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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고고학, 위대한 문명의 현장

중국고고학, 위대한 문명의 현장

리링, 류빈, 쉬훙, 탕지건, 가오다룬, 이드리스 압두루술, 돤칭보, 양쥔, 류루이, 추이융, 판진스 (지은이), 정호준 (옮긴이), 심재훈 (감수)
  |  
역사산책
2021-09-25
  |  
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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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고고학, 위대한 문명의 현장

책 정보

· 제목 : 중국고고학, 위대한 문명의 현장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고고학
· ISBN : 9791190429191
· 쪽수 : 360쪽

책 소개

20세기 초반 이래 중국의 가장 중요한 10대 고고학 발굴을 그 현장의 책임자들이 생생하게 서술한 드문 학술서이자 대중서이다. 중국 고대문명을 오랫동안 공부해온 감수자가 언젠가 써보고 싶은 딱 그런 책이다.

목차

추천사

중국 문명의 정수와 발굴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 · · · · · · · · ·· · · · · · · · 심재훈

서 언 ‘문명’이라는 두 글자로부터 생각해본다· · · · · · · · · · · · · · · · · 리링李零

제 1 강 량주良渚
- 5,000년 전의 신비한 옛 나라· · · · · · · · · · · · · · · · · · · · · · · · 류 빈劉斌
1. 창장長江 유역 문명의 요람
2. 량주 고성, 5,000년 전의 ‘슈퍼공정’
3. 옥종 위 신인면神人面

제 2 강 얼리터우二里頭
- 왜 ‘최초의 중국’이라고 부를까?·· · · · · · · · · · · · · · · · · · · · · · · 쉬훙許宏
1. 뤄양洛陽 분지, ‘초기 중국’의 탄생지
2. 얼리터우의 ‘중국 최초’
3. 얼리터우의 용 형상

제 3 강 은허殷墟
- 묻혀 있던 상왕조의 진실· · · · · · · · · · · · · · · · · · · · · · · · · 탕지건唐際根
1. 갑골문의 내용
2. 청동기, ‘청동시대’의 문명 상징
3. 부호婦好는 누구인가?

제 4 강 싼싱두이 문명三星堆文明
- 짙은 안개 속에서 열린 고촉古蜀의 옛 도읍· · · · · · · · ·· · · · · 가오다룬高大倫
1. 싼싱두이, 중국 고고학사의 제2차 고고학 발굴
2. 전설에서 실증으로
3. 싼싱두이 문명과 중국 이외의 상고 문명

제 5 강 샤오허묘지小河墓地
- 로프노르 황야의 중서中西 문명 교류의 수수께끼
· · · · · · · · ·· · · · · · · · · · · · · · 이드리스 압두루술 伊弟利斯 · 阿不都熱蘇勒
1. 샤오허묘지 발견 과정
2. 천 년된 미라 ‘샤오허공주’의 신분
3. 로프노르 러우란의 소멸과 생태보호

제6강 진시황릉秦始皇陵
- 중앙집권제의 축소판·· · · · · · · · · · · · · · · · · · · · · · · · · · · 돤칭보段淸波
1. 진시황의 진짜 형상
2. 진시황릉 부장갱
3. 군사와 폭정만이 아닌 다채로운 진나라 문화

제7강 해혼후묘海昏侯墓
- 배치가 분명하고 완벽한 한나라 열후列侯의 묘· · · · ·· · · · · · · · · · · 양쥔楊軍
1. 27일 동안 한나라 황제였던 유하
2. 출토된 5,200여 매 간독簡牘
3. 해혼후묘의 공자 거울 병풍

제8강 한 · 당 장안성漢唐長安城
- 열세 개 왕조를 거친 고도古都의 흥망사 · · · · · · · · · · · · · · · · · 류루이劉瑞
1. 십여 개 왕조가 장안을 도성으로 정한 이유
2. 웅장한 기백을 지닌 장안성
3. 장안성에서 가장 번창했던 상업지역

제9강 난하이 1호南海1號
- 귀중한 가치가 있는 한 척의 침몰선과 그 속에 숨겨진 해저의 역사·······추이융崔勇
1. 중국 수중고고학의 탄생
2. 해양시대를 압축해놓은 남송의 상선
3. 송대부터 시작된 위탁가공무역

제10강 둔황 막고굴敦煌莫高窟
- 찬란한 예술의 보고· · · · · · · · · · · · · · · ·· · · · · · · · · · · · 판진스樊錦詩
1. 사막에 석굴을 건설한 이유
2. 막고굴, 세계 예술의 보고
3. 장경동의 문헌

