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그녀들의 이야기

그녀들의 이야기

(영미 여성 작가 단편 모음집)

루이자 메이 올콧, 제인 오스틴, 윌라 캐더, 케이트 쇼팽, 메리 E. 윌킨스 프리먼, 엘리자베스 클레그헌 개스켈, 샬롯 퍼킨스 길먼, 수잔 글래스펠, 조라 닐 허스턴, 에이미 주디스 레비, 캐서린 맨스필드, 이디스 워튼, 버지니아 울프 (지은이)
코호북스(cohobooks)
12,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알라딘 로딩중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11st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G마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서점 유형 등록개수 최저가 구매하기
알라딘 판매자 배송 15개 9,000원 >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책 이미지

그녀들의 이야기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그녀들의 이야기 (영미 여성 작가 단편 모음집)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96893958
· 쪽수 : 314쪽
· 출판일 : 2020-05-11

책 소개

18세기 젠트리 출신이었던 제인 오스틴부터 흑인 최초로 컬럼비아 대학교 바너드 컬리지를 졸업한 조라 닐 허스턴까지, 사회적 배경과 삶의 양상은 달랐으되 소설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여성의 목소리와 시선을 세상에 알린 작가 열세 명의 주옥 같은 단편을 모았다.

목차

루이자 메이 올컷___내가 하녀가 되었던 경위
제인 오스틴___세 자매
윌라 캐더___폴의 사례
케이트 쇼팽___실크 스타킹 한 켤레
메리 E. 윌킨스 프리먼___뉴잉글랜드 수녀
엘리자베스 개스켈___이부형제
샬럿 퍼킨스 길먼___변심
수전 글래스펠___사소한 것들
조라 닐 허스턴___땀
에이미 레비___현명한 세대
캐서린 맨스필드___행복
이디스 워턴___다른 두 사람
버지니아 울프___새 드레스

