. 법명은 용운(龍雲), 법호는 만해(卍(萬)海)다.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했고, 설악산 백담사 오세암에 수년간 머무르며 불경을 공부하면서 다양한 독서를 통해 서양 근대사상을 접했다. 이 무렵 서구 문물과 세계정세를 알아보기 위해 연해주로 건너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만주를 거쳐 돌아왔다. 1901년 고향에 돌아와 2년간 은신한 후 다시 집을 나와 방황하다가 1905년 백담사에서 수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다. 1908년에는 일본에 건너가 도쿄, 교토 등지의 사찰을 순례하고 조동종 대학림에서 불교와 동양철학을 연구했다. 이를 계기로 1913년 당시 조선 불교의 침체와 낙후성과 은둔주의를 대담하고 통렬하게 분석, 비판한 『조선불교유신론』을 발표하여 사상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여 독립선언 준비 과정에서 최린과 더불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르는 동안 검사의 취조에 대한 답변서로서 세칭 「조선 독립의 서」를 집필했다. 1922년 출옥 후에는 각지를 전전하며 강연을 통해 청년들의 각성을 촉구했고, 내설악 백담사에서 은거하면서 쓴 시집 『님의 침묵』을 1926년 간행하여 문단에 큰 파문을 던졌다. 50세를 전후하여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에 은거하면서 불교 청년운동 및 불교의 대중화 운동을 벌였으며 『흑풍』 『후회』 『박명』 등의 장편소설과 상당수의 한시, 시조를 남겼다. 일제의 강요로 많은 지식인이 변절했을 때에도 끝까지 민족의 지조를 지켜 창씨개명을 거부했고 학병 출정에 반대했다. 그러나 1944년 6월 29일, 그토록 그리던 조국 광복을 눈앞에 두고 중풍으로 사망했다. 유해는 화장되어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으며,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이 수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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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 (지은이)    정보 더보기
광양현 서석촌(현 전라남도 광양군 봉강면 석사리)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운경(雲卿), 호는 매천(梅泉)이라 했다. 출신 가계를 보면 장수 황씨로 황희 정승의 후손이기는 하나, 중간에 가세가 영락해서 그의 조부에 이르러서는 상업으로 생활을 영위했다고 한다. 이렇게 축적한 재산을 기반으로 황현은 1천 권의 장서를 갖추고 학문에 전념할 수 있었다. 황현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신동으로 소문이 자자했으나, 관력은 불우하여 34세에야 겨우 성균관의 생원이 되는 데 그쳤다. 그는 생원이 된 후, 조선 안팎으로 혼란한 세상을 등지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거실에 구안옥(苟安屋)이라 이름을 붙이고 독서와 시작(詩作)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서울에 있는 여러 친구가 “다시 서울에 올라와서 구국 운동에 참가하라”라고 권유했으나, 황현은 그때마다 “그대들은 어찌 나를 귀신 나라에서 날뛰는 미친 사람들 가운데로 끌어들여 같은 귀신, 미친 사람으로 만들려 하는가” 하고 도리어 엄절히 책망했다. 혼란한 세상에서 황현은 비록 은거했으나 망국상을 그대로 보고 있지는 못했다. 자신의 지기였던 김택영이 벼슬을 버리고 중국으로 망명한 것처럼 자신도 망국인의 방도를 생각한 듯하지만,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1910년 8월 일본은 소위 한일병합조약이라는 것을 발표해 나라와 민족의 멸망을 공식화했다. 이 소식을 듣고 황현은 애절한 절명시를 남기고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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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후 (지은이)    정보 더보기
1554~1593. 조선 중기 의병장으로 자는 도충이며, 호는 준봉, 시호는 효열이다. 1577년(선조10)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현령에 이르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적군과 싸우다가 아버지와 동생 인후를 잃었다. 이듬해 각지에서 의병을 모아 싸우다 하동에 이르러 진주성이 위급해짐을 듣고 성안에 들어가 싸웠다. 김천일.최경회 등과 싸우다가 남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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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 (지은이)    정보 더보기
1352~1409.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학자로 초명은 진이고 자는 가원, 호는 양촌이다. 1368년 성균시에 합격, 1369년 문과에 급제했으며 우왕 때 예문관응교, 좌사의대부, 성균대사성, 예의판서 등을 역임했다. 1375년에는 정도전.정몽주와 함께 친명정책을 주장했다. 1390년 '윤이.이초의 옥'에 연루되어 익주에 유배되었고, 이때 <입학도설>로 길창부원군에 봉해졌다. 왕명으로 <동국사략>을 편찬했다. 성리학자이면서도 사장을 중시하여 경학과 문학을 아울러 연마했다. 경기체가인 <상대별곡>, <양촌집>, <오경천견록> 등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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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 (지은이)    정보 더보기