345 추천도서

349 찾아보기

저자소개

리링 (지은이)    정보 더보기
『손자』와 『논어』 연구의 명실상부한 최고 권위자 리링 교수는 1948년 중국 허베이성에서 태어나 베이징에서 성장했다. 1977년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에 들어가 금문金文 자료의 정리와 연구에 참여했고 중국사회과학원 고고학과정에서 은주殷周시대 청동기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다시 고고연구소에서 고고학 발굴에 매진하다가 농업경제연구소로 옮겨 선진先秦시대 토지제도사를 공부했다. 오랜 참여적 연구를 통해 빚어낸 명철한 지성으로 여러 고전 해설서를 펴내어 선풍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철저한 고증과 참신한 시각으로 『논어』를 새롭게 풀어낸 『집 잃은 개』는 각종 도서상을 휩쓸고 큰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기록됐다. 1985년부터 현재까지 베이징대 중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고고학, 고문자학, 고문헌학을 종횡하는 ‘삼고三古의 대가’로 통한다. 국내에 소개된 주요 저작으로 『논어, 세 번 찢다』 『집 잃은 개』 『전쟁은 속임수다』 『유일한 규칙』 『호랑이를 산으로 돌려보내다』 『리링의 주역 강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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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진스 (지은이)    정보 더보기
한족(漢族) 여성으로 저장성 항저우가 본적지이다. 1938년 베이핑(北平, 오늘날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현재 둔황연구원의 명예원장을 맡고 있다. 1963년 베이징대학을 졸업한 후 당시 둔황연구원(당시에는 둔황연구소였다)에 들어와 40여 년을 일했다. 세간에서 판진스를 ‘둔황의 딸’로 부른다. 석굴의 고고학 연구 및 과학적 보존 방법에 크게 공헌하였다. 제12대 중국정치협상회의(공산당을 비롯한 8개 정당의 대표와 각 단체와 소수민족, 홍콩과 마카오 동포 등을 묶어 구성한 정책자문기구) 위원이며, 2007년 11월 중앙문사연구관(中央文史硏究館)의 일원으로 위촉되었다. 둔황 문물 보호 및 연구 사업에 40여 년간 종사하면서 석굴의 고고학 연구 및 과학적 보존 방법 개발에 크게 공헌하였다. 저서로 《둔황 석굴(敦煌石窟)》, 《둔황 석굴 전집 : 불전고사화(敦煌石窟全集·佛傳故事畫卷)》, 《중국 벽화 전집 : 둔황편 제3권 북주(中國壁畫全集·敦煌·3·北周卷)》, 《안서 유림굴(安西楡林窟)》 등 10여 종의 둔황 석굴 고고미술학 전문 서적이 있다. 편저자로 참여한 저서도 여러 권이 있다. 《중국 미술 분류 전집 : 중국 벽화 전집(中國美術分類全集·中國壁畫全集)》에서 둔황 벽화 부분을 집필했고, 전26권인 《둔황 석굴 전집(敦煌石窟全集)》과 전13권인 《둔황을 해독하다(解讀敦煌)》에도 대표 편저자로 참여했다. 이 전집들은 둔황 석굴 예술 연구 분야에서 필수적인 대규모 총서들이다. 또한 〈막고굴 북조 동굴 분기(莫高窟北朝洞窟分期)〉, 〈막고굴 수나라 동굴 분기(莫高窟隋代洞窟分期)〉, 〈막고굴 당나라 전기 동굴 분기(莫高窟唐代前期洞窟分期)〉, 〈둔황 막고굴 제290굴의 불전고사화(敦煌莫高窟第290窟的佛傳故事畫)〉, 〈막고굴 역사 유적으로 살펴본 막고굴 절벽의 안정성(從莫高窟曆史遺迹探討莫高窟崖體的穩定性)〉, 〈현장의 불경 번역과 둔황 벽화(玄奘譯經和敦煌壁?)〉, 〈P.3317호 둔황 문서와 막고굴 제61굴 불전고사화의 관계 연구(P.3317號敦煌文書及其與莫高窟第61窟佛傳故事?關系之硏究)〉 등 20여 편의 석굴 고고학 및 고미술학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들로 둔황 석굴의 연대를 판별하고 분류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으며, 국제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 밖에도 ‘막고굴 절벽의 모래바람에 의한 훼손도 연구’, ‘둔황 막고굴 환경 변화와 석굴 보호 연구’, ‘둔황 막고굴 및 주변 지역 환경 변화에 대한 과학적 교육 연구’, ‘문물 정보의 디지털 저장 및 재현 시스템 연구’, ‘전면 디지털 촬영 측량기술을 막고굴 문물 보호에 응용하는 연구’, ‘둔황 문물이 현지 경제 발전에 미치는 영향 연구’ 등 30여 건의 연구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이런 연구 프로젝트의 성과를 담은 논문으로 〈둔황 막고굴의 보호 연구 작업(敦煌莫高窟及其保護、硏究工作)〉, 〈둔황 막고굴 개방에 관한 대책(敦煌莫高窟開放的對策)〉, 〈둔황 막고굴의 보호와 관리(敦煌莫高窟的保護與管理)〉, 〈둔황 막고굴 보호 및 관리를 위한 총체적인 규정과 그 수확(敦煌莫高窟保護與管理總體規劃的制定與收獲)〉, 〈세계 일류 수준의 유적 박물관으로 발전하기 위한 과제(建設世界一流的遺址博物館)〉, 〈디지털 시대의 둔황 : 둔황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이용하는 새로운 방법(數字化時代的敦煌--探索保存和利用敦煌文化遺産的新途徑)〉, 〈둔황 막고굴 여행 개방 정책의 효과와 문제점, 대책(敦煌莫高窟旅遊開放的效益、挑戰與對策)〉 등 30여 편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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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빈 (지은이)    정보 더보기
