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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뵐과 행복 사회

하인리히 뵐과 행복 사회

(하인리히 뵐을 바라보는 시선들)

공선옥, 곽정연, 사지원, 서용좌, 안은영, 원윤희, 이화경, 정인모, 정찬종, 최미세 (지은이)
한국문화사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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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뵐과 행복 사회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하인리히 뵐과 행복 사회 (하인리히 뵐을 바라보는 시선들)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세계문학론 > 독일문학론
· ISBN : 9788968175794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17-12-20

책 소개

하인리히 뵐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서 그가 작가로서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평생 간절히 원했던 ‘것’을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하고자 하였다. 필진은 다각도로 접근하였고 먼저 하인리히 뵐과 그의 작품을 재탐구하며 시작했다.

목차

서문

제1부 직접 만나는 하인리히 뵐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하여 / 안은영
하인리히 뵐의 독자 구하기 / 서용좌

제2부 작가를 통해서 만나는 하인리히 뵐
슬픔의 사람, 슬픔의 작가 / 공선옥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을 말하기 / 이화경

제3부 하인리히 뵐이 말하는 행복
“살만한 나라, 살만한 언어” / 정인모
하인리히 뵐이 열망한 대안사회 / 사지원
하인리히 뵐의 현실 비판과 대안 / 정찬종

제4부 행복에 대한 다양한 시선
문학 작품 속 노년의 욕망과 행복 / 원윤희
인간 심리와 행복, 그리고 행복한 사회 / 곽정연
예술의 사회적 책임과 인류의 보편적 행복 / 최미세

