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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소월, 용운, 영랑의 글

동주, 소월, 용운, 영랑의 글

윤동주, 김소월, 한용운, 김영랑 (지은이), 권호 (엮은이),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에드가 드가 (그림)
  |  
Muse(뮤즈)
2021-0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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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소월, 용운, 영랑의 글

책 정보

· 제목 : 동주, 소월, 용운, 영랑의 글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사진/그림 에세이
· ISBN : 9791197296925
· 쪽수 : 298쪽

책 소개

"평생 소장할 가치가 있는 한 권의 책을 만들고 싶었다." "만일 내가 단 한권의 책을 만들 수 있다면?" 이러한 의문 속에 도달한 결론은 단 하나였다. '최고의 명작'. 세계적인 화가 4인의 명화와 한국 대표 시인 4인의 시를 하나로 모았다.

목차

(1)윤동주(글) - 빈센트 반 고흐(그림)
1. 서시 ─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 • 014
2. ‌눈 ─ 해질녘의 눈 덮인 들판을 파고 있는 두 농부 여인 • 016
3. 자화상 ─ 귀가 잘린 자화상 • 018
4. 참회록 ─ 밤의 프로방스 시골길 • 020
5. 새벽이 올 때까지 ─ 아를의 반 고흐의 방 • 022
6. 봄 ─ 봄날의 끌리쉬 다리와 세느 강둑 • 024
7. 쉽게 쓰여진 시 ─ 까마귀가 있는 밀밭 • 026
8. 편지 ─ 소설 읽는 여인 • 028
9. 별 헤는 밤 ─ 별이 빛나는 밤 • 030
10. 돌아와 보는 밤 ─ 사이프러스 나무 • 034
11. 새로운 길 ─ 오베르의 거리 • 036
12. 태초의 아침 ─ 삼나무가 있는 밀밭 • 038
13. 무서운 시간 ─ 무덤에서 일어나는 나자로 • 040
14. 길 ─ 랑글루아 다리 • 042
15. 눈 감고 간다 ─ 노란 집 • 044
16. 바람이 불어 ─ 폭풍이 몰려오는 하늘 아래 풍경 • 046
17. 내일은 없다 ─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테라스 • 048
18. 코스모스 ─ 오베르쉬르 우아즈 정원 안의 가셰 양 • 050
19. 거리에서 ─ 지느러미 모양의 풍차 날개 • 052
20. 이별 ─ 아니에르의 센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 054
21. 종달새 ─ 종달새가 있는 밀밭 • 056
22. ‌꿈은 깨어지고 ─ 다리 근처에서 센 강을 건너는 두 척의 배 • 058
23. 삶과 죽음 ─ 초원 꽃과 장미 • 060
24. 십자가 ─ 오베르-쉬르-우아즈의 교회 • 062
25. 조개껍질 ─ 생트 마리 해변의 고깃배 • 064
26. ‌창 구멍 ─ 폭풍이 몰아치려는 듯한 해질녘의 농가와 사이프러스 • 066
27. 공상 ─ 아를의 여인 • 068
28. 기왓장 내외 ─ 오베르의 집 • 070
29. 햇비 ─ 아를의 붉은 포도밭 • 072
30. 비행기 ─ 몽마르트 언덕의 풍차 • 074
31. 둘 다 ─ 프로방스의 농가 • 076
32. ‌달 밤 ─ 초승달 아래 올리브 나무들 사이를 거니는 한 쌍의 커플이 있는 산 풍경 • 078
33. 반딧불 ─ 풀숲 • 080
34. 풍경 ─ 초록빛 포도밭 • 082
35. 아우의 인상화 ─ 첫걸음(밀레 모작) • 084
36. ‌햇빛 바람 ─ 성벽 근처의 산책하는 사람들과 철도 마차 • 086
37. 해바라기 얼굴 ─ 해바라기 • 088
38. 애기의 새벽 ─ 꽃피는 아몬드나무 • 090
39. ‌간 ─ 담으로 둘러싸인 밀밭과 낟가리 위로 달이 뜨는 풍경 • 092

