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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1193817
· 쪽수 : 350쪽
· 출판일 : 2023-02-15
책 소개
목차
배예람 〈수직의 사랑〉 7
이수현 〈여우 구슬은 없어〉 77
아밀 〈하나뿐인 춤〉 131
김수륜 〈누가 진짜 언니일까?〉 193
진산 〈협탐: 좁은 길의 꽃〉 265
작가의 말 331
프로듀서의 말 345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최하층에서 오고 가는 모든 대화는 무엇을 주제로 하고 있든, 네온사인을 손가락질하는 것으로 끝났다. 우린 3층에 있잖아. 제일 아래에 살잖아. 무엇도 기대할 수 없잖아. 하영은 그런 결말이 지겨웠다. 베개 밑으로 손을 집어넣어 가장 먼저 잡히는 편지 한 통을 꺼냈다. 잠들기 전, 베개 아래 숨겨져 있는 추억을 다시 맛보는 것은 하영의 오랜 습관이었다.
위층에서 온 마지막 편지. 하영은 변색된 종이 위에 새겨진 문장들을 손가락 끝으로 훑었다. 그렇게 하면 편지 너머의 상대에게 닿을 수 있기라도 할 것처럼.
〈수직의 사랑〉
“인간처럼 생긴 요괴가 왜 있을까 생각해 본 적 있느냐?”
은화가 휘적휘적 내젓는 손이 언뜻 반투명해 보였다.
“전설에는 요괴가 도를 닦으면 인간으로 변한다거나, 인간이 되고 싶어서 별짓을 다한다는 이야기들이 있지. 뭐라더라, 구미호였나? 사람이 되고 싶어서 사람 간을 빼 먹는다고? 하늘과 땅의 이치를 깨달아 놓고 그 능력으로 인간이 되려 한다고?”
소리 내어 웃지 않아도, 은화의 목소리와 표정에서 세상 다시없이 얼빠진 소리라는 경멸이 전해졌다.
“인간이 모든 생물 중에 으뜸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야 그런 이야기를 당연히 받아들였을지 모르지. 하지만 너희는 현대인이니 한번 생각해 보렴. 왜 굳이 다른 존재가 인간이 되고 싶어 할까.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여우 구슬은 없어〉
남성용 정장을 입고 여자 춤을 추자. 처음 떠올렸던 아이디어는 그것이었다. 의상과 춤의 성별을 일부러 정반대로 해서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흩트리려는 의도였다. 원래는 드레스를 입고 남자 춤을 춰 줄 파트너도 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졸업 무도회 무대에서 그런 과감한 시도를 해 줄 파트너를 찾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고민하던 카릴은 ‘그렇다면 파트너 없이 하지 뭐’라고 결정했고, 그러자 모든 것이 오히려 더 명쾌해졌다. 왜냐하면 노랫말 속에서 화자의 연인은 곁에 없었으니까. 그러니 카릴의 곁에 파트너가 없는 것은 노래의 의미에 고스란히 부합했다. 카릴은 드레스를 부여잡고 춤을 추며 연인의 빈자리를 그리워하고, 동시에 음악으로 말미암아 마치 연인과 함께 있는 것처럼 춤을 췄다. 그 역설을 춤으로 구현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연인과의 춤.
〈하나뿐인 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