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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면 그대가 그립다

꽃이 피면 그대가 그립다

(꽃내음 가득한 서른두 편의 봄 이야기)

윤동주, 이상, 현진건, 박용철, 김영랑, 김유정, 박인환, 최서해 (지은이)
판테온하우스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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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면 그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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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꽃이 피면 그대가 그립다 (꽃내음 가득한 서른두 편의 봄 이야기)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4943282
· 쪽수 : 204쪽
· 출판일 : 2016-05-16

책 소개

윤동주, 이상, 김유정, 김영랑, 이효석…… 각자 책 몇 권쯤은 너끈히 엮어낼 수 있는 우리 문학사의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다. 그들 역시 수많은 작품 속에 봄의 기쁨과 설렘, 희망, 사랑을 담았다. 이에 직접 겪고, 앓으며, 사무쳤던 봄을 맑고 눈부신 언어를 통해 그리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 꽃내음 가득한 아름다운 봄 이야기

화원에 꽃이 핀다 _ 윤동주
별똥 떨어진데 _ 윤동주
조춘점묘(早春點描) ① 보험 없는 화재 _ 이 상
조춘점묘(早春點描) ② 단지(斷指)한 처녀 _ 이 상
조춘점묘(早春點描) ③ 차생윤회(此生輪廻) _ 이 상
조춘점묘(早春點描) ④ 공지(空地)에서 _ 이 상
조춘점묘(早春點描) ⑤ 도회의 인심(人心) _ 이 상
조춘점묘(早春點描) ⑥ 골동벽(骨董癖) _ 이 상
조춘점묘(早春點描) ⑦ 동심행렬(童心行列) _ 이 상
산촌여정 _ 이 상
행복 _ 이 상
5월의 산골짜기 _ 김유정
잎이 푸르러 가시던 님이 _ 김유정
희생화 _ 현진건
봄봄봄 _ 최서해
봄을 맞는다 _ 최서해
5월 달에 당신은 : 여러분은 이 화려한 5월 햇빛 아래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_ 박인환
춘심(春心) : 남방춘신(南方春信) ③ _ 김영랑
봄을 기다리는 마음 : 너를 어찌 참아 _ 박용철
청춘예찬 _ 민태원
어린이 찬미 _ 방정환
구두 _ 계용묵
청란몽(靑蘭夢) _ 이육사
그믐달_ 나도향
대동강 _ 김동인
낭객의 신년 만필 _ 신채호
생활인의 철학 _ 김진섭
화춘의장(花春意匠) _ 이효석
마음에 남는 풍경 _ 이효석
화초① _ 이효석
수선화 _ 이효석
산나물 _ 노천명