(2)김소월(글) - 클로드 모네(그림)
1. 첫사랑 ─ 인상(해돋이) • 096
2. 진달래 꽃 ─ 아르장퇴유의 양귀비 밭 • 098
3. 먼 후일 ─ 아르장퇴유의 연못 • 100
4. 엄마야 누나야 ─ 수련 • 102
5. 바람과 봄 ─ 봄 • 104
6. 눈 ─ 아르장퇴유의 설경 • 106
7. 산유화 ─ 네덜란드의 튤립 • 108
8. 바다 ─ 에트르타, 해변의 배들 • 110
9.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 해가 지는 크뢰즈의 계곡 • 112
10. 님과 벗 ─ 아네모네가 있는 정물 • 114
11. 밤 ─ 꿩이 있는 정물 • 116
12. 꿈꾼 그 옛날 ─ 카미유, 녹색 옷을 입은 여인 • 118
13. 눈 오는 저녁 ─ 아르장퇴유의 눈 내린 풍경 • 120
14. 자주 구름 ─ 보르디게라 • 122
15. 부모 ─ 루이 조아킴 고디베르 부인 • 124
16. 붉은 조수 ─ 프루빌 절벽 위의 산책 • 126
17. 불운에 우는 그대여 ─ 페캉, 바닷가 • 128
18. 천리만리 ─ 생 라자르 역 • 130
19. 닭소리 ─ 임종을 맞은 카미유 • 132
20. 못 잊어 ─ 붉은 스카프의 카미유 모네 • 134
21.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 생타드레스의 테라스 • 136
22. 구름 ─ 센 베네쿠르 강변에서 • 138
23. 가는 길 ─ 아르장퇴유 근처, 포플러 나무가 있는 풀밭 • 140
24. 첫 치마 ─ 봄날, 독서하는 여인 • 142
25. 개여울 ─ 트루빌 해변 • 144
26. 금 잔디 ─ 몽소공원의 풍경 • 146
27. 옷과 밥과 자유 ─ 석탄을 내리는 사람들 • 148
28. 고적한 날 ─ 아르장퇴유의 다리 • 150
29. 접동새 ─ 수련 • 152
30. 반달 ─ 양산을 쓰고 왼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 • 154
31. 그를 꿈꾼 밤 ─ 보르디게라의 빌라들 • 156
32. 님의 말씀 ─ 아르장퇴유 • 158
33. 님에게 ─ 빌 다브레 정원에 있는 여인들 • 160
34. 꽃촉불 켜는 밤 ─ 아틀리에 한 구석 • 162
35. 부귀공명 ─ 자화상 • 164
36. 사노라면 사람은 죽는 것을 ─ 들판의 기차 • 166
37.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 지베르니의 건초더미 • 168

(3)한용운(글) - 오귀스트 르누아르(그림)
1. 여름밤이 길어요 ─ 바느질하는 젊은 여인 • 172
2. 꽃이 먼저 알아 ─ 꽃이 있는 정물 • 174
3. 사랑 ─ 초원에서 • 176
4. 하나가 되어 주셔요 ─ 바다 경치 • 178
5. 사랑의 존재 ─ 산책 • 180
6. 사랑하는 까닭 ─ 진 사마리의 초상 • 182
7. 고적한 밤 ─ 국화 • 184
8. 자유정조 ─ 숲 속 • 186
9. 꿈과 근심 ─ 줄리마네의 초상 • 188
10. 떠날 때의 님의 얼굴 ─ 여름 • 190
11. 복종 ─ 자신감 • 192
12. 버리지 아니하면 ─ 호박이 있는 정물 • 194
13. 나룻배와 행인 ─ 차투의 노 젓는 사람 • 196
14. ‌‘사랑’을 사랑하여요 ─ 검은색 모자를 쓴 어린 소녀 • 198
15. 차라리 ─ 오달리스크 • 200
16. 님의 침묵 ─ 피아노 치는 여자 • 202
17. 산촌의 여름 저녁 ─ 오리 연못 • 204
18. 생의 예술 ─ 물 뿌리개를 든 소녀 • 206
19. 독자에게 ─ 꽃 • 208
20. 진주 ─ 낚시꾼 • 210
21. 인 연 설 ─ 물가 • 212
22. 당신은 ─ 가브리엘과 장 • 214
23. 길이 막혀 ─ 키 큰 잔디 속의 길 • 216
24. 나의 꿈 ─ 우산 • 218
25. 알 수 없어요 ─ 의자 나무 • 220
26. 달을 보며 ─ 편지를 들고 있는 여인 • 222
27. 당신이 아니더면 ─ 두 자매 • 224
28. 나는 잊고자 ─ 라 그르누예르 • 226
29. 이별은 미의 창조 ─ 두 소녀 • 228
30. 선사의 설법 ─ 부지발의 무도회 • 230
31. 비바람 ─ 베니스 산 마르코 광장 • 232