량주 고성 발견자, 량주 고성 발굴 책임자 저장성 문물고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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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훙 (지은이)    정보 더보기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연구원 얼리터우 발굴단 제3대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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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지건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연구원 전 안양 은허발굴단 단장, 남방과기대학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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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다룬 (지은이)    정보 더보기
쓰촨성 문물고고연구원 교수, 중국 고고학회 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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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리스 압두루술 (지은이)    정보 더보기
로프노르 샤오허묘지 발굴대장, 전 신장 문물고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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돤칭보 (지은이)    정보 더보기
시베이대학 고고학 교수, 전 진시황릉발굴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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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쥔 (지은이)    정보 더보기
해혼후묘 발굴단 단장, 장시성 문물고고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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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루이 (지은이)    정보 더보기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한당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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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이융 (지은이)    정보 더보기
광둥성 문물고고연구소 부소장 중국 첫 번째 수중 발굴단원, 난하이 1호 발굴조사단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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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준 (옮긴이)    정보 더보기
한국외국대학교대학원 중어중문학과 박사과정 졸업하고 중국 사회과학원 방문학자, 강남대학교 중국학센터 객원 연구원,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반대학원 중어중문학과 BK21PLUS 한중언어문화소통사업단 연구교수 역임. 현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연구소 전임연구원 겸 중국어통번역과 객원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두시 속에 나타난 생명존중의식 연구」등 20여 편이 있고 공저로 『중국시의 전통과 모색』,『중국문학의 전통과 모색』 있으며 역서로는 『신제악부/정악부』, 『그대를 만나, 이 생이 아름답다』, 『백거이시선』, 『중국 고고학, 위대한 문명의 현장』, 『총, 경제, 패권』 있다. 공역서로는 『장자-그 절대적 자유를 향하여』,『한비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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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훈 (감수)    정보 더보기
1985년 단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1998년 시카고대학교 동아 시아언어문명학과에서 중국 서주사西周史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있으며, 단국대학교 문과 대 학장과 중국고중세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고대 중국의 방대 한 출토 자료에 매료되어 상주사商周史 연구에 치중해오다 동아시 아 고대사 전반으로 관심의 폭을 넓히고 있다. 관련 저서로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푸른역사, 2016)와 「청동기와 중 국고대사」(사회평론아카데미, 2018), 「중국 고대 지역국가의 발전: 진의 봉건에서 문공의 패업까지」(일조각, 2018)가 있다. 「중국 고 대 지역국가의 발전」으로 2019년 아시아학자세계총회ICAS의 우수 학술도서상을 받았다. 한미교육위원회Fulbright와 일본학술진흥회 (JSPS), 푸단復旦대학의 펠로십으로 각각 UCLA(2009-2010년)와 교토대학(2014년), 푸단대학(2018년)에 방문학자로 초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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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문명”이라는 두 글자로부터 생각해본다