저자소개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32년 11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저먼타운에서 태어나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 에이머스 브론슨 올컷은 저명한 초월주의 사상가이자 사회 개혁가였고, 어머니 애비게일 메이 올컷은 상상력이 풍부한 여성이었다. 올컷은 인내와 절제를 강요하는 아버지의 교육철학을 온몸으로 떠안고 성장하면서, 아버지의 벗이었던 초월주의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 여성주의자 마거릿 풀러 등의 영향을 받았다. 성인이 되기 전부터 어려운 가정 살림을 꾸려나가기 위해 바느질, 가사노동, 가정교습, 글쓰기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남북전쟁중인 1862년에 자원입대하여 북군의 야전병원에서 간호병으로 복무하다 장티푸스 폐렴을 앓은 뒤 평생 건강문제로 시달린다. 당시 야전병원에서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집필한 『병원 스케치』(1863)는 그에게 작가로서의 첫 성공을 안겨주었다. 그뒤 1863년부터 1870년까지 A. M. 버나드라는 필명 또는 익명으로 고딕풍의 선정소설들과 스릴러들을 발표했다. 여성주의적 관점과 노예해방사상 등 급진적인 사상이 여실히 담겨 있는 이 시기의 작품들은 이후 여성주의 문학연구자들에게 새로이 발굴되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1868년과 이듬해에 ‘소녀들을 위한 책’ 『작은 아씨들』 1, 2권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명성을 얻었다.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토대로 재구성한 이 작품이 굉장한 인기를 끈 덕분에, 올컷은 재정적인 안정을 확보하고 작가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후 『구식 소녀』, 『작은 신사들』, 『조의 소년들』 등의 아동문학과 『변덕』, 『일』 등의 성인문학을 펴냈다. 생의 말년까지 여성운동과 노예해방운동, 금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올컷은 1888년 3월 보스턴에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펼치기
루이자 메이 올콧의 다른 책 >
캐서린 맨스필드 (지은이)    정보 더보기
뉴질랜드 태생의 영국 소설가로 웰링턴과 런던에서 교육받은 후 열아홉 살에 뉴질랜드를 떠나 영국에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1914년까지 《리듬》 《블루 리뷰》 등에 단편을 발표했고 1920년에 발표한 《환희》로 확고한 명성을 얻었다. 1922년에 발표한 단편집 《가든 파티》 는 작가의 문학적 재능이 최고로 만개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맨스필드는 5년간 결핵으로 고생하다 서른넷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맨스필드의 남편이자 평론가 존 미들턴 머리는 그녀가 남긴 기록을 정리해 《일기》(1927)라는 제목으로 펴냈으며, 그녀가 자신에게 쓴 편지에 주석을 붙여 《서간집》(1928)으로 출간했다. 맨스필드의 작품은 안톤 체호프의 영향을 받아 심리적 갈등에 초점을 맞춘 섬세함과 완곡한 서술, 날카로운 통찰력을 고루 갖추었다고 인정받는다. 또한 매우 시적이고 독특한 산문 문체를 발전시켜 단편소설이 문학의 한 장르로 발전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쳐 단편소설의 거장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펼치기
버지니아 울프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제임스 조이스, 마르셀 프루스트와 함께 ‘의식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소설 형식을 시도하고 완성한 모더니즘 문학의 대표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188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20세기 문화,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울프는 여성이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던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서재를 드나들며 자유롭게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1904년 『가디언』지에 익명으로 서평과 에세이를 기고하면서 문학계에 발을 디딘 그녀는 곧이어 사회 전반에도 관심을 보여 1910년에 여성 참정권 운동에 자원하기도 했다. 1917년에는 남편 레너드와 함께 호가스 출판사를 설립하여 자신의 작품뿐 아니라 T. S. 엘리엇, 캐서린 맨스필드, 지크문트 프로이트 등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저자의 도서를 펴냈다. 1935년에는 독일과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유럽의 파시즘과 영국 내 군국주의에 의한 가부장제를 보고, 반전·반제·반파시즘적인 페미니스트 시각과 통찰을 담아내기 위해 ‘소설-에세이’라는 새로운 형식에 도전하기도 했다. 