(4)김영랑(글) - 에드가 드가(그림)
1. 모란이 피기까지는 ─ 자화상 • 236
2. 그 밖에 더 아실 이 ─ 압생트 • 238
3. 미움이란 말 ─ 초록 옷을 입은 무용수들 • 240
4. 달 ─ 두 무용수 • 242
5. 바람 따라 가지오고 ─ 시골 경마장 • 244
6. 함박눈 ─ 따오기를 안은 아가씨 • 246
7. 내 옛날 온 꿈이 ─ 밀스의 초상화 • 248
8. ‌땅거미 ─ 스페인 출신 테너 로렌조 파간과 화가의 아버지 오귀스트 드가 • 250
9. 빛깔 환히 ─ 분홍색과 초록색의 무용수들 • 252
10. 그대는 호령도 하실 만하다 ─ 벨렐리 가족 • 254
11. 황홀한 달빛 ─ 무대 위의 두 무용수 • 256
12. ‌강선대 돌바늘 끝에 ─ 페르난도 서커스의 미스 랄라 • 258
13. 낮의 소란 소리 ─ 발레 수업 • 260
14. 눈물에 실려 가면 ─ 꽃화분 옆에 앉아있는 여인 • 262
15. 뉘 눈결에 쏘이었소 ─ 대기 • 264
16. 마당 앞 맑은 새암을 ─ 회색의 여인 초상화 • 266
17. 제야 ─ 무대에서 발레 리허설 • 268
18. 한줌 흙 ─ 발레 연습 • 270
19. 북 ─ 파리 오페라의 오케스트라 • 272
20. 언 땅 한길 ─ 여성복 상점 • 274
21. 발짓 ─ 바에서 연습하는 무용수들 • 276
22.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 목욕통 • 278
23. 언덕에 바로 누워 ─ 머리 빗질 • 280
24.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르 펠레 티에 거리 오페라의 댄스홀 • 282
25. 물 보면 흐르고 ─ 목욕 후에 몸을 말리는 여인 • 284
26. 오월 ─ 무대 위 발레 리허설 • 286
27. 독을 차고 ─ 발레 무용수들 • 288
28. 물소리 ─ 카드를 쥐고 있는 카사트양의 초상 • 290
29. 내 마음 아실 이 ─ 뉴올리언스의 목화 거래소 • 292
30. 강물 ─ 무용 수업 • 294
31. 거문고 ─ 밀리너 가에 • 296

