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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65880110
· 쪽수 : 392쪽
· 출판일 : 2011-03-07
책 소개
목차
1권
프롤로그 1962년 8월 3일
특급 우편
아이 1932-1938
키스 / 목욕 / 모래의 도시 / 제스 이모와 클라이브 삼촌 / 버려진 아이들 / 선물을 주는 사람들 / 고아 / 저주
소녀 1942-1947
상어 / 결혼할 때 / 장의사에서 일하는 소년 / 어린 아내 / 전쟁 / 핀업걸 1945년 / 채용 모델 / 딸과 어머니 / 괴물 / 벌새
2권
여자 1949-1953
우수 어린 왕자님 / 미스 골든 드림 1949년 / 연인 / 오디션 / 탄생 / 안젤라 1950년 / 부서진 제단 / 룸펠스틸츠킨 / 거래 / 넬 1952년 / 룸펠스틸츠킨의 죽음 / 구원 / 그날 밤… / 로즈 1953년 / 쌍둥이자리 / 그 광경
마릴린 1953-1958
유명인 / 동방박사 / 소시지는 질리지가 않아 / 전직 운동선수: 발견 / 사이프러스 / 사라지고 나면 어디로 가나요? / 전직 운동선수와 금발의 여배우: 데이트 / 엘리제를 위하여 / 비명. 노래. / 전직 운동선수와 금발의 여배우: 청혼 / 결혼 후에: 몽타주 / 지하철 환풍구 위에 선 미국의 사랑의 여신-뉴욕 1954년 / 잃어버린 내 아름다운 딸
3권
마릴린 1953-1958
이혼 후에 / 물에 빠진 여자 / 극작가와 금발의 여배우: 유혹 / 밀사 / 어둠 속의 춤 / 미스터리. 외설. / 체리 1956년 / (미국인) 쇼걸 1957년 / 바닷가 왕국 / 작별
종생(終生) 1959-1962
연민 / 슈거 케인 1959년 / 예쁘장한 쥐새끼 / 마릴린 먼로의 작품들 / 저격수 / 로슬린 1961년 / 클럽 주마 / 이혼(재촬영) / 나의 집. 나의 여정. / 대통령의 포주 / 왕자와 거지 소녀 / 사랑에 빠진 거지 소녀 / 대통령과 금발의 여배우: 밀회 / 화이티의 이야기 / 해피 버스데이 미스터 프레지던트 / 특급 우편 1962년 8월 3일 / 우리는 모두 빛의 세계로 들어간다
리뷰
책속에서
노마 진은 다른 어른들, 특히 남자들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매료되는 모습을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높은 창문에서 몸을 지나치게 앞으로 내밀고 있는 사람이나 촛불에 머리카락을 너무 가까이 대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들은 그녀의 이마에서 시작된 흰머리(‘상관없다’며 글래디스는 염색을 거부했다)나 멍든 것 같은 다크서클, 열을 내며 안달하는 그녀의 몸에도 개의치 않았다. 글래디스는 방갈로 현관에서 앞길과 거리에 이르기까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들어줄 사람만 있으면 <장면을 연출했다.> 영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글래디스가 <영화의 한 장면을 연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라도 연기를 하면 관심을 끌 수 있었고, 그러면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 관심들 대부분이 에로틱하다는 것도 아주 신나는 일이었다.
에로틱. 그건‘욕망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니까.
광기는 고혹적이고 섹시하니까. 여성의 광기는.
그 광기 어린 여성이 충분히 젊고 매력적이기만 하다면.
수줍음 많고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던 노마 진은 다른 어른들, 특히 남자들이 자신의 어머니인 이 여자를 관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게 좋았다. 그들이 글래디스의 불안한 웃음과 끊임없이 움직이는 손때문에 달아나지만 않았어도 어머니는 당신을 사랑해줄 남자를 찾았을 텐데. 당신과 결혼해줄 남자를 찾았을 텐데. 그러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신명 나는 연기를 벌인 후 집으로 돌아오면 글래디스는 약을 한 움큼 삼키고는 황동 침대 위로 풀썩 쓰러졌고, 잠을 자는 것도 아니면서 몇 시간씩이나 몸을 떨며 점액질에 덮인 듯 흐려진 눈으로 의식 없이 누워 있기만 했다. 노마 진은 그런 게 싫었다. 노마 진이 옷을 풀어주려고 하면 글래디스는 욕을 내뱉으며 손을 쳐냈다. 꼭 끼는 펌프스를 벗기려고 하면 발로 그녀를 차버렸다. “하지 마! 건드리지 말라고! 너한테 문둥병을 옮길 수도 있어! 날 좀 내버려두란 말이다.”
어머니가 그 남자들과 조금만 더 잘해보려 했더라면. 글쎄 아마도. 정말로 잘되었을 텐데!