울프는 평생 조울증, 두통, 환청 등 다양한 육체적·정신적 질병과 싸웠는데 이는 그녀의 문학적 자양분이 되었으나, 동시에 작가 자신의 영혼을 파괴해 갔다. 결국 세 차례의 자살 시도 끝에 1941년 3월 28일, 레너드에게 작별 편지를 남기고 우즈강으로 걸어 들어가 생을 마감했다. 주요 작품으로 『출항』, 『등대로』, 『올랜도』, 『자기만의 방』, 『파도』, 『세월』, 『막간』 등이 있다. 『댈러웨이 부인』은 1923년 6월의 어느 화창한 하루 런던을 배경으로, 저녁에 열릴 파티를 준비하는 정치가의 아내 클라리사 댈러웨이와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뒤 외상 후 스트레스로 치료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셉티머스 워런 스미스가 이야기의 두 축을 이루고 있다. 다양한 계급·연령·국적의 인물이 어우러져 다층적인 서사를 만들어 낸 이 작품은 오늘날 울프의 문학 세계를 대표하는 소설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펼치기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주장했던 페미니스트이자 사회 개혁가. 1860년 7월 3일, 코네티컷 하트퍼드에서 태어난 길먼은 친척 집을 전전하는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정규 교육은 4년밖에 받지 못해서 주로 독학으로 공부했고, 대학을 다닐 때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명함 화가, 가정 교사 등 다양한 일을 했다. 1884년에 예술가 찰스 월터 스테트슨을 만나 결혼했고, 다음 해 딸을 낳고 몇 년간 심각한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휴식 요법’을 처방받아 지적 활동을 제한당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월간 문학 잡지인 <뉴 잉글랜드 매거진> 1월 호에 단편 소설 <누런 벽지(The Yellow Wallpaper)>를 실었다. 1894년에 남편과 공식적으로 이혼한 후 딸과 함께 캘리포니아 패서디나로 가서 왕성한 저술 활동을 시작하며 사회 개혁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896년에는 워싱턴 DC에서 열린 미국 여성 참정권 협회의 대회와 영국 런던에서 열린 국제 사회주의 노동자 회의 모두 캘리포니아 대표로 참가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단편 소설 <누런 벽지>, 여성은 경제적 자유를 확보해야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 논문 <여성과 경제(Women and Economics)>, 페미니즘 유토피아를 다룬 장편 소설 <허랜드(Herland)>가 있다. 1909년에는 월간 잡지 <선구자(The Forerunner)>를 창간하여 사설, 비평, 서평, 시, 단편 소설, 장편 소설 등 다양한 글을 썼다. 《내가 마녀였을 때》에 실린 작품들 또한 모두 <선구자>에 실린 작품이다. 1932년 1월, 길먼은 말기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불치의 환자에 대한 안락사 옹호자였던 그는 그로부터 3년 후 1935년 8월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어 75세에 생을 마감했다. 1960년대 여성 운동이 등장하며 길먼의 작품은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93년 시에나 연구 기관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6위에 선정됐고, 1994년에는 미국 여성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펼치기
윌라 캐더 (지은이)    정보 더보기
미국의 대표적인 지방주의 작가로 1873년 버지니아 주에서 태어났다. 1895년 네브래스카 주립대학을 졸업하고 피츠버그에서 몇 년 동안 신문, 문예잡지사 일과 교직 생활을 하다가 1912년부터 창작에 전념하였다. 네브래스카에서 혹독한 기후와 싸우며 개척 생활을 하는 북유럽 이주민들과 함께 보낸 10년간은 그녀의 작품에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캐더는 웅대한 자연을 묘사하는 데 알맞은 위엄 있고 단아한 필치로 모든 개개인의 생활에 새겨진 인간 역사를 그렸다고 평가받고 있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며 네브래스카 최초의 여성 유명 인사였던 캐더는 1947년 미혼인 채로 세상을 떠났다. 1927년에 발표한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는 윌라 캐더가 미국 남서부인 뉴멕시코 지방을 여러 차례 여행하면서 구상한 작품이다. 종교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불모지였던 뉴멕시코에서 두 프랑스인 선교사가 불굴의 정신으로 이룩한 포교의 생애를 흥미진진하게 묘사하는 것은 물론, 소설의 무대가 되는 뉴멕시코 일대의 웅대한 자연환경을 그리고 있다. 대표작으로 네브래스카의 대초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거대한 서사시인 『오, 개척자여!O Pioneers!』와 『나의 안토니아My Antonia』가 있으며, 사라져 가는 개척자 정신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우리 중의 하나One of Ours』로 1922년 퓰리처상을 수상하였다. 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 서부 개척자들 중 한 여인의 허물어져 가는 사랑의 생애에 초점을 맞춘 『방황하는 부인A Lost Lady』, 지금은 사라진 뉴멕시코 주 혈거인종의 끊임없는 휴식에의 동경을 그린 『교수의 집The Professor’s House』, 18세기 전반 캐나다에서 프랑스 이주민들의 용기와 긍지와 정열로써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바위 위의 그림자Shadows on the Rock』 등이 있다.