저자소개

김소월 (지은이)    정보 더보기
고향이 평안북도 정주이고 그곳에서 성장하고 생활하고 사망했기 때문에 전기적 사실을 확인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회고담이나 신문 잡지에 난 관련 기사를 통해 그의 생애를 재구해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소월의 본명은 정식(廷湜)으로 1902년 음력 8월 6일(양력 9월 7일) 평안북도 구성군 서산면 외가에서 태어났다. 남산학교를 졸업하고 14세 때 세 살 연상인 홍실단(원명은 홍상일)과 결혼했으며 상급 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3년간 농사일을 거들었다.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1917년 오산학교 중학부에 입학해 수학하던 중 은사인 김억을 만나 시를 쓰게 되었다. 오산학교를 다니던 1919년 3월 3·1운동이 일어나자 동급생들과 함께 만세 운동에 참여해 학업을 중단하게 되고 오산학교도 임시 폐교되었다. 1920년 스승인 김억의 주선으로 ≪창조≫에 <낭인의 봄> 등의 시를 소월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다. 이때 발표한 작품은 <낭인(浪人)의 봄>, <야(夜)의 우적(雨滴)>, <오과(午過)의 읍(泣)>, <그리워>, <춘강(春崗)> 등 다섯 편이고 그 후 ≪학생계≫, ≪동아일보≫ 등에 작품을 발표했으나 소월은 이 초기의 작품들을 시집에 수록하지 않았다. 소월은 오산학교에 이어 학업을 마치기 위해서 서울로 이주해 1922년 4월에 배재고등보통학교 4학년으로 편입했다. 1923년 3월에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상과대학 예과에 입학했으나 학자금 조달에도 어려움이 있고 9월 간토대지진이 일어나자 10월에 고향 정주로 돌아왔다. 1924년에 김동인, 이광수, 김억, 주요한, 김찬영, 전영택, 오천석 등과 함께 ≪영대≫의 동인으로 참여했으며 1925년 12월 26일 자로 시집 ≪진달래꽃≫을 간행했다. ≪진달래꽃≫은 상당히 판매가 되었는지 발행처는 같은 매문사로 되어 있지만 총판이 ‘중앙서림’으로 되어 있는 것과 ‘한성도서주식회사’로 되어 있는 것의 두 판본이 유통되었고 그 원본이 각기 현재 전해지고 있다. 1924년 이후에는 그의 처가가 있는 평안북도 구성군 남시로 이주해 생활했으며 1926년 8월부터 동아일보 지국 일을 맡아 본 것으로 되어 있다. 이후 1년에 한두 편씩 작품을 발표했고 1932년과 1933년에는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1934년에 다시 몇 편의 시를 발표했으나 그의 생활은 극도로 피폐해졌던 것 같다. 지국 경영은 일찍이 작파해 남에게 넘겼고 시대와 자신의 삶에 대한 울분이 겹쳐 거의 매일 술을 마셨으며 아내에게 살아 봐야 낙이 없으니 같이 죽자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고 한다. 1934년 12월 23일 밤에도 술에 취해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남편이 괴로워하는 소리를 잠결에 듣고 불을 켜 보니 아편 덩어리를 입가에 흘린 채 죽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소월의 사망 일자를 1934년 12월 24일 아침으로 보고 있다. 소월의 사망이 알려지자 12월 30일 자로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 사망 관련 기사가 실리고 1935년 1월에 서울 종로 백합원에서 소월 추모회가 개최되었다. 여기서 김억은 소월에 대한 추모사를 낭독하고 그것을 ≪조선중앙일보≫(1935. 1. 22~26)에 <요절한 박행의 시인 김소월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1939년 12월 김억이 소월의 시를 선정하고 다시 편찬해 박문출판사에서 ≪소월시초≫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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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라남도 강진의 부유한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김영랑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본명은 김윤식金允植이다. 영랑永郞은 아호인데 《시문학詩文學》에 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혼인했으나 불과 1년 반 만에 부인과 사별했다. 그 후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후에 ‘사립휘문고등보통학교’로 개칭)에 입학하여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때 휘문의숙에는 홍사용, 안석주, 박종화 등의 선배와 정지용, 이태준 등의 후배, 그리고 동급반에 화백 이승만이 있어서 문학적 안목을 키우는데 직간접으로 도움을 받았다. 휘문의숙 3학년 때인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에서 거사하려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靑山] 학원 중학부를 거쳐 같은 학원 영문학과에 진학했다. 이 무렵 독립투사 박렬, 시인 박용철과도 친교를 맺었다. 그러나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 후 고향에 머물렀다. 1925년에 개성 출신 김귀련과 재혼했다. 