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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마카롱 시리즈 : 러브 에디션 세트 - 전7권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01204635
· 쪽수 : 1872쪽
· 출판일 : 2015-06-01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01204635
· 쪽수 : 1872쪽
· 출판일 : 2015-06-01
책 소개
'마카롱' 시리즈란 지난 80년 간 아름다운 표지와 합리적 가격으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온 펭귄북스의 테마 시리즈이다. '러브 에디션' 세트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사랑에 관하여>, <위대한 개츠비>>, <사랑의 사막, <순수의 시대>, <한밤이여 안녕> 모두 7편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목차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사랑에 관하여
위대한 개츠비
사랑의 사막
순수의 시대
한밤이여 안녕
저자소개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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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9월 24일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서 아버지 에드워드 피츠제럴드, 어머니 몰리 맥퀼란 사이에서 태어났다. 12세에 세인트폴 아카데미에 입학했고, 「레이먼드 담보물의 신비」라는 글을 처음으로 교지에 싣는 등 어릴 때부터 글쓰기에 재능을 보였다.
뉴먼 스쿨 졸업 후 1913년에 프린스턴대학교에 입학했다. 이 시기에 지네브라 킹이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부유한 그녀의 아버지가 그를 반대했던 사건이 ‘리치걸 푸어보이’라는 피츠제럴드 문학의 핵심 에피소드로 발전한다. 그녀는 이후 젤다와 함께 『위대한 개츠비』에 등장하는 데이지의 모델이 된다.
1917년에 미 육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연인 젤다와 결혼을 약속하지만 불안정한 장래 때문에 파혼당하고 나서 심기일전하여 장편소설 『낙원의 이쪽』을 발표한다. 이를 계기로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고, 젤다와의 결혼에 성공한다.
1925년에 세 번째 장편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출간했다. 이 책은 이후 20세기 최고의 미국 소설로 꼽히지만 출간 당시에는 반응이 미미했고, 그 후에 발표한 『밤은 부드러워』도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냈다. 설상가상으로 본인의 알코올 의존증과 아내의 정신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고 주로 잡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거나 영화사에서 극본 작업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소설가로서의 정체성을 끝까지 놓지 않았고, 1940년에 미완성 장편소설 『대군의 사랑』을 집필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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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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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남부의 항구도시 타간로그에서 출생했다. 잡화상의 아들로, 조부는 지주에게 돈을 주고 해방된 농노였다. 16세 때 아버지의 파산으로 스스로 돈을 벌어서 중학 생활을 마쳤다. 1879년에 모스크바 대학 의학부에 입학했고, 그와 동시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단편소설을 오락 잡지에 기고하기 시작했다.
1880년대 전반, 수년에 걸쳐 〈어느 관리의 죽음〉 <카멜레온> <하사관 프리시베예프〉 <슬픔〉 등과 같은 풍자와 유머, 애수가 담긴 뛰어난 단편을 많이 남겼다. 작가 그리고로비치의 재능을 낭비하지 말라는 충고가 담긴 편지에 감동하고 자각해 〈초원>을 썼다. 희곡 〈이바노프> <지루한 이야기〉 속에는 그 시대 지식인들의 우 울한 생활상이 잘 묘사되어 있다. 1899년에 결핵 요양을 위하여 크림 반도의 얄타 교외로 옮겨 갈 때까지 단편소설 <결투> <검은 수사> <귀여운 여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골짜기> 등을 집필했다.
1896년 희곡 <갈매기>의 상연 실패는 그를 잠시 극작가의 길에서 멀어지게 했으나, <바냐 아저씨>를 써낸 이듬해인 1898년, 모스크바 예술 극단의 <갈매기> 상연은 성공적이었다. 1904년 병고 속에서도 <벚꽃 동산>을 집필해 상연하고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그해 요양지인 독일의 바덴바덴에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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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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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9년 8월 28일 독일 마인강 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부친 요한 카스파르(Johann Kaspar) 괴테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황실 고문관이라는 명예직을 가진 부유한 시민으로 합리적이고 이지적인 성격이었다.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Katharina Elisabeth)는 라틴계 특유의 풍부한 감정과 활달하고 명랑한 성격의 여성으로 어린 아들에게 동화를 들려주고 인형극을 접하게 하여 아들의 예술 감각을 일깨워 주었다.
