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지은이)
정보 더보기
본명은 박금이(朴今伊). 192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다. 1955년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으로 등단, 이후 『표류도』(1959), 『김약국의 딸들』(1962), 『시장과 전장』(1964), 『파시』(1964~1965) 등 사회와 현실을 꿰뚫어 보는 비판적 시각이 강한 문제작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69년 9월부터 대하소설 『토지』의 집필을 시작했으며 26년 만인 1994년 8월 15일에 완성했다. 『토지』는 한말로부터 식민지 시대를 꿰뚫으며 민족사의 변전을 그리는 한국 문학의 걸작으로, 이 소설을 통해 한국 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거장으로 우뚝 섰다. 2003년 장편소설 『나비야 청산가자』를 《현대문학》에 연재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중단되며 미완으로 남았다. 그 밖에 『Q씨에게』 『원주통신』 『만리장성의 나라』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 『생명의 아픔』 『일본산고』 등과 시집 『못 떠나는 배』 『도시의 고양이들』 『우리들의 시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등이 있다.
1996년 토지문화재단을 설립해 작가들을 위한 창작실을 운영하며 문학과 예술의 발전을 위해 힘썼다. 현대문학신인상, 한국여류문학상, 월탄문학상, 인촌상, 호암예술상 등을 수상했고 칠레 정부로부터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문학 기념 메달을 받았다.
2008년 5월 5일 타계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 문학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펼치기
송병수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32년 3월 7일 경기도 개풍군(開豊郡) 대룡(大龍)에서 출생했다. 1944년 개풍 덕수국민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서울 경기공업학교를 졸업했다.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에 입학해 1학년에 재학 중이던 해에 6·25전쟁이 발발하자, 휴학을 하고 군에 입대했다. 1952년, 그는 총상을 입고 후방 병원으로 후송된 뒤 제대한다. 그 후, 1955년 대학에 복학했으나 전쟁 통에 학적부가 소실되는 등의 이유로 졸업하지 못했으며, 이후 서울시청 공보실에 근무하기도 한다.송병수는 1957년 <문학예술> 신인 특집에 단편소설 <쑈리·킴>이 당선되어 등단한다. 6·25전쟁을 체험한 그는 <인간 신뢰>, <탈주병>, <잔해>등 전장(戰場)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창작해 전쟁의 참혹성을 고발한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은 주로 6·25를 배경으로 한 암담한 현실과 전쟁의 잔혹성을 묘사하면서도 그 피해자들을 향한 인간애를 담고 있다. 전쟁의 비극과 전후의 세태 묘사를 통해 작가 세계를 구축한 그는 1964년, 조난당한 공군 장교의 이야기를 다룬 <잔해>로 제9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다.‘예술이 현존하는 것에 대한 동의와 거부의 역할을 갖는다’고 생각했던 작가 송병수는 1960년대 중반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면서 부조리한 한국 사회의 현실과 풍속을 사실적 문체로 담아내는 데 주력한다. 그는 <쑈리·킴> 이후 발표한 <장인(掌印)>, <피해자> 등 전후 한국 사회의 세태를 그린 작품에서 1950년대 전쟁 체험 세대의 아픔을 담는다. 그리고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발표한 <계루도(繫累圖)>, <행위도생(行爲圖生)>, <동전 두 닢>과 같은 작품들에서는 산업화 시대의 부조리한 현실, 한국인들의 소시민 근성을 그려낸다. 한일협정이 체결되던 1965년 전후로는 <유형인(流刑人)>, <무적인(無籍人)> 등 일본이라는 국가를 사이에 두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인물들을 그린다. 해방과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가져온 경계인의 문제와 그들이 겪는 시련을 통해 그는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묻는다.장편소설로는 1965년 동양전기문학선집(東洋傳記文學選集) 1권으로 발간된 ≪공자≫, 1967∼1968년 사이에 <사상계>에 연재한 ≪빙하시대≫, 1971년에 <신동아>에 연재한 ≪대한독립군≫이 있다. 등단 이후 송병수는 8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1974년 <한국문학> 4월호에 발표한 ≪산골 이야기≫로 제1회 한국문학작가상을 수상한다.지금까지 송병수의 작품 활동은 방송국 일을 시작하면서 중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1973년 MBC TV 영화부에 근무하면서도 창작을 했으며, 1977년 MBC 제작위원이 된 후, 더 이상 작품을 발표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후, 그는 1984년 MBC 라디오 보도제작부 차장, 1988년 울산MBC 상무이사를 역임하며 방송계 일에 전념한다. 그리고 2009년 1월 4일 뇌경색으로 별세한다.송병수는 “현실을 외면하지 말자. 무릇 현존하는 것들을 직시하면서 때로는 거부하고 때로는 동의하자”라는 작가적 독백을 작품 속에서 실천했던 소설가다. 그는 전쟁 이후 등단한 신세대 작가로서 전쟁이라는 실존의 위기에 놓은 인간의 의식뿐 아니라, 1960∼1970년대를 살았던 한국인의 위선과 위악을 작품 속에 투사한다. 이데올로기의 거대함 속에 내재하는 인간 의식의 다양한 국면과 사소한 것의 사소하지 않음을 다루는 그의 시선은 늘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인간에 대한 신뢰의 시선에서 비롯됨을 보여준다.
