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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폭 빠진 15 이야기

사랑에 폭 빠진 15 이야기

로베르트 무질, 볼프강 보르헤르트, 요한 페터 헤벨, 토마스 만, 페터 빅셀, 프란츠 카프카, 하인리히 뵐, 헤르만 헤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후고 폰 호프만스탈, 로더리히 펠데스 (지은이), 차봉희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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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폭 빠진 15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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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사랑에 폭 빠진 15 이야기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기타 국가 소설
· ISBN : 9788995181973
· 쪽수 : 310쪽
· 출판일 : 2009-02-23

책 소개

하인리히 뵐, 요한 페터 헤벨, 볼프강 보르헤르트, 프란츠 카프카, 토마스 만, 후고 폰 호프만슈탈, 마르케스, 로더리히 펠데스, 로버트 무질, 헤르만 헤세, 페터 빅셀 등 12명의 작가의 열다섯 편의 단편소설을 모았다.

목차

하인리히 뵐_통계에 함께 셀 수 없는 애인
요한 페터 헤벨_예기치 않은 재회
볼프강 보르헤르트_세 명의 칠흑처럼 검은 왕들
프란츠 카프카_시(市)의 문장(紋章)
토마스 만_기차 사고
후고 폰 호프만슈탈_672 번째 밤의 동화
마르케스_마꼰도의 비를 관찰한 이사벨의 독백
마르케스_포르베크 부인의 행복한 여름
마르케스_사랑을 넘어서 지속되는 죽음
로더리히 펠데스_옭아매기
로버트 무질_허수(虛數)
헤르만 헤세_대학입학시험
페터 빅셀_어긋난 시대의 어긋난 이야기
페터 빅셀_이 문장들
페터 빅셀_여행 떠나기의 문법

