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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한국전쟁 이후~현재
· ISBN : 9791191383386
· 쪽수 : 396쪽
· 출판일 : 2023-11-20
책 소개
목차
한국어판 감사의 말
들어가며 | 박선영
I부 1980년대 한국의 역사와 기억
1장 1980년대에 대한 사회적 기억: 불연속 체제의 해부 |이남희
2장 목적론을 부르는 시대: 역사 서술로 본 1980년대 | 황경문
2부 초국가주의
3장 반제국주의적 초근대로서의 1980년대 | 김재용
4장 냉전 말 정치 여행: 오스트레일리아와 남·북한의 국제 학생 교류 | 루스 배러클러프
5장 민중미술의 해외 전시: 냉전의 끝 무렵 도쿄, 뉴욕, 그리고 평양으로 | 이솔
3부. 신노동 문화
6장 그 많던 ‘외치는 돌멩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1980-90년대 노동자문학회와 노동자 문학 | 천정환
7장 대중음악사의 맥락에서 본 민중가요 | 김창남
4부 상호교차성 페미니즘
8장 빛나는 성좌: 1980년대 남한에서 여성해방문학의 탄생과 의미 | 이혜령
9장 제3세계 연대체 퀴어링하기: 1980년대 초 한국문학과 영화 속 흑인 여성들 | 어경희
5부 대중문화
10장 진보와 퇴행 사이: 역진하는 영화, ‘에로방화’ | 이윤종
11장 호혜의 시너지: 1980년대 한국 SF와 민주화운동 | 박선영
나가며| 이진경
주+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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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소개
책속에서
한국에서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양분하는 이분법적 묘사는 패러다임 전환에 관한 여러 담론을 수반하는데 민중에서 시민으로, 집단에서 개인으로, 정치적인 것에서 문화적인 것으로 전환이라는 담론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담론들은 또한 신자유주의로 전환이라는 세계적인 변화의 맥락과 그 궤를 함께했다. 내가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담론들에서 1980년대 민중운동은 역사적으로 두 번 추방당한다는 점이다. 첫 번째는 이러한 담론들이 1980년대 전부를, 즉 모든 성취와 실패를 온전하게 평가하지 못하거나, 평가하려 하지 않거나, 심지어 평가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래서 결과적으로 1980년대를 “골화(骨化)”하는 것이다. 뉴라이트의 단절 담론 또한 사회·경제·정치적 역학에 따라 추동되는 기억상실 형태로 실천되고 기능한다. 더욱이 앞서 언급한 권위주의 시대에 대한 기억의 확산은 한편으로는 역사의 파편화, 혹은 과거 주도권의 쇠퇴를 나타내는 것일 수 있다. (피에르 노라는 이를 “단일 설명 원리의 상실”이라 불렀다.) 하지만 이 기억의 재구성은 승리주의 담론과 밀착되어 있고 현재의 동향에 순응하는 경향이 있으며, 동시대 권력 배열의 발화를 의미한다.
브리즈번을 떠나 한국에서의 정치적 모험을 시작하기 며칠 전, 나는 이웃인 진 필립스 이모와 대화를 나눴다. 진은 원주민의 권리를 주창하는 운동가이자 복음주의 기독교인이었다. 진은 퀸즐랜드주 남부의 셰르부르라는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자랐고 옛 저택 안의 관리자 숙소에 살고 있었다. 저택은 호주연합교회의 소유였고 쓰러져 가는 중이었다. 진은 내가 SCM 국제 교류를 위해 곧 한국에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거기로 가? 관심과 힘이 필요한 문제라면 여기에도 충분히 많은데.”
이 말 직후 그녀가 덧붙인 한마디는 날 완전히 무너뜨렸다.
“우리 (원주민) 여자애들한테는 그런 기회가 절대 안 주어지지.”
그녀의 말이 옳았다. 나와 함께 초등학교에 다닌 원주민 여학생 중 그 누구도 내가 나온 선발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원주민 남학생 중에는 진학생이 조금 있었지만, 여학생 중에는 없었다. 오늘날은 그런 현상을 볼 수 없다. 하지만 원주민 여성에 대한 인종차별적·성적 폭력이 항상 존재하던 퀸즐랜드주, 혹은 1970-80년대의 브리즈번 시내에서 학생으로서 정치 여행이나 아래로부터의 세계시민주의를 경험할 기회는 나 같은 백인 학생이 전부 독점했다.
지식인 문학판 내부의 역관계도 더 기울어 1980년대 말에는 사회주의리얼리즘론 내지 민중적민족문학론이 압도적 위세를 갖는 듯했다. 그러나 6월항쟁 이후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사회》가 복귀했음도 지적해야 한다. 타매(唾罵)됐던 ‘프티부르주아 문학’은 곧 전면 복귀해 상황을 역전시키고 무너지고 깨졌던 ‘문단 질서’를 회복할 것이었다.
이 절에서 주로 거론한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는 노동자문학회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이며, 동시에 계급적 민족·민중문학운동의 의식적 이념과 운동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였다. 그리하여 이 고빗길의 정상에서 1970년대부터 대학생·지식인이 관여해 온 노동운동은 다기한 성과를 산출했지만, 급전직하와 반전이 목전으로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