펼치기
장용학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21년 함경북도 부령에서 출생했다. 1940년에 경성공립중학교를 졸업하고 1942년 일본 와세다대학 상과에 입학한다. 1945년 해방을 맞아 귀국한 이후 청진의 지방 문단에서 김진수, 강소천 등과 어울려 학교 연극의 각본 연출을 맡기도 한다. 1947년 월남했다.
1949년 단편 <희화(戱畵)>를 발표한 데 이어 1950년 <지동설(地動說)>, 1952년 <미련 소묘(未練素描)>가 ≪문예≫에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러나 소설가로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단편 <요한 시집>과 중편 <비인 탄생(非人 誕生)>을 발표한 후다. 주요 작품으로 중편 <역성 서설(易姓 序說)>, 희곡 <일부변경선 근처(日附變更線 近處)>, 장편 ≪원형의 전설≫, 단편 <현대의 야(野)>, <유피(遺皮)>, ≪청동기≫, <잔인의 계절>, <상흔(傷痕)>, 중편 <효자점경(孝子點景)>, <오늘의 풍물고(風物考)> 등이 있다.
장용학은 1987년 단편 <하여가행>을 끝으로 절필 상태에 들어갔으며, 서울 갈현동 자택에서 은자와도 같이 생활했다. 1999년 간암으로 사망했다. 유작으로 <가제 빙하 기행>(≪문학사상≫, 1999. 10, 장용학 특집호), <천도시야비야>(≪한국문학≫, 2001. 가을호) 등이 있다.
펼치기
김성한 (지은이)
정보 더보기
지난 2010년 타계한 작가 김성한의 생애는 세 시기로 나눠 설명할 수 있다. 195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무명로》가 당선되어 등단한 후 56년 《바비도》로 제1회 동인문학상을, 58년 《오분간》으로 아세아자유문학상을 받는 등 50년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치던 시기가 그 첫 번째다. 두 번째는 56년 《사상계》 주간으로 인연을 맺은 후 《동아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장, 논설주간을 지내고 81년 같은 신문사를 퇴임하기까지 언론인으로 산 시간이다. 그리고 80년대 이후《왕건》,《임진왜란》,《진시황제》 등 장편 역사소설을 잇달아 내놓는 시기가 그 세 번째다. 이른바 순문학에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생산한 후, 언론인으로서 정년까지 일하고, 다시 역사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에서 대작을 쏟아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가 김성한인 셈이다.
작가로서의 삶에 결정적 전환점이 된 언론계 투신 후에도 김성한이 문학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60년대 후반부터 장편《이성계》와 《이마》를 썼으며, 역사소설을 쓰기 위한 자료를 지속적으로 수집했다. 오랜 언론계 생활은 철저한 고증과 균형 잡힌 시각, 간결한 문체와 빠른 전개가 특징인 김성한 역사소설의 바탕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지적이고 반항적인 경향의 초기 단편들, 그리고 역사의 기록자 입장에 섰던 언론계의 경험이 버무려져 우리나라 역사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연 김성한 역사소설이 태어난 것이다.
