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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과 선생님이 뽑은 북앤북 문학읽기

국어과 선생님이 뽑은 북앤북 문학읽기(1~20) A세트 - 전20권

김동인, 김유정, 나도향, 안국선, 이상, 이태준, 이효석, 채만식, 최서해, 현진건 (지은이)
  |  
북앤북
2017-07-10
  |  
17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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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과 선생님이 뽑은 북앤북 문학읽기

책 정보

· 제목 : 국어과 선생님이 뽑은 북앤북 문학읽기(1~20) A세트 - 전20권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고전
· ISBN : 9788989994800
· 쪽수 : 3708쪽

목차

국어과 선생님이 뽑은 문학읽기(1~20) A세트

1. 김동인 단편선 감자 & 배따라기 & 광염 소나타 외
2. 김유정 단편선 봄봄 & 동백곷 & 금따는 콩밭 외
3. 현진건 단편선 운수 좋은날 & 빈처 & B사감과 러브레터 외
4. 이효석 단편선 메밀꽃 필 무렵 & 산 & 돼지 외
5. 채만식 단편선 레디메이드 인생 & 논 이야기 & 치숙 외
6. 이상 단편선 날개 & 권태 & 지도의 암실 외
7. 최서해 단편선 탈출기 & 홍염 & 전아사 외
8. 안국선 단편선 금수 회의록 & 공진회 외
9. 나도향 단편선 물레방아 & 벙어리 삼룡이 & 행랑 자식 외
10. 이태준 단편선 복덕방 & 해방 전후 & 돌다리 외
11. 구운몽
12. 운영전
13. 춘향전
14. 홍길동전
15. 금오신화 만복사저포기 & 이생규장전 & 취유부벽정기 외
16. 호질 & 양반전 & 허생전 외
17. 박씨전 & 임경업전
18. 심청전 & 토끼전
19. 흥부전 & 옹고집전
20. 사씨남정기

