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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한국문학론 > 한국비평론
· ISBN : 9791194366829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25-07-04
책 소개
목차
04 2025년 제26회 젊은평론가상 취지서
수상작
10 백지은_마음대로 사는 사람아
후보작
24 김보경_경이의 세계, 시라는 경이
54 박다솜_너를 먹이는 것이 나의 존재 방식 ― 돌봄의 숭고함과 모성 정체성의 결탁
72 박동억_SF시란 무엇인가
102 이은지_문학의 (이중의) 정치 ― 문학의 민주주의에서 문학의 공화주의로
124 이희우_매력의 두 문제 ― 매력의 경제와 감성적 배움
156 장은영_부서진 신체들이 우리 앞에 떠오를 때 ― 최세라, 김사이의 노동시에 대하여
186 전청림_막과 틈의 야생 ― 젠더화된 채굴주의와 사물의 시간
218 최선교_갱신하는 말, 다시 쓰는 미래 ― 세월호참사 10주년과 새로운 시적 시도들
238 하혁진_멸망 이후의 에피파니 ― 영매가 된 주체들
268 제26회 ‘젊은평론가상’ 심사경위 및 심사평
272 작품 출전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런데 이 ‘마음대로’ 사는 것이야말로 좀 보편적인 일인 것 같다. 누구나 마음대로 살 수 있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흘러간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내 마음을 움직이고 지키고 달래고 키우면서 내 인생으로 끌고 간다는 뜻이다. 인간을 능가하는 어떤 생물에도 기계에도 시스템에도 이 마음만큼은 깃들 수 없음을 근거로 여전히 인간 종의 자부심을 느끼고 싶다면 우리는 다만 ‘마음대로’ 살아야만 하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인간이라는 종의 진화를 위해 특별히 창조주가 내려주신 은총이라서가 아니다. 제 마음대로 자기 경험을 설계해 온 인간은 마음을 제 속에 가둔 게 아니라 제 바깥의 개체, 환경, 사물 등에 의탁하고 확장하여 더 멀리, 더 복잡하게 연결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인간의 머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또 다른 지능과 함께 처리하며 살아 보려는 쪽으로 진화의 방향이 잡힌 듯도 하다. 다만 아직 그 지능에는, 피가 돌고 숨이 차는 몸을 먼저 계산하는 생존 본능이 없으니, 오늘도 우리는 마음대로 살면 될 일이다.
- 「마음대로 사는 사람아」(백지은) 중에서
시가 되는 순간들은 무엇이며, 우리는 시를 읽고 무엇을 느끼며 시로부터 무엇을 배우는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으로서 ‘시적 경이’라는 개념을 제안해본다. 시적 경이는 아메드가 제시한 ‘경이’라는 개념에서 착안한 것으로, 그에 따르면 ‘경이’란 주체가 어떤 대상을 마치 처음 조우하는 것과 같은 감정을 의미한다.8 나는 ‘경이’가 시를 통한 미적 체험을 설명해줄 수 있는 개념이자 인식론적, 윤리적, 미적 차원에 두루 걸친 의미와 역량을 지닌 감정이라고 본다. 구체적으로 이하에서 살펴볼 신이인, 한연희, 임유영의 시는 그러한 체험적 역량을 발휘할뿐더러 경이라는 개념을 정교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시적 경이는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공회전하는 논의를 새로운 방향으로 틀 가능성을 보여주는 개념이자, 지구상의 거주 가능성이 위협당하는 동시대 현실에서 세계와 세계 내 인간·비인간 타자들과의 관계를 재건하는 데 필요한 감정적 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경이의 세계, 시라는 경이」(김보경) 중에서
라캉의 주체가 ‘충족된 욕구와 불충족된 욕망’의 상태라면, 백은선의 시에서는 반대로 ‘불충족된 욕구와 충족된 욕망’의 상황에 주체가 놓여 있다. 라캉의 아이는 원하던 귤을 받았으나 이것이 사랑의 표현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면, 「숨은 귤 찾기」의 이선은 원하던 귤은 받지 못했으나 확고한 사랑을 받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는 않지만 혹은 내가 원한 적 없는 것을 주지만, 분명한 사랑으로써 그렇게 하는 모성은 이 과잉된 사랑-희생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수립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령 독립한 자녀에게 1인 가구로서는 도저히 감당 불가능한 분량의 반찬을 떠안기는 낯익은 엄마의 모습은 분명 자녀에 대한 엄마의 사랑을 압축하는 한 장면이지만, 엄마 자신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포착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엄마의 음식은 가족을 먹임으로써 스스로의 쓸모를 재확인하는 주체화 작용의 일환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숨은 귤 찾기」에서 아침이 되어 눈을 뜬 이선이 심장(즉, 엄마의 사랑)을 의연히 거부하고 다시 귤을 찾을 때 ‘희생적 모성애의 주체’로의 승인을 거부당한 시의 화자는 기어이 상처받을 것이다.
- 「너를 먹이는 것이 나의 존재 방식  ̄ 돌봄의 숭고함과 모성 정체성의 결탁」(박다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