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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글클래식 파스텔 에디션 세트 1 - 전5권

별글클래식 파스텔 에디션 세트 1 - 전5권

어니스트 헤밍웨이,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소포클레스, 알베르 카뮈 (지은이), 정지현, 김소연, 김해생, 이미경, 한수민 (옮긴이)
별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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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글클래식 파스텔 에디션 세트 1 - 전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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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별글클래식 파스텔 에디션 세트 1 - 전5권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89998561
· 쪽수 : 1296쪽
· 출판일 : 2021-08-23

책 소개

별처럼 빛나는 고전을 모아 작고 가벼운 문고판으로 엮었으며, 탐낼 만한 예쁜 디자인으로 선보인다. 옛날 번역 그대로 무늬만 바꾼, 표지만 그럴 듯한 책이 아니다. 고전이지만 예스러운 느낌을 최대한 줄이고 문장 하나하나를 가능한 한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게 번역했다.

목차

『노인과 바다』
『위대한 개츠비』
『젊은 베르터의 슬픔』
『오이디푸스 왕』
『페스트』

저자소개

소포클레스 (지은이)    정보 더보기
소포클레스는 ≪시학≫의 저자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어느 작가보다도 높이 평가했던 그리스 극작가다. ≪시학≫의 비극론은 바로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토대로 해 집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괴테는 소포클레스를 다음과 같이 칭찬하고 있다. “소포클레스 이후 그 어떤 사람도 내게 더 호감이 가는 사람은 없다. 그는 순수하고 고귀하고 위대하며 쾌활하다. 현존하는 소포클레스의 작품이 몇 편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유감이다. 그러나 몇 편의 작품일지라도 이 작품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더 좋게 느껴진다.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작품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기원전 496년 그리스 아테네 근교에 자리 잡은 콜로노스에서 태어난 소포클레스는 아테네가 문화적으로 가장 성숙했던 시기에 배우인 동시에 극작가로 활동했다. 수려한 용모와 배우로서 손색이 없는 신체적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처음에는 배우로서 명성을 날렸다. 기원전 468년, 28세에 첫 작품을 발표했고 이는 경연대회에서 일등상을 받았다. 이후 123편의 작품을 썼고 24회나 일등상을 받았다. 정치가로서도 탁월한 식견을 지녔던 소포클레스는 기원 전 445년, 델로스(Delos) 동맹이 결성되었을 때, 아테네 동맹국의 재정을 통괄하는 재정관에 선출되었다. 또한 기원전 443년에 페리클레스와 더불어 10명의 지휘관 직에 선출되었으며, 기원전 440년에는 사모스(Samos) 섬 원정에 출전할 장군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평생을 아테네에 살면서 그가 보여준 애국심과 진지한 인품은 시민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일생동안123편의 작품을 발표했지만 현존하는 작품은 다음 7편뿐이다.<아이아스>,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왕>, <필록테테스>, <엘렉트라>, <트라키스의 여인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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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6년 9월 24일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서 아버지 에드워드 피츠제럴드, 어머니 몰리 맥퀼란 사이에서 태어났다. 12세에 세인트폴 아카데미에 입학했고, 「레이먼드 담보물의 신비」라는 글을 처음으로 교지에 싣는 등 어릴 때부터 글쓰기에 재능을 보였다. 뉴먼 스쿨 졸업 후 1913년에 프린스턴대학교에 입학했다. 이 시기에 지네브라 킹이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부유한 그녀의 아버지가 그를 반대했던 사건이 ‘리치걸 푸어보이’라는 피츠제럴드 문학의 핵심 에피소드로 발전한다. 그녀는 이후 젤다와 함께 『위대한 개츠비』에 등장하는 데이지의 모델이 된다. 1917년에 미 육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연인 젤다와 결혼을 약속하지만 불안정한 장래 때문에 파혼당하고 나서 심기일전하여 장편소설 『낙원의 이쪽』을 발표한다. 이를 계기로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고, 젤다와의 결혼에 성공한다. 1925년에 세 번째 장편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출간했다. 이 책은 이후 20세기 최고의 미국 소설로 꼽히지만 출간 당시에는 반응이 미미했고, 그 후에 발표한 『밤은 부드러워』도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냈다. 설상가상으로 본인의 알코올 의존증과 아내의 정신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고 주로 잡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거나 영화사에서 극본 작업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소설가로서의 정체성을 끝까지 놓지 않았고, 1940년에 미완성 장편소설 『대군의 사랑』을 집필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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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 (지은이)    정보 더보기
