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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97581214
· 쪽수 : 312쪽
· 출판일 : 2013-06-10
책 소개
목차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 | 김민성
절망의 우물에서 건져낸 시 | 박두규
빛바랜 사진첩을 열다 | 박명순
나는 나일뿐 | 박영희
나의 가족들 | 서순희
엄마가 모르는 이야기 | 서정현
작약꽃밭의 악동, 참매를 키우다 | 이원규
나의 네 번째 이름 | 이채경
장위동 시절 | 조재도
어눌한 이야기 | 최은숙
저자소개
책속에서
사무치는 회한에 숨고르기도 질렸다. 요즘엔 마음이 아프기 시작하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익숙해지지 않는 이상한 고통.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아픔은 견디기 어렵다. 아아, 내 고향, 그리운 할머니, 씩씩했던 어머니, 어린 내 동생.
눈물을 참으며 머리가 무겁고 마음이 짓눌린 채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눈물은 이제 애써도 나오지 않는다. 눈물이 마른 마음은 말라서 갈라터진 논바닥처럼 엉망인 느낌이다. 아아, 할머니는 살아 계실까? 두 번째 탈출에서 두고 온 할머니…….
모든 게 그때뿐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 한 마리 벌레처럼 누워 나는 누가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 아무 것도 하기 싫다. 그저 하늘을 바라보거나 새소리만
들으며 가만히 있다. 가만히 있어야 한다. 며칠이든…….
- 본문 <잊혀지지 않는 고통> 중에서
결국 나는 팔 남매의 맏딸 자리를 인정해야 했다. 내 스스로 받아들이니 일단 마음은 편안했다. 누구나 부모와 집안을 선택해서 태어날 수는 없다. 동시에,
‘내가 원하는 가족의 풍경은 이게 아닌데.’
불평하며 살아왔던 과거와 나는 변해 있었다. 마음에 드는 다른 집안의 거실에서 가족 사진을 찍는 것의 불편함을 알아 버렸다고 할까? 그 어느 자리와도 바꿀 수 없는 내 자리가 있다는
것. 현재의 내가 집안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알면서 세상은 그만큼 무거워졌지만 한 발 가까워진 느낌이다.
하지만 서른 살이 되어서도 삶은 만만치가 않았다. 큰 산을 넘으면 더 높은 산이 앞을 가로막기도 했다. 그리고 마흔 살이 되어도, 쉰 살이 되어도, 떠나고 싶은 마음과 나를 붙잡는 마음은 꼭 그만큼의 거리를 지닌 채 늘 함께 붙어 있는 것이다. 어쩌면 접착된 두 마음이 나를 성장시키는 힘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한 번 떠나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세계가 있다. 몸만 떠나는 것의 허망함이다. 몸이 떠나 있어도 떠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다는 것. 그리고 몸과 마음이 함께 떠날 수 있는 준비를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내 자리를 가장 소중히 여길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에 대하여.
- 본문 <빛 바랜 사진첩을 열다> 중에서
인생이란 상처의 연속인 듯싶습니다. 그래서 상처는 삶의 흐름, 곡절을 바꿔 놓기도 합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보기도 합니다. 만약 그 시절 그때 나에게 그런 상처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러면서 또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내 삶에 의도적으로 개입해 나로 하여금 그 때 그 일을 겪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다 보면 불에 덴 것 같은 쓰라린 상처도 내 삶의 폭과 깊이를 더해 주는데 일조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상처는 원형으로 남은 기억입니다. 상상력이 촉발되는 지점이기도 하지요. 상처가 과거의 기억으로만 묻혀 있지 않고 미래와 연결될 때 그곳에서부터 상상력은 분출되어 나옵니다. 문학이 되고, 역사가 되고, 예술이 되지요. 끊임없이 분출하는 창작의 샘이 되지요.
여기 실린 글들은 필자들의 저마다의 인생에 ‘불에 덴 자국’들입니다. 감추고 싶은 부분들이지요.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상처를 이렇게 가슴에서 꺼내어 세상에 환하게 드러냅니다. 가난, 불화, 장애, 열등감, 반항심, 절망의 상처들이 윤이 나는 나뭇잎처럼 반짝이기도 합니다. 하얀 손수건처럼 나부끼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이 책에 실린 상처에 공감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리고 눈물을 훔칠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만 이렇게 모질게 산 게 아니었구나.’, ‘나만 이렇게 못나고 불쌍한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상처의 연대감을 느낄 것입니다. 지나온 삶의 마디마디에 서린 진정성에 울고 웃을 것입니다.
이 책이 어려운 형편에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용기를, 어른들에게는 삶에 대한 공감과 위안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머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