저자소개

공선옥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63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다. 1991년 『창작과비평』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피어라 수선화』 『내 생의 알리바이』 『멋진 한세상』 『명랑한 밤길』 『나는 죽지 않겠다』 『은주의 영화』, 장편소설 『유랑가족』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영란』 『꽃 같은 시절』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등이 있다. 만해문학상, 신동엽문학상, 오늘의젊은예술가상, 올해의예술상, 요산김정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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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원 (옮긴이)    정보 더보기
독일 정부 산하 하인리히 뵐 장학 재단의 장학생으로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교에서 독문학을 공부하고 하인리히 뵐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생태와 여성 및 문화이며 이 세 분야에 대한 100편 이상의 논문이 있다. 주요 저서로 《소외. 하인리히 뵐의 초기작품 연구》(독문), 《하인리히 뵐》, 《하인리히 뵐의 저항과 희망의 미학》, 《독일 문학과 독일 문화 읽기》, 《폭력을 관통하는 열 가지 시선》, 《하인리히 뵐과 평화》(공저) 《생태 정신의 녹색사회 : 독일》 《생태 사회를 위한 통합적인 접근》(공저), 《생태사회와 세계시민의식》(공저)등이 있고, 역서로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쇼펜하우어 인생론》, 《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공역), 《열차는 정확했다》, 《여인과 군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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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좌 (지은이)    정보 더보기
2002년 『소설시대』에 단편 「태양은」 발표로 등단했다. 장편소설로 『열하나 조각그림』 『표현형』 『흐릿한 하늘의 해』 『숨』 『날마다 시작』, 연작소설로 『희미한 인(생)』, 소설집으로 『반대말·비슷한말』이 있고, 학술서로 『도이칠란트·도이치문학』 『창작과 사실. 양심으로서의 문학에 대한 고찰 1983~2009』 등이, 번역서로 『강 풍경을 마주한 여인들』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 카프카의 편지 1900~1924』 등이 있다. 이화문학상(2004), 광주문학상(2014), PEN문학상(2017), 박용철문학상(2023) 등을 수상했다. 전남대학교 독일언어문학과 명예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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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모 (지은이)    정보 더보기
부산대학교 독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카를스루에 대학교와 쾰른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현재 부산대학교 독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 하인리히 뵐 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교양교육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하인리히 뵐의 문학 세계』, 『독일문학의 이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신 독일문학사』(공역), 『창백한 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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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종 (옮긴이)    정보 더보기
전남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하인리히 뵐(Heinrich Boll)의 가톨릭적 종교관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쾰른에서 수학했다. 현재 전남대학교에서 독일어 강의를 하고 있다. ● 주요작품 ▶ 저서-《하인리히 뵐의 삶과 문학》, 《독일문화와 사회》, 《섹슈얼리티로 이미지 읽기》 등.▶ 역서-《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논문-「전후 폐허문학 다시 읽기」 등 다수.▶ 지역역사문화예술, 이민자와 난민문제, 현대인의 실존문제, 노년 및 생태문학, 포스트 휴먼적 상상력을 다룬 문학 등에 주요 관심사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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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경 (지은이)    정보 더보기
소설가. 1997년 《세계의문학》에 단편 〈둥근잎나팔꽃〉을 게재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수화》, 《나비를 태우는 강》, 《꾼-이야기 하나로 조선을 희롱한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 《탐욕-사랑은 모든 걸 삼킨다》, 《화투 치는 고양이》, 《그림자 개》, 《조지아 오키프 그리고 스티글리츠》,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 《열애를 읽는다》, 《울지 마라, 눈물이 네 몸을 녹일 것이니》,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 《윗도리》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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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연 (옮긴이)    정보 더보기
독일 트리어대학에서 독어독문학 전공, 교육학,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을 수학했으며, 독일 요한 볼프강 괴테 프랑크푸르트대학교에서 독일 관념주의 철학과 정신분석학에 입각해 독일 낭만주의 문학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덕성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호프만의 『브람빌라 공주』를 번역하여 한독문학번역연구소가 수여하는 번역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분야는 문화외교, 문화정책, 문화경영 그리고 정신분석학, 탈식민주의 이론, 문화기호학에 입각한 문학비평, 매체연구, 문화분석이다. 대표 연구업적은 『정신분석』, 『문화 민주주의독일어권 문화정책과 예술경영』(공저), 「정신분석학과 문학비평」, 「정신분석학과 디지털문학비평」, 「정신분석학과 다문화사회의 문화적 저항탈식민주의 이론을 중심으로」, 「독일문화정책과 예술경영의 현황」, 「독일 문화정책과 사회적 시장경제의 연계성」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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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윤희 (지은이)    정보 더보기
부산대학교 독어교육과 강의전담교수 대표 논저로 <대중문화와 문학(공저)>(부산대학교 출판부, 2015), 「노년의 행복과 불행 사이에서 피어난 <불안의 꽃>」(한국독일언어문학회, 2017), <베를린과 파리(공저)>(부산대학교 출판부, 2017), 학제 간 연구로 인류학의 연구방법을 문학에 적용한 <에스노그래피로서의 문학의 가능성-르포문학과 디아스포라문학을 중심으로>(한국독일어문학회, 2020), 「유디트 헤르만의 <모든 사랑의 시작>에 나타나는 소통 부재와 경계 지키기」(한국독일어문학회, 2022) 등이 있다. 주요 관심사는 여성과 노인 문제, 이민자와 난민 문제, 포스트 휴먼적 상상력을 다룬 문학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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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세 (지은이)    정보 더보기
독일 베스트펠리쉐 빌헬름스 뮌스터 대학교에서 음악학, 사회학, 교육학을 전공하고 19세기의 음악이론과 철학사상을 음악해석과 연결시키는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문화예술정책, 문화예술경영과 문화예술비평과 분석, 그리고 구스타프 말러, 토마스 만, 문화적 정체성에 관한 연구이다. 대표 연구업적은 「낭만주의와 19세기 음악에 대한 이해」, 「유토피아예술의 미학적 가치와 경제적 윤리의 융합」, 「문화민주주의에 대한 논의와 현황」, 「독일 예술경영과 문화민주주의」(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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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영 (지은이)    정보 더보기
2018년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서울대학교, 명지대학교에서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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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하여
1972년 10월 19일 아테네에서 위르겐 크리츠(Jurgen Kritz)와의 인터뷰