1538~1593. 조선 중기 문신으로 자는 사순이고, 호는 학봉이다. 1564년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서 수학했고, 1583년 사간이 되었다. 1586년 나주 사직단의 화재 사건에 책임을 지고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와 <주자서절요>, 이황의 <자성록>, <퇴계집> 등을 편집 간행하였다. 1592년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재직 중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의 보고에 대한 책임으로 파직되었으나, 유성룡 등의 변호로 경상우도 초유사로 임명되었다. 1593년 경상우도 순찰사를 겸하여 도내 각 고을의 항왜전을 독려하다 병으로 죽었다. 지은 책으로 <해사록>, <상례고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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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 (지은이)    정보 더보기
조선 세종 때 6진을 개척했으며 지략이 뛰어나고 강직했던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자는 국경, 호는 절재로 태종 5년에 문과에 급제해 상서원 직장, 행대감찰 등을 거쳐 세종 1년에 사간원 우정언이 됐다. 북변 강화의 필요성을 강경하게 주장해 세종으로 하여금 북방 경영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게 했다. 이로 인해 세종에게 두터운 신임을 얻어 북쪽 변방에서 여진족을 무찌르고 국토확장에 큰 공을 세웠으며,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의 편찬작업을 책임지는 등 학자와 관료로서의 능력도 갖췄지만 계유정난으로 사서들에서 이름이 모두 삭제됐다. 세종의 왕자들이 세력 확장을 도모하는 가운데 수양대군의 무사들에 의해 아들 승규와 함께 살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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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양 (지은이)    정보 더보기
(?~1382)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자는 자정, 호는 초려.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좌사의에 이르렀다. 1390년에 '윤이.이초의 옥'이 일어나자 파면되었으나 얼마 후 다시 기용되었다. 정몽주.이색 등과 함께 조준 정도전 등을 탄핵하여 죽이고 이성계를 제거하려다가 실패하고 귀양 가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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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 (지은이)    정보 더보기
재위 661~681. 신라 제30대 왕으로 이름은 법민이고 태종무열왕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유신의 누이 문명왕후이다. 654년 무열왕이 즉위하자 태자에 책봉되었다. 660년에 김유신과 함께 당의 군사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켰고, 661년 고구려를 정벌할 때 아버지 무열왕이 죽자 귀국하여 즉위했다. 666년에는 고구려 정벌에 착수, 668년 당군과 합세하여 평양을 함락,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674년에 당나라 역술을 본떠 신력을 쓰고, 675년 동인을 제작하여 사용하게 했다. 또한 고구려 유민들의 부흥운동을 원조하여 677년에 한반도에서 당나라 세력을 완전히 몰아냈다. 죽은 뒤 시체는 유언대로 화장되어 동해 대왕암 물속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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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환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61~1905. 조선 말기의 문신.순국지사. 자는 문약, 호는 계정. 1895년 일제가 명성왕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키자 주미전권대사를 거부하고 낙향했다. 1896년 4월 러시아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특명전권공사로 참석, 이때 중국 상하이와 일본.미국.영국.네덜란드.독일.폴란드 및 러시아를 횡단하는 등 해외파견사절로는 최초로 세계일주를 했다. 독립협회를 적극 후원하고, 일본의 내정간섭에 항거하여 한직인 시종무관으로 좌천당했다.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나라를 빼앗기자 의정대신 조병세와 함께 조약의 파기를 상소했으나, 뜻이 이루어지지 않아 자결하였다. 유고로는 <해천추범>, <사구속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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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충 (지은이)    정보 더보기
1332~1375. 고려 말기의 문신.학자로 자는 성부.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이 예조정랑에 이르렀다. 1375년 이인임 등의 친원책에 대하여 임박.정도전 등과 함께 이를 반대하고 친명정책을 주장했다. 뒤이어 판전교시사가 되어 정몽주와 함께 친명정책을 쓸 것과 북원의 사신과 그 수행원을 포박하여 명나라로 보낼 것을 상서했다. 그해 친원파 이인임과 지윤의 주살을 주상한 것과 연좌되어 친명파인 전녹생.정몽주.김구용.이승인.염흥방 등과 함께 귀양 가다가 도중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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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총 (지은이)    정보 더보기
