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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소월, 용운, 영랑의 글

동주, 소월, 용운, 영랑의 글

윤동주, 김소월, 한용운, 김영랑 (지은이), 권호 (엮은이),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에드가 드가 (그림)
Muse(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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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소월, 용운, 영랑의 글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동주, 소월, 용운, 영랑의 글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사진/그림 에세이
· ISBN : 9791197296925
· 쪽수 : 298쪽
· 출판일 : 2021-02-15

책 소개

"평생 소장할 가치가 있는 한 권의 책을 만들고 싶었다." "만일 내가 단 한권의 책을 만들 수 있다면?" 이러한 의문 속에 도달한 결론은 단 하나였다. '최고의 명작'. 세계적인 화가 4인의 명화와 한국 대표 시인 4인의 시를 하나로 모았다.

목차

(1)윤동주(글) - 빈센트 반 고흐(그림)
1. 서시 ─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 • 014
2. ‌눈 ─ 해질녘의 눈 덮인 들판을 파고 있는 두 농부 여인 • 016
3. 자화상 ─ 귀가 잘린 자화상 • 018
4. 참회록 ─ 밤의 프로방스 시골길 • 020
5. 새벽이 올 때까지 ─ 아를의 반 고흐의 방 • 022
6. 봄 ─ 봄날의 끌리쉬 다리와 세느 강둑 • 024
7. 쉽게 쓰여진 시 ─ 까마귀가 있는 밀밭 • 026
8. 편지 ─ 소설 읽는 여인 • 028
9. 별 헤는 밤 ─ 별이 빛나는 밤 • 030
10. 돌아와 보는 밤 ─ 사이프러스 나무 • 034
11. 새로운 길 ─ 오베르의 거리 • 036
12. 태초의 아침 ─ 삼나무가 있는 밀밭 • 038
13. 무서운 시간 ─ 무덤에서 일어나는 나자로 • 040
14. 길 ─ 랑글루아 다리 • 042
15. 눈 감고 간다 ─ 노란 집 • 044
16. 바람이 불어 ─ 폭풍이 몰려오는 하늘 아래 풍경 • 046
17. 내일은 없다 ─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테라스 • 048
18. 코스모스 ─ 오베르쉬르 우아즈 정원 안의 가셰 양 • 050
19. 거리에서 ─ 지느러미 모양의 풍차 날개 • 052
20. 이별 ─ 아니에르의 센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 054
21. 종달새 ─ 종달새가 있는 밀밭 • 056
22. ‌꿈은 깨어지고 ─ 다리 근처에서 센 강을 건너는 두 척의 배 • 058
23. 삶과 죽음 ─ 초원 꽃과 장미 • 060
24. 십자가 ─ 오베르-쉬르-우아즈의 교회 • 062
25. 조개껍질 ─ 생트 마리 해변의 고깃배 • 064
26. ‌창 구멍 ─ 폭풍이 몰아치려는 듯한 해질녘의 농가와 사이프러스 • 066
27. 공상 ─ 아를의 여인 • 068
28. 기왓장 내외 ─ 오베르의 집 • 070
29. 햇비 ─ 아를의 붉은 포도밭 • 072
30. 비행기 ─ 몽마르트 언덕의 풍차 • 074
31. 둘 다 ─ 프로방스의 농가 • 076
32. ‌달 밤 ─ 초승달 아래 올리브 나무들 사이를 거니는 한 쌍의 커플이 있는 산 풍경 • 078
33. 반딧불 ─ 풀숲 • 080
34. 풍경 ─ 초록빛 포도밭 • 082
35. 아우의 인상화 ─ 첫걸음(밀레 모작) • 084
36. ‌햇빛 바람 ─ 성벽 근처의 산책하는 사람들과 철도 마차 • 086
37. 해바라기 얼굴 ─ 해바라기 • 088
38. 애기의 새벽 ─ 꽃피는 아몬드나무 • 090
39. ‌간 ─ 담으로 둘러싸인 밀밭과 낟가리 위로 달이 뜨는 풍경 • 092