그 모든 것에 항거하며 인간의 부조리와 자유로운 인생을 깊이 고민한 작가이자 철학자.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알사스 출신의 농업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하고, 청각 장애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카뮈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가난, 알제리의 빛나는 자연과 알제 서민가의 일상은 카뮈 작품의 뿌리에 내밀하게 엉기어 있다. 구역의 공립 학교에서 L. 제르맹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 “나는 자유를 빈곤 속에서 배웠다.”라고 하기도 했는데, 알제리에서 보낸 유년기는 그가 작가적 양분을 공급받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받고 1923년 프랑스 중등학교 리세에 입학했고, 이후 알제리 대학에 입학했으나 1930년 폐결핵으로 자퇴를 했다. 결핵 발병으로 누구보다 좋아했던 축구를 포기했다. 바칼로레아 준비반에서 철학 교수이자 에세이스트인 장 그르니에를 만나 큰 영향을 받고, 이후 평생 그와 교류를 이어갔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해 고학으로 다니던 알제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철학을 전공하는 동시에 정치 활동과 연극 활동에 집중했다. 1932년 장 그르니에가 주도한 조그만 월간 문예지 [쉬드Sud]를 통해 처음으로 첫 에세이 《새로운 베를렌Un Nouveau Verlaine》을 발표했다. 대학시절에는 연극에 흥미를 가져 직접 배우로서 출연한 적도 있었다. 결핵으로 교수가 될 것을 단념하고 졸업한 뒤에는 진보적 신문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 한때 공산당에 가입했던 그는 비판적인 르포와 논설로 정치적인 추방을 당하기도 했고, 프랑스 사상계와 문학계를 대표했던 말로, 지드, 사르트르, 샤르 등과 교류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몰입했다. 1937년 첫 산문집 《안과 겉》을 발표하고, 이듬해부터 [알제 레퓌블리켕]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1940년에 파리로 활동 무대를 옮겨 [파리수아르]의 기자가 된다. 독일에 점령당한 파리에서 검열을 피해 지방으로 옮긴 [파리수아르]를 따라 이동하는 동안에도 집필 활동에 매진한다. 초기의 작품 《표리(表裏)》(1937), 《결혼》(1938)은 아름다운 산문으로, 그의 시인적 자질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1942년 7월, 자신의 첫 소설이자 대표작이 되는 문제작 《이방인(異邦人) L' tranger》을 발표하면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이즈음 레지스탕스에 가담하여 프랑스 해방 운동에 참여한 카뮈는 철학 에세이 《시시포스 신화》(1943), 희곡 작품 「오해」(1944) 등 다양한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저항운동에 참가하여 레지스탕스 조직의 기관지였다가 후에 일간지가 된 [콩바]의 편집장으로서, 모든 정치 활동은 확고한 도덕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좌파적 입장을 견지했다. 또 집단적 폭력의 공포와 악성, 부조리함을 알레고리를 통해 형상화한 소설 《페스트》로 문학계의 대반향을 일으켰고 1951년에는 마르크시즘과 니힐리즘에 반대하며 제3의 부정정신을 옹호하는 평론 《반항적 인간》을 발표하여 지성계에 큰 논쟁을 촉발한 사르트르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 10년 가까운 우정에 금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1956년 《전락》을 발표하면서 사르트르에게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를 발표하며 문학가를 넘어 사상가로도 인정받기 시작했고, 실존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엄마, 무명인, 그리고 나의 ‘죽음’을 연달아 맞닥뜨리며 삶의 부조리를 고뇌하는 모습은 이후 오랫동안 수많은 독자를 실존주의의 세계로 이끈다. 와 라는 희곡을 쓰며 희곡 작가로도 활동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57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대문호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알제리 독립을 둘러싼 논쟁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 가지만, 카뮈는 생전 인터뷰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보다 더 부조리한 죽음은 상상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960년 1월 4일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이때 사고 차량에 있던 가방에서 초고 형태로 발견된 《최초의 인간》은 1994년에야 빛을 보게 된다. 이 외에도 《여름》, 《유배지와 왕국》, 《행복한 죽음》, 《정의의 사람들ㆍ계엄령》, 《결혼, 여름》, 《태양의 후예》, 《젊은 시절의 글》, 《스웨덴 연설ㆍ문학 비평》, 《최초의 인간》, 《여행일기》, 《단두대에 대한 성찰ㆍ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전락·추방과 왕국》, 《안과 겉》 등의 작품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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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은이)    정보 더보기
1749년 8월 28일 독일 마인강 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부친 요한 카스파르(Johann Kaspar) 괴테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황실 고문관이라는 명예직을 가진 부유한 시민으로 합리적이고 이지적인 성격이었다.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Katharina Elisabeth)는 라틴계 특유의 풍부한 감정과 활달하고 명랑한 성격의 여성으로 어린 아들에게 동화를 들려주고 인형극을 접하게 하여 아들의 예술 감각을 일깨워 주었다. 괴테는 1765년 10월 부친 뜻에 따라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한다. 1771년 8월 법학석사 학위 시험을 치른 뒤 고향으로 돌아간다. 고향에서 변호사로 일을 시작하지만 본업보다는 문학에 더 힘을 기울인다. 이 시기 〈무쇠 손 괴츠 폰 베를리힝겐〉(1773)을 발표한다. 이후 3년은 괴테 일생에서 가장 풍성한 결실의 기간이다. 《젊은 베르터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1744)도 이때 발표된다. 1776년 괴테는 추밀원 고문관에 임명되는 것을 시작으로 10년간 여러 분야의 행정 업무를 담당한다. 1782년에 재무상이 되는 한편 신성로마제국 황제 요제프 2세로부터 귀족 작위도 받는다. 