저자소개

김영랑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전라남도 강진의 부유한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김영랑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본명은 김윤식金允植이다. 영랑永郞은 아호인데 《시문학詩文學》에 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1915년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혼인했으나 불과 1년 반 만에 부인과 사별했다. 그 후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후에 ‘사립휘문고등보통학교’로 개칭)에 입학하여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때 휘문의숙에는 홍사용, 안석주, 박종화 등의 선배와 정지용, 이태준 등의 후배, 그리고 동급반에 화백 이승만이 있어서 문학적 안목을 키우는데 직간접으로 도움을 받았다. 휘문의숙 3학년 때인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에서 거사하려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靑山] 학원 중학부를 거쳐 같은 학원 영문학과에 진학했다. 이 무렵 독립투사 박렬, 시인 박용철과도 친교를 맺었다. 그러나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 후 고향에 머물렀다. 1925년에 개성 출신 김귀련과 재혼했다. 광복 후 은거생활에서 벗어나 사회에 적극 참여하여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했고, 대한독립촉성회에 관여하여 강진대한청년회 단장을 지냈으며,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낙선했다. 1949년에는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냈으며, 평소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어 국악이나 서양 명곡을 즐겨 들었고, 축구와 테니스 등 운동에도 능하여 비교적 여유 있는 삶을 영위했다. 9·28수복 하루 전인 9월 27일 길에서 유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는 <내 마음 아실 이>, <가늘한 내음>,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의 작품이 실린 《영랑시집永郞詩集》(1935)과 《영랑시선》(1949), 유고시집 《모란이 피기까지는》(198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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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8년 1월 11일, 우리나라 최초의 인명(人名) 기차역인 ‘김유정역’이 있는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에서 2남 6녀 중 일곱째이자 그로서는 안타깝게 차남으로 태어난다. 1914년, 유정 일가는 서울 진골(현 종로구 운니동)의 1백여 칸짜리 저택으로 이사하는데, 셋째 누이 김유경은 이곳을 유정의 출생지로 증언한다. 1915년 어머니가, 2년 뒤인 191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고아가 된다. 9살, 유정은 아직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했지만, 가장이 된 형 유근은 동생을 돌보는 대신 주색잡기에 빠져 산다. 유정은 책상 위에 놓인 어머니 사진을 들여다보곤 하며, 친구들에게 어머니가 미인임을 자랑하기도 하며, 횟배를 자주 앓으며 소년기를 보낸다. 1929년, 한 번의 휴학을 거쳐 휘문보고를 졸업한다. 그동안 형의 금광 사업 실패와 방탕한 생활로 가세는 몰락한다. 1930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지만 결석으로 인해 곧 제적당한다. 스스로는 더 배울 것이 없어 자퇴했다고 했지만. 이후 얼마간의 방랑 생활을 거친 후 귀향, 야학당을 여는 한편 농우회, 노인회, 부인회를 조직 농촌계몽 활동을 벌인다. 그 와중 늑막염이 폐결핵으로 악화한다. 1933년, 서울로 돌아온 유정은 누나들 집을 전전하며 폐결핵을 견뎌야 하는 삶을 산다. 그런 유정을 안타까워하던 친구 안회남이 소설 쓰기를 권유, <산골 나그네>와 <총각과 맹꽁이>를 연이어 발표한다. 그리고 1935년, <조선일보>와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낙비>와 <노다지>가 각각 1등과 입선으로 당선, 문단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정식으로 등단한다. 이후 1937년, 스물아홉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소설 30편, 수필 12편, 그리고 번역 소설 2편을 남긴다. 죽기 한 해 전인 1936년 가을, 이상으로부터 “유정! 유정만 싫지 않다면 나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일개 요물에 부상당해 죽는 것이 아니라 27세를 일기로 불우한 천재가 되기 위해 죽는 것입니다!”라는 동반자살 제의를 받지만, “명일의 희망이 이글이글 끓습니다”라는 말로 거절한다. 하지만 이듬해 3월 29일, 세상을 떠나고 만다. 자살을 먼저 제의한 이상보다 19일 먼저. 사인은 둘 모두 폐결핵. 같은 해 5월 15일, 요절한 두 천재의 죽음을 기리는 합동 추도식이 치러진다. 발기인은 이광수, 주요한, 최재서, 정지용, 이태준, 박태원, 그리고 안회남 등 25명. 1938년, 김유정의 첫 책이 삼문사에서 출간된다. 제목은 《동백꽃》. 죽기 열하루 전, 번역으로 “돈 100원을 만들어볼 작정”을 한 유정은 안회남에게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탐정소설 두어 권을 보내줄 것을 편지로 요청한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10여 마리 먹어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며. “책상 위에는 ‘겸허(謙虛)’라는 두 글자”를 커다랗게 써 붙여놓은 채. 스물아홉의 피 끓는 삶에의 몸부림과 죽음에 대한 겸허한 자세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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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26년(1세) 8월 15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 상동리 159번지에서 태어나다. 1933년(8세) 인제공립보통학교 입학하다. 1936년(11세) 서울 덕수공립보통학교 4학년에 편입하다. 1939년(14세) 경기공립중학교에 입학하다. 1941년(16세) 경기공립중학교 자퇴하고 한성중학교에 다니다. 1942년(17세) 명신중학교 4학년에 편입하다. 1944년(19세) 평양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다. 1945년(20세) 광복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상경해 ‘마리서사(茉莉書舍)’를 개업하다. 1948년(23세) 4월 20일 김경린, 김경희, 김병욱, 임호권과 『신시론』 발간하다. 4월 이정숙(李丁淑)과 결혼하다. 12월 장남 세형(世馨) 태어나다. 1949년(24세) 4월 5일 김경린, 김수영, 임호권, 양병식과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발간하다. 