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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후기(영조~순종)
· ISBN : 9791186502969
· 쪽수 : 312쪽
· 출판일 : 2017-09-30
책 소개
목차
동학을 개신(開新)함에 있어서의 몇 가지 문제제기 _김태창
동학군 별동대장 이종만의 행적 _이상면
갑오년 이후 의암 손병희의 의식변화와 개화혁신 _임형진
청주병영의 동학농민군 진압과 모충사 _김양식
북접농민군의 교단 거점 수비와 청주 일대의 전투 _신영우
『문의군양안』으로 본 청주지역 농민들의 사회경제 기반 _정경임
해방공간 (비)국민의 실태와 민권 탐구 _안미영
의암 손병희 사상의 철학적 조명 _김영철
저자소개
책속에서
의암 손병희, 일본에서의 활동
의암 손병희는 1901년 3월부터 1906년 1월 귀국 시까지 잠시 국내와 중국을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대략 4년 가까운 시간을 일본에 있었다. 의암의 일본 체류 목적은 국제 정세를 조망하고 나아가 신생 대한제국의 앞날을 구상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동학농민혁명의 좌절과 그에 따른 지목을 피하고자 하는 고육책이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대한제국을 선포했지만 여전히 일본과 러시아 등 외세에 국가적 이권이 강탈당하는 등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었다. 이런 시국에 다른 지도자와 달리 국제정세의 중요성을 간파한 의암은 눈을 해외로 돌려 국제정세의 파악을 통해서 대한제국은 물론 동학의 나아갈 바를 모색하고자 한 것이다. 일본에 머무는 동안 의암은 반정부인사인 친일 망명정객들과 제휴했다. 특히 그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동학당 초토사로 활동했던 조희문과 접촉하고 그의 소개로 권동진ㆍ오세창 등의 망명정객과 교유할 수 있었다.
공주 우금티전투
공주 우금티전투는 11월 8일과 9일에 벌어진다. 공주 우금티전투는 그 자체만 보아서 전모를 파악할 수 없다. 공주성을 공격하기 위해 논산에 대규모 남북접농민군이 집결했던 시기에 문의 일대에 1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수비군이 포진해서 일본군 중로군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서해안 여러 군현에서 봉기한 내포농민군이 홍주성 공격을 위해 집결하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충청도 공주와 청주 문의 그리고 홍주에서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던 것이다. 그 수는 공주의 2만-3만명, 문의의 1만 2-3천명, 홍주의 1만명으로 추정된다. 모두 약 5만 명 안팎의 동학농민군이 참여한 대규모 전투였던 것이다.
세 차례에 걸친 청주성 전투
청주성전투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2차 봉기를 새롭게 보는 관점을 제공한다. 9월 24일 시작된 전투는 9월 18일 동학교단의 기포령에 따라 전개된 것으로서 불과 6일 만에 수천 명의 동학도들이 봉기해서 충청병영이 위치한 청주읍성까지 점령하려고 시도한 커다란 사건이었다. 일본군 혼성제9여단 병력이 6월 21일 경복궁을 기습 점령해서 국왕을 인질로 잡은 이후 조성된 국난(國難) 극복이 주 목표였다. 경복궁을 점령당한 뒤 3개월 동안 동학 교단과 대접주들이 무장봉기를 준비하지 않았으면 9월 24일의 청주성전투는 일어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