(2)김소월(글) - 클로드 모네(그림)
1. 첫사랑 ─ 인상(해돋이) • 096
2. 진달래 꽃 ─ 아르장퇴유의 양귀비 밭 • 098
3. 먼 후일 ─ 아르장퇴유의 연못 • 100
4. 엄마야 누나야 ─ 수련 • 102
5. 바람과 봄 ─ 봄 • 104
6. 눈 ─ 아르장퇴유의 설경 • 106
7. 산유화 ─ 네덜란드의 튤립 • 108
8. 바다 ─ 에트르타, 해변의 배들 • 110
9.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 해가 지는 크뢰즈의 계곡 • 112
10. 님과 벗 ─ 아네모네가 있는 정물 • 114
11. 밤 ─ 꿩이 있는 정물 • 116
12. 꿈꾼 그 옛날 ─ 카미유, 녹색 옷을 입은 여인 • 118
13. 눈 오는 저녁 ─ 아르장퇴유의 눈 내린 풍경 • 120
14. 자주 구름 ─ 보르디게라 • 122
15. 부모 ─ 루이 조아킴 고디베르 부인 • 124
16. 붉은 조수 ─ 프루빌 절벽 위의 산책 • 126
17. 불운에 우는 그대여 ─ 페캉, 바닷가 • 128
18. 천리만리 ─ 생 라자르 역 • 130
19. 닭소리 ─ 임종을 맞은 카미유 • 132
20. 못 잊어 ─ 붉은 스카프의 카미유 모네 • 134
21.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 생타드레스의 테라스 • 136
22. 구름 ─ 센 베네쿠르 강변에서 • 138
23. 가는 길 ─ 아르장퇴유 근처, 포플러 나무가 있는 풀밭 • 140
24. 첫 치마 ─ 봄날, 독서하는 여인 • 142
25. 개여울 ─ 트루빌 해변 • 144
26. 금 잔디 ─ 몽소공원의 풍경 • 146
27. 옷과 밥과 자유 ─ 석탄을 내리는 사람들 • 148
28. 고적한 날 ─ 아르장퇴유의 다리 • 150
29. 접동새 ─ 수련 • 152
30. 반달 ─ 양산을 쓰고 왼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 • 154
31. 그를 꿈꾼 밤 ─ 보르디게라의 빌라들 • 156
32. 님의 말씀 ─ 아르장퇴유 • 158
33. 님에게 ─ 빌 다브레 정원에 있는 여인들 • 160
34. 꽃촉불 켜는 밤 ─ 아틀리에 한 구석 • 162
35. 부귀공명 ─ 자화상 • 164
36.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 들판의 기차 • 166
37.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 지베르니의 건초더미 • 168

(3)한용운(글) - 오귀스트 르누아르(그림)
1. 여름밤이 길어요 ─ 바느질하는 젊은 여인 • 172
2. 꽃이 먼저 알아 ─ 꽃이 있는 정물 • 174
3. 사랑 ─ 초원에서 • 176
4. 하나가 되어 주셔요 ─ 바다 경치 • 178
5. 사랑의 존재 ─ 산책 • 180
6. 사랑하는 까닭 ─ 진 사마리의 초상 • 182
7. 고적한 밤 ─ 국화 • 184
8. 자유정조 ─ 숲 속 • 186
9. 꿈과 근심 ─ 줄리마네의 초상 • 188
10. 떠날 때의 님의 얼굴 ─ 여름 • 190
11. 복종 ─ 자신감 • 192
12. 버리지 아니하면 ─ 호박이 있는 정물 • 194
13. 나룻배와 행인 ─ 차투의 노 젓는 사람 • 196
14. ‌‘사랑’을 사랑하여요 ─ 검은색 모자를 쓴 어린 소녀 • 198
15. 차라리 ─ 오달리스크 • 200
16. 님의 침묵 ─ 피아노 치는 여자 • 202
17. 산촌의 여름 저녁 ─ 오리 연못 • 204
18. 생의 예술 ─ 물 뿌리개를 든 소녀 • 206
19. 독자에게 ─ 꽃 • 208
20. 진주 ─ 낚시꾼 • 210
21. 인 연 설 ─ 물가 • 212
22. 당신은 ─ 가브리엘과 장 • 214
23. 길이 막혀 ─ 키 큰 잔디 속의 길 • 216
24. 나의 꿈 ─ 우산 • 218
25. 알 수 없어요 ─ 의자 나무 • 220
26. 달을 보며 ─ 편지를 들고 있는 여인 • 222
27. 당신이 아니더면 ─ 두 자매 • 224
28. 나는 잊고자 ─ 라 그르누예르 • 226
29. 이별은 미의 창조 ─ 두 소녀 • 228
30. 선사의 설법 ─ 부지발의 무도회 • 230
31. 비바람 ─ 베니스 산 마르코 광장 • 232

