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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88936462482
· 쪽수 : 358쪽
· 출판일 : 2006-07-10
책 소개
목차
간행사
이경자
가면
유시춘
안개 너머 청진항
강석경
밤과 요람
김향숙
부르는 소리
양귀자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
한계령
윤정모
잠길
이메일 해설 - 김경숙, 정주아
낱말풀이
저자소개
책속에서
"... 제가요, 이 무식한 노가다가 한 말씀 드리자면요, 앞으로 이 세상 사시려면 그렇게 마음이 물러서는 안 됩니다요. 저는요, 받을 것 다 받은 거니까 이따 겨울 돌아오면 우리 연탄이나 갈아주세요."
... 시원한 밤공기가 현관 앞을 나서는 두 사람을 감쌌고 그는 무슨 말로 이 사내를 배웅할 것인가를 궁리해보았다. 수고했다라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이 사내의 그 '써비스'에 대면 너무 초라하지 않을까. 그때 임 씨가 돌연 그의 팔목을 꽉 움켜쥐었다.
"사장님요, 기분도 그렇지 않은데 제가 맥주 한잔 살게요. 가십시다."
임 씨는 백열구로 밝혀놓은 형제슈퍼의 노천 의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맥주는 내가 사지요."
"아니요. 제가 삽니다."
"좋소. 누가 사든 가봅시다."
그들은 형제슈퍼의 김 반장에게 맥주 세 병을 시켰다.
- 양귀자,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 중에서
모두들 말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앞으로 앞으로 걷기만 했다. 해가 떠올랐다. 시민들이 뒤를 따랐다. 처음에는 한둘에서 숫비, 수백 명... 마치 자석에 끌린 쇳조각처럼 그들은 겹겹이 꼬리를 물었다. 거대한 침묵이 더운 숨결로 고리를 이으면서 10리 길이나 꿈틀꿈틀 움직여 갔다. 저만치 진흥원이 보였다. 별안간 해가 난폭한 변태자가 되어 거리를 낱낱이 벗겼다. 2층 창가에서, 옥상에서, 인도에서 기관총은 숨을 죽이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 윤정모, '밤 길' 중에서
술병이 뒹구는 거리도 어린아이처럼 어둠 속에 누워 있다. 자부심을 지닌 백인과 그 빛의 어둠인 흑인, 거대한 체구의 아메리칸에게 달려와 사랑을 뺏는 여자들, 그들 모두가 밤의 요람에 잠들어 있다. 발 딛고 내릴 제 땅의 찾지 못하고 욕망의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는 색색의 인종들이. 그러고 보면 이 기지촌은 하나의 요람과도 같다. 국경 없는 또 하나의 요람 나라. 선희의 눈앞에 순간 거리 전체가 거대한 요람처럼 흔들렸다. - 강석경, '밤과 요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