펼치기
이디스 워튼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62년 미국 뉴욕의 명망가인 존스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지에서 거주하고 여행하며 견문을 넓혔다. 1877년 처음 중편 소설을 집필하고, 이듬해 시집을 출간하는 등 어려서부터 문학에 재능을 보였다. 당시 상류 사회에서는 여성이 작가가 되는 것을 ‘노동’이라 여겨 꺼렸는데, 이 때문에 어머니가 빠르게 사교계에 데뷔시켰다고 전해진다. 한 번의 파혼 끝에 에드워드 워튼과 결혼해 작품 활동을 이어갔으나 애정 없는 결혼 생활로 신경 쇠약을 앓았다. 한때 불륜 문제로 지탄받은 적도 있지만 불행한 개인사를 작품 활동의 동력으로 삼아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이혼 후 1914년부터 프랑스에 정착하여 전쟁 구호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관련 저술 활동을 이어갔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정부에서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1921년에는 《순수의 시대》로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았으며, 1923년에는 마찬가지로 여성 최초로 예일대학교에서 명예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6년에는 미국 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미국 문학사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 작가로 손꼽히며 《버너 자매》, 《환락의 집》, 《이선 프롬》, 《여름》 등의 여러 작품을 남겼다. 1937년에 심장마비로 프랑스 파리에서 영면했다.
펼치기
제인 오스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775년 12월 16일 영국 햄프셔 주 스티븐턴에서 교구 목사인 아버지 조지 오스틴과 어머니 커샌드라 사이에서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였고, 열두 살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스무 살이 되던 1795년에는 《엘리너와 메리앤》이라는 첫 장편소설을 완성했는데, 1797년 이 소설은 개작되어 《이성과 감성》으로 재탄생한다. 1796년에는 직접 경험한 사랑의 아픔을 바탕으로 《첫인상》을 집필하였는데, 소설 집필에 소질이 있다고 느낀 그녀의 아버지는 《첫인상》을 한 출판사에 보냈으나 거절당했다. 하지만 오스틴은 이후에도 습작과 초기 작품의 개작을 계속했다. 1805년 1월 아버지가 사망한 후에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3년간 형제, 친척, 친구의 집을 전전하다가 아내를 잃은 셋째 오빠 에드워드의 권유로 햄프셔 주의 초턴이라는 곳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1811년 《이성과 감성》을 익명으로 출판하였고, 《첫인상》을 《오만과 편견》으로 개작하여 1813년에 출판했다. 1814년 《맨스필드 파크》, 1815년에는 《에마》를 출간하여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으나 다음 해 《설득》을 탈고한 이후 급격하게 건강이 악화되어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다. 1817년 《샌디션》을 집필하고 있었으나 건강 악화 때문에 중단해야 했고, 작품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같은 해 7월 42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사후에 《노생거 수도원》과 《설득》을 비롯해 개작된 작품이나 생전의 습작품, 편지 등이 출간되었다.
펼치기
케이트 쇼팽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50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프랑스계 어머니와 아일랜드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프랑스계 가문에서 자라며 어린 시절부터 프랑스어와 영어를 구사했고 두 문화권 모두에 익숙했다. 이는 훗날 쇼팽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55년부터 1868년까지 세인트루이스의 여성 가톨릭 사립학교인 성심 아카데미를 다닐 무렵에는 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모두 여의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1870년에는 사교모임에서 만난 부유한 가문의 아들 오스카 쇼팽과 결혼해 뉴올리언스에서 9년간 여섯 명의 자녀를 낳았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쇼팽의 작품 전반에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이후 남편의 면화 중개 사업 실패로 재정적 문제를 겪으며 1879년 루이지애나주 북서부의 작은 프랑스계 이주민 마을 클라우티어빌로 이사했다. 1882년 남편 오스카가 말라리아로 사망하자 여섯 자녀를 데리고 세인트루이스로 돌아갔지만 1885년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고, 연이은 불행에 우울증을 앓는다. 