괴테는 1765년 10월 부친 뜻에 따라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한다. 1771년 8월 법학석사 학위 시험을 치른 뒤 고향으로 돌아간다. 고향에서 변호사로 일을 시작하지만 본업보다는 문학에 더 힘을 기울인다. 이 시기 〈무쇠 손 괴츠 폰 베를리힝겐〉(1773)을 발표한다. 이후 3년은 괴테 일생에서 가장 풍성한 결실의 기간이다. 《젊은 베르터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1744)도 이때 발표된다.
1776년 괴테는 추밀원 고문관에 임명되는 것을 시작으로 10년간 여러 분야의 행정 업무를 담당한다. 1782년에 재무상이 되는 한편 신성로마제국 황제 요제프 2세로부터 귀족 작위도 받는다. 이 시기 바이마르 궁정의 여관 샤로테 폰 슈타인 부인과의 정신적 교류 영향으로 질풍노도기의 과도한 격정에서 벗어나 조화와 중용을 지향함으로써 좀 더 원숙한 문학 세계로 들어선다. 그 밖에 괴테는 지질학, 광물학, 해부학, 식물학 등 자연과학 연구에도 몰두한다. 1786년 9월 3일 괴테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바이마르를 떠나 이탈리아로 향한다. 이탈리아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을 접한 괴테는 이성과 감성을 조화시키고 중용을 지키며 교양을 갖춘 원숙한 인간상을 절제된 언어와 짜임새 있는 형식으로 표현하려는 고전주의 문학관을 확립한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후 별 성과 없이 여러 해를 지내던 괴테는 10년 연하의 실러와 아름다운 우정 관계를 맺는다.
1828년 카를 아우구스트 대공의 사망과 2년 뒤 아들의 죽음으로 최대 시련을 맞은 괴테는 미완성 작품에 매달림으로써 그 시련을 극복하려고 한다. 〈파우스트〉는 그때까지 인간 정신이 이룩한 모든 것과 예언적으로 이후에 창조될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방대한 스케일, 다양한 운율, 풍부한 상징 등으로 독일 문학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대작이다. 인간의 한평생이라 할 수 있는 6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던 〈파우스트〉의 완성과 함께 괴테의 일생도 종결된다. 괴테는 1832년 3월 22일 향년 83세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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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 워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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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월 24일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이른바 '올드 뉴욕'이라 불리는 상류 귀족 사회의 심장부에서 성장했다. 학교 교육 대신 가정교사와 아버지의 서재가 그녀의 교실이었다. 어린 나이부터 고전 문학과 철학, 시를 탐독하며 문학적 감수성을 키웠고, 열한 살에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글쓰기에 대한 열의를 보이는 딸에게 어머니는 냉담했다.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체면을 깎는 일로 여겨지던 시대였다.
1885년 에드워드 워튼과 결혼했으나, 지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불안한 생활을 이어갔다. 이후 28년간의 공허한 결혼 생활은 그녀를 만성적 신경쇠약으로 몰아넣었지만, 동시에 글쓰기라는 탈출구를 더욱 절실하게 만들었다. 주치의가 처방으로 권한 것도 소설 쓰기였다. 두 편의 단편집을 발표한 후 1905년 출간한 장편 《환락의 집》은 단숨에 그녀를 미국 문단의 주요 작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부와 지위에 집착하는 상류 사회가 한 여성을 어떻게 파멸시키는지를 날카롭게 해부한 이 소설은 당대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전환기, 문학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사실주의의 전통이 흔들리고 모더니즘의 물결이 밀려들던 시대였다. 조이스와 울프가 의식의 흐름을 탐구하는 동안, 워튼은 확고한 사실주의의 방법론을 고수했다. 그녀는 톨스토이, 발자크의 계보를 자신의 문학적 유산으로 삼았고, 사회 구조와 인간 심리를 냉철하게 관찰하는 방식으로 시대의 모순을 포착했다. 헨리 제임스와 깊은 지적 우정을 나누면서도, 그의 현학적 문체와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만의 명료하고 단단한 목소리를 지켜냈다.