안은영

위르겐 크리츠 (이하 크리츠): 뵐 선생님[Heinrich Boll, 1917~1985, 독일의 소설가, 1971년에 발표한 <여인과 군상(Gruppenbild mit Dame)>으로 이듬해인 1972년에 노벨문학상 수상],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서 선생님께서도 분명히 기뻐하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하인리히 뵐 (이하 뵐): 네, 그렇습니다.
크리츠: 선생님께서는 이미 몇 해 전부터 스톡홀름의 노벨문학상 후보자 명단에 올라 있었습니다.
뵐: 네.
크리츠: 이전의 이런저런 공론 이후에 선생님께서는, 어쩌면 선생님이 언젠가 실제로 노벨상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하고 계셨습니까?
뵐: 아닙니다. 상당히 많은 후보가 당선 후보로 계속 거론되어 왔고, 그 중에서 특히 그레이엄 그린[Graham Greene, 1904~1991, 영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문학평론가]이 매우 유력시 되었었지요. 그래서 저는 누가 당선 후보로 거론되더라도 수상에 대해서 미리 예상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크리츠: 독일 작가로서 선생님의 이번 노벨상 수상은 1929년 토마스 만(Thomas Mann)의 수상 이후 매우 오래간만입니다. 선생님, 노벨상 수상과 더불어 큰 명성을 얻게 되셨는데, 이것이 선생님에게 어떤 실제적인 가치도 있겠지요?
뵐: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혹시 경제적인 부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크리츠: 아닙니다. 노벨상 수상으로 인한 명성이 앞으로의 작업을 위해서 또 직접적인 정치적 참여를 위해서 하나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뵐: 저는 그것을 강화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문학적인 작업은 물론이고, 제가 1945년 이후 계속 해 왔고 또 계속 써 왔던 모든 것의 강화 말이지요. 이 점에 있어서 노벨상 수상은 저에게 문학 외적인 활동의 강화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크리츠: 지금 서독 내에서 선생님의 노벨상 수상에 대한 첫 반응이 벌써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서 노벨상 수상이 선생님에게 큰 부담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염려를 하시는지요?
뵐: 아니요, 저 자신에게 부담되지 않습니다. 저는 그러한 반응이 양적으로 화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적이라고 한 이유는, 그러한 반응에 대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해명을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논쟁은 저에게가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불쾌한 상황을 만들어 낸 사람들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츠: 서독에서 이미 작년에 선거가 있었습니다. 지금과 유사한 경우가 있는데, 바로 빌리 브란트의 경우지요[Willy Brandt, 1913~1992, 독일 사회민주당(SPD) 출신, 서베를린 시장 역임, 제4대 연방수상(1969~1974),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과의 화해를 시도하는 그의 동방정책이 냉전종식과 세계평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 197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함]. 연방수상인 빌리 브란트가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때, 선거 간섭과 금지된 서독 내정 간섭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목소리들이 있었습니다.
뵐: 네,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결정되던 그 날, 저는 우연히 오슬로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노벨상 위원회 위원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 사람들은 극도로 보수적인 사람들이고 또 모두 사회민주주의자들도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정치가가 상을 받으면 그것은 정치적인 행위라고 하는 그런 주장에 대해서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비록 제가 그러한 주장이 정치가에게 제기되는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반면에 그러한 주장이 작가에게 제기되는 것에 대해서는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그 작가가 이미 25년 전부터 서독에서 작품을 발표해 온 경우라면 말이지요.
크리츠: 그렇다면 그러한 공격이 당연히 선생님께서 정치적으로 선생님 자신을 표명하기 시작한 것에 대한 결과라는 것입니까?
뵐: 물론입니다.
크리츠: 정치적인 격론 속에서 선생님께서는 아마도 앞으로 몇 주 동안 몇 가지 일을 잘 극복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선생님께서는 의식적으로 선생님을 향한 공격의 여지를 만드시지요. 그러한 일에 대해 준비되셨습니까?
뵐: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 보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저는 압니다. 그리고 저는 저의 약점을 드러내 보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 암시하신 그러한 논쟁 속에서 저는 아주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그러한 일에 준비되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을 건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미리 준비하지 않고, 그때그때의 경우에 따라서 반응할 것입니다. 저는 11월 8일이나 9일이 되어서야 독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저를 공격하는 주장이 제기될 것에 대한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크리츠: 이제 많은 사람이 선생님에게 정치적인 논쟁에 뛰어들었으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고 비난할 것입니다.