김성한은 1919년 함경남도 풍산에서 태어나 함남중과 야마구치고교를 거쳐 동경제국대학 법학부에서 수학하던 중 광복을 맞아 귀국했으며, 60년대 초 영국 맨체스터대학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서 홀로 묵묵히 책을 읽고 홀로 글을 쓰는 금욕적 삶을 살았던 작가는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 : 《암야행》,《오분간》,《개구리》,《바비도》(이상 단편집), 《요하》,《왕건》,《이성계》,《7년전쟁》,《이마》,《진시황제》,《시인과 사무라이》(이상 장편 역사소설), 《길 따라 발 따라》,《거인들의 시대》(이상 역사 에세이) 등
펼치기
오상원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30년 평북 선천에서 출생했으며, 해방 후 월남해 용산중학교에 재학했다. 졸업 후 서울대 불어불문학과에 진학한다. 하지만 입학 직후 터진 한국전쟁으로 인해, 학도병으로 참전한다. 부산에 서울대학교 가교사가 생긴 이후 복교하고, 문학 동인 ‘구도’에 참여한다. 1952년 극협에서 주관한 장막극 공모에 희곡 <녹쓰는 파편>이 당선된다. 그 뒤 유치진의 지도를 받으면서 잠시 희곡 창작을 시도하지만, 자신의 희곡이 실제로 상연되는 것을 보고 실망을 느낀 나머지 소설로 전향한다.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유예>가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등단해 이후 1966년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인다. 대학 졸업 후 한동안 공보처에서 일하다가 언론인으로 변신한다. 4·19를 다룬 미완 장편 ≪무명기≫에는 기자로서 그가 겪은 체험들이 반영되어 있다. 1966년 이후에는 작가로서의 활동보다는 언론인으로서의 활동에 더욱 치중한다. 1974년 단편 <모멸>을 발표하면서 작가로서의 재기를 의욕적으로 노리기도 했으나,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보여 주지는 못한다. 1981년 단편 <산>을 마지막으로 발표한 뒤, 1985년 지병인 간경화가 악화해 사망한다.
펼치기
곽학송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29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났다. 용산 철도학교, 서라벌 예술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45년부터 10여 년간 철도국에서 전신 기술자로 근무하였다. 1953년 《문예》에 '안약', '독목교'가 추천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전쟁을 치르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후기에는 전쟁 세대의 후일담을 주로 그렸다. 중풍으로 투병하다가 1992년 작고하였다. 소설집으로 <독목교>, <방어>, 장편소설로 <자유의 궤도> 등이 있다.
펼치기
임규찬 (엮은이)
정보 더보기
1957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 독문과와 동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88년 「실천문학」에 평론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문학박사이며 현재 문학평론가,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평론집 <왔던길, 가는 길 사이에서>, <한국 근대소설의 이념과 체계>, <일본 프로문학과 한국문학>(편역) 등이 있다.
펼치기
최원식 (엮은이)
정보 더보기
1949년 인천에서 태어나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으로 등단했다.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주간,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역임하고 현재 인하대 명예교수이다. 평론집 『민족문학의 논리』 『생산적 대화를 위하여』 『문학의 귀환』 『제국 이후의 동아시아』 『소수자의 옹호』 『문학과 진보』, 연구서 『한국 근대소설사론』 『한국 근대문학을 찾아서』 『한국계몽주 의문학사론』 『문학』 『이순신을 찾아서』 『기억의 연금술』 등이 있다. 대산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용재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펼치기
진정석 (엮은이)
정보 더보기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성공회대학교 강사이다. 저서로 『90년대 문학, 어떻게 볼 것인가』(공저), 『20세기 한국소설』(공편), 『최명익 소설 선집』(공편) 등이 있다.
펼치기
백지연 (엮은이)
정보 더보기
199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학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서울여자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18회 젊은평론가상을 수상했다. 평론집 『미로 속을 질주하는 문학』, 『사소한 이야기의 자유』, 공저서 『90년대 문학 어떻게 볼 것인가』, 『페미니즘 문학비평』, 『한국문학과 민주주의』, 『전후 동아시아 여성서사는 어떻게 만날까』 공편서 『20세기 한국소설』 등이 있다.
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