(4)김영랑(글) - 에드가 드가(그림)
1. 모란이 피기까지는 ─ 자화상 • 236
2. 그 밖에 더 아실 이 ─ 압생트 • 238
3. 미움이란 말 ─ 초록 옷을 입은 무용수들 • 240
4. 달 ─ 두 무용수 • 242
5. 바람 따라 가지오고 ─ 시골 경마장 • 244
6. 함박눈 ─ 따오기를 안은 아가씨 • 246
7. 내 옛날 온 꿈이 ─ 밀스의 초상화 • 248
8. ‌땅거미 ─ 스페인 출신 테너 로렌조 파간과 화가의 아버지 오귀스트 드가 • 250
9. 빛깔 환히 ─ 분홍색과 초록색의 무용수들 • 252
10. 그대는 호령도 하실 만하다 ─ 벨렐리 가족 • 254
11. 황홀한 달빛 ─ 무대 위의 두 무용수 • 256
12. ‌강선대 돌바늘 끝에 ─ 페르난도 서커스의 미스 랄라 • 258
13. 낮의 소란 소리 ─ 발레 수업 • 260
14. 눈물에 실려 가면 ─ 꽃화분 옆에 앉아있는 여인 • 262
15. 뉘 눈결에 쏘이었소 ─ 대기 • 264
16. 마당 앞 맑은 새암을 ─ 회색의 여인 초상화 • 266
17. 제야 ─ 무대에서 발레 리허설 • 268
18. 한줌 흙 ─ 발레 연습 • 270
19. 북 ─ 파리 오페라의 오케스트라 • 272
20. 언 땅 한길 ─ 여성복 상점 • 274
21. 발짓 ─ 바에서 연습하는 무용수들 • 276
22.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 목욕통 • 278
23. 언덕에 바로 누워 ─ 머리 빗질 • 280
24.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르 펠레 티에 거리 오페라의 댄스홀 • 282
25. 물 보면 흐르고 ─ 목욕 후에 몸을 말리는 여인 • 284
26. 오월 ─ 무대 위 발레 리허설 • 286
27. 독을 차고 ─ 발레 무용수들 • 288
28. 물소리 ─ 카드를 쥐고 있는 카사트양의 초상 • 290
29. 내 마음 아실 이 ─ 뉴올리언스의 목화 거래소 • 292
30. 강물 ─ 무용 수업 • 294
31. 거문고 ─ 밀리너 가에 • 296

