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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서양철학 > 현대철학 > 슬라보예 지젝/슬로베니아 학파
· ISBN : 9788991706187
· 쪽수 : 461쪽
· 출판일 : 2009-06-30
책 소개
목차
일러두기
서문
질문들
주디스 버틀러의 질문들 /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의 질문들 / 슬라보예 지젝의 질문들
주디스 버틀러
보편자를 다시 무대에 올리며: 헤게모니와 형식주의의 한계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정체성과 헤게모니: 정치 논리의 구성에서 보편성이 지닌 역할
I. 헤게모니: 하나의 이름 속에 무엇이 있는가 / II. 헤겔 / III. 라캉 / IV. 객관성과 수사 / V. 정치, 그리고 보편성의 타협
슬라보예 지젝
계급투쟁입니까, 포스트모더니즘입니까 예, 부탁드립니다!
I / II / III / IV / V / VI
주디스 버틀러
경쟁하는 보편성들
헤게모니의 흔적 / 성차의 이중화 / 배척들 / 규범 속의 환상 / 정치의 가능성 조건들그리고 몇 가지 더 / 번역 실천에서의 특수자와 보편자 / 논리의 실천, 담화의 정치, 그리고 경계적인 것의 정당화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구조, 역사, 그리고 정치적인 것
버틀러에 대한 답변 / 지젝에 대한 답변 / 해방의 변증법
슬라보예 지젝
끝없이 처음부터 반복하기Da Capo senza Fine
버틀러: 역사주의와 실재 / 라클라우: 변증법과 우연성 / 역사주의에 반해 / ‘구체적 보편성’ / 헤겔적 개념으로서의 누아르 / 소외에서 분리로
주디스 버틀러
역동적 결론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보편성의 구성
차이의 진술 / 계급의 해체 / 집합 의지와 사회적 총체성
슬라보예 지젝
자리를 점유하기
버틀러: 실재와 그 불만 / 라클라우: 계급, 헤게모니, 그리고 변질되는 보편자 / 현실주의자가 되자,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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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특수성과 차이, 우연성과 역사성을 강조하는 이론과 실천의 일면적 흐름 속에서 보편성의 자리를 확보하려는 시도, 보편성의 견지에서 그것이 특수성/우연성과 맺는 관계를 새롭게 사유하려는 시도는 <우연성> 내에서 진행된 대화와 논쟁의 구체적 세부에 상관없이 이 책이 갖는 고유한 ‘현재적’ 의의를 직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우연성>이 놓여 있는 공통적 지반에도 불구하고 저자들이 이 관계를 사유하는 방식에는 포착하기 어려운 차이,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종의 적대가 가로지르는 차이가 있다. …… 저자들이 각자의 정치적 실천으로 세공하는 문화적 번역(버틀러), 민주적 헤게모니 투쟁(라클라우), 행위(지젝)의 개념은 …… 오늘날의 정치적 지형에서 가능한 세 개의 선택지가 아니다. 그것은 각각의 선택지를 규정하는 개념들이 이미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위협받는 긴장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동일한 대상을 바라보는 세 저자들의 인식을 종합한다고 해서 그 대상에 대한 보다 완전한 상이 도출되는 것도 아니다. 저자들 사이의 연대는 곧바로 그들 사이의 적대를 가리키고 있다. 이런 상황은 이 책의 독서를 불가능한 어떤 것으로 만든다. 독서는 단순히 무지에서 인식으로 나아가는 단선적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이 책을 가로지르는 적대의 반복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면 그것은 완성된 사유들이 전시되는 장으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사유를 위한 영점으로서이다. ‘좌파에 대한 현재적 대화들’이라는 책의 부제는 어쩌면 정치에 대한 ‘현재 이전의’ 대화들로 고쳐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옮긴이, 후기에서)
어떤 보편성의 단언도 문화적 규범과 별개로 일어날 수는 없으며, 국제적 장을 구성하는 다수의 규범들이 경쟁하는 조건 하에서 즉각적인 문화적 번역의 도움 없이는 어떤 것도 단언할 수 없다. 보편성이라는 바로 그 개념은 원리상 언어적 경계를 넘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번역이 없다면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아니면 다르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번역이 없다면 보편성의 단언이 경계를 넘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식민적이고 팽창주의적인 논리를 통하는 것뿐이다. (주디스 버틀러, 61쪽)
순수한 보편성으로 작용하는 보편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중앙의 특수주의적 핵심을 중심으로 등가 연쇄를 확장시킴으로써 창출되는 상대적 보편화가 존재할 뿐이다. …… 하나의 조합이 헤게모니 계급으로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전제는 헤게모니 부문을 구성하는 특수한 목표들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그것들이 사회의 여타 종속된 부문과 수립하는 등가 관계에 기초해 그 목표들을 일반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권력이 해방의 조건이라는 걸 의미한다?헤게모니적 중앙을 중심으로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는 것 외에 일군의 사회 세력들을 해방시킬 다른 방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284~285쪽)
나의 요점은 물론 오늘날의 ‘광란의 춤’, 즉 다양한 가변적 정체성들의 역동적 번성 또한 새로운 형태의 공포 속에서 자신의 해법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유일한 ‘현실적’ 전망은 불가능한 것을 선택함으로써 새로운 정치적 보편성을 정초하고, 어떤 금기도 어떤 선험적 규범(‘인권’, ‘민주주의’)도 없이?더욱이 그 금기와 규범에 대한 존경은 공포, 권력의 무자비한 행사, 희생의 정신을 ‘재再의미화’하는 걸 가로막을 것이다?예외의 자리를 온전히 떠안는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 442쪽)
우리 저자들 모두는 보편성이 정태적 가정이나 선험적 소여가 아니며 대신 그 외양의 규정적 양태 어느 것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과정 또는 조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디에 강조점을 두느냐는 다르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보편성에 대한 각자의 설명을 제공한다. 지젝은 모든 정치적 접합의 부정적 조건이 ‘보편적’이라고, 라클라우는 경쟁의 과정이 생산적이며 궁극적으로 해소될 수 없는 상호 갈등에 이르게 되는 보편성 형태를 규정한다고, 그리고 버틀러는 보편성 내에서 거부된 것이 보편성을 재再형성하는 과정 속에서 그 용어로 재再수용되는 번역의 과정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 우리 저자들은 모두 민주주의의 급진적 형태에 전념하고 있다. 그것은 정치적 접합이 진행되는 표상 과정, 정치적 동원이 일어나는 동일시의 문제?그리고 그것의 필연적 실패?, 부정적인 것의 생산력을 역설하는 이론적 틀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은 미래에 대한 질문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자의식적으로 좌파 내에서 지식인이 차지하는 자리에 대해 반성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아마도 이 텍스트는 일종의 자리배치로서, 즉 철학을 정치의 영역에 적대적으로 속하는 비판적 탐구 양태로 탈바꿈하(고 복원하)는 것으로서 기능할 것이다. (저자들, 서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