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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 잡지 > 기타
· ISBN : 9772951413031
· 쪽수 : 120쪽
책 소개
목차
푸른 못, 마르지 않는 눈물 | 이상헌
그들이 하지 않은 일들 | 민병훈
임자 | 천현우
커뮤니티 | 한유주
책속에서
21세기 일터는 분열의 세계다. 노동법의 유려한 문구는 대기업 조직 노동자들에게는 그나마 ‘쓸 만한 친구’이지만, 그외 대부분의 다른 노동자들에게는 ‘아득한 꿈’이다. 후자를 부르는 이름마저 가혹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다. 비정규직의 일터는 마치 단테의 지옥도처럼 촘촘하게 엮어올린 사슬이다. 불안정 계약의 씨줄과 하청의 날줄로 짜여진 그곳은 한번 들어서면 빠져나가기가 힘들다. (……)
여기에 젠더와 나이 문제가 겹쳐지면 노동세계는 또다시 분열된다. 청년이 일터의 미래라는 언설은 넘치지만, 그 미래를 위한 투자와 협력은 항상 ‘품절’ 상태다. 청년에게 기회는 주지 않으면서, “더욱 노력하라”는 수천 년 묵은 꼰대질은 계속된다. 점점 더 많은 여성이 일터로 나가고 있지만, 차별은 좀체 줄지 않는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제까지의 성과가 씁쓸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이룬 것은 오로지 노동자의 힘 덕분이다. 전태일은 제 몸을 불태우며 노동법을 살려냈고, 1970~1980년대에는 선비의 후배 여공들이 우리를 ‘차별 없는 세상’으로 한 발짝 내딛게 했다. 노동조합을 둘러싼 싸움도 격렬하고, 때론 처절했다.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소리내어 온몸으로 외쳐야 겨우 얻을 것이다. 20세기 노동이 준 교훈이다. 21세기라고 다르지 않다. 노동자는 여전히 싸운다. 덜컥대는 재봉틀이나, 불똥 튀기는 용접기뿐만 아니라, 컨베이어 벨트 같은 매장 계산대에서, 휴대폰에 떠오른 주문을 쫓아 달려가는 오토바이에서, 노동의 싸움은 계속된다. 어설픈 지식인의 말들은 늘 그랬듯 저 배달 오토바이를 뚫고 가는 바람 같은 것이다. 시끌벅적하게 몰려왔다가 이내 뒤로 밀려난다.
_이상헌, 「푸른 못, 마르지 않는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