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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1797626
· 쪽수 : 120쪽
· 출판일 : 2024-11-29
책 소개
목차
초대시
소금쟁이_ 박이도
갈대밭_ 임만호
발간사_ 사영숙
남금희
시중時中•통한의 예레미야•상천하지의 줄
푸바오 이별•백로白露
최용호
아기처럼 웃었다•망덕望德 해변•가죽 손가방
나무에게•늦가을 볕
조수일
그믐처럼 켜 있었다•사각지대•무화과 껍질을 벗기며
밤길을 걷다•시래기
이철건
저녁 강가에서•위험한 여름•그 장미로부터의 연상
그에게로 가는 길•촛불의 추억
김 휼
침묵의 음표•그늘 수호기•프로크루스테스 침대 쇼핑몰
어둠 외전•나비(נ ִבָיא)
사영숙
결심•부끄러움•거울을 보며•그런가 봐•바다로 가자
함국환
금강초롱•무의도 굴 사랑•설악 공룡능선
북한산성 십삼성문•역고드름
김윤희
몽골의 초원•가을 단풍•광야의 고독
지나온 시간이 편하지만 1•남향집에 살고파
윤주영
부활절 팡파르•할머니의 시절•추석 전야
8·15 구국성회에서•가을날 기도
고경자
달의 계곡•아이드미라두키•흉터•봄의 무도곡
손톱 그리고 손톱 깎기
편집후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광야의 고독」
- 김윤희
외로움이란
별이 쏟아지는 광야 홀로 서 있는 자리
달빛 그림자 길게 수놓은 자리
어디서 찾아온 바람 옷자락 당겨주는 자리
이슬이 땅 축축이 적셔 오면서
풀잎 방울방울 은방울 달아주는 자리
광야는 홀로 있을 때
그대 음성이 들리고
그대 모습 보이는 광야는
가득 찬 어둠 텅텅 비우는 자리
비우고 비워야 만날 수 있는 자리
가끔
세상 빛 환하게 눈부실 때
가장자리 그대 보이지 않을 때
슬프고 힘들어 주저앉아 있을 때
그분은 가장 밑바닥에서 나를 보고 계셨네
이 광야에 그대가 보이는 곳
오 주님
내가 이곳에 있나이다
「흉터」
- 고경자
한자리에 백일홍처럼 피어난 꽃이었다
더 이상 자라지 않는 마음처럼
꿰매도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지평선의 흔적이었다
이십 년이 지나고도 잊히지 않는 아픔이
손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그 자리에서 그림이 되었다
때로는 몽돌처럼 부딪치고 닳아져 사라져도 좋았을
그래서 흔적만으로 짐작할 수 있는 이름처럼
희미해진 시간의 눈을 밟으며
햇볕에 사르르 녹았으면 하는
바다는 백색의 소용돌이다
파도 소리를 심장에 묻고 있어서 더 서글프다
행운을 가져오는 별똥별도
우주에서 버려진 행성으로 떠돌다
지구로 떨어지는 운명의 화살이 아닐까
바벨탑을 짓다 벽돌이 되어버린 사람들
새로운 언어는 흉터를 가지고 태어난다
흉터를 가진 것들은
높은 계단을 스스로 만들면서 살아간다
「무화과 껍질을 벗기며」
- 조수일
농익어 말랑해진 몸
감출 마음도 없다는 듯
술술 자신을 내어주고 말았어
이건 비밀인데
꽃도 피우지 못하고 그만 수태를 해버렸대
커다란 잎사귀 아래 알몸을 숨기고 앉았더래
나도 동족이었는지 몰라
세상의 맨 처음 표정처럼
한껏 물이 올라 낭창이던 시절이었어
아침이면 안개가 올라와 지면을 적시곤 하던
비손 강과 유브라데 강이 흐르는 동산이었어
먹음직한 그것에 홀려 그만 혀를 대고 말았지
그 후 눈이 열리고
손바닥만 한 이파리를 엮어 수치를 가렸어
그 풀잎 치마가 내 태초의 의상이었어
또르르, 볕에 말리던
억울한 내 허물이 겹겹이 포개지는 동안
빗나간 예언처럼
온 세상 고요 속의 당신 뒷모습이 보였지
키 큰 그늘만 골라 앉던 기억이 나
입구도 없는 숨길에 꽃을 숨기던 시절
나의 보호막이었을 껍질을 벗기며
자꾸만 아랫도리로 눈이 가는 저녁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