역자후기
페터 빅셀과의 대화 - 작가는 거짓말쟁이지요
번역 텍스트 출처제시

저자소개

로베르트 무질 (지은이)    정보 더보기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에서 태어났다. 빈 기술사관학교, 브륀 공과대학 등에서 수학하면서 니체, 도스토예프스키, 마테를링크, 에머슨 등의 작품을 읽었다. 이후 베를린대학에서 철학과 논리학,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첫 소설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Die Verwirrungen des Zoglings Torleß)을 발표하여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08년 같은 대학에서 에른스트 마흐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철학 교수의 길을 포기하고 작가로서의 길을 걷는다. 1930년과 32년 평생의 역작 『특성 없는 남자』(Der Mann ohne Eigenschaften) 1, 2권을 출간했으나 1938년 나치 정권에 의해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금지 서적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특성 없는 남자』를 완성하기 위해 스위스로 이주했으나 질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결국 미완성인 채로 제네바에서 숨을 거두었다. 생전에 평단 외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특성 없는 남자』는 아돌프 프리제가 유고를 정리한 전집이 출간되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고 지금은 20세기에 발표된 가장 중요한 독일어 소설로 꼽히고 있다. 이들 작품 외에 단편집 『합일』(Vereinigungen) 『세 여인』(Drei Frauen), 희곡 『몽상가들』(Die Schwarmer), 문집 『생전의 유고』(Nachlass zu Lebzeiten)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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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보르헤르트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21년 독일 함부르크의 에펜도르프에서 태어났다. 열다섯 살에 시를 쓰기 시작해 고등학교 시절 함부르크의 유력 일간지에 시를 발표하고, 졸업 후에는 서점 직원으로 일하면서 연극 수업을 받았다. 배우로 활동하던 중 제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어 혹독한 전쟁을 체험했다. 군 복무 시절 자해 혐의로 체포되어 투옥되었고, 감옥과 전장을 오가는 가혹한 생활로 인해 병을 얻었다. 1945년 프랑스군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로 이송되던 중에 탈주한 그는 함부르크로 돌아와 극장에서 조감독으로 활동하지만, 병이 악화되어 결국 쓰러지고 만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죽음을 앞둔 2년 남짓의 짧은 기간 동안 병상에서 집필되었다. 1947년 11월 20일 스물여섯 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작품으로 생전에 출간된 시집 『가로등, 밤, 별들』과 단편집 『민들레』가 있으며, 사후에 출간된 단편집 『이번 화요일에』와 유고를 함께 묶은 『보르헤르트 전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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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페터 헤벨 (지은이)    정보 더보기
독일의 서남부 바덴 지방에서 태어났다. 신학을 공부하고 개신교의 목사가 되었다. 서른이 넘어 김나지움의 교사가 되어 종교뿐만 아니라 과학교과도 가르쳤다. 나중에는 교장을 역임하였다. 목사로서는 바덴공국의 신교 최고직에 올랐다. 고등학교 재임시에 당시 성경을 제외하고서는 유일한 서민들의 읽을거리기도 했던 달력을 제작하면서 거기에 자신이 쓴 글들을 발표하였는데 그것들이 대단한 사랑을 받았다. 나중에 그 이야기들을 모아《 라인 지방 가정의 벗의 보석 상자》라는 책으로 발표하였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독일의 남녀노소가 애독하는 책이 되었고, 그 이야기 형식은 달력이야기라는 독특한 문학 장르가 되었다. 헤벨은 이 책과 자기가 평생 살았던 지방의 사투리로 쓴 한 권의 시집만으로 독일문학사에서 빠질 수 없는 작가가 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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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 (지은이)    정보 더보기
20세기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평론가. 독일 북부의 뤼베크에서 부유한 사업가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세기말의 암울한 데카당스 분위기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일찍부터 문학,?예술, 철학 등에 관심이 많았다. 1891년 아버지의 죽음으로 형편이 어려워지자 보험회사에서 잠시 근무했고, 뮌헨으로 이사 가 1933년까지 살았다. 이때부터 집필 활동을 시작했고, 쇼펜하우어, 바그너, 니체 등에 심취했다. 1898년 단편집 《키 작은 프리데만 씨》를 발표하고, 1901년 《부덴브로크가》를 출간하여 작가로서 자리를 잡는다. 이어 1903년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등을 집필한다. 1905년에 카티아 프링스하임과 결혼하여 그해에 장녀 에리카 만을 얻는다. 1911년에는 휴양지에서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서거 소식을 듣고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쓰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발표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18년 10월에 600쪽이 넘는 방대한 논문집 《비정치적인 사람의 관찰》을 완성하는데, 여기서 그는 세계대전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다. 그러나 차츰 이러한 경향에서 멀어져 나중에는 민주주의와 시민계급을 옹호했고, 이러한 세계관이 반영된 대작 《마의 산》을 1924년 발표, 소설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으며 1929년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1933년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난과 위대함’이라는 제목으로 국외 강연 여행 도중 히틀러의 집권으로 신변에 위협을 느껴 귀국을 포기한다. 