저자소개

김동인 (지은이)    정보 더보기
호는 금동琴童, 춘사春士. 평양 진석동에서 출생했다. 기독교 학교인 평양숭덕소학교와 숭실중학교를 거쳐 일본의 도쿄 학원, 메이지 학원, 가와바타 미술학교 등에서 공부하였다. 1917년 일본 유학 중 이광수(李光洙), 안재홍(安在鴻) 등과 교제하였다. 1919년 전영택, 주요한 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지 [창조]를 발간하였다.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시작으로 「목숨」, 「배따라기」, 「감자」,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광화사」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 혁신에 공헌하였다. 1923년 첫 창작집 『목숨』을 출판하였고, 1924년 폐간된 [창조]의 후신 격인 동인지 [영대]를 창간했다. 1930년 장편소설 『젊은 그들』을 [동아일보]에 연재, [삼천리]에 「광염 소나타」를 발표했다. 1932년 [동광]에 「발가락이 닮았다」, [삼천리]에 「붉은 산」을 발표하였다 .1933년에는 [조선일보]에 『운현궁의 봄』을 연재하는 한편 조선일보에 학예부장으로 입사하였으나 얼마 후 사임하고 1935년 월간지 [야담]을 발간하였다. 극심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소설 쓰기에 전념하다 마약 중독에 걸려 병마에 시달리던 중 1939년 ‘성전 종군 작가’로 황국 위문을 떠났으나 1942년 불경죄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간사로 활동하였으며, 1944년 친일소설「성암의 길」을 발표하였다. 1948년 장편 역사소설『을지문덕』과 단편「망국인기」를 집필하던 중 생활고와 뇌막염, 동맥경화로 병석에 누우며 중단하고 1951년 6·25 전쟁 중에 숙환으로 서울 하왕십리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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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8년 1월 11일, 우리나라 최초의 인명(人名) 기차역인 ‘김유정역’이 있는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에서 2남 6녀 중 일곱째이자 그로서는 안타깝게 차남으로 태어난다. 1914년, 유정 일가는 서울 진골(현 종로구 운니동)의 1백여 칸짜리 저택으로 이사하는데, 셋째 누이 김유경은 이곳을 유정의 출생지로 증언한다. 1915년 어머니가, 2년 뒤인 191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고아가 된다. 9살, 유정은 아직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했지만, 가장이 된 형 유근은 동생을 돌보는 대신 주색잡기에 빠져 산다. 유정은 책상 위에 놓인 어머니 사진을 들여다보곤 하며, 친구들에게 어머니가 미인임을 자랑하기도 하며, 횟배를 자주 앓으며 소년기를 보낸다. 1929년, 한 번의 휴학을 거쳐 휘문보고를 졸업한다. 그동안 형의 금광 사업 실패와 방탕한 생활로 가세는 몰락한다. 1930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지만 결석으로 인해 곧 제적당한다. 스스로는 더 배울 것이 없어 자퇴했다고 했지만. 이후 얼마간의 방랑 생활을 거친 후 귀향, 야학당을 여는 한편 농우회, 노인회, 부인회를 조직 농촌계몽 활동을 벌인다. 그 와중 늑막염이 폐결핵으로 악화한다. 1933년, 서울로 돌아온 유정은 누나들 집을 전전하며 폐결핵을 견뎌야 하는 삶을 산다. 그런 유정을 안타까워하던 친구 안회남이 소설 쓰기를 권유, <산골 나그네>와 <총각과 맹꽁이>를 연이어 발표한다. 그리고 1935년, <조선일보>와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낙비>와 <노다지>가 각각 1등과 입선으로 당선, 문단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정식으로 등단한다. 이후 1937년, 스물아홉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소설 30편, 수필 12편, 그리고 번역 소설 2편을 남긴다. 죽기 한 해 전인 1936년 가을, 이상으로부터 “유정! 유정만 싫지 않다면 나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일개 요물에 부상당해 죽는 것이 아니라 27세를 일기로 불우한 천재가 되기 위해 죽는 것입니다!”라는 동반자살 제의를 받지만, “명일의 희망이 이글이글 끓습니다”라는 말로 거절한다. 하지만 이듬해 3월 29일, 세상을 떠나고 만다. 자살을 먼저 제의한 이상보다 19일 먼저. 사인은 둘 모두 폐결핵. 같은 해 5월 15일, 요절한 두 천재의 죽음을 기리는 합동 추도식이 치러진다. 발기인은 이광수, 주요한, 최재서, 정지용, 이태준, 박태원, 그리고 안회남 등 25명. 1938년, 김유정의 첫 책이 삼문사에서 출간된다. 제목은 《동백꽃》. 죽기 열하루 전, 번역으로 “돈 100원을 만들어볼 작정”을 한 유정은 안회남에게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탐정소설 두어 권을 보내줄 것을 편지로 요청한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10여 마리 먹어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며. “책상 위에는 ‘겸허(謙虛)’라는 두 글자”를 커다랗게 써 붙여놓은 채. 스물아홉의 피 끓는 삶에의 몸부림과 죽음에 대한 겸허한 자세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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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향 (지은이)    정보 더보기