리링李零 | 베이징대 중문과 교수

문명의 개념

‘문명’은 문화 개념에서 이해해야 한다.
영어 단어 civilization은 ‘귀화’와 관련 있다. 어두 civil은 ‘시민의, 본국의, 예의 바른, 교양 있는’을 의미하고 어미 zation은 ‘되다’를 의미한다. 즉 본래 civilization은 ‘본국인이 되다, 개화인이 되다’라는 뜻을 가진다. 시민은 본국인, 개화한 사람을 지칭하며 이와 상반된 개념이 막 귀화한 이민과 아직 귀화하지 않은 외국인이다. 이러한 구분은 공항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입국 수속을 할 때 본국 여권을 가진 시민은 영주권을 가진 사람이나 외국인과는 따로 줄을 선다. 그리고 이민국은 ‘귀화국’이라고도 한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os는 그리스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을 모두 ‘야만인’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당시 그리스인은 페르시아인을 야만인이라 칭했다. 그리스어의 야만인을 영어로 옮기면 barbarian으로, 본국어를 말하지 못하는 외국인이라는 뜻이다. 북아프리카 일대에 거주하는 원주민은 베르베르인Berbers인데 이 역시 barbarian과 같은 의미다. 이는 곧 나와 타자가 있을 때 나는 문명인이며 타자는 야만인으로, 둘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중화민국 시대에는 일본의 영향으로 ‘문명을 중시한다講文明’라는 말이 유행했다. 서구의 예절, 신사의 품격을 따르고자 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심지어 신사의 손에 들린 지팡이를 ‘문명지팡이文明棍’라 불렀다. civilization을 ‘문명文明’으로 번역한 사람은 일본인이다. 그러나 본래 이 두 글자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문헌에서 가져온 것이다.
고문헌에 나오는 문명의 ‘문文’은 문채文彩로 ‘야野’에 상대되는 말이고, ‘명明’은 광명光明으로 ‘암暗’에 상대되는 말이다. 야는 비루하지만 소박한 일면이 있다. 암은 어둡지만 광명과 늘 같이 있다. 따라서 문명은 ‘계몽啓蒙’과 관련된다. 계몽은 첫째, 우매함이 총명함으로 바뀐다는 의미이고, 둘째, 어둠이 광명으로 바뀐다는 의미이다.
옛 문헌의 ‘인문人文’이라는 말도 살펴보자. 인문은 인류가 발명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천지 만물이나 자연계에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인문의 창시자는 인류 문명의 집대성자를 가리키는데, 황제黃帝의 군신을 예로 들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문사철文史哲’을 인문이라 통칭하며 서구에서는 humanity라 한다.
서구에서 문명인을 야만인과 구분한다면 중국에는 ‘이와 하의 구별夷夏之別’이 있다. 하인夏人은 중심(곧 중국)에 거주하는 문명인이다. 이인夷人 혹은 만이융적蠻夷戎狄은 주변(곧 변방)에 거주하는 야만인이다. 맹자孟子는 허행許行을 꾸짖으며 “남쪽 미개한 지역의 왜가리 떼 같이 떠벌리는 야만인南蠻?舌之人”이라 했는데, 이는 헤로도토스가 야만인이라 한 것과 마찬가지로 언어의 다름을 강조한 것이다.
‘화化’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옛 사람들은 ‘이민족이 중국을 바꾸는 것以夷變夏’은 야만화이고 ‘중국이 이민족을 바꾸는 것以夏變夷’은 문명화라고 생각했다. 한 예로, 한漢나라와 진晉나라의 인장에 ‘솔선귀의率善歸義’라는 말이 있었는데, 강족羌族이나 호족胡族 같은 이민족이 한漢문화를 인정하고 귀의한다는 의미다.
언어는 문화의 일종으로 의관을 정제하고 음식을 먹는 습관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문명은 문화 개념이지 종족 개념으로 논할 것이 아니다.
진부한 인류학자들은 유럽을 기준으로 삼아 지구상의 인류를 야만과 문명으로 나누는 고전 시대의 기본 분류법을 고수했다. 19세기 미국의 인류학자 루이스 모건Lewis H. Morgan은 인간 사회의 발전을 몽매savagery, 야만barbarism, 문명civilization의 3단계로 분류했으며, 19세기 역사학과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의 영향을 받은 마르크스Karl Marx와 엥겔스Friedrich Engels 또한 이 용어를 사용했다.
이렇게 문명을 두고 등급을 나누곤 하는 데 대해, 컬럼비아대학의 리디아 류Lydia H. Liu 교수는 한 학술대회에서 ‘문명 등급론’을 비판한 바 있다. 오늘날 한 국가가 어떤 유형이나 등급에 속하는지는 그 크기나 빈부 상황에 좌우되지만 더욱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미국과의 친소 관계라는 것이다. 현대 서구의 인류학자들은 문명에 높고 낮음이나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이는 서구가 추구하는 정치적 올바름에 따른 것으로, 실은 매우 기만적인 말이다.

