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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56625575
· 쪽수 : 228쪽
· 출판일 : 2021-08-30
책 소개
목차
기획의 말_박지음
추천의 말_김남일
김 강 「나비를 보았나요」
도재경 「춘천 사람은 파인애플을 좋아해」
문서정 「우리들의 두 번째 롬복」
박지음 「기요틴의 노래」
이경란 「여행시절」
이수경 「어떻게 지냈니」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할아버지가 유이토에 대해 물었을 때 그녀는 유이토를 다시 만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짐짓 관심 없는 척했다고 한다. 찬찬히 고민해보니 별로 매력적인 남자는 아니에요. 집에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이제 겨우 대학원생이니 함께할 멋진 비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일본어 억양도 이상해요. 오키나와 사투리. 그녀는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할아버지는 뭐라 하셨고요?”
“오키나와? 하고 되물으셨죠. 그러고는 그저 아이고, 아이고 하셨어요. 이게 기회일까? 하고 잠깐 생각했지만 다시 사귀겠다는 말 따위는 꺼내지 않았어요. 알 수 없는 일이니까요. 할아버지 건강도, 유이토와 나의 관계도. 아무튼 웃기지 않아요? 저 나쁜 년이죠? 일본을 싫어하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일본 남자와 다시 사귀다니 말이에요.”
- 김 강 「나비를 보았나요」 중에서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난 그곳이 막연히 환상의 세계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뜻밖에도 그곳은 러시아 국경에 인접해 있는 몽골 홉스굴 인근의 초원 지대였다. 양들이 새끼를 낳는 봄이 오면 유목민들의 일손은 쉴 틈이 없다. 양이나 염소들에게 풀을 먹어야 하며, 길 잃은 새끼의 어미도 찾아줘야 한다. 별을 보고 길을 찾는다는 그 사람들은 좀체 길을 헤매는 법이 없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민아의 얘기가 조금은 낭만적으로 들렸다.
“그들은 일 년 중 절반 이상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길 위에서 산대.”
그날 민아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말했다.
“눈보라 때문에 가족 같은 양과 염소를 곧잘 잃기도 해. 하지만 눈보라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말이야.”
“어쩐지 매정한 사람들 같은걸.”
“하지만 그래야 다시 떠날 수 있겠지.”
- 도재경 「춘천 사람은 파인애플을 좋아해」 중에서
현오와의 복잡한 일은 일단 접어두고 지금은 롬복의 자연이 선사하는 선물을 충분히 누리고 싶었다. 오후 5시가 되자 수평선 너머에서 노을이 번져와 온통 섬을 보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물결이 일 때마다 얇은 보라색 시폰 치마가 바람에 일렁이는 것 같았다. 호텔 내 선베드나 셍기기 해변에 누워, 푸른 하늘과 산호초가 부서져 만들어진 에메랄드빛 바다와 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장관이었다. 사위가 어둑해지자 배에 조명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 문서정 「우리들의 두 번째 롬복」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