저자소개

김소월 (지은이)    정보 더보기
고향이 평안북도 정주이고 그곳에서 성장하고 생활하고 사망했기 때문에 전기적 사실을 확인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회고담이나 신문 잡지에 난 관련 기사를 통해 그의 생애를 재구해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소월의 본명은 정식(廷湜)으로 1902년 음력 8월 6일(양력 9월 7일) 평안북도 구성군 서산면 외가에서 태어났다. 남산학교를 졸업하고 14세 때 세 살 연상인 홍실단(원명은 홍상일)과 결혼했으며 상급 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3년간 농사일을 거들었다.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1917년 오산학교 중학부에 입학해 수학하던 중 은사인 김억을 만나 시를 쓰게 되었다. 오산학교를 다니던 1919년 3월 3·1운동이 일어나자 동급생들과 함께 만세 운동에 참여해 학업을 중단하게 되고 오산학교도 임시 폐교되었다. 1920년 스승인 김억의 주선으로 ≪창조≫에 <낭인의 봄> 등의 시를 소월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다. 이때 발표한 작품은 <낭인(浪人)의 봄>, <야(夜)의 우적(雨滴)>, <오과(午過)의 읍(泣)>, <그리워>, <춘강(春崗)> 등 다섯 편이고 그 후 ≪학생계≫, ≪동아일보≫ 등에 작품을 발표했으나 소월은 이 초기의 작품들을 시집에 수록하지 않았다. 소월은 오산학교에 이어 학업을 마치기 위해서 서울로 이주해 1922년 4월에 배재고등보통학교 4학년으로 편입했다. 1923년 3월에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상과대학 예과에 입학했으나 학자금 조달에도 어려움이 있고 9월 간토대지진이 일어나자 10월에 고향 정주로 돌아왔다. 1924년에 김동인, 이광수, 김억, 주요한, 김찬영, 전영택, 오천석 등과 함께 ≪영대≫의 동인으로 참여했으며 1925년 12월 26일 자로 시집 ≪진달래꽃≫을 간행했다. ≪진달래꽃≫은 상당히 판매가 되었는지 발행처는 같은 매문사로 되어 있지만 총판이 ‘중앙서림’으로 되어 있는 것과 ‘한성도서주식회사’로 되어 있는 것의 두 판본이 유통되었고 그 원본이 각기 현재 전해지고 있다. 1924년 이후에는 그의 처가가 있는 평안북도 구성군 남시로 이주해 생활했으며 1926년 8월부터 동아일보 지국 일을 맡아 본 것으로 되어 있다. 이후 1년에 한두 편씩 작품을 발표했고 1932년과 1933년에는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1934년에 다시 몇 편의 시를 발표했으나 그의 생활은 극도로 피폐해졌던 것 같다. 지국 경영은 일찍이 작파해 남에게 넘겼고 시대와 자신의 삶에 대한 울분이 겹쳐 거의 매일 술을 마셨으며 아내에게 살아 봐야 낙이 없으니 같이 죽자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고 한다. 1934년 12월 23일 밤에도 술에 취해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남편이 괴로워하는 소리를 잠결에 듣고 불을 켜 보니 아편 덩어리를 입가에 흘린 채 죽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소월의 사망 일자를 1934년 12월 24일 아침으로 보고 있다. 소월의 사망이 알려지자 12월 30일 자로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 사망 관련 기사가 실리고 1935년 1월에 서울 종로 백합원에서 소월 추모회가 개최되었다. 여기서 김억은 소월에 대한 추모사를 낭독하고 그것을 ≪조선중앙일보≫(1935. 1. 22~26)에 <요절한 박행의 시인 김소월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1939년 12월 김억이 소월의 시를 선정하고 다시 편찬해 박문출판사에서 ≪소월시초≫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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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라남도 강진의 부유한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김영랑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본명은 김윤식金允植이다. 영랑永郞은 아호인데 《시문학詩文學》에 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혼인했으나 불과 1년 반 만에 부인과 사별했다. 그 후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후에 ‘사립휘문고등보통학교’로 개칭)에 입학하여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때 휘문의숙에는 홍사용, 안석주, 박종화 등의 선배와 정지용, 이태준 등의 후배, 그리고 동급반에 화백 이승만이 있어서 문학적 안목을 키우는데 직간접으로 도움을 받았다. 휘문의숙 3학년 때인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에서 거사하려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靑山] 학원 중학부를 거쳐 같은 학원 영문학과에 진학했다. 이 무렵 독립투사 박렬, 시인 박용철과도 친교를 맺었다. 그러나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 후 고향에 머물렀다. 1925년에 개성 출신 김귀련과 재혼했다. 