문명의 표준

우리는 역사 수업 시간에 세계 4대 고대 문명으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허黃河 문명을 배웠다. 그러나 실제로 문명이 어찌 이들 네 가지만 있겠는가? 유럽의 그리스·로마 문명, 서아시아의 티그리스·유프라테스 문명(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포함)과 페르시아 문명, 남아시아의 인도 문명, 동아시아의 중국 문명, 중앙아메리카의 마야 문명과 아스테카 문명, 남아메리카의 잉카 문명 등 최소 10대 문명을 꼽을 수 있다.
이들 문명 중 대부분은 현존하지 않는다. 중국처럼 많은 부분에서 고대와의 연속성을 현재까지 유지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사회평론가인 진관타오金觀濤는 이러한 것을 ‘초안정구조’라고 했으며 초안정구조는 1980년대에 주류 사조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소멸에는 소멸의 원인이 있고 연속에는 연속의 원인이 있는 것으로, 어느 쪽을 좋다 혹은 나쁘다고 말할 사안이 아니다.
‘문명’이란 무엇일까? 문명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표준이 있다.
하나는 금속, 도시, 문자 등과 같은 기술 발명 표준이다. 이들을 연구하는 것은 당연히 고고학과 관련된다. 문화역사고고학의 연구 목표는 고고학 문화인데, 문명은 고고학 문화에 속하지만 고고학 문화보다 더 범위가 넓고 더 오래되었다. 몇몇 문명은 기술 발명 표준에 속하는 요소를 모두 갖추지 못했지만, 중국 문명은 3대 요소가 완전한 문명으로 10대 문명 중에서 전파 범위가 가장 넓고 연속성이 가장 강하다.
문명의 또 하나의 표준은 사유제, 빈부분화, 사회분업, 사회계층분화 같은 사회 조직으로, 복잡한 사회가 형성되었는지, 특히 국가가 출현했는지를 보는 것이다. 중국의 신석기문화는 황허 유역의 3대 지역, 창장長江 유역의 3대 지역 외에 남북에 각각 하나씩 후방 지역이 있어 적어도 8개의 큰 지역으로 나뉜다. 룽산龍山 시대 이후로 야금 기술이 출현하고 도시가 세워졌으며 다양한 상징체계가 각지에서 발견되었다.
과거 중국 고고학자들은 비어 고든 차일드Vere Gordon Childe의 견해를 신중하게 받아들여 룽산 문화를 ‘문명의 서광’으로 보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량주良渚 문화가 이미 문명의 기준을 갖추었다며 문명의 상한을 위로 끌어올리고 송나라 유학자와 신해혁명가가 말한 황제黃帝 연대(중화 오천 년)가 더는 맞지 않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국가’를 연구할 때 서구에서는 현대 이전의 국가를 state, 현대 국가를 nation이라 한다. 이와 관련해 미국 문화인류학자 엘먼 서비스Elman Service는 무리band?부족tribe?추방(chiefdom, 군장 사회)?국가state의 4단계 설을 제시했다. 이는 곧 주현州縣 규모의 작은 도시국가state의 기원을 말하는 것으로 국가 이전에 무리, 부족, 추방의 세 사회 단계가 있었다. 유럽은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자치 전통을 지니고 있어, 그리스의 경우 하나의 도시가 하나의 국가였고 이른바 아테네제국 역시 도시국가 연맹에 불과하여 그리 크지 않았다.
역사상 대제국은 대부분 동방에 있었다. 유럽의 대제국은 마케도니아제국과 로마제국뿐이었는데 마케도니아제국은 페르시아제국을 흡수했지만 금방 사라져버렸다. 광대한 중국고고학, 위대한 문명의 현장16영토를 거느렸던 로마제국은 분열하면서 와해되었다. 중세 이후 유럽은 작은 나라로 나뉘었고 설령 현대 국가들이 전쟁을 일으켜서 새롭게 국가를 조직한다고 해도 그 크기는 이전만 못할 것이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는 몽골제국의 식민지라는 배경 덕분에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게 된 러시아이며 유럽의 26개국은 솅겐 협정Schengen Agreement으로 국경을 개방한 솅겐 국가Schengen States다. 진정한 의미에서 큰 덩치로 새로운 출발을 한 국가는 모두 지리상의 발견 이후 식민지였던 곳이다.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가 바로 그렇다. 그래서 정치학자이며 역사가인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은 가장 이른 nation은 유럽이 아닌 아메리카에 있었고 nation은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라고 했다.
한편 중국 고고학자 쑤빙치蘇秉琦는 중국의 국가는 기원에서 발전까지 ‘고국古國?왕국王國?제국帝國’의 세 단계를 거쳤다고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룽산은 추방chiefdom에 불과하고 하夏, 상商, 주周 삼대三代도 여전히 왕국kingdom이며 진한秦漢 시대에 비로소 제국empire에 들어섰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 삼대는 실제로 하인夏人, 상인商人, 주인周人이 각각 거주하며 활동한 거대한 세 지역을 묶은 것이다. 하, 상, 주를 하나로 합친 서주西周가 건립한 천하는 규모면에서 동주열국東周列國과 비슷했다. 이렇게 큰 발은 근본적으로 state라는 작은 신발에 집어넣을 수 없다. 억지로 집어넣는다면 ‘발을 잘라 신발에 맞추기削足適履’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주는 천하의 주인으로 도시국가가 아니었다. 서주 봉건의 범위, 서주의 동기銅器가 출토된 장소, 동기에 새겨진 명문銘文의 내용을 보면 서주는 왕국kingdom이라기보다 연합 왕국united kingdom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United Kingdom은 영국을 말하는데, 서주가 작은 국가였다고 해도 영국보다는 컸다.
진한 제국은 기본적으로 서주의 영역을 토대로 발전했다. 서구에서 empire라고 하면 아시리아제국, 페르시아제국처럼 비교적 큰 나라를 지칭하지만 그 크기에 엄격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마케도니아제국처럼 규모가 작은 예도 있으니 서주를 제국이라고 칭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프린스턴대학 고고학과의 로버트 배글리Robert Bagley 교수는 상 전기의 얼리강二里崗 문화로 대표되는 국가를 제국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오늘날의 중국은 서구에서 말하는 nation이며, 베이징 고궁박물원장을 지낸 고고학자 장중페이張忠培는 당국黨國이라 했다. 국민당은 중화민국을 세웠고 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다.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모두 nation이다. 미국 역사 교과서는 중국의 근대사를 민족주의 역사의 관점으로 접근하는데 민족주의의 ‘민족’이 바로 nation이다. 중국 근현대사를 전공한 조지프 에셔릭Joseph W. Esherick 교수는 저서 『제국에서 국가로Empire to Nation』에서 제국이 해체됨으로써 현대 국가가 성립했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내 견해는 다르다. 현대 중국은 유럽이나 미국의 모델을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특히 오스만제국의 해체 모델을 따라 철저하게 축소되지도 않았다. 현대 중국은 전제 제도를 뒤집고 공화를 향해 나아가지만 국토의 규모, 민족의 구성과 정치 구조 모두 고대 중국, 특히 대청제국을 계승했다. 현대 중국은 역사가 빚어낸 것으로 결코 인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중국 고고학의 중요성