1907년 파리에 정착한 후 워튼은 더욱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이선 프롬》(1911)으로 뉴잉글랜드 농촌의 가혹한 현실을 묘사했고, 《관습의 나라》(1913)로 미국적 물질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아냈다. 1917년에는 뉴잉글랜드 산골 소녀의 성적 각성과 욕망을 정면으로 다룬 《여름》을 발표해 당시 독자들에게 충격을 안겼으며, 후대에 워튼 문학의 가장 대담하고 개인적인 작품으로 재평가받았다. 1920년 출간된 《순수의 시대》로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여성으로서는 최초였다.
퓰리처상 수상 이후에도 《달빛 한 조각》(1922), 《어머니의 보상》(1925), 《허드슨 강의 브래킷》(1929) 등 꾸준히 장편을 발표했으며, 소설 기법에 관한 비평서 《소설 쓰기》(1925)를 통해 자신의 문학적 원칙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자서전 《뒤를 돌아보며》(1934)를 통해 자신의 삶을 회고하기도 했으나, 가장 내밀한 감정들은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그녀가 생전에 봉인해둔 편지와 일기들이 사후에 공개되면서 비로소 억압 속에서도 치열하게 자기 자신을 지켜온 한 여성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파리에 남아 전쟁 구호 활동을 이끌었다. 난민 구호소를 운영하고 전쟁 고아를 위한 모금 활동을 벌인 공로로 프랑스 최고 훈장 레지옹 도뇌르를 받았다. 이디스 워튼은 1937년 8월 11일, 파리 근교 생브리스수포레의 자택에서 뇌졸중으로 향년 75세에 생을 마감했다.
생애 동안 장편소설 15편, 중편소설 7편, 단편소설 85편, 다수의 시와 에세이와 여행기를 남긴 워튼은, 상류 사회의 내부자이면서 동시에 그 세계의 가장 냉철한 해부자였다. 오늘날 그녀는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예리한 사회 비평가이자, 억압에 맞서 자신의 삶과 문학을 동시에 일구어낸 작가로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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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리스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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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은 엘라 궨덜린 리스 윌리엄스(Ella Gwendolyn Rees Williams). 영국령이었던 도미니카 수도 로조에서 웨일스 의사인 아버지와 스코틀랜드계 크리올(서인도제도 흑인과 유럽계 백인의 혼혈)로 농장을 물려받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열여섯살에 홀로 영국으로 건너가 퍼스 여학교에 다니지만, 낯선 억양의 영어를 구사하는 이방인으로서 따돌림을 당한다. 배우가 되고자 입학한 왕립연극학교 역시 언어 문제로 중도에 그만두고 코러스걸, 마네킹, 누드모델 등의 일을 전전한다. 이 시기에 영국에서 느낀 이질감과 절망, 경제적으로 의존했던 부유한 연상의 연인과 헤어진 뒤 낙태수술을 받은 경험 등을 네권의 노트에 기록해 20년 뒤 『어둠속의 항해』에 고스란히 녹여낸다. 리스는 이 작품을 가리켜 “빠르고 쉽게 그리고 자신 있게 쓴 유일한 책”, “가장 자전적”이며 “가장 좋아하는” 소설, 나아가 자신의 “최고작”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D. H. 로런스를 발굴한 비평가이자 소설가 포드 매덕스 포드의 눈에 띄어 1924년 단편 「빈」을 그가 주관하는 『트랜저틀랜틱 리뷰』에 실으면서 데뷔한다. 이후 1920~30년대 모더니스트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창작에 전념해 단편집 『왼쪽 둑』(1927), 장편 『사중주』(1928), 『매켄지 씨를 떠난 후』(1931), 『어둠속의 항해』(1934), 『한밤이여, 안녕』(1939)을 연달아 펴낸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발발 후 20년 가까이 은둔하면서 사망설이 돌기도 한다. 1957년 BBC에서 라디오극화한 『한밤이여, 안녕』이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평단과 대중 양편에서 재조명을 받고, 1966년 『광막한 싸르가소해』를 발표해 W.H.스미스 문학상과 하이네만상을 수상한다. 그밖에 단편집 『호랑이는 멋지기나 하지』(1968)와 『한잠 자고 나면 괜찮을 거예요, 부인』(1976), 자전적 산문집 『나의 날』(1975) 등의 작품이 있다. 1978년 평생 문학에 기여한 공로로 대영제국훈장(CBE)을 수훈했고, 이듬해에 집필 중이던 자서전 『좀 웃어봐요』를 채 끝내지 못한 채 여든여덟을 일기로 영국 엑서터에서 숨졌다. 