이후 스위스에서 《요셉과 그 형제들》을 집필하여 1943년에 4부작을 완성한다. 1936년에는 독일 국적을 포기하고 1938년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보내는데, 여러 강연과 연설로 바쁜 와중에도 1947년 음악과 독일에 관한 소설이라 할 만한 《파우스트 박사》를 내놓는다. 1952년 미국에서 스위스로 거처를 옮기고 3년 후인 1955년 취리히에서 영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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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빅셀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35년 스위스 루체른에서 태어났다. 1964년 《사실 블룸 부인은 우유 배달부를 알고 싶어 한다》를 발표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47그룹상(1965), 스위스 문학상(1973), 요한 페터 헤벨 문학상(1986), 고트프리트 켈러 문학상(1999) 등을 수상했다. 그는 스위스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며, 스위스의 모든 교과서에 그의 글이 실려 있을 정도로 스위스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계절들》,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못 말리는 우리 동네 우편배달부》, 《케루빈 함머와 케루빈 함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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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83년 7월 3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한 보헤미아 왕국(지금의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유대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독일계 인문 중고등학교인 김나지움에서 교육받았다. 1901년 프라하의 독일계 대학인 카를 페르디난트대학교에 입학해 화학을 공부하다 법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한때 독문학에 관심을 두고 독문학을 전공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 무렵 평생의 벗 막스 브로트를 만나 교우하며 문학에 대한 열정을 더욱 키워갔지만 결국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법학 공부를 이어가 1906년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년간 법원에서 법률 시보로 실습하고 보험회사에 입사했다. 대학 시절부터 문학 창작에 뜻을 두고 단편소설과 산문을 집필해왔으나 고된 회사 업무로 글을 쓸 여력이 없을 정도가 되자 1908년 ‘보헤미아왕국 노동자재해보험공사’로 직장을 옮기고, 14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쓰기에 열중했다. 1917년 폐결핵 진단을 받은 후에도 계속 작품을 집필했으며 1922년 병의 증세가 악화해 직장에서 퇴직한 후 1924년 6월 3일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요양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카프카는 숨을 거두기 전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의 유고를 모두 불태워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브로트는 카프카의 많은 작품과 일기, 편지 등을 편집, 출판해 카프카의 삶과 문학 세계를 세상에 널리 알렸다. 주요 작품으로 〈변신〉 〈시골 의사〉 〈단식 광대〉 등 중단편과 장편 《실종자》 《소송》 《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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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뵐 (지은이)    정보 더보기
목공예를 가업으로 하는 가문의 여섯 번째 아들로 1917년 쾰른에서 태어났다. 카이저 빌헬름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1939년 쾰른대학교의 독문학과에 입학하나 곧 제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었다. 전쟁 중에는 부상을 당해 야전병원 생활을 하기도 하고 꾀병과 서류 조작으로 탈영을 하기도 했다. “무의미한 전쟁을 위해서 결코 죽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전후, 귀향해서 ‘전쟁에서 본 것’과 전후의 ‘폐허’에 대해서 쓰기 시작했다. 1949년 첫 소설 ≪열차는 정확했다≫를 출간하고 1953년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발표하면서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이후부터 독일 사회의 불균형적인 발전과 팽배해진 물질주의로 인한 도덕성의 결여에 대해 지적하고, 가톨릭교회의 부패에 대해 정면으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뵐이 보기에 독일 가톨릭교회는 정부의 자본주의 경제 정책에 순응하고 동조함으로써 독일에서 그 재정 기반을 확보해 갔기 때문이다. 특히 1959년에 발표한 ≪9시 반의 당구≫는 청산되지 않은 과거를 망각하고 재무장을 논하며 오로지 이윤 추구와 소비 조장만으로 치닫는 독일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1971년에는 성취 지향적 사회에 대한 저항을 담은 ≪여인과 군상≫을 발표하고 이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74년에는 한 무고한 여성이 언론의 횡포에 의해 사회로부터 매장되어 가는 과정을 담은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발표하고, 1979년에는 환경 문제를 다룬 소설 ≪신변 보호≫를 발표했다.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활동을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실천했던 뵐은 1985년 동맥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사망 이후 ‘쾰른 문학상’은 ‘하인리히 뵐 문학상’으로 개칭되었고, 쾰른 루트비히 박물관의 광장도 그의 이름을 땄으며, 독일의 열세 개 학교에는 하인리히 뵐의 이름이 붙었다.1967년 독일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게오르크 뷔히너 상’을 수상한 그는, 1971년 독일인으로는 최초로 국제펜클럽 회장으로 선출된다. 