광복 후 은거생활에서 벗어나 사회에 적극 참여하여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했고, 대한독립촉성회에 관여하여 강진대한청년회 단장을 지냈으며,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낙선했다. 1949년에는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냈으며, 평소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어 국악이나 서양 명곡을 즐겨 들었고, 축구와 테니스 등 운동에도 능하여 비교적 여유 있는 삶을 영위했다. 9·28수복 하루 전인 9월 27일 길에서 유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는 <내 마음 아실 이>, <가늘한 내음>,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의 작품이 실린 《영랑시집永郞詩集》(1935)과 《영랑시선》(1949), 유고시집 《모란이 피기까지는》(198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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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지은이)    정보 더보기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한응준과 온양 방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자(字)는 정옥(貞玉), 속명은 유천(裕天), 법명(法名)은 용운(龍雲), 법호(法號)는 만해이다.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한 뒤, 향리에서 훈장으로 학동을 가르치는 한편 부친으로부터 때때로 의인들의 기개와 사상을 전해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기울어 가는 국운 속에서 홍주에서 전개되었던 동학농민전쟁과 의병운동을 목격하면서 집을 나서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불교의 기초지식을 섭렵하면서 수도하다가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노령 시베리아 등지를 여행하기도 하였다. 귀국 후 1905년 다시 설악산 백담사로 들어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1910년 당시 모순과 부패가 만연하던 한국불교의 상황을 개탄하면서 개혁방안을 제시한 실천적 지침서인 《조선불교유신론》을 백담사에서 탈고하였고, 그것을 1913년 발간함으로써 불교계에 일대 혁신운동을 일으켰다. 1914년 4월에는 고려대장경을 독파하고 《불교대전》을 간행하였으며, 1918년에는 본격적인 불교잡지 <유심(惟心)>을 발간하였다. 1919년 천도교, 기독교, 불교계 등 종교계를 중심으로 추진된 3.1운동 계획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불교계측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일도 맡았다. 1919년 7월 10일에는 경성지방법원 검사장의 요구로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이란 논설을 집필하여 명쾌한 논리로 조선독립의 정당성을 설파하였다. 3.1운동 때문에 감옥에 갔다가 석방된 뒤에도 전국적으로 확산된 물산장려운동을 지원하고, 민족경제의 육성과 민족교육을 위한 사립대학 건립운동에 앞장섰다. 창씨개명 반대운동, 조선인 학병출정 반대운동 등을 펴기도 했다. 1944년 6월 29일 그토록 그리던 조국광복과 민족독립을 눈앞에 두고 입적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는 뜻으로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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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지은이)    정보 더보기
어둠에 별이 있다. 시인 윤동주의 세상은 어둠이었고 별이었다. 감수성이 남다른 그는 작은 바람에도 일렁인다. 윤동주는 시를 통해 상처입은 마음을 치료하게 한다. 현대인들이 잊고 사는 자신은 물론 삶을 돌아보게 하며 스스로의 회개와 반성의 시간을 만나게 한다. 어둠을 보면 우린 빛낼 줄 안다고 말했다. 윤동주는 바로 그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나의 색을 짚어보게 한다. 나를 있게 한 오늘과 내일을 연계하며 삶을 승화시키는 바람 그리고 기원이 시키지 않아도 사람들의 마음을 모이게 한다. 손에 손을 들던 그 바람을 아는 동주는 그대로 꽃을 만들고 별을 만들고 바다로 넘치게 했다. 오늘을 기억하고 아픔을 함께하며 모두의 내일을 만나게 할 “별 헤이는 시간”을 찾아 나서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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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그림)    정보 더보기
인상주의가 표현주의가 되는 변화의 지점, 정확히 그 과도기의 그림을 그렸기에, 선구자로서 필연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었던 화가.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브라반트의 쥔더르트에서 개신교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화랑을 운영하던 큰아버지 덕분에 일찍 미술계에 발을 들여놓지만, 목회자가 되려고 화랑을 그만두고 교사, 서점 직원, 전도사 등의 직업을 전전한다. 결국 27세에 뒤늦게 화가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동생 테오에게 생활비를 지원받으며 그림 공부에 열중한다. 데생을 제외하고도 유화를 900여 점이나 그렸는데, 안타깝게도 관리 부실로 많은 작품이 사라졌다. 평소에 우울증을 앓던 빈센트는 1888년 아를에서 고갱과의 협업이 실패로 끝나며 첫 번째 발작을 일으켰고, 이후 계속해서 졸도와 발작 증세에 시달리다가 1890년 오베르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형을 잃은 깊은 슬픔 때문인지 테오도 지병이 악화되어 반 년 후에 사망했다. 