- 1권
누가 자신을 <이곳>에 데려왔는지 아이는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 속에 어떤 얼굴, 어떤 이름도 또렷하게 남아 있지 않았다. 많은 날 동안 아이는 입을 닫고 지냈다. 억지로 불을 삼킨 듯 목구멍이 쓰라리고 바짝 말라 있었다. 먹을 때마다 구역질을 했고 자주 토했다. 아이는 아파 보였고 실제로도 아팠다. 아이는 죽기를 바랐다. 그 소망을 분명하게 표현할 만큼 성숙한 것이었다. 난 너무나 부끄러워, 아무도 날 원하지 않아, 난 죽고 싶어. 하지만 그런 소망을 가져온 분노를 이해할 만큼 성숙하지는 못했다. 그런 분노가 언젠가 지필 광기의 황홀함도, 언제가 되든지 어떻게 해서든지 세상을 정복해 세상에 복수하려는 광기 어린 야망도 이해하지 못했다. 부모 없이 홀로 떨어져, 우글우글한 곤충들 속 외로운 벌레 한 마리의 가치밖에 없어 보이는 한 여자가 무슨 수로‘세상’을‘정복’할지는 둘째 문제였다. 그래도 난 당신들 모두가 날 사랑하게 만들 거야.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벌을 내려서 당신들의 사랑을 괴롭힐 거야. 그 당시 노마 진이 생각한 협박은 이런 게아니었다. 비록 영혼에는 상처를 입었지만, 격분한 어머니 때문에 하일랜드 거리 828번지의 방갈로에서 타 죽거나 화상을 입지 않고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 그나마 행운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 고아의 집에는 노마 진보다 더 큰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있었다. 그녀는 아픔과 혼란 속에서도 이 사실을 깨달았다. 지진아, 머리를 다친 아이, 왜 버림받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장애아, 못생긴 아이, 화난 아이, 짐승 같은 아이, 피부가 끈적해서 건드리기만 해도 그 끈적함이 옮아올 것 같은 좌절한 아이. 여자아이들이 사는 3층 기숙사에서 노마 진의 옆 침대를 쓰는 열 살짜리 소녀가 있었다. 강간과 폭행을 당한 이 아이의 이름은 데브라 메이였다. (‘강간’이라니, 이 얼마나 거친 어른의 말인가! 하지만 노마 진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본능적으로 알았다. 아니, 알 것 같았다. <면도날> 같은 울림을 지닌 이 말이, 절대 보여서는 안 될 부드럽고 예민하고 다치기 쉬운 여자아이의 다리 사이와 관련된 수치스러운 말이라는 것을. 노마 진은 뭔가 날카롭고 단단한 것이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것은 고사하고, 그곳을 공격당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기절할 것 같았다.) 샌타모니카 산맥의 협곡에서 영양실조로 거의 죽어가다 발견된 다섯 살짜리 쌍둥이 남자아이들도 있었다. 어머니가 그들을 결박해서‘성경 속 아브라함처럼 희생물’로 (그들의 어머니가 남긴 쪽지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바쳤다고 했다. 노마 진과친해진 여자아이 중에 원래 이름은 아마도 펠리체였을, 플리스라는열한 살짜리 아이도 있었다. 그 아이는 어머니의 애인이 자신의 한 살짜리 여동생을 ‘뇌가 멜론 씨처럼 흘러나올 때까지 벽에다 박아’ 죽였다는 이야기를, 섬뜩하면서도 솔깃하게 들려주고 또 들려주었다. 노마 진은 두 눈을 닦으며 인정했다. <자신은 상처를 받은 것도 아니었노라고.>
- 1권
그녀는 영어 교사인 해링 씨에게 작문을 지어 제출했다. 크리스천사이언스의 창설자인 메리 베이커 에디와 ‘미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 그리고‘미지의 세계를 과감히 탐험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 관한 글이었다. 그리고 가로줄이 없는 백지에 푸른 잉크로 정성껏 적은 자작시들도 보여주었다.
저 하늘로 높이 올라!
나는 결코 죽지 않으리라는 걸 알아
우울해지지 않을 터인데 절대
사랑할 수 있다면 나 그대
그럴 수가 있을까
세상 사람 모두가
“사랑해요!”라고 말한다면
오직 진실로만 그 말 한다면
“너희를 사랑하노라”신께서 말씀하시듯
“너, 그리고 너 또한”이라 하시듯
그 말씀이 늘 진실이듯
해링 씨가 어색하게 웃으며 운율이 ‘완벽’해서 ‘아주 좋은’ 시라고 하자 노마 진은 기쁜 마음에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시를 보여줄 용기를 내느라 갈등한 몇 주의 시간을 모두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아직 보여줄 시들이 많았다! 그녀의 일기장은 시로 넘쳤으니까! 심지어 어머니가 소녀였을 때, 결혼 전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살던 시절에 쓴 시도 갖고 있었으니까.
붉은빛은 아침
보랏빛은 한낮
노란 낮이 지고 나니
아무것도 남지 않아
하지만 길게 늘어선 저녁의 불꽃이
드넓은 은빛 영토를 밝히지
불에 탔으나 아직 사라지지 않은
그 땅을 말이지
이 괴상한 시를, 해링 씨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읽고 또 읽었다. 아,이걸 보여준 건 실수였을까? 노마 진의 심장이 겁에 질린 토끼의 것처럼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해링 씨는 스물아홉으로 젊은 편이었지만 학생들에게는 아주 엄격했다. 비쩍 마르고, 황갈색 머리는 벗겨지기 시작했으며, 어린 시절의 사고로 다리를 절었다. 그는 공립학교 교사 월급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젊은 남편이었다. 「분노의 포도」속 헨리 폰다와 비슷했지만 그보다 좀 더 마르고, 좀 덜 상냥했다. 수업 시간에 늘 기분이 좋다고는 할 수 없어서 이따금씩 비꼬는 말을 퍼붓기도 했다. 해링 씨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어떤 이상한 말을 할지 예상하기란 불가능했지만, 적어도 그가 웃어주었으면 했다. 그리고 해링씨는 노마 진에게 늘 웃어주는 편이었다. 조용하고 수줍음 많은 노마진은 대단히 예쁜 데다 조숙한 몸매를 가진 소녀였다. 한두 사이즈 작은 스웨터를 입고 다니는, 무의식적이지만 도발적인 몸가짐을 한 소녀. 해링 씨는 그런 그녀의 태도가 무의식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각 없는 열다섯 살짜리 육체파라니. 게다가 그 눈빛은 또 어떻고!
- 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