애상적이고 감상적인 작품은 물론 주관적인 애상과 감상을 극복하고 객관적인 사실주의적 경향을 보여 주는 작품까지, 폭넓은 작가세계를 보여주는 완숙한 경지의 작가이다. 1902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본명 경손(慶孫), 호 도향(稻香), 필명 빈(彬)을 사용했다. 배재고보(培材高普)를 졸업하고 경성의전(京城醫專)에 다니다가 도일한 후 학비가 없어 귀국하였다. 1921년 단편 「추억」을 「시민공론」에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이상화, 현진건, 박종화 등과 함께 백조파라는 낭만파를 이루었다. 이듬해 동아일보에 장편 『환희』를 연재하여 19세의 소년 작가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홍사용, 박종화 등과 문예 동인지 「백조」를 창간하고『젊은이의 시절』등 애상적이고 감상적인 작품을 발표하였다. 1923년에 『17원 50전』 『행랑 자식』을 『개벽(開闢)』에, 『여이발사(女理髮師)』를 『백조』에 발표하면서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보여 주었고, 1925년에 『물레방아』 『뽕』 『벙어리 삼룡이』를 발표함으로써 비로소 주관적인 애상과 감상을 극복하고 객관적인 사실주의적 경향과 날카로운 필치를 바탕으로 하여 민중들의 슬프고 비참한 삶에 촛점을 맞춘 작품을 주로 선보이다가 2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그에 대하여 김동인(金東仁)은 다음과 같이 평하기도 하였다. “젊어서 죽은 도향은 가장 촉망되는 소설가였다. 그는 사상도 미성품(未成品), 필치도 미성품이었다. 그러면서도 그에게는 열이 있었다. 예각적으로 파악된 인생이 지면 위에 약동하였다. 미숙한 기교 아래는 그래도 인생의 일면을 붙드는 긍지가 있었다. 아직 소년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도향이었으며 그의 작품에서 다분의 센티멘털리즘을 발견하는 것은 아까운 가운데도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나 그 센티멘털리즘에 지배되지 않을 만한 침착도 그에게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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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선 (지은이)    정보 더보기
경기도 안성 출생. 호는 천강(天江). 개화기 시대 신소설 작가. 구한말 개화를 부르짓은 대표적 정치가 안형수의 양자로, 1895년경 일본에 건너가 제1회 관비 유학생으로 도쿄전문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함. 독립협회 활동으로 투옥되어 참형을 선고받았다가 진도에 유배되었다. 1908년 탁지부 서기관에 임명되었고 1911년 청도군수를 지내기도 함. 저서로는 최초의 근대적 단편소설집 《공진회》와 우화소설 〈금수회의록〉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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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지은이)    정보 더보기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 언제나 우리를 앞질러 나가는 작가.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해경이다. 화가를 지망하였으나 경성 고등 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한다. 수석으로 졸업한 후 19세부터 조선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에서 건축 기사로 일했다. 1930년 잡지 『조선』에 장편 소설 「12월 12일」을 연재하며 문단에 등장했다. 1931년 건축 잡지 『조선과 건축』에 일본어로 쓴 시 「이상한 가역반응」 등 20여 편을 발표한다. 이후 직접 다방 <제비>를 운영하며 구인회 구성원이었던 이태준, 김기림, 박태원 등과 교류하며 친목을 쌓았고, 1934년 정식으로 구인회 멤버가 된다. 같은 해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 삽화가로 참여하는 동시에 「오감도」를 연재했다. 그러나 독자들에게 거센 반발을 받아 연재가 중단되었는데, 그럼에도 문단에서는 새로운 형식적 실험으로서 높이 평가했다. 1936년 변동림과 결혼 후, 요양을 목적으로 홀로 일본으로 건너간다. 이듬해 <불령선인>이라는 죄목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 및 구금되었고, 폐결핵을 앓던 그의 병세가 악화된다. 결국 1937년 도쿄 제국 대학 부속 병원에서 27세의 나이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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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지은이)    정보 더보기
호는 상허尙虛.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성장했다. 휘문고보 4학년 때 동맹 휴교 주모자로 퇴학당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1925년 도쿄에서 단편 <오몽녀>를 <조선문단>에 투고해 입선했다. 1927년 도쿄 조치대 예과를 중퇴한 후 귀국했다. 1929년 개벽사에 입사, 조선중앙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33년 구인회에 참가했으며, 이후 1930년대 말까지 주로 남녀 간의 사랑과 심리를 다룬 작품을 발표했다. 1940년경 일제의 압력으로 친일 활동에 동원되었고, 1941년 모던 일본사가 주관하는 제2회 조선예술상을 수상했다. 1943년 절필 후 낙향했다가 해방을 맞아 서울로 올라왔다. 해방 공간에서 좌익 작가 단체에 가입해 주도적으로 활동, 1946년 <해방 전후>로 제1회 해방문학상을 수상하고 그해 여름에 월북했다. 6·25 전쟁 중엔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와 종군 활동을 했다. 1956년 구인회 활동과 사상성을 이유로 숙청당한 이후 정확한 행적은 알려진 바 없으며 사망 연도도 불확실하다. 1934년 첫 단편집 《달밤》 발간을 시작으로 한국 전쟁 이전까지 《까마귀》《이태준 단편선집》《이태준 단편집》《해방 전후》 등 단편집 7권과 《구원의 여상》《화관》《청춘 무성》《사상의 월야》 등 장편 13권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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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7년 강원도 평창군에서 태어나 평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한 후 시와 콩트를 발표하였으며, 같은 대학 법문학부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한 후 단편소설 「도시와 유령」, 「기우」 등을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마작철학」, 「깨뜨러지는 홍등」, 「노령근해」 등을 발표하면서 동반자작가로 활동하였고, 영화 시나리오 작업과 영화 제작에 참여하였다. 