1949년 이후 중국 고고학은 해마다 발전을 거듭했으며 심지어 문화대혁명 시기에도 큰 성과를 거두어 중국은 물론 세계 고고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하여 중국 고고학계에서 ‘중국학파’ 굴기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중국학파는 마르크스주의의 지도 아래 중국적 특색을 강조하는 학파로 지금의 시대적 조류와는 거리가 있다. 20세기 후반 이후 미국 고고학이 주류로 등장해 ‘과정고고학Processual archaeology’과 ‘후기과정고고학Post-processual archaeology’ 모두 마르크스주의를 따르지 않는 미국적 특색이 강하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반공에 가장 앞장서는 국가이기에 미국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정통이 아닌 이단으로 여겨진다. 후기과정고고학은 마르크스주의 고고학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흐름을 총칭하지만 미국의 마르크스주의는 결코 중국의 마르크스주의와 동일하지 않다.
미국 고고학은 다음 두 가지 특색이 있다.
첫째, 미국은 유라시아 대륙과 멀리 떨어져 있어 고전학, 예술사, 근동의 고고학과 관련이 없는 아메리카 인디언 문화를 대상으로 삼았다. 미국 고고학은 지리상의 발견과 식민주의 토대에서 발전했으므로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고고학에 더 가깝다. 참고 자료 또한 역사문헌이나 금석 자료 같은 것이 아니라 민족 조사와 민족지 같은 것으로, 미국 고고학은 인류학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미국 고고학은 역사 시기 이전을 주로 다루는데 역사 시기 이전의 고고학은 문헌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 고고학자들은 대담한 가설을 세우고 주의 깊게 증거를 찾는 데 더욱 몰두하는 대신 이론과 방법은 경시한다. 고고학이 유적을 발굴하고 기록하며 연대를 밝혀내는 것뿐 아니라 사고와 해석을 중시해서 인류의 행동과 사회생활을 복원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풍조는 미국 특유의 환경 때문이다.
영국 고고학자 글린 대니얼Glyn Daniel은 『고고학 150년150 Years of Archaeology』 (1976)에서 1800년부터 1950년까지의 고고학을 기술했고, 뒤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5년부터 1970년까지를 보충했다. 서구 고고학자들은 중국 고고학이 1949년에서 1979년에 이르는 시기에 낙후되었다고 보는데, 이는 상호간에 교류가 없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사실 이 시기는 중국 고고학의 황금기였다. 중국 학자들이 미국 고고학의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것처럼 서구 학자들 역시 중국 고고학을 연구할 기회를 놓쳤다.
중국 고고학이 서구에 비해 여러 해 뒤처졌으며 심지어 그 차이가 100년에 이르기까지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으나 이는 지나치게 과장된 견해다. 중국 고고학은 열심히 쫓아가고 있다. 1926년에 리지李濟가 시인촌西陰村을 발굴한 것에서부터 헤아리면 이미 100년 가까운 시간을 매진해왔다.
서구 학자들은 중국 고고학에 야외 발굴 기술과 과학적인 방법이 존재하지 않으며 더욱 중요하게는 이론이 없을 뿐 아니라 있다 한들 잘못된 이론만 있다는 것을 들어 뒤처졌다고 평가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중국 고고학의 이론 중 하나일 뿐 유일한 것은 아니다. 미국 고고학 이론은 장광즈張光直의 소개와 위웨이차오兪偉超의 전파를 거쳐서 현재 충분히 논의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훌륭한 이론이고 전위적인 이론이지만 중국에서는 곡해되고 있다.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일생 동안 두 가지 위대한 발견을 했는데, 하나는 유물사관이고 다른 하나는 잉여가치설이라고 했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경제학 연구에 근거한 유물사관에 바탕을 둔다.