이미 독일 국내에서 정치적, 사회적 현안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는 데 거침이 없었던 그는 국제펜클럽 회장이 된 후 박해받고 있는 여러 나라의 작가들을 돕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현실적으로뿐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항상 사회에서 소외받고 억압당하는 약자의 편에 서고자 했던 그의 작품 세계는 1972년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더더욱 많은 주목을 받았다. 현재 그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독일 작가의 하나로 꼽힌다. 1985년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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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지은이)    정보 더보기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요하네스는 목사였고, 어머니 역시 독실한 신학자 가문 출신이라 기독교적 분위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890년 라틴어 학교에 입학했고, 이듬해 마울브론 신학교에 들어갔다. 하지만 신학교의 속박된 생활을 못 견디고 뛰쳐나와 한때 자살을 시도했다. 시인이 되기를 꿈꾼 뒤 시계 공장에서 시계 톱니바퀴를 닦으며 문학수업을 시작했다. 1895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해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를 출간했다. 1904년 첫 장편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출간하여 문학적 지위를 얻었다. 그해에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했으며, 스위스로 이주해 시작에 몰두했다. 그 후 인도 여행으로 동양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으며, 아내의 정신병, 헤세 자신의 신병 등 가정적 위기를 겪었고,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스의 광적인 폭정에 저항하는 등 파란 많은 세월을 겪었다. 주요 작품으로 《수레바퀴 밑에서》, 《게르트루트》, 《크눌프》, 《데미안》, 《싯다르타》, 《나르치스와 골트문트》, 《유리알 유희》(1946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등이 있다. 1877년 7월 2일 남부 독일 칼브에서 태어남. 1881년 스위스의 바젤로 이주함. 1890년 라틴 어 학교에 입학함. 1891년 어려운 주州 시험을 통과하고 마울브론의 신학교에 들어감. 1893년 칸슈타르 고교를 중퇴함. 1895년 서점 견습 점원이 됨. 1899년 처녀시집 《낭만적인 노래(Romantische Lieder)》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Eine Stunde hinter Mitternacht)》을 발간함. 1901년 시문집 《헤르만 라우셔(Hermann Lauscher)》를 발간해 시인 부세의 주목을 받음. 1902년 《시집(Gedichte)》을 어머니에게 헌정했으나, 어머니는 출판 직전에 별세. 1904년 최초의 장편소설 《페터 카멘친트(Peter Camenzind)》로 일약 인기 작가가 됨. 9세 연상인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함. 1906년 제2의 장편소설인 《수레바퀴 아래서(Unterm Rad)》를 발표함. 1907년 소설집 《이 세상 이야기(Diesseits)》를 발간함. 1908년 《이웃 사람(Nachbarn)》을 발간함. 1910년 《게르트루트(Gertrud)》를 발간. 방랑벽이 심한 그와 피아니스트인 아내와의 불화로 인도 지방으로 여행함. 귀국 후 스위스 베른으로 이주함. 1911년 시집 《도상(途上, Unterwegs)》을 발간함. 1912년 《우회로(迂廻路, Umwege)》를 발간함. 1913년 〈로스할데(Roßhalde)〉를 씀. 이 작품에 그려진 예술가의 결혼 생활의 파국은 마침내 헤세 자신의 현실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반전주의자로 지목받아 국적을 스위스로 옮겼으며, 같은 입장에 있던 R. 롤랑과 친교를 맺음. 1915년 서정적인 방랑자의 이야기 《크눌프(Knulp)》와 시집 《고독자의 음악(Musik des Einsamen)》을 발간. 전쟁의 체험과 정신병이 악화된 아내와의 이별 등은 헤세의 작품 경향을 일변시켰음. 1919년 정신 분석 연구로 자기 탐구의 길을 개척한 대표작인 《데미안(Demian)》을 발간함. 1922년 《싯다르타(Siddhartha)》와 〈내면에의 길(Weg nach Innen)〉에서 불교적 해탈의 비밀을 추구하였음. 1927년 《황야의 이리(Der Steppenwolf)》를 발표. 이 작품은 내외의 분열과 고뇌를 그린 《데미안》과 일관되어 있음. 1928년 에세이집 《관찰(Betrachtungen)》을 발간함. 1929년 시집 《밤의 위안(Trost der Nacht)》을 발간함. 1930년 스위스에 있으면서 《지(知)와 사랑(Narziss und Goldmund)》을 발표. 이 작품은 신학자로서 지성의 세계에 사는 나르치스와, 여성을 알고 애욕에 눈이 어두워진 골드문트와의 우정의 역사를 다룬 것임. 1933년 소설집 《작은 세계(Kleine Welt)》를 발간함. 1942년 《시집(Die Gedichte)》을 발간함. 1943년 20세기의 문명의 비판서라 할 수 있는 미래소설 장편 《유리알 유희(Das Glasperlenspiel)》를 발표함. 1945년 시선집 《꽃 피는 가지(Der Blutenzweig)》를 발간함. 1946년 괴테상과 노벨문학상 수상. 《전쟁과 평화(Krieg und Frieden)》를 발간함. 1951년 《만년의 산문(Spate)》을 발간함. 1954년 《헤세와 로망 롤랑의 왕복 서한》을 발간함. 1955년 《악마를 부름(Beschworungen)》을 발간함. 1962년 8월 9일 사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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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27년 콜롬비아의 아라카타카에서 태어나 외조부의 손에서 자라났다. 스무 살에 콜롬비아 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시작하지만 정치적 혼란 속에서 대학을 중퇴하고 자유파 신문인 《엘 에스펙타도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다. 1954년 특파원으로 로마에 파견된 그는 본국의 정치적 부패와 혼란을 비판하는 칼럼을 쓴 것을 계기로 파리, 뉴욕, 바르셀로나, 멕시코 등지로 자발적 망명 생활을 한다. 1955년 첫 작품 『썩은 잎』을 출간한다. 