김경린, 김규동, 김차영, 이봉래, 조향 등과‘ 후반기’ 동인 결성하다. 1950년(25세) 1월 『경향신문』 입사하다. 한국전쟁 겪다. 9월 딸 세화(世華) 태어나다. 1951년(26세) 5월 육군종군작가단에 참여하다. 1952년(27세) 5월 15일 존 스타인벡의 기행문 『소련의 내막』 번역해서 간행하다. 6월 16일「주간국제」의 ‘후반기 동인 문예’ 특집에 평론 발표하다. 1953년(28세) 5월 차남 세곤(世崑) 태어나다. 7월 중순 서울로 돌아오다. 1954년(29세) 1월 오종식, 유두연, 이봉래, 허백년, 김규동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 발족하다. 1955년(30세) 3월 5일 미국 여행하다. 10월 1일 시작품 「목마와 숙녀」(『시작』) 발표하다. 10월 15일 시집 『선시집』 간행하다. 1956년(31세) 3월 시작품 「세월이 가면」 이진섭 작곡으로 널리 불리다. 3월 20일 오후 9시 자택에서 타계해 3월 22일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다. 1959년(3주기) 10월 10일 윌러 캐더의 장편소설 『이별』 번역해서 간행되다. 2014년(58주기) 7월 25일 이정숙 여사 별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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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사이의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동소학교, 은진중학교를 거쳐 평양의 숭실중학교로 편입하였으나 신사참배 거부 사건으로 폐교 조치되자, 광명중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立敎)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 교토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로 편입하였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연길에서 발행되던 『가톨릭소년』에 여러 편의 동시를 발표하고 그 외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도 시를 발표하였으며, 문예지 『새명동』 발간에도 참여하였다. 대학 시절 틈틈이 쓴 시 19편을 골라 시집을 발간하고자 하였으나 그의 신변을 염려한 스승과 벗들의 만류로 뜻을 보류하였다. 1943년 독립운동을 모의한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여섯 달 앞두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여 고향 용정에 묻혔다. 일제의 생체 실험 주사에 따른 희생으로 추정될 뿐 지금까지도 그의 죽음에 대해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1948년 유고 31편을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고, 1968년에는 연세대학교 내에 그의 시비(詩碑)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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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0년 9월 23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신명학교와 동광학교·보성고보를 거쳐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30년 소설 「12월 12일」의 발표를 시작으로 이후 일문시 「이상한 가역반응」·「조감도」 등을 발표하는 등 본격적인 창작에 나서게 된다. 1933년 각혈로 배천온천에 요양을 가서 금홍을 만났으며, 서울에 돌아와 동거를 하게 된다. 그녀와의 삶을 바탕으로 「지주회시」·「날개」·「봉별기」를 썼다.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를 발표하였으나 독자들의 거센 반발로 15편 연재로 그만두게 된다. 1935년에는 성천을 기행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산촌여정」과 「권태」를 내놓게 된다. 1936년에 『시와 소설』을 편집하였고, 「날개」를 발표하여 일약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으며, 「위독」·「동해」·「종생기」 등 뛰어난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10월에 동경으로 건너갔으며, 「실화」·「동경」 등을 창작하였다. 1937년 2월 불령선인으로 체포되었으며, 4월 17일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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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1년 함북 성진군 임명면에서 빈농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학송(鶴松)으로 어려서 부친 혹은 서당을 통해서 한문 공부를 많이 했다. 1918년 간도로 들어가 유랑 생활을 시작해서 부두노동자·음식점 심부름꾼 등 최말단 생활을 전전했다. 1923년 봄에 간도에서 귀국하여 회령역에서 노동일을 했으며 이때부터 ‘서해(曙海)’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춘원의 『무정』을 읽고 크게 감명받고 동경에 있는 춘원과 여러 차례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1924년 「토혈」, 「고국」으로 등단했다. 1925년에 조선문단사에 입사하여 중견 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김기진의 권유로 카프에 가입했다. 1927년에는 조선문예가협회의 간사직을 맡았으며 전 해에 휴간한 조선문단을 남진우가 인수하여 1월에 다시 입사하지만 4월에 또 실직했다. 위문 협착증을 앓던 그는 대수술 중에 과다 출혈로 1932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문학은 ‘체험문학’, ‘빈궁문학’, ‘저항문학’으로 규정된다. 