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Louis Pierre Althusser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직관 유물주의가 아니며, 그 특징은 행동을 강조하고 실천 속에서 문제를 인식하는 것으로 경제, 정치, 의식 형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또한 사회 구성체와 관련한 다섯 가지 표준 형태는 마르크스가 고안한 것이 아니다. 19세기 역사학에서 주로 다룬 세 단계는 아시아?고대(그리스·로마)?게르만(민족 대이동, 중세와 현대 포함)이며 이들은 세 가지 역사 문화를 대표한다. 헤겔은 『역사철학』에서 이 세 단계에 따라 그의 변증법을 확립했다. 마르크스는 이 세 단계를 사회 및 경제 형태 변화의 몇 단계로 간주했을 뿐으로 모든 세계가 이 모델을 따라 발전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유물사관은 거시적 시야를 갖추게 하고 사회사 연구를 깊이 있게 하는 장점이 있다. 20세기 고고학의 전반부는 비어 고든 차일드로 대표되는 문화역사고고학이, 후반부는 루이스 빈포드Lewis Roberts Binford로 대표되는 과정고고학과 후기과정고고학이 주를 이루었다. 차일드는 마르크스주의에 깊이 영향 받았는데, 그의 두 혁명 개념(농업혁명과 도시혁명)은 오늘날까지도 만고불변의 학설이 되었다. 신고고학이라고 해서 반드시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듯 구고고학이 모두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민족주의와 관련해 구세대 중국학자들은 국사를 다시 쓰고 족보를 이어 쓰려고 했다. 이 역시 미국의 정치적 정당성에 근거해 부정적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1949년 이전 중국은 온갖 굴욕을 당하고 멋대로 유린되었는데, 저항한 것이 잘못이란 말인가? 핍박받는 민족이 투쟁을 통해 해방을 바라며 식민통치와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것은 충분한 정당성을 지닌다. 지상과 지하에 사료가 매우 많은 중국은 이집트나 이라크, 이란처럼 외국인에게 도움을 청해 고대사를 편찬할 생각이 없다. 스스로 손과 발을 움직여 자료를 찾고자 하는 게 그리 이상하단 말인가? 1949년 이후 중국은 열강에 포위되어 제재를 받았기에 민족주의는 참으로 필연적인 반응이었다. 우리는 100여 년 동안 이어진 중국의 민족주의를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
세계 문명 연구의 핵심은 유라시아 대륙에 있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유럽의 면적은 아시아의 4분의 1이다. 고전 작가들이 말한 아시아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 이집트, 소아시아, 이란 고원을 포함했다. 식민 시대에는 아시아의 개념이 동쪽으로 확대되어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동아시아, 북아시아 등 여섯 지역으로 나뉘었는데, 이들 지역이 모두 중요하다.
유럽인의 아시아에 대한 인식은 그들에게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미쳐서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고고학은 그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중국, 몽골, 러시아와 더불어 한국과 일본이 속한 동아시아와 북아시아는 그 범위가 아시아 대륙의 절반을 차지함에도 유럽인의 인식에서는 멀리 있어 이들 지역을 다루는 고고학에는 상대적으로 정통하지 못하다.
영국 미술사가이며 중국학자인 제시카 로슨Jessica Rawson 교수는 서구 학자들을 향해 중국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해왔다. 장광즈는 중국 고고학의 중요성이 세계사 고쳐 쓰기에 중대한 작용을 하는 데 있다며, 이를 통해 세계 역사에 공헌해야 하고 또한 공헌할 수 있다고 했다.
중국 고고학은 세계 고고학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중국 고고학을 하지만 실제로는 세계 고고학을 하는 것이다. 중국의 시각으로 세계를 보고 세계의 시각으로 중국을 본다면 반드시 밝은 앞날을 맞이할 것이다.