이 시기 바이마르 궁정의 여관 샤로테 폰 슈타인 부인과의 정신적 교류 영향으로 질풍노도기의 과도한 격정에서 벗어나 조화와 중용을 지향함으로써 좀 더 원숙한 문학 세계로 들어선다. 그 밖에 괴테는 지질학, 광물학, 해부학, 식물학 등 자연과학 연구에도 몰두한다. 1786년 9월 3일 괴테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바이마르를 떠나 이탈리아로 향한다. 이탈리아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을 접한 괴테는 이성과 감성을 조화시키고 중용을 지키며 교양을 갖춘 원숙한 인간상을 절제된 언어와 짜임새 있는 형식으로 표현하려는 고전주의 문학관을 확립한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후 별 성과 없이 여러 해를 지내던 괴테는 10년 연하의 실러와 아름다운 우정 관계를 맺는다. 1828년 카를 아우구스트 대공의 사망과 2년 뒤 아들의 죽음으로 최대 시련을 맞은 괴테는 미완성 작품에 매달림으로써 그 시련을 극복하려고 한다. 〈파우스트〉는 그때까지 인간 정신이 이룩한 모든 것과 예언적으로 이후에 창조될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방대한 스케일, 다양한 운율, 풍부한 상징 등으로 독일 문학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대작이다. 인간의 한평생이라 할 수 있는 6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던 〈파우스트〉의 완성과 함께 괴테의 일생도 종결된다. 괴테는 1832년 3월 22일 향년 83세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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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9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났으며, 20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잃어버린 세대’를 상징하는 작가다. 고교 졸업 후 수습기자로 일하다 제1차 세계대전에 구급차 운전병으로 참전해 큰 부상을 당했고, 종전 후 파리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당대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본격적인 창작을 시작했다. 1926년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로 명성을 얻었으며,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을 발표해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간결하면서도 절제된 문체와 사실적인 묘사로 독자적 문학 세계를 구축한 그는 평생 낚시와 사냥, 여행을 즐기며 행동하는 삶을 추구했다. 1952년 『노인과 바다』를 출간해 퓰리처상을 받았고, 이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현대 문학의 거장으로 자리 잡았다. 말년에는 비행기 사고의 후유증과 건강 악화로 힘든 시간을 보냈으며, 1961년 삶을 마감했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라는 그의 문학 정신은 오늘날에도 많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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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생 (옮긴이)    정보 더보기
부산에서 태어났다. 숙명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대학원과 일반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한 후 오스트리아 빈대학에서 독어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숙명여대와 한국외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현재는 번역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2007년에 시몬느번역상을 수상했으며, 옮긴 책으로 『파우스트 박사』 『젊은 베르터의 슬픔』 『밤의 여왕』 『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족속』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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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민 (옮긴이)    정보 더보기
인하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비교문학과 협동과정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세계 여러 나라의 국민 문학을 비교하여 연구하는 공부를 하면서 문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더욱 높아졌고, 다양한 문학 작품들을 과제로 번역하면서 출판번역가를 평생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했 다. 현재는 출판번역 에이전시 베네트랜스에서 리뷰어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 이다. 옮긴 책으로는 《만남이라는 모험》 《마크롱의 기적 같은 사랑》 《페스트》 등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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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현 (옮긴이)    정보 더보기
현재 미국에 거주하며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타이탄의 도구들』, 『그레이트 마인드셋』, 『행동하지 않으면 인생은 바뀌지 않는다』, 『시작이 준비를 이긴다』,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감정 수업』, 『창조적 행위』, 『나에게 가장 엄격한 사람』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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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 제공 : Yes24(www.yes24.com), 알라딘(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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