몇 명의 엘리트의 눈으로 바라본 일부의 삶이 아니라 실제 체험을 통한 대다수의 극빈층의 생활상을 날카롭게 표현해 그들의 울분과 서러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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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0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20년 조선일보사에 입사, 같은 해 11월 《개벽》에 첫 작품인 「야생화」를 발표하지만 혹평을 받으며 작가로서 출발했다. 그러나 1921년 1월 《개벽》에 「빈처」를 발표하면서 192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발돋움했다. ‘백조 동인’을 거쳐 ‘파스큘라’와 ‘카프’로 이어지는 현진건의 문학 이력은 그의 사상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성숙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염상섭과 함께 사실주의 문학을 개척했으며 김동인과 더불어 한국 근대 단편소설의 선구자가 되었다. 「술 권하는 사회」 「할머니의 죽음」 「B사감과 러브레터」 「사립정신병원장」 등의 단편과 《적도》 《무영탑》등의 장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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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철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4년 8월 2일 전라남도 광산군 송정면 소촌리 363번지(현 광주광역시 광산군 소촌동 363번지)에서 마을의 대지주였던 부친 박하준(朴夏駿)과 모친 고광(高光)의 삼남으로 태어났으나, 장남과 차남이 어려서 죽었기 때문에 법률상 장남으로 자랐다. 1920년 배재고등보통학교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자퇴한 뒤, 1921년 봄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 4학년에 편입했다. 이곳에서 18세의 박용철은 한 살 연상인 김영랑과 처음 만난 이래 평생 교분을 나눴다. 1923년 도쿄외국어학교 독일문학과에 입학했으나,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했다. 이어서 연희전문학교 문과 1학년 2학기로 편입했으나 몇 달 만에 자퇴했다. 당시 연희전문학교에서 한문학과 조선 문학을 강의하던 위당 정인보에게 시조를 배우고, 일성(一星) 이관용에게 독일어를 배우면서 동시에 일어, 영어, 독일어로 된 해외 시집을 탐독했고 또 영국 낭만주의 시,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소네트를 탐독하면서 희곡에 심취하기도 했다. 1925년 봄 누이동생 박봉자가 배화여자고동보통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함께 상경한 이후 영어와 독일어 및 문학과 철학, 역사 등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1926년 지속된 유폐 생활로 인한 위병(胃病)으로 세브란스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는 등 건강이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1926년 창작 희곡 <말 안 하는 시악시>가 연희전문학교 학생극 대본으로 선정되어 처음 공연되었다. 1928년 9월 박봉자의 요청에 따라 쓴 배화 학생극용 창작 희곡 <석양>이 공연 무대에 올랐다. 1929년 4월 박봉자가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했으나, 박용철은 소촌리에 남아 영시와 독일시 번역에 몰두했다. 박용철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시들, 즉 <떠나가는 배>, <이대로 가랴마는>, <밤기차에 그대를 보내고>, <싸늘한 이마> 등은 대부분 이 시기에 창작되었다. 1929년 10월 22일 김영랑과 함께 시 잡지를 발간하기 위해 경성으로 가서 정지용을 처음 만났고, 12월 10일경 변영로와 정인보 등을 만나 순수 서정시파인 ‘시문학’ 동인을 구성했다. 이렇게 해서 ≪시문학≫에 수록된 외국 시 번역에서 영미 시는 정지용이, 프랑스 시는 이하윤이, 독일 시는 박용철이, 한시는 정인보가 전담하게 되었다. 이후 1930년 가을 무렵 박용철이 옥천동에서 견지동으로 이사하면서 견지동 집은 ‘문예월간사’ 사무실 역할을 겸하게 되었다. ≪문예월간≫이 종간된 이후 박용철은 신문과 잡지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평론을 비롯해 해외 번역시와 수필, 창작시를 꾸준히 발표했다. 같은 해 7월 ‘해외문학파’가 주축이 된 ‘극예술연구회’가 결성되면서 이하윤의 중재로 박용철이 ‘극예술연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후 1934년 1월 ≪문학≫ 창간호를 발간, 편집과 발행 및 재정을 박용철이 맡았다. 이어서 같은 해 4월 ‘극예술연구회’의 기관지 ≪극예술≫의 편집과 발행을 담당했다. 1935년 봄 박용철은 정지용, 김영랑과 함께 폐병으로 병석에 누운 임화의 병문안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시집 발간에 대해 합의하고 나서 산실된 원고들을 모아 10월 27일 ≪정지용 시집≫을 발간하고 이어 같은 해 11월 5일 ≪영랑 시집≫을 시문학사에서 발간했다. 이후 <‘기교주의’설의 허망>, <기술의 문제> 등을 발표하면서 비평 활동에 전념했다. 1936년 무렵 박용철의 공식적인 문단 활동은 거의 눈에 띄지 않지만 다시 문학잡지 간행을 계획했다. 이헌구, 구본웅 등과의 논의를 거쳐 잡지명을 ≪청색지(靑色紙)≫로 하고, 이듬해 1월 문단인들에게 발간 취지서를 발송하기까지 했으나 결국 잡지 간행은 무산되고 말았다. 1937년 초겨울부터 박용철의 건강이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다. 병석에서 <시단: 정축년 회고>, <시적 변용에 대해서>를 발표하고 곧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해 필답으로만 겨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태에서 시와 편지를 썼다고는 하나, 시 <만폭동>이 그의 마지막 공식 발표작이 되었다. 1938년 5월 12일 오후 5시 후두결핵으로 사직동 자택에서 3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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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혼자 꽃들과 풀들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습니까. 참말 나는 온정(溫情)으로 이들을 대할 수 있고, 그들은 나를 웃음으로 맞아줍니다.
_ 윤동주 <화원에 꽃이 핀다> 중에서