1932년 함경도 경성으로 이주한 후 ‘구인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돈」, 「수탉」, 「산」, 「들」 등 자연과 인간의 사랑의 문제를 다룬 작품을 발표하였다. 1936년 평양으로 이주한 후 숭실전문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대표작인 단편 「메밀꽃 필 무렵」, 「개살구」, 「장미 병들다」, 「산협」, 「풀잎」 등을 발표하였으며, 장편소설 『화분』, 『벽공무한』, 『녹색의 탑』 등을 발표하면서 심미주의 작품 세계로 주목을 받았다. 1942년 결핵성 뇌막염으로 평양에서 세상을 떠났다. 단행본으로는 『노령근해』, 『해바라기』, 『성화』, 『이효석단편선』, 『황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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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 (지은이)    정보 더보기
호는 백릉이며, 1902년 전라북도 옥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서당에서 한문을 익혔으며 1914년 임피보통학교(臨陂普通學校)를 졸업하고, 1918년 경성에 있는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다. 재학중에 집안 어른들의 권고로 결혼했으나 행복하지 못했다. 1922년 중앙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 부속 제1고등학원 문과에 입학하지만 이듬해 공부를 중단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했다가 1년여 만에 그만둔다. 1924년 단편 〈세 길로〉가 ‘조선문단’에 추천되면서 문단에 등단한다. 그 뒤 〈산적〉을 비롯해 다수의 소설과 희곡 작품을 발표하지만 별반 주목을 끌지 못했다. 1932년 〈부촌〉, 〈농민의회계〉, 〈화물자동차〉 등 동반자적인 경향의 작품을, 1933년 〈인형의 집을 나와서〉, 1934년 〈레디메이드 인생〉 등 풍자적인 작품을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기반을 굳힌다. 1936년에는 〈명일〉과 〈쑥국새〉, 〈순공있는 일요일〉, 〈사호일단〉 등을, 1938년에는 〈탁류〉와 〈금의 열정〉 등의 일제강점기 세태를 풍자한 작품을 발표한다. 특히 장편 소설 〈태평천하〉와 〈탁류〉는 사회의식과 세태 풍자를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또한 1940년에 〈치안속의 풍속〉, 〈냉동어〉 등의 단편 소설을 발표한 그는 1945년 고향으로 내려가 광복 후에 〈민족의 죄인〉 등을 발표하지만 1950년에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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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1년 함북 성진군 임명면에서 빈농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학송(鶴松)으로 어려서 부친 혹은 서당을 통해서 한문 공부를 많이 했다. 1918년 간도로 들어가 유랑 생활을 시작해서 부두노동자·음식점 심부름꾼 등 최말단 생활을 전전했다. 1923년 봄에 간도에서 귀국하여 회령역에서 노동일을 했으며 이때부터 ‘서해(曙海)’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춘원의 『무정』을 읽고 크게 감명받고 동경에 있는 춘원과 여러 차례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1924년 「토혈」, 「고국」으로 등단했다. 1925년에 조선문단사에 입사하여 중견 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김기진의 권유로 카프에 가입했다. 1927년에는 조선문예가협회의 간사직을 맡았으며 전 해에 휴간한 조선문단을 남진우가 인수하여 1월에 다시 입사하지만 4월에 또 실직했다. 위문 협착증을 앓던 그는 대수술 중에 과다 출혈로 1932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문학은 ‘체험문학’, ‘빈궁문학’, ‘저항문학’으로 규정된다. 몇 명의 엘리트의 눈으로 바라본 일부의 삶이 아니라 실제 체험을 통한 대다수의 극빈층의 생활상을 날카롭게 표현해 그들의 울분과 서러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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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 (지은이)    정보 더보기
경북 대구 출생이며, 호는 빙허(憑虛)이다. 1915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세이조 중학 4학년을 중퇴하고 상해로 건너가 후장 대학에서 수학한 뒤, 1919년 귀국하였다. 1920년 『개벽』에 「희생화」를 발표함으로써 문필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21년 「빈처」로 문명을 얻었다. 같은 해 조선일보에 입사함으로써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뎠으며, 『백조』 창간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1936년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재직 당시, 일장기 말살 사건으로 인하여 동아일보를 떠난 후, 소설 창작에 전념하였다. 빈궁 속에서도 친일 문학에 가담하지 않은 채 1943년 장결핵으로 죽을 때까지 장·단편 20여 편과 7편의 번역 소설, 그리고 여러 편의 수필과 비평문 등을 남겼다. 작품 경향은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은 사실주의 계열로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자전적 신별 소설과 하층민의 민족적 현실에 눈을 돌린 소설, 역사 소설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작품으로는 장편 「무영탑」과 「적도」를 비롯하여 단편 「빈처」, 「술 권하는 사회」, 「타락자」, 「운수 좋은 날」 등 다수가 있으며, 창작집 『조선의 얼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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