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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문화사
· ISBN : 9788971995853
· 쪽수 : 780쪽
· 출판일 : 2014-02-10
책 소개
목차
| 책머리에 | 폴 샬뤼스· 11 | 서문 | 뤼시앵 페브르· 22 | 들어가며 | 마르셀 토마· 29
1장 1차적 논제: 유럽 내 종이의 등장· 51
1. 종이의 발전 단계· 53 2. 제지업이 발달하기 위한 자연환경과 산업 여건· 57
3. 제지산업 발달의 상업적 조건· 64 4. 책의 등장과 제지업의 발달(15~18세기)· 69
2장 기술적 어려움과 문제의 해결· 78
1. 목판술은 책의 기원인가?· 79 2. 인쇄술의 ‘발견’· 88 3. 활자의 제작· 99
4. 조판과 인쇄· 107 5. 판 걸기와 접지· 122 6. 앞서 간 중국· 125
3장 책의 외형· 135
1. 활자의 형태· 137 2. 책의 내력: 속표지, 판권장, 상표· 148
3. 본문의 형태와 책의 판형· 155 4. 삽화· 160 5. 책, 옷을 입다: 책의 장정· 189
4장 책이라는 하나의 상품· 198
1. 원가의 문제· 199 2. 재정 조달의 문제· 208
5장 출판길드의 작은 세계· 229
1. 직인· 230 2. 장인· 242
3. 인문주의 성향의 인쇄업자와 철학적 소양의 서적상· 253 4. 저자와 저작권· 282
6장 책의 지리적 분포도· 294
1. 기술을 전파하는 사람들· 294 2. 인쇄소의 입지 요인· 299 3. 출판사의 지리적 분포· 313
4. 세상을 정복한 인쇄술· 341
1) 슬라브 지역· 342 2) 신대륙 지역· 356 3) 극동아시아 지역· 364
7장 책의 매매· 370
1. 몇 가지 자료를 통해 보는 책의 발간과 발송· 371 2. 해결해야 할 문제들· 380
3. 영업방식과 무역박람회· 383 4. 새로운 영업방식· 399
5. 윤허권(인쇄.출판 독점 허가권)과 무단복제· 407 6. 검열과 금서· 414
8장 책, 변화의 원동력· 420
1. 필사본에서 인쇄본으로의 이행· 420 2. 책과 인문주의· 443
3. 책과 종교개혁· 488 4. 인쇄술과 언어· 538
| 발문 |· 559 | 옮긴이의 말 |· 613 | 미주 |· 618 | 참고문헌 |· 670 | 찾아보기 |· 724
리뷰
책속에서
활자 전체의 크기와 관련해서도 통일성이 부족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그 어떤 치수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관습적으로 대략 어림짐작하는 정도가 다였다. 크게 뜬 눈의 크기라던가, 보석 크기라던가, 키케로 작품 출판 활자 크기, 큰 로마체 규격, 아우구스티누스 활자 크기 등과 같은 식으로 경험적인 치수를 사용할 뿐이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이 이해하는 규격도 저마다 달랐으며 치수의 혼동이 야기되었다. 여기에서도 18세기에 이르러서야 푸르니에의 노력과 디도 가의 작업에 따라 안정적으로 규격이 통일된다. 군왕의 발에 비해 144배 작은 크기로 서체의 크기를 정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활판인쇄업자들 역시 이 기준을 따르고 있다.
중국에서 문헌의 편찬이 대개 목판인쇄술에 관심을 가진 개인으로부터 자금 지원이 되었다면, 한국의 경우 중앙정부가 이를 부담해 서적을 유포했고, 이미 활자를 이용한 인쇄기법의 발달이 정점에 도달한 상태였다. 한국에서 활판인쇄술이 처음 나타난 것은 13세기 전반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후 15세기에는 태종의 장려정책에 따라 활판인쇄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1403년에 태종은 칙령을 내려 계몽정책을 포고한다. “무릇 나라를 다스리려면 반드시 널리 전적典籍을 보아야 한다. 그런 뒤에야 모든 이치를 추구하고 마음을 바르게 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효과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조선은 중국과 바다 건너 멀리 떨어져 있어서 중국 서적을 쉽게 구할 수 없고, 또 판각본板刻本은 훼손되기 쉬우며, 또한 천하의 많은 책을 모두 간행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짐이 동활자를 주조해, 서적을 구하는 대로 반드시 인쇄해 널리 전파함으로써 진실로 무궁한 이로움으로 삼고자 한다. 그러나 그에 지공支供되는 비용을 백성에게서 거둬 내는 것은 부당하니, 이에 내탕內帑의 돈을 다 내놓고서…….”
1403년(계미자)과 1420년(경자자), 1434년(갑인자) 세 차례에 걸쳐 중앙정부 주도로 이루어진 조선의 활자주조는 유럽에서 인쇄술이 발명되었던 것보다 앞서 있었다.
인쇄술이 태동하던 1450년경, 책은 그 성격이나 용도에 따라 서체가 무척 다양하게 달라졌다. 그 가운데 네 가지 주요 서체를 꼽아볼 수 있는데, 각각의 서체별로 그 나름의 특정 용도가 정해져 있었다. 우선 스콜라학파들이 사용하던 고딕체가 있는데, 로툰다Rotunda체라고도 하며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서 쓰인 서체라고 하여) ‘대전문자체’라고도 일컫는다. 주로 신학자들과 대학교수들이 즐겨 썼다. 텍스투라Textura체라고도 일컫는 두 번째 대표 서체는 이보다 더 크고 각 진 느낌의 고딕체로, 획이 곧고 활자에 장식이 들어간다. ‘미사경본 문자체’라고도 불리며, 교회 관련 서적에 주로 사용된다. 그다음은 ‘바타르’ 고딕체라 불리는 서체로, 공문서 작성 시 사용되던 초서체의 변형 필체다. 이 서체는 속어로 쓰인 고급 필사본에서 흔히 쓰였으며, 서사적 라틴 문헌 일부에서도 이 서체가 사용된다. 마지막은 제일 늦게 등장해 오래도록 명맥을 이어가게 될 서체인데, 서구 유럽 인쇄본 대부분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서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인문주의자들이 즐겨 쓰던 ‘리테라 안티쿠아’(안티쿠아 문자), 즉 미래의 ‘로마체’다. 카롤링거 서체에서 따온 이 서체는 페트라르카와 그에게 질세라 그 뒤를 따르던 이들이 유행시켰는데, 1450년경만 해도 인문주의자들 일부만이 쓰던 필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