산에는 기화요초(琪花瑤草, 옥같이 고운 풀에 핀 구슬같이 아름다운 꽃)로 바닥을 틀었고, 여기저기에 졸졸거리며 내솟는 약수도 맑고, 그리고 우리의 머리 위에서 골골거리며 까치와 시비를 하는 노란 꾀꼬리도 좋다. 주위가 이렇게 시적이니만치 사람들의 생활도 어디인가 시적이다.
_ 김유정 <5월의 산골짜기> 중에서

봄을 어찌 참아 기다리랴. 낭만주의보다도 더 낡은 한 벌의 외투를 두르고 아득히 먼 긴 둑 풀 속에 꽃도 드문드문한 언덕길을 길이길이 걷고 싶다.
_ 박용철 <봄을 기다리는 마음> 중에서

풀밭에 속잎 나고, 가지에 싹이 트고,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의 천지는 얼마나 기쁘며, 얼마나 아름다우냐?
_ 민태원 <청춘예찬> 중에서

봄은 단술과도 같아서 사람을 취하게 한다. 우리는 봄에 취함으로써 한 치 한 치 자라간다. 한 걸음, 두 걸음 앞을 그리워한다. 겨울 나뭇가지 같은 앙상한 신경에 기름이 돌고 갇히었던 마음에 싹이 돋는다.
_ 최서해 <봄을 맞는다> 중에서

거리에 마로니에가 활짝 피기는 아직도 한참 있어야 할 것 같다. 젖구름 사이로 기다란 한 줄 빛깔이 흘러 내려온 것은 마치 바이올린의 한 줄 같이 부드럽고도 날카롭게 내 심금(心琴)의 어느 한 줄에라도 닿기만 하면 그만 곧 신묘(神妙)한 멜로디가 흘러나올 것만 같다. 정녕 봄이 온 것이다.
- 이육사 <청란몽> 중에서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날이면 나는 대개 신문실 창기슭에 의지하여 수난로(水煖爐)에 배를 대고 행길 건너편 언덕 위의 백양나무 무리를 바라봄이 일쑤다. 희고, 깨끗하고, 고결한 그 자태는 아무리 바라보아도 싫어지지 않는다. 그 무슨 그윽한 향기가 은은히 흘러오는 듯도 한 맑은 기품이 보인다. 나무치고 백화(白模)나 백양만큼 아름다운 나무는 없을 법하다.
- 이효석 <마음에 남는 풍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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