카리브해와 영국 문학의 경계에 위치한 그의 작품들은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파격적인 형식실험 등 여러 측면에서 오늘날까지 활발한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사진출처 : ⓒ Jean Rhys Lim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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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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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년 11월 9일 러시아 오룔 지방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엄격한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했으며, 이러한 경험은 인간 심리와 관계의 미묘한 균열을 포착하는 그의 문학 세계에 깊게 스며들었다. 모스크바대학 문학부와 페테르부르크대학 철학부에서 공부한 뒤 독일 베를린대학으로 건너가 철학과 역사, 고전어를 익혔다.
귀국 이후 그는 문학평론가 벨린스키와 교류하며 창작 활동에 뛰어들었다. 농노들의 삶과 러시아 농촌의 풍경을 사실적이면서도 따뜻하게 담아낸 《사냥꾼의 수기》(1852)는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대표작으로, 러시아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장편소설 《루진》(1856), 《귀족의 보금자리》(1859), 《전야》(1860), 《아버지와 아들》(1862), 《연기》(1867) 등을 잇따라 발표했으며, 〈첫사랑〉 〈아샤〉 〈봄 물결〉 같은 중·단편소설에서도 뛰어난 성취를 남겼다. 절제된 문체와 섬세한 감정선, 자연을 바라보는 서정적인 시선은 투르게네프 문학의 핵심으로 꼽힌다.
1843년 오페라 가수 폴리나 비아르도를 만난 이후 평생 특별한 관계를 이어갔으며, 1860년대 이후에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각지에서 활동했다. 플로베르, 모파상, 에밀 졸라 등 유럽 문인들과 교류하며 러시아 문학을 서구에 소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유럽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은 러시아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1883년 9월 3일 프랑스 부지발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유해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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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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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프랑스 보르도의 독실하고 엄격한 중상류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신앙심 깊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가톨릭 신앙을 품었다. 1906년 보르도 대학을 졸업하고 1908년 프랑스 국립고문서학교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문학에 정진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었다. 첫 소설 『쇠사슬에 묶인 아이』(1913)를 시작으로 『백의』(1914) 등을 발표하며 독특한 문학적 주제의 유형을 확립해 나갔다. 주로 고향 보르도의 척박한 풍토와 건조한 기후를 배경으로 교묘한 회상 기법을 이용해 신의 은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과 신앙 없는 세계의 비참함을 그렸다. 대표작 『테레즈 데케루』(1927)는 의사소통의 단절과 인간의 유한성이라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는 여인 테레즈를 통해 신을 믿지 않는 인간의 비극을 다루었다. 모리아크는 나중에 테레즈는 자신의 분신이라고 고백했으며, 여인 테레즈의 삶을 다룬 ‘테레즈 연작’(『호텔에서의 테레즈』, 『의사를 방문한 테레즈』, 『밤의 종말』)을 집필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전체주의를 비난하고 파시즘을 규탄하는 저항 운동에 참가했으며, 사회평론가, 언론인으로서 활발히 활동했다. 소설 이외에도 평전, 소설론, 에세이, 일기, 희곡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남겼다. 1933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었으며, 1952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1970년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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