신라 경덕왕 때 학자. 자는 총지이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출생시기는 태종무열왕대인 654 660년 사이로 짐작된다. 나면서부터 재주가 많았고, 경사에 능하였으며 신라말로 구경을 읽고 후생을 가르쳐 유학의 종주가 되었다. 강수.최치원과 함께 신라 삼문장으로 꼽혔다. 향찰을 집대성하고 정리했으며, 육경을 읽고 새기는 방법을 발명하여 한문을 국어화하고 유학 등 한학의 연구를 발전시켰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설총의 유일한 글인 '화왕계'는 <삼국사기> '설총 열전'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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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충 (지은이)    정보 더보기
1327~1406. 고려 말 조선 초 문신. 시호는 공희. 1355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1389년 좌사 의대부가 되었다. 한때 삭탈관직 당했다가 복직되어 판전교시사로 있었는데 정몽주 및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유배되었다. 1392년, 정몽주가 살해되자 복직되어 좌상시가 되었고, 이성계가 즉위하자 개국공식 3등으로 호조전서 되었으며 영성군에 봉해졌다. 그 뒤 1404년 판사평부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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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종 (지은이)    정보 더보기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우왕 때 문과에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1389년 사재부령으로 우왕.창왕의 주살을 상소하여 실행에 옮기도록 하고, 1390년 세자시학.형조총랑을 역임했다. 1392년 이성계를 도와 조선왕조 개창에 기여했으나 1395년 의랑으로서 급전을 잘못하여 삭탈관직 당하고 유배되었다. 1407년 사예로서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여 성균사성이 되었고, 1414년에는 사간원 우사간.좌사간.변정도감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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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문덕 (지은이)    정보 더보기
고구려 영양왕 때의 대신이자 장군. <해동명장전>에 평양 석다산 출생이라고 나와 있다. <자치통감>에는 위지문덕이라고도 표기하고 있다. 612년, 수 양제의 침략을 물리친 살수대첩으로 유명하다. 침착 대담하고 지략과 무용에 뛰어났고 시문에도 능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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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존오 (지은이)    정보 더보기
1341에 태어났다.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순경, 호는 석탄, 고산이다. 1360년에 문과에 급제, 수원서기를 거쳐 사관이 되었다. 1366년 우정언이 되어 신돈의 횡포를 탄핵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샀으나 이색의 옹호로 극형을 면하고 장사감무로 좌천되었다. 그 뒤 공주 석탄에서 은둔 생활을 하며 울분 속에 지내다가 1371년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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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응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74~1905. 한말의 외교관.항일우국지사. 일명 한응이며, 자는 경천, 호는 국은.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다. 1892년 관립영어학교를 졸업, 1894년 진사시에 합격했다. 1897년 한성부주사가 되고, 1899년 관립영어학교 교관으로 전출되었다. 1901년 영국 벨기에 주차공사관 3등참사관에 임명, 영국의 런던에 부임하였다. 1904년 주영공사 민영돈의 귀국으로 서리공사에 임명되어 대영외교에 활약했다. 1904년 한일의정서가 강제 체결되자 영국 및 여러 외국과의 외교 활동에 노력했다. 그해 8월 제1차 한일협약이 강제로 성립되자, 한국 외교를 위하여 재외 사절단이 공동 항쟁하도록 토의하고, 영국 정부에 항의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귀국하기를 단념하고 임지에서 음독 자결하였다. 주영한국공사관 명예총영사 마틴턴의 주선으로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와 경기도 용인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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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55~1895. 조선 말기 동학농민운동 지도자로 호는 해몽이다. 고부군 향교의 장의였던 아버지가 학정에 저항하다 죽음을 당하자 사회 개혁의 뜻을 품고 1890년 무렵 동학에 입교했다. 1894년 1월 농민과 동학교도 1천여 명을 이끌고 고부 관아를 습격, 빼앗겼던 세곡을 농민들에게 돌려주고 부패한 관리들을 감금했다. 1894년 동도대장이 되어 척왜 척양과 부패한 지배계급 타파 등 4대 강령을 내세워 농민들의 홍을 구하였고, 이에 민란은 동학농민운동으로 발전했다. 뒤이어 9월 중순 항일구국의 일본이 침략의도를 드러내자 일본군 및 정부군과 혈전을 벌였으나 11월 우금치 전투에서 대패한 뒤 금구 전투를 끝으로 진압되었다. 전봉준은 순창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이듬해 3월 사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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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 (지은이)    정보 더보기