쇼팽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한다. 잡지 및 지역 신문에 단편소설이나 동화 등을 발표하다가, 첫 장편소설 『잘못』(1890) 출간을 시작으로 첫 번째 단편집 『바이유 사람들』(1894), 두 번째 단편집 『아카디의 밤』(1897), 『각성』(1899)에 이르기까지 약 15년 동안 두 편의 장편소설과 100편이 넘는 단편소설을 썼다. 특히 그의 대표작 『각성』은 당시 부도덕한 여성상을 그렸다는 이유로 수많은 평론가의 혹평과 독자의 항의로 절판되었다가, 196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재발견되어 페미니즘 고전으로 새로운 빛을 보게 되었다.
펼치기
케이트 쇼팽의 다른 책 >
조라 닐 허스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1년 앨라배마 주에서 8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세 살이 되던 해에는 미국에서 최초로 흑인 자치 도시가 된 플로리다 주의 이튼빌로 이사했으며, 그녀는 이곳을 언제나 자신의 고향으로 느낀다고 말했고, 훗날 자신의 출생지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1904년 어머니가 죽은 후, 아버지는 거의 즉시 재혼을 하고 조라를 잭슨빌에 있는 기숙학교로 보냈지만 등록금을 내주지 않아 조라는 퇴학을 당한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 일을 해 돈을 번 조라는 1918년 하워드대학에 입학해 스페인어, 영어, 그리스어를 공부하고 대학신문을 창간하기도 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으로 가서 당시 절정에 달해 있던 할렘 르네상스의 한복판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문화를 표현한 작품을 발표하면서 랭스턴 휴즈를 비롯한 작가들과 한 문단에서 활동한다. 1925년에는 컬럼비아대학 안에 있는 명문 여대 바너드 컬리지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해 인류학을 공부하는데, 그곳에서 유일한 흑인 여학생이었다. 1927년에 하워드대학 동창생인 허버트 쉰과 결혼하지만 5년이 채 못 되어 이혼하고, 다시 그녀보다 25살 아래인 알버트 프라이스와 결혼하지만 7개월 만에 헤어지고 만다. 1934년에는 베툰-쿡맨 컬리지에 흑인들의 순수한 표현을 바탕으로 한 연극예술학교를 설립한다. 1936~1937년에는 구겐하임재단의 지원으로 자메이카와 아이티로 여행을 떠나며, 1년 후에는 그 경험에 기반해 민속 연구서 《내 말에게 전하라》를 출간한다. 그로부터 10년 후에는 마야 문명 등 발견되지 않은 문명에 대한 열정을 갖고 중앙아메리카로 여행을 떠나 소설 《수와니 강의 천사》을 썼다. 1948년, 열 살 된 남자아이를 추행했다는 오명을 쓰고 기소되었는데, 사건이 발생한 당시 온두라스에 있었다는 증거를 제출해 기소를 마무리 지었지만, 이 일로 조라의 삶은 심각하게 붕괴된다. 이후 프리랜서 작가로 잡지나 신문에 글을 기고하기도 하고, 도서관에서도 일했으며, 심지어 가정부로 일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간다. 이렇게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중풍을 앓게 되어 강제로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었고, 1960년 고혈압으로 인한 심장 질환으로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그 외에 《요나의 박 넝쿨》, 《모세, 산의 사람》, 《노새와 사람들》, 《길 위의 먼지 자국》 등의 작품이 있다.
펼치기
조라 닐 허스턴의 다른 책 >
메리 E. 윌킨스 프리먼 (지은이)    정보 더보기
프리먼은 정교회 조합교회주의인 아주 엄격한 가정 환경 속에서 자랐다. 어머니가 요구하는 ‘좋은 딸’이 되지 않기 위해 평생 어머니의 방식에 저항했다. <엄마의 반란>은 실제로 프리먼이 어머니의 삶 중에서 절대로 가치를 둘 수 없었던 방식을 기리기 위해 쓴 것으로 전해진다. 단편 <뉴잉글랜드 수녀>의 루이자 같은 캐릭터를 통해 프리먼은 여성의 역할과 가치와 사회적인 관계에 관한 당대의 사상에 도전장을 던졌다. 또한 <엄마의 반란>은 시골 여성의 권리에 관한 토론을 이끌어냈으며 나아가 20세기 초반 농장 가족의 구조를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십대 때 이미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아이들을 위한 소설과 시를 쓰기 시작하여 금세 성공을 거뒀다. 초자연적인 현상에 관심이 많아 현실과 초자연적 현상을 결합한 단편 소설을 많이 썼고, 큰 인기를 얻었다. 프리먼 최고의 작품들은 랜돌프에서 살던 1880년대와 1890년대 때 집필되었다. 그 중 《변변찮은 로맨스 외 (A Humble Romance and Other Stories, 1887년)》와 《뉴잉글랜드 수녀 외 (A New England Nun and Other Stories, 1891년)》가 가장 유명하다. 또한 장편소설 《펨브룩》도 대표작으로 이름을 올렸다. 1926년 4월, 프리먼은 여성 최초로 미국문화예술아카데미에서 5년에 한 번 가장 뛰어난 미국 소설가에게 수여하는 ‘윌리엄 딘 하우얼스 메달’을 받았다.