광복 후 은거생활에서 벗어나 사회에 적극 참여하여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했고, 대한독립촉성회에 관여하여 강진대한청년회 단장을 지냈으며,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낙선했다. 1949년에는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냈으며, 평소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어 국악이나 서양 명곡을 즐겨 들었고, 축구와 테니스 등 운동에도 능하여 비교적 여유 있는 삶을 영위했다. 9·28수복 하루 전인 9월 27일 길에서 유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는 <내 마음 아실 이>, <가늘한 내음>,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의 작품이 실린 《영랑시집永郞詩集》(1935)과 《영랑시선》(1949), 유고시집 《모란이 피기까지는》(198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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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사이의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동소학교, 은진중학교를 거쳐 평양의 숭실중학교로 편입하였으나 신사참배 거부 사건으로 폐교 조치되자, 광명중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立敎)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 교토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로 편입하였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연길에서 발행되던 『가톨릭소년』에 여러 편의 동시를 발표하고 그 외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도 시를 발표하였으며, 문예지 『새명동』 발간에도 참여하였다. 대학 시절 틈틈이 쓴 시 19편을 골라 시집을 발간하고자 하였으나 그의 신변을 염려한 스승과 벗들의 만류로 뜻을 보류하였다. 1943년 독립운동을 모의한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여섯 달 앞두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여 고향 용정에 묻혔다. 일제의 생체 실험 주사에 따른 희생으로 추정될 뿐 지금까지도 그의 죽음에 대해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1948년 유고 31편을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고, 1968년에는 연세대학교 내에 그의 시비(詩碑)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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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79년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태어났다. 법명은 용운(龍雲), 법호는 만해(卍(萬)海)다.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했고, 설악산 백담사 오세암에 수년간 머무르며 불경을 공부하면서 다양한 독서를 통해 서양 근대사상을 접했다. 이 무렵 서구 문물과 세계정세를 알아보기 위해 연해주로 건너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만주를 거쳐 돌아왔다. 1901년 고향에 돌아와 2년간 은신한 후 다시 집을 나와 방황하다가 1905년 백담사에서 수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다. 1908년에는 일본에 건너가 도쿄, 교토 등지의 사찰을 순례하고 조동종 대학림에서 불교와 동양철학을 연구했다. 이를 계기로 1913년 당시 조선 불교의 침체와 낙후성과 은둔주의를 대담하고 통렬하게 분석, 비판한 『조선불교유신론』을 발표하여 사상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여 독립선언 준비 과정에서 최린과 더불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르는 동안 검사의 취조에 대한 답변서로서 세칭 「조선 독립의 서」를 집필했다. 1922년 출옥 후에는 각지를 전전하며 강연을 통해 청년들의 각성을 촉구했고, 내설악 백담사에서 은거하면서 쓴 시집 『님의 침묵』을 1926년 간행하여 문단에 큰 파문을 던졌다. 50세를 전후하여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에 은거하면서 불교 청년운동 및 불교의 대중화 운동을 벌였으며 『흑풍』 『후회』 『박명』 등의 장편소설과 상당수의 한시, 시조를 남겼다. 일제의 강요로 많은 지식인이 변절했을 때에도 끝까지 민족의 지조를 지켜 창씨개명을 거부했고 학병 출정에 반대했다. 그러나 1944년 6월 29일, 그토록 그리던 조국 광복을 눈앞에 두고 중풍으로 사망했다. 유해는 화장되어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으며,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이 수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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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그림)    정보 더보기
네덜란드 남부 작은 마을에서 개신교 목사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고흐는 1869년부터 큰아버지 ‘센트 삼촌’의 헤이그 구필 화랑에서 일했다. 그런데 1873년 구필 화랑의 런던 지점에서 고흐는 당시 산업화의 그늘 아래서 비참한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충격과 실연당한 아픔으로 정신적 불안을 겪게 된다. 1875년 파리 본점에서는 예술 작품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것에 대한 환멸과 거부감을 견디지 못하다가 결국 해고를 당한다. 