그 후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불행한 시간』, 등 저항적이고 풍자 정신이 넘치는 작품을 발표한다. 1967년 그의 대표작 『백년의 고독』을 집필하고 로물로 가예고스 국제 문학상을 수상한다. 198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자신의 작품 세계와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통찰한 수상 연설 「라틴아메리카의 고독」을 통해 전 세계 문인들로부터 ‘마술적 사실주의의 창시자’라는 헌사를 받는다. 이후 발표한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통해 다시금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그 밖의 작품으로 『족장의 가을』, 『순박한 에렌디라와 포악한 할머니의 믿을 수 없이 슬픈 이야기』, 『미로 속의 장군』, 자서전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등이 있다. 평단의 찬사와 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끊임없이 현역으로 글을 써 오던 그는 2014년 향년 여든일곱 살로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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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고 폰 호프만스탈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74~1929.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17세 때 운문극 <어제>를 발표하여 조숙한 천재성을 내보였다. 로리스라는 필명으로 시 <이른 봄>과 운문극 <바보와 죽음>을 쓴 그는 1903년 막스 라인하르트와 만나면서 희곡의 가능성을 탐색하기 시작하여 <엘렉트라>에서 고전극의 번안·개작을 시도하였고, <예더만>에서는 중세의 신비극을 현대에 소생시켰다.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엘렉트라'와 '장미의 기사' 대본을 썼다. 만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과 오스트리아의 붕괴에 충격을 받아 유럽, 특히 독일의 문화유산의 보전과 검증문제로 고심하면서 <독일어의 가치와 영예>를 집필하기도 했다. 산문극 <탑>은 오스트리아제국 붕괴 후에 쓴 비극이다. 그밖에도 우화소설 <그림자 없는 여인>, 미완소설 <앙드레아스> 등을 썼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막스 라인하르트와 함께 1920년부터 잘츠부르크 음악제를 만들었다. 55세에 뇌일혈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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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더리히 펠데스 (지은이)    정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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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봉희 (옮긴이)    정보 더보기
1941년 전남 광주 출생으로, 서울대 문리대 및 동대학원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남대 독문과 및 한신대 독문과 교수를 역임했고, ‘한국미디어문화학회’ 회장을 지냈다. 저서로 『비판미학』(1990), 『문학 텍스트의 전통과 해체 그리고 변신』(2003), 편저로 『수용미학』(1985), 『루카치의 변증-유물론적 문학이론』(1987), 『독자 반응 비평』(1993), 역서로 『현대사회와 예술』(1980), 『구성주의 문예학』(1995), 『렌쯔』(200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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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나의 조그만 애인이 이 다리를 건널 때면 ―그녀는 하루에 두 차례 지나간다.― 그때 나의 심장은 멈춰 선다. 지칠 줄 모르는 내 심장 박동은, 그녀가 가로수 길로 접어들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그냥 멈춰 작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순간에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를 나는 그들에게 침묵한다. 이 2분간만은 나에게, 오직 나에게만, 속하는 것이다. 그녀를 나에게서 앗아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 만일 그녀가 다른 쪽 보도에서 숫자를 세고 또 세야만 하는 침묵하는 나의 입을 지나가게 되면, 그때도 나의 심장은 다시 멈추어 선다. 그리고 그녀가 더 이상 보이지 않으면, 나는 그때야 비로소 다시 수를 센다. 사랑에 빠진 나의 눈앞에서 몇 분 동안의 행진하게 되는 행운을 얻은 모든 사람들은 통계의 영원성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유령 같은 그림자 남자들과 그림자 여자들. 통계의 제2 미래에 함께 행진하게 되지 않은 부재(不在)의 존재들(nichtige Wesen)……. - 본문 8~9쪽, '통계에 함께 셀 수 없는 애인' 중에서


그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혔지만 그러나 동시에, 그녀를 자신의 팔에 끌어안는다는 것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그는 그 하녀의 아름다움이 그로 하여금 동경에 가득 차게 하지만, 그러나 그의 욕망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으며, 그래서 그는 그의 시선을 오랫동안 그녀에게 향하지 않았고, 방 밖으로, 바로 골목길로 나갔으며, 그리고 어떤 기이한 불안에 싸인 채 집들과 정원들 사이로, 협소한 그늘 속에서 계속 걸어갔다. […] 그의 머릿속에서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마침내는 괴롭히면서, 그의 의지에 반해, 한 시인의 시구(詩句)가 계속 반복되었다: “하늘거리는 카네이션의 줄기에서, 무르익은 곡식알맹이의 방향(芳香) 속에서, 당신은 나의 동경(憧憬)을 자극 했지요; 그러나 내가 찾아 헤맸던 당신을 발견했을 때, 당신은 내가 찾던 그것이 아니라 당신 영혼(靈魂)의 자매였소.” - 본문 58~59쪽, '672 번째 밤의 동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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