1586~1647. 조선 중기 문신. 호는 지천, 창랑이다. 이항복에게 배웠으며 1605년 생원시에서 장원한 뒤,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전적이 되었다. 1536년 병자호란 때 혼자 강화론을 펴 비난을 받았다. 청나라 군대가 물러간 뒤, 청나라 사신으로 가서 해마다 음력 10월에 보내던 공물인 세폐를 줄이고, 명나라를 치기 위한 청의 원병요구를 막았다. 한때 양명학을 공부하여 강화학파의 기틀을 이루었다. 문집으로 <지천집>, <지천주차>, <경서기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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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우 (지은이)    정보 더보기
신라 말기 문인. 890년 당으로 건너가 국학에서 3년간 유학하고 893년 빈공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있었다. 최치원, 최언위와 더불어 신라 말기 지식게급인 삼최의 한 사람이다. 후백제 견훤 아래에서 고려 태조에게 보내는 격서 '대견훤기고려왕서'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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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지은이)    정보 더보기
신라 말기의 학자, 문장가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해운(海雲), 호는 고운(孤雲)이다. 경주 사량부(또는 본피부) 출신이다. 857년(헌안왕1)에 태어나 868년(경문왕8) 12세의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하여 7년 만인 874년에 빈공과에 합격하였다. 그 뒤 고변(高騈)의 종사관으로서 문한의 임무를 담당하였다. 29세 때 신라에 돌아와 시독(侍讀)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신라 신분체제의 한계와 국정의 문란함을 깨닫고 외지로 나가 태산군·천령군·부성군 등지의 태수를 역임하였다. 894년에는 시무책 10여 조를 진성여왕에게 올려 문란한 정치를 바로잡고자 하였으나 끝내는 승 현준(賢俊) 및 정현사(定玄師)와 도우(道友)를 맺고 가야산에 은거하였다.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908년(효공왕12) 말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현종 때 내사령(內史令)에 추증되고 문창후(文昌侯)에 추시(追諡)되어 문묘에 배향되었다. 저술로는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 《금체시(今體詩)》, 《잡시부(雜詩賦)》, 《중산복궤집(中山覆需集)》 등의 시문집과 사서(史書)인 《제왕연대력(帝王年代曆)》, 불교관계 글인 《부석존자전(浮石尊者傳)》, 《석순응전(釋順應傳)》, 《석이정전(釋利貞傳)》 등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계원필경》, 《법장화상전》, 《사산비명》만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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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한 (지은이)    정보 더보기
1586에 태어났다. 조선 중기 문신. 호는 화포, 삼학사의 한 사람이다. 1637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척화론을 주장하고 최명길 등의 화의론을 극구 반대하닥, 화의가 성립되자 척화의 주모자로 오달제.윤집 등과 청나라에 압송된 뒤, 협박과 유혹에 굴복하지 않다가 1637년에 죽음을 당했다. 지은 책으로 <화포집>, <북행록>, <서정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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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익 (옮긴이)    정보 더보기
<이야기 명심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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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수 (감수)    정보 더보기
慶北 聞慶 出生(1939) 高麗大學校 文科大學 史學科 졸업 동 大學院에서 碩·博士 과정 마침(文學博士) 民族文化推進會(韓國古典飜譯院 前身) 附設 국역연수원 졸업 民族文化推進會 國譯·企劃室長, 事務局長 역임, 2000年 12月 停年退任, 退職 후 建國 大學校 忠州分校에서 5년간 講義[待遇敎授], 古典飜譯敎育院 全州分 院講師 歷任 著書 高麗時代敎育制度史 硏究(大韓民國 學術院 推薦圖書, 서울, 경인문화사) 한국에서 쓴 일본역사이야기(서울, 솔출판사) 編著 부수따라 漢字여행(도서출판 동화사 <대구> 서울지사) 故事成語(서울, 코이나북스) 編譯 十八史略選(서울, 도서출판 探求堂), 千宇文(서울, 코이나북스) 譯書 朝鮮王朝實錄·東史綱目·出林經濟·五洲衍文長箋散稿(이상은 共譯), 審理錄1·2 論文 高麗時代敎育史 및 韓日關係史 관련 논문 多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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