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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3632064
· 쪽수 : 223쪽
· 출판일 : 2009-06-10
책 소개
목차
책을 내면서
울보여인숙 _ 구자명
거품과 눈물 _ 김 혁
검은 사랑 _ 박종관
모래 세수 _ 배명희
잃어버린 화살 _ 이시백
그와 함께 산다는 것 _ 정 환
‘연향동파’ 유랑의 길로 나서다 _ 한상준
저자소개
책속에서
시간 죽이려고 다른 데 가서 어슬렁거릴 일이 아니었다. 카페 ‘울보여인숙’의 주인으로 보이는 이 여자한테서도 얻어낼 정보의 양이 쏠쏠할 것 같았다. 자, 어디서부터 시작한담? 그래, 카페의 상호,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차와 술을 파는 집의 이름이 왜 여인숙이며, 그것도 하필 울보 여인숙인지……. - '울보여인숙' 중에서
사내의 죽음은 즉시 경찰에 신고되었다. 그리고 사태가 복잡하게 전개되어 나갔다. 요양병원 내에서 사망한 경우라면 문제가 간단했다. 평소 지병도 있었고 건강 상태도 매우 나빴던 터라 병사로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외부에서 사체로 발견되었기 때문에 엄연한 사망 사건으로 접수되면서 철저한 수사가 시작되었다. - '거품과 눈물' 중에서
엘리베이터가 빠른 속도로 하강한다. 난쟁이 나라처럼 오밀조밀했던 도심이 커지고 넓어진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소인국과 거인국 사이를 오르내린다. 타워에 들어서면 나는 아주 작아진다. 그러나 지상에 내려오면 거인이 된다. 이 두 세계 사이의 표고 차는 너무 커서 나는 자주 스파이더맨이 되는 꿈을 꾼다. 거미는 가파른 절벽도 자유자재로 기어오른다. - '검은 사랑' 중에서
“이 따위 말도 안 되는 대본으로 뭘 찍겠다는 거야.”
말도 안 되는 대본으로 작품을 만든 게 한두 번인가. 말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차이는 시청률이 결정했다. 감독이나 내가 아니었다. “그럼 여기서 뭘 찍어야 하는데. 응. 뭘 어떻게 하라고.” 감독이 순식간에 어깨를 움켜잡았다. - '모래 세수' 중에서
그랬다. 세월은 그렇게 먹빛처럼 희미해졌다. 아무리 검게 맹세한 말들도 세월에 얹혀 빛이 바래며 서서히 희미해져 갔다. 이따금 전화를 걸어 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처음엔 그렇게 반갑던 전화도 시간이 지나면서, 몇 분을 이어 나가기 어려웠다. 잘 있느냐고 묻고, 이미 몇 번이나 주고받은 다른 친구들의 소식을 건성으로 되뇌게 되었다. - '잃어버린 화살' 중에서
출근 시간이 너무 늦어 그의 방문을 조금 열고 건성으로 인사를 던지는 순간, 갑자기 구역질이 난다. 그의 방에서 똥냄새가 코를 할퀴며 달려든 것이다. 나는 조급한 마음과 두려운 마음을 달래며 문을 마저 연다. 그가 걸어간 발자국마다 누런 똥이 묻어 있고, 그것은 그가 앉아 포커게임을 하는 요까지 이어져 있다. 내 시선을 느낀 그는 당황한 아이처럼 엉거주춤 서서 멍한 눈으로 나를 본다. - '그와 함께 산다는 것' 중에서
한 달이면 두 번 모이는 게 상례였다. 둘째, 넷째 일요일 저녁 여덟 시 혹은 일곱 시에 모이곤 했다. 여름철이면 기차가 아홉 시에 떠나는 게 아쉬워서 여덟 시에 모이는 것이고, 겨울철이면 여섯 시 조금 지나 입영 열차에 술에 젖은 몸 싣고 논산으로 떠났었지, 하며 삼십여 년 전의 아련한 추억을 곱씹으면서 저녁 일곱 시에 모이는 것이었다. - ''연향동파' 유랑의 길로 나서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