펼치기
메리 E. 윌킨스 프리먼의 다른 책 >
수잔 글래스펠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76년 아이오와 주 대븐포트에서 태어났다. 여성의 2%만 대학에 가던 시절에 드레이크대학을 졸업했고 잠시 기자로 활동했다. 시카고대학원을 졸업한 후 유부남인 조지 크램 쿡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쿡이 이혼하자 그와 결혼했다. 둘은 프로빈스타운 플레이어스를 창단해 20세기 초 미국 연극을 이끌었다. 극단은 성공했고 다른 브로드웨이 극단의 경쟁을 유발했다. 상업성에 빠져 원래 정신이 희석되었다고 판단, 극단 운영을 중단하고 그리스로 떠난다. 쿡은 이곳에서 질병으로 사망했다. 글래스펠은 미국으로 돌아가 소설 창작에 전념했다. 1948년에 사망했다.
펼치기
수잔 글래스펠의 다른 책 >
에이미 주디스 레비 (지은이)    정보 더보기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다. 열세 살에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Elizabeth Barrett Browning의 시에 대한 비평으로 주니어 상을 수상하는 한편, 1880년대 런던의 문학 및 정치 활동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등 글쓰기에 두각을 나타냈다. 열일곱에 케임브리지대학에 입학했으며 유대인 여성의 권리에 대한 정치 기사를 쓰고 칼 피어슨Karl Pearson이 설립한 급진적인 클럽 남성과 여성A Men and Women’s Club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았고 천성적으로 우울한 기질을 가지고 있던 레비는 우울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렸고 1889년 9월 9일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게 된다. 오스카 와일드는 자신이 발행하던 잡지 《여성의 세계The Woman’s World》에서 레비의 무한한 잠재성이 발현되지 못함에 애도를 표했다. 1888년 발표된 《어느 가게에서의 사랑The Romance of a Shop》은 런던에 사는 네 명의 서로 다른 성격의 자매에 대한 이야기로 초기 신여성 소설이다.
펼치기
엘리자베스 개스켈 (지은이)    정보 더보기
영국 빅토리아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1810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이듬해 어머니가 사망하자 이모 댁에 맡겨져 자라다가 젠트리 계층의 기숙학교에서 전통적인 교육을 받았다. 1829년 아버지를 여의고 1832년 목사 윌리엄 개스켈과 결혼해 북부 공업도시 맨체스터에 정착했다. 여섯 아이를 낳아 키우며 교육봉사와 자선활동에 힘쓰던 개스켈은 1845년 외아들을 잃고 슬픔을 달래기 위해 글쓰기에 열중했다. 1848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메리 바턴』으로 주목받아, 이를 계기로 찰스 디킨스가 펴내던 주간지 〈하우스홀드 워즈〉에 『크랜퍼드』와 『북과 남』을 연재하고 각각 1853년과 1855년에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이외에도 당대 여러 계층의 삶을 세심히 그려낸 『루스』 『사촌 필리스』 『실비아의 연인들』 같은 장편은 물론, 공포·미스터리·연애·심리 등 다양한 성격의 단편을 꾸준히 발표했다. 두터운 친교를 나누던 샬럿 브론테 사후에 집필한 전기 『샬럿 브론테의 생애』(1857)는 2017년 〈가디언〉이 선정한 ‘역대 최고 논픽션 100권’에 꼽혔다. 1865년 『아내들과 딸들』의 탈고를 앞두고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숨을 거둔 개스켈은 산업화에 따른 문제와 계급 갈등, 종교, 페미니즘 등의 묵직한 주제를 진지하게 다룬 작가로 오늘날 재평가되고 있다.
펼치기

책속에서

나는 책을 읽는 대신 그가 읽는 것을 들어야 했다. 나는 꽃과 그림과 난롯불과 책을 즐기는 대신 내 주인이 즐길 수 있게 정리해야 했다. 게다가 나는 그가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이고 감성적인 온갖 쓰레기를 쏟아붓는 순종적인 양동이 역할이었다. 나는 그의 시중을 들고 고통을 달래주고 슬픔에 공감하는, 한마디로 갤리선의 노예나 다름없었다. - 내가 하녀가 되었던 경위


길모퉁이 여기저기에 자리한 노점의 유리 진열장 속에 온갖 꽃이 만개했고, 눈송이들이 진열장에 부딪히며 녹았다. 제비꽃, 장미, 카네이션, 백합. 눈 속에서 부자연스럽게 피어 있는 꽃은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고 매혹적이었다. - 폴의 사례


그래도 그녀는 그가 돌아오기를 항상 기다렸고, 그들의 결혼을 당연한 결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너무나도 먼 훗날의 일로 생각하게 되었던지라 이번 생의 경계 저편에 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 뉴잉글랜드 수녀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이 포스팅은 제휴마케팅이 포함된 광고로 커미션을 지급 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