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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비평/칼럼 > 한국사회비평/칼럼
· ISBN : 9791157060719
· 쪽수 : 348쪽
· 출판일 : 2016-11-05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
추천의 글 1 · 추천의 글 2
제1부 무엇이 걱정인가
01 오만과 편견 :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인가?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인가? │ 오리엔탈리즘과 불교의 신비화 │ ‘깨달음’이라고 하는 오만과 편견 │ 불교 본래의 ‘전통’은 무엇인가? │ 부처님은 도인이 아니라 행동가였다 │ 현재를 부처로 살라 │ 대담
02 개신교의 배타주의와 타자의 악마화는 필연적인가?
그리스도교 배타주의는 어디에서 왔는가 │ 한국 개신교의 배타주의의 역사, 분단과 증오 │ 오늘의 한국 개신교의 배타주의, 다시 전면전을 향한 망상 │ 대담
03 가톨릭의 권위주의
가톨릭교회가 보이는 권위주의의 두 모습 │ 권위주의를 가져온 성경과 트리엔트 공의회 │ 가톨릭은 권위주의를 버리고 가난한 사람에게 가야 │ 대담
제2부 경계 너머: 왜 걱정인가
04 그리스도교는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있는가
그리스도교와 가난 │ 가난한 사람과 그리스도교의 관계 │ 누가 가난한 사람인가 │ 지금 그리스도교는 가난한가 │ 그리스도교는 어떻게 가난할 것인가 │ 대담
05 이웃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는 불교
부처님의 꿈과 당부 │ 왜 이웃의 고통에 외면하는가? │ 감성의 복권: 머리의 종교에서 가슴의 종교로 │ 시민보살 │ 대담
06 성형사회의 그리스도교
성형 권하는 기형적인 ‘성형사회’ │ 성형사회의 병증: 강박증과 공포증 │ 성형사회와 교회 │ ‘성형사회 너머’의 그리스도교 │ 대담
제3부 어떻게 해야 하는가
07 신자유주의적 현상들로서의 ‘영성들’과 ‘그것 너머의 영성’
개신교 배타성의 배후, 성형사회 │ 영성 현상이 무엇인가 │ 영성의 의미와 맥락 │ 사회적 영성, 타자됨의 영성 │ 대담
08 자유와 해방을 향하여
권위주의와 가난, 그리고 해방자 예수 │ 신앙과 정의의 관계, 그리고 자유와 해방 │ 고통받는 예수, 가난한 사람들 │ 자유와 해방을 위한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종교를 위한 제언
09 배타적 주장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정의(正義)들’의 화쟁
옳음과 옳음의 대결, 안티고네와 화쟁 │ 해결이 아닌 대결로, 한국 사회의 문제 │ 원효의 화쟁론과 화쟁의 정치학 │‘옳음’과 ‘옳음에 대한 견해’는 다르다: 사실과 진실의 문제 │ 정의‘들’의 화쟁 │ 대담
마치며
주석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과연 깨달음은 일종의 체험이며, 이 체험이 불교의 요체인가? 이 물음에 답하기에 앞서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깨달음이 단지 종교적 체험으로만 머문다면 불교는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종교라는 덫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개인의 문제, 때로 불교 전통에서 말하는 생사의 문제가 사소한 문제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개인은 개체로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사회와 무관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불교가 그 관심을 개인의 생사 문제에만 국한한다면, 스스로 제도적 종교로서의 존립 근거를 없애는 일이며 연기와 무아를 핵심으로 하는 불교의 세계관과도 맞지 않다. 사실 불교에서의 깨달음을 어떤 특수한 심적 체험으로 환원해버린 것은 근대 서구적 관점의 영향 탓이다. (23p_‘깨달음’이라고 하는 오만과 편견)
한기총이 불러일으킨 주된 효과는 무수한 미시동원체들을 생성하고, 재활성화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미시적인 영역에서 이념적 적그리스도를 찾아내고, 그들을 향해 아낌없는 공격을 퍼부었다. 미시동원체들은 지난 1945~1960년에 공격적 개신교도들이 벌인 전면전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망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서북청년단’이라는 이름을 다시 내건 단체의 태동이다(단, 이들이 주로 공격을 퍼붓는 장이 사이버공간이라는 점에서, 과거 1940~1950년대의 공격적 기독교 신자들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이 극우적 미시동원체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이른바 종북 마케팅의 자원이 되었다. 최근 이러한 개신교의 배타주의적 신앙은 이념 프레임을 넘어서 무슬림을 적으로 삼는 인종주의적 프레임(제노포비아)과 성소수자를 적으로 하는 이성애주의적 프레임(호모포비아)으로 지형을 확장하고 있다. (59p_오늘의 한국 개신교의 배타주의, 다시 전면전을 향한 망상)
개신교가 ‘타인이 악마다’라고 주장한다면, 가톨릭은 ‘나는 천사’라고 말한다. 자신이 천사라는 말이 타인은 악마라는 뜻을 논리적으로 포함하진 않지만, 정서적으로 타인을 나보다 아랫사람으로 얕잡아보기 쉽다. 가톨릭은 하느님이 주신 구원의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자신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덜 관용적이기 마련이다. 더구나 진리를 안다고 확신하면서 권력을 독점하려 애쓰는 경향이 있다. 진실로 진리를 아는 사람은 권력을 멀리 할텐데 말이다. (92p_ 가톨릭교회가 보이는 권위주의의 두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