뵐: 저는 민감하지 않습니다. 민감함은 우선 무엇보다도 제 직업을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이것을 ‘감수성’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이러한 맥락에서 저는 당연히 민감하다고 또는 감수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러한 비난이 저에게 그렇게 큰 타격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한 주장에 대해 저는 단지 불쾌할 뿐입니다. 독일 사람으로서, 독일어로 작품을 쓰고 외국에서 어느 정도의 명성을 가지고 있으며 외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외국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독일 사람으로서, 저는 그러한 주장을 단지 불쾌하게 생각할 뿐입니다. 그러한 주장은 제 자신에게 그렇게 큰 타격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작가로서의 저의 감수성은 오히려 저를 어느 정도 보호해 주기 때문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자, 우리 기다려 봅시다.
크리츠: 선생님께서는 지난 몇 개월 동안의 이러한 일련의 격론 속에서 뭔가를 배우셨다고 하셨는데, 이러한 학습과정이 무엇과 관련된 것입니까?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상황이 어떻다는 것을 배우셨다는 것인가요? 아니면 이러한 정치적 상황에서 좀 더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배우셨다는 것인가요?
뵐: 아닙니다. 어느 정도의 말의 본래적 의미의 차이를 존중하는 것, 그리고 저의 언어구사, 그러니까 특정한 정치적 맥락 속에서 제가 사용하는 표현을 좀 더 제대로 검열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배웠다는 것입니다. 또 강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배웠습니다. 작가로서 저는 이미 그것에 익숙해 있습니다. 작가는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비난의 물결이 그 한 사람에게 몰아칠 때 말이지요. 그렇다고 우리가 또 그렇게 둔감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작가에게 한 번 물어보세요. 그리고 정치적으로 참여하려는 사람은 그러한 것을 예상하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예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저에게 타격을 주려고 하는지 기다려 볼 것이고, 저의 주 무기인 정중함을 계속해서 투입해 볼 생각입니다. 저는 정중함이 갖는 위험한 힘을 여전히 확신합니다.
크리츠: 정치적인 참여, 이것이 선생님에게는 일차적으로 도덕적인 참여인가요?
뵐: 저는 정치와 도덕의 경계에 대해서 이 두 가지를 구별하면서 상당히 오랜 시간 토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서 저는 논쟁의 원인을 전혀 보지 못하겠습니다. 또 저의 정치적 참여가 일차적으로 도덕을 설파할 수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의 정치적 참여는 제가 살아온 인생으로부터 야기된 것입니다. 1945년 저는 28살이었지요, 그러니까 이미 그렇게 어린 나이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서독의 탄생을 매우 주의 깊게 관찰했고, 1945년부터 1972년까지 있었던 매우 많은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기억으로부터 제 자서전이 나온 것입니다. 어느 한 사람의 기억, 그러니까 20살에 군인이 되었고 28살에 귀향한 사람, 지금도 다시 알아들을 수 있는 특정한 목소리와 말을 아직도 생생하게 귀에 가지고 있는 어느 한 사람의 기억으로부터 말이지요. 그것이 도덕적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에 매우 민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감상적인 채로 있고자 합니다.
크리츠: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선생님의 입장이 1945년 이후, 또 바로 최근의 경험으로 인해서 다소 달라졌습니까?
뵐: 아니요. 저는 여전히 의회 민주주의에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의회 민주주의가 각 이익대변 단체들의 이해관계를 정말로 균형 있게 대변할 수 있을 때 말이지요. 고용주와 노동자의 비율을 봤을 때, 지금 우리의 의회에서는 그런 모습이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과반수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그 과반수가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저는 이번 선거에서 개선의 가능성을 봅니다.
크리츠: 혹시 좀 전에 나누었던 정치와 도덕의 긴장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한 번 잠시 돌아가 볼 수 있을까요?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보자면, 선생님의 일차적인 관심사는 실제로 정치입니까? 아니면 자비로움입니까? 이 자비로움이라는 개념이 선생님에게 매우 핵심적인 개념인 것 같은데요.
뵐: 자비로움이 부족합니다. 적어도 우리는 기독교적 이름을 갖고 있는 정당을 가지고 있습니다[기독교민주당(Christlich-Demokratische Union Deutschlands, 약칭 CDU 체데우)과 기독교사회당(Christlich-Soziale Union in Bayern, 약칭 CSU 체에스우)]. 2000년 동안 기독교적이라는 것(das Christliche)은 항상 새롭게 정의되어 왔고, 그 안에는 도덕적 요구가 있습니다. 사회적(sozial), 그리고 민주적(demokratisch)이라는 말 속에도 역시 도덕적 기준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독일 연방의회의 정당들, 즉 앞에서 언급한 기독교민주당과 기독교사회당뿐만 아니라 자유민주당[Freie Demokratische Partei, 약칭 FDP 에프데페]도 역시 그들이 그들 스스로를 사회적, 민주적이라고 명명함으로써 도덕적 기준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들 사이에 도덕적 차이는 없다고 봅니다.