미망인이 된 테오의 아내 요안나 봉어르가 남편의 서랍장을 꽉 채우고 있던 두 형제의 편지들을 꺼내 읽다가, 이 글들이 빈센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먼저 작품전을 기획해 개최했고, 이후 668통(다른 지인들과 나눈 편지까지 합하면 900여 통)의 편지들을 직접 번역해서 1914년 《빈센트 반 고흐의 서신집》을 출간했다. 테오와 요안나의 아들이자 화가의 동명의 조카인 V.W.반 고흐가 새로 발견된 편지들을 추가하고 보강해서 《빈센트 반 고흐 탄생 100주년 기념판》을 출간했고, 이후에도 프랑스 갈리마르판 등 다양한 번역출간과 연구 및 편지 발굴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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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드가 (그림)    정보 더보기
1834년 파리의 생 조르주 거리에서 태어나 1917년 몽마르트르의 묘지에 묻혔다. 미술과 음악을 사랑한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예술적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루브르 미술관을 드나들면서 옛 거장들의 그림을 익혔고, 20대에는 수차례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르네상스 거장들을 만났다. 그러나 드가는 고전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선입견 없이 현실을 보았고, 그 현실을 그림에 담으려 했다.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를 시작으로 모두 8번 개최된 전시회에 제7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참여하는 열성을 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인상주의의 가장 큰 모티프인 풍경화를 멀리했다. 드가는 도시적인 삶(오페라, 발레, 카페 등)과 여인들(무희, 카페의 가수, 목욕하는 여인 등)에서 그 사실성을 찾으려 했다. 또한 선과 데생에 충실하고 대상을 세심하게 표현하는 채색주의자였다. 30대 중반부터 잃기 시작한 시력은 60세에 이르러 거의 앞을 못 볼 정도였지만 드가는 한순간도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작업실을 떠나지 않았고, 색다른 예술적 기법을 실험하고 실천하는 데 혼신을 다했다. 유화, 파스텔화, 판화, 데생, 조각을 넘나드는 그의 작품들은 '끝없는 예술의 욕구'가 낳은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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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그림)    정보 더보기
Oscar-Claude Monet. 1840~1926. 프랑스의 화가. 파리 출생. 소년 시절을 르아브르에서 보냈으며, 18세 때 그곳에서 화가 로댕을 만나, 외광(外光) 묘사에 대한 초보적인 화법을 배웠다. 19세 때 파리로 가서 아카데미 스위스에 들어가, 피사로와 사귀었다. 1862년부터는 전통주의 화가 샤를 글레르 밑에서 쿠르베나 마네의 영향을 받아 인물화를 그렸지만 2년 후 화실이 문을 닫게 되자, 친구 프리데리크 바지유와 함께 인상주의의 고향이라 불리는 노르망디 옹플뢰르에 머물며 자연을 주제로 한 인상주의 화풍을 갖춰나갔다. 1874년 파리로 돌아온 모네는 바지유와 함께 작업실을 마련하여, ‘화가·조각가·판화가·무명예술가 협회전’을 개최하고 여기에 12점의 작품을 출품하여 호평을 받았다. 출품된 작품 중 《인상·일출(soleil levant Impression)》이라는 작품의 제목에서, ‘인상파’라는 이름이 모네를 중심으로 한 화가집단에 붙여졌다. 이후 1886년까지 8회 계속된 인상파전에 5회에 걸쳐 많은 작품을 출품하여 대표적 지도자로 위치를 굳혔다. 한편 1878년에는 센 강변의 베퇴유, 1883년에는 지베르니로 주거를 옮겨 작품을 제작하였고, 만년에는 저택 내 넓은 연못에 떠 있는 연꽃을 그리는 데 몰두하였다. 작품은 외광(外光)을 받은 자연의 표정을 따라 밝은색을 효과적으로 구사하고, 팔레트 위에서 물감을 섞지 않는 대신 ‘색조의 분할’이나 ‘원색의 병치(倂置)’를 이행하는 등, 인상파 기법의 한 전형을 개척하였다. 자연을 감싼 미묘한 대기의 뉘앙스나 빛을 받고 변화하는 풍경의 순간적 양상을 그려내려는 그의 의도는 《루앙대성당》 《수련(睡蓮)》 등에서 보듯이 동일주제를 아침, 낮, 저녁으로 시간에 따라 연작한 태도에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이 밖에 《소풍》 《강》 등의 작품도 유명하며 만년에는 눈병을 앓다가 86세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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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트 르누아르 (그림)    정보 더보기
특유의 따뜻한 화풍으로 현재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르누아르. 질병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고 행복을 찾아 끝까지 붓을 놓지 않았기에 수많은 작품들이 우리 곁에 아름답게 남아 따스한 위로를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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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눈-김소월

새하얀 흰 눈,
가볍게 밝을 눈,
재 같아서 날릴 듯 꺼질듯한 눈,
바람에 흩어져도 불길에야
녹을 눈
계질의 마음
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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