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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7141095
· 쪽수 : 220쪽
· 출판일 : 2025-03-28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해저로월 _ 정선임
우리에게는 적당한 말이 없어 _ 김봄
망고스틴 호스텔 _ 김의경
낙영 _ 최정나
리뷰
책속에서
“동풍이 곧 끝난다. 상관없다. 다시 남풍이 불어올 테니까”
▮타클라마칸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난징의 진회강에서, 에콰도르의 에스메랄다 해변에서,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에서, 프라하성 안에 있는 성 비투스 대성당 앞에서 주웠거나 그곳에 남겨진 것들이라고 ―남겨진 것들이라는 말을 할 때 미경은 조금 슬퍼 보였다 ― 했다. 수정은 낯선 지명들을 따라 발음했다. 미경은 수정의 어설픈 발음에 웃으며 비닐봉지 안에서 과일 말린 것을 꺼내 입에 쏙 넣어줬다. 떠나던 날, 커다란 여행 가방을 열고 뒤적이던 미경은 수정의 손에 작은 돌을 쥐여주며 말했다. 행운을 가져다줄 거야.
▮오늘은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호카곶에 가기 위해 호시우역에서 기차를 타고 신트라에서 내려 우르르 몰려가는 사람들을 따라 버스를 탔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머리카락이 마구 날렸다. 커다란 기념탑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 간신히 사진 한 장을 찍었다. 탑에는 위대한 시인의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여기 땅이 끝나는 곳, 다시 바다가 시작되는 곳.
저 바다 너머에 또 다른 대륙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 정선임, 「해저로월」 중에서
“한때는 언어가 모든 것을 정리해 줄 수 있다고 믿은 적이 있었다”
▮가야즈의 검지가 먼저 가리키는 것은 주둥이가 긴 누런 개였다.
“굿다! 굿다!”
“굿다?”
“굿다!”
다음은 느직느직 걷고 있는 소, 그다음은 담장 위에 앉은 고양이를 가리켰다.
개는 굿다, 소는 가이, 고양이는 빌리. 가야즈 칸, 유소영.
우리는 개와 소와 고양이와 서로의 이름을 서른 번도 넘게 불렀다. 이름이 입에 붙자 이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느껴졌다. 또다시 가야즈의 차를 타게 된다면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들 것도 같았다.
▮“그거야말로 프레임이야.”
이제는 마무리를 했으면 했지만 앨리스와 모하마디는 다시 여성 인권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두 사람은 합이 잘 맞는 프로레슬링 선수들 같았다. 사전에 약속한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격하고, 또 반격을 가하면서 보는 이들의 도파민을 끝없이 자극하는, 가장 포르노그래픽한 게임에 열중한 선수들.
― 김봄, 「우리에게는 적당한 말이 없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