크리츠: 선생님, 자비로움과 정치, 이 두 가지가 서로 충돌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뵐: 충돌할 필요 없습니다. 제 생각에, 문제는 민주주의로 인해 발생합니다. 봉건 사회의 영주는 자비로울 수 있었습니다. 즉, 관대할 수 있었지요. 저는 의회 민주주의와 같은 형식-민주주의들이 자만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자만으로 인해 형식-민주주의들은 남의 말을 들을 수 없게 됩니다. 전혀 유머가 없는 상태에서 남의 말을 들을 수 없게 되지요. 은혜나 사면과 같은 개념에 대해 봉건시대보다 더 귀를 닫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민주주의는, 우리의 민주주의도 역시, 이러한 은혜나 사면과 같은 개념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거의 완전히 선동된 언론에 대항해서 말입니다. 언론은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 하나의 교정수단, 그것도 매우 중요한 교정수단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결정을 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저는 많은 오해와 논쟁이 이러한 긴장관계 내에서 생겨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대해서 우리는 언젠가 정치인들과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그들을 언론의 선동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면 비공개적으로 이야기를 해야 되겠지요.
크리츠: 언론의 선동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그것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거지요?
뵐: 무자비하고 유머가 없는 그러한 형식-민주주의를 실행하고, 그 다음에는 다시 파시즘으로 돌변하는 서독 언론의 특정한 방식 말입니다. 서독에서 사람들이 항상 폭력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단지 폭탄, 권총, 수류탄에 의한 폭력만을 생각합니다. 좋습니다. 이것은 범죄적 폭력의 형태지요. 하지만 신문기사에 의한 폭력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정의되지 않은 폭력, 그리고 또다시 폭력을 부르는 폭력이 아마도 수백 가지 될 것입니다.
크리츠: 자비로움과 은혜가 정치적으로 되어야 한다면, 또는 관철되어질 수 있어야 한다면 그것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폭력을 행사할 준비까지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닙니까?
뵐: 누구에 의해서 말입니까?
크리츠: 자비로움을 실행하고자 하는 그 사람 자신에 의해서요.
뵐: 아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당히 큰 문제는 무엇인가 하면, 자신의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느끼거나 또는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끼는 이 세상 어떤 집단도 폭력을 포기할 기회를 지금까지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대편도 역시 폭력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끔찍한 악순환입니다. 예를 들어, 남아메리카, 베트남, 북아일랜드의 경우, 마찬가지로 내정에 관한 모든 논쟁, 그리고 미국의 경우를 보세요. 폭력으로 무엇인가를 관철하고자 하는 이런 사람들에게 폭력을 사용하는 것 외에 그 어떤 다른 기회도 제공되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이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서 저는 폭력에 대한 그 어떤 정당성도 볼 수 없으며, 그 어떤 정당성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저는 또한 정치적, 역사적으로 이러한 폭력 없이 그 어떤 것도 성취되지 않으며 또한 성취된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것은 정말 끔찍한 인식입니다.
크리츠: 선생님의 소설 <어느 복무의 종말(Ende einer Dienstfahrt)>의 결말에서도 독일 연방군의 차가 불타지요, 그러니까 파괴되지요……. 그러니까 하나의 폭력 행위가…….
뵐: 네, 사물에 대한 폭력입니다. 물론 예술 작품으로서입니다. 거기에서 저는 또한 우리의 도로 교통 상황과의 관계를 봅니다. 교통사고를 통해서 매일 사물에 대한 폭력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비록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말이지요.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는 이러한 사물에 대한 폭력은 생산을 작동시키기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아주 냉정하게 통계상으로 이 문제를 보세요. 교통사고를 통해서 더 많은 자동차가 팔리고, 그럼으로써 또 교통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사물에 대한 폭력의 끔찍한 변증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사물에 대한 폭력을 향한 비탄의 소리가 매우 위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츠: 그것은 마치 선생님에게는 두 가지 형태의 삶이 있다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소설가, 그리고 정치적인…….
뵐: 아닙니다. 제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삶은 소설가로서의 삶입니다. 책상에 앉아서 언어로 하는 작업이면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저는 정말로 좋습니다, 번역가로서도 마찬가지고요. 정치적인 일은 직접적으로 공개적인 활동인데, 그 일은 근본적으로 저에게 그다지 잘 맞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저는 책상과 홀 사이에서 흔들리는 거지요.
크리츠: 단지 흔들리기만 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갈등인가요?
뵐: 갈등입니다. 명백한 갈등입니다. 제 스스로 책상 쪽으로 기우는 경향을 보이다가, 그 다음엔 또다시 공개적으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낍니다. 끊임없는 갈등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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