제1강
량주良渚
-5,000년 전의 신비한 옛 나라-

1973년에 발견된 장쑤성江蘇省 우현吳縣 차오셰산草鞋山 유적에서 주周, 한漢 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옥황玉璜과 옥종玉琮 같은 대량의 옥기가 출토되었다. 이른 시기의 선사 문화에서 뜻밖에도 고급스런 옥기를 발견한 사람들은 이때부터 량주 옥기의 신비한 베일을 벗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2007년에 우리는 량주 고성의 범위를 확인했다. 길이 6킬로미터에 남북으로 1,900미터, 동서로 1,700미터였으며 넓이는 대략 3제곱킬로미터였다. 량주 고성은 지금부터 5,300년 전에서 4,100년 전까지, 천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존재했다. 중화 5,000년 문명이 이로써 증명되었는데, 당시에 중국은 이미 국가를 형성한 문명사회로 진입했다.
서구에서 정한 기준으로 중국의 국가 기원과 문명을 판단하는 것은 그리 적절하지 않다. 량주 문화는 금속과 명확한 문자를 갖추지는 못했다. 그러나 대규모 공사, 사회계급의 분화, 옥기에 반영된 신앙, 생산력의 발전 등은 당시 사회가 결코 이집트와 인더스강 유역 문명에 뒤지지 않았음을 증명해준다.


제2강
얼리터우二里頭
-왜 ‘최초의 중국’이라고 부를까?-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성읍이 빽빽이 늘어서 있던城邑林立 시대에서 도성에 성곽이 없는大都無城 시대로, 다원화된 나라에서 일체화된 왕조가 들어서는 시대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대도읍 얼리터우는 중국 문명사의 첫 번째 절점節點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나는 초기 중국을 ‘광역왕권국가’라고 정의한다. 최초의 지역을 뛰어넘은 강력한 정치 실체를 형성한 것으로 범위를 한정한다면 얼리터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얼리터우에 이르러 비로소 배타적이고 방대한 규모를 갖추어 주변으로 강력한 세력을 뻗치는 광역왕권국가가 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아이가 막 태어난 것과 같다. 량주, 타오쓰陶寺, 스마오石? 등은 모두 선사시대에 병립 공존하던 방국으로 초기 중국의 배태기라고 볼 수 있다.
중원 왕조 문명의 선구가 된 얼리터우 문화는 옛것을 계승해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용 형상으로 그 맥락을 짚어볼 수 있다. 초기 왕조의 발전에 따라 사회 문화도 전성기에 도달하자 본래 다원적 특성을 지녔던 용의 형상이 획일적으로 규범화된 후 점차 추상화와 신비화 과정을 거쳐 수면문獸面紋으로 정착하고 가장 중요한 장식 주제가 되었다. 녹송석 형용기와 녹송석 상감 동패銅牌 장식으로 대표되는 얼리터우 수면문은 상나라와 주나라 청동기 수면문의 효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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