이후 전도사가 되어 벨기에 탄광 지대에 파견되지만 거기서도 선교단체와 마찰을 빚고 해고되는데, 이때 고흐는 광부들의 비참한 현실을 그림에 담으면서 화가가 되겠다는 열망을 확인한다. 1881년에 헤이그에 정착하여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감자 먹는 사람들」(1885년)을 그렸다. 1886년 테오가 있는 프랑스에 정착하고 툴루즈 로트레크, 에밀 베르나르, 존 러셀 등의 화가들과 친구가 되어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1888년에 따듯한 프로방스 지방 아를로 내려가 「별이 빛나는 밤」(1889년) 등을 그렸고, 이때 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 파리 앵데팡당전에 참가했다. 고흐는 고갱을 자신의 ‘노란 집’으로 불러 함께 살았으나 심한 불화를 겪다가 자신의 귓불을 칼로 잘라내고 만다. 이후 생레미의 요양원에서 지내다가 1890년 파리 근교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불꽃 같은 열정으로 걸작들을 그려냈다. 하지만 석 달 뒤에 여관 다락방에서 권총에 맞아 피를 흘리고 누워 있는 상태로 발견되고, 7월 29일 새벽에 동생 테오의 품에 안긴 채 삶을 마감했다. 고흐는 2000여 점에 달하는 유화와 데생을 남겼고, 테오도 형이 죽은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났다. 고흐 형제 사후에 테오의 아내 요안나가 고흐의 작품 전시회를 열고 편지를 출간하는 등 고흐를 알리려 애썼다. 이후 테오와 요안나의 아들로 큰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빈센트 반 고흐 주니어는 상속받은 고흐의 그림들을 네덜란드 정부에 기증하여 1973년 암스테르담에 반 고흐 미술관이 세워지는 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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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드가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34년 파리의 생 조르주 거리에서 태어나 1917년 몽마르트르의 묘지에 묻혔다. 미술과 음악을 사랑한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예술적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루브르 미술관을 드나들면서 옛 거장들의 그림을 익혔고, 20대에는 수차례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르네상스 거장들을 만났다. 그러나 드가는 고전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선입견 없이 현실을 보았고, 그 현실을 그림에 담으려 했다.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를 시작으로 모두 8번 개최된 전시회에 제7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참여하는 열성을 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인상주의의 가장 큰 모티프인 풍경화를 멀리했다. 드가는 도시적인 삶(오페라, 발레, 카페 등)과 여인들(무희, 카페의 가수, 목욕하는 여인 등)에서 그 사실성을 찾으려 했다. 또한 선과 데생에 충실하고 대상을 세심하게 표현하는 채색주의자였다. 30대 중반부터 잃기 시작한 시력은 60세에 이르러 거의 앞을 못 볼 정도였지만 드가는 한순간도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작업실을 떠나지 않았고, 색다른 예술적 기법을 실험하고 실천하는 데 혼신을 다했다. 유화, 파스텔화, 판화, 데생, 조각을 넘나드는 그의 작품들은 '끝없는 예술의 욕구'가 낳은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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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그림)    정보 더보기
프랑스의 화가. 파리 출생. 소년 시절을 르아브르에서 보냈으며, 18세 때 그곳에서 화가 로댕을 만나, 외광 묘사에 대한 초보적인 화법을 배웠다. 19세 때 파리로 가서 아카데미 스위스에 들어가, 피사로와 어울렸다. 1862년부터는 전통주의 화가 샤를 글레르 밑에서 쿠르베나 마네의 영향을 받아 인물화를 그렸지만 2년 후 화실이 문을 닫게 되자, 친구 프리데리크 바지유와 함께 인상주의의 고향이라 불리는 노르망디 옹플뢰르에 머물며 자연을 주제로 한 인상주의 화풍을 갖춰나갔다. 한편 1878년에는 센 강변의 베퇴유, 1883년에는 지베르니로 주거를 옮겨 작품을 제작하였고, 만년에는 저택 내 넓은 연못에 떠 있는 연꽃을 그리는 데 몰두하였다. 자연을 감싼 미묘한 대기의 뉘앙스나 빛을 받고 변화하는 풍경의 순간적 양상을 그려내려는 그의 의도는 〈루앙대성당〉 〈수련〉 등에서 보듯이 동일 주제를 아침, 낮, 저녁으로 시간에 따라 연작한 태도에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이 밖에 〈소풍〉 〈강〉등의 작품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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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트 르누아르 (지은이)    정보 더보기
특유의 따뜻한 화풍으로 현재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르누아르. 질병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고 행복을 찾아 끝까지 붓을 놓지 않았기에 수많은 작품들이 우리 곁에 아름답게 남아 따스한 위로를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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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눈-김소월

새하얀 흰 눈,
가볍게 밝을 눈,
재 같아서 날릴 듯 꺼질듯한 눈,
바람에 흩어져도 불길에야
녹을 눈
계질의 마음
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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