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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61885966
· 쪽수 : 308쪽
· 출판일 : 2008-07-22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땅집에서 살아요 …… 박완서
봄꽃은 다시 피고 …… 신현수
귀신이 온다 …… 이남희
당신의 혼잣말 …… 송은일
소설가의 집 …… 노순자
幽宅 入住 (유택 입주) …… 조혜경
미역 …… 유덕희
시뮬레이션 라이프 …… 한수경
명자가 왔다 …… 권혜수
와인 바에서 …… 우애령
선물 …… 박재희
달의 귀가 …… 김비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송은일-당신의 혼잣말]
사흘 전:
자줏빛 담장을 두른 집, 곧 노을이 머무는 동산이라는 뜻이라던 자미원은 선재가 스님으로 살던 때에 거주했던 한옥 이름이었다. 우물마루 대청을 거느린 몸채와 사랑채의 지붕이 날렵했고 행랑채 등은 고즈넉했다. 담쟁이넝쿨에 감싸인 넓은 뜰에는 은성한 노을뿐만 아니라 소쇄한 아침 햇살도 호사스레 머물렀다. 집이 날개였고 배광이었다. 스스로 당호를 지어 붙이며 그곳에 입주했던 선재스님은 승려라기보다 고급 저택의 주인인 양, 예술가인 양 방문객들 위에 군림하며 살았다. 서울 강남 어디엔가에서 치과를 운영한다는 그의 친구가 사뒀다 선재에게 내줬던 집이었다.
[조혜경-유택입주]
아들이 여섯 살 땐가 있었던 일이다. 친구와 점집을 다녀와서 무심코 나누던 말을 옆에서 놀던 아이가 알아들었다. 남편 사업 문제로 용하다는 점집엘 갔는데 식구들 사주를 넣었더니 점쟁이 하는 말이 “아들이 엄마 임종을 못 한다”는 것이었다.
“엄마, 임종이 뭐야?”
“엄마가 죽을 때 네가 옆에 없는 거야.”
대충 말하자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결국 “너 없이 엄마 안 죽는다”고 약속하고 아이는 울음을 그쳤다. 말 같지 않은 약속도 죽을 용을 쓰니 지켜질 모양이었다.
아들이 벌컥 중환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나는 목구멍에서 꼴깍거리던 날숨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아주 길게 숨이 꺼져가면서 몸은 가벼워졌다. 그게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지난 며칠 동안 혼과 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몸을 떠나 공중부양 하려는 것을 악다구니로 잡아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상의 포자 하나를 내 속에 깃들이다 세상에 내놓은 아이, 그 아이를 마저 보고 가려고 명줄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유덕희-미역]
문제의 발단이란 게 미역국 한 솥에 불과하였다. 죽은 자식 고추 만지기도 유분수지. 엄마는 죽은 오빠의 생일날이면 저절로 몸이 아팠다. 아픈 몸을 치유하는 방법도 유별나서 광어를 넣고 펄펄 끓인 미역국을, 땀을 뻘뻘 흘리며 먹어치우면 들끓던 신열이 그나마 가라앉던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갈수록 도가 심해져서, 요즈음엔 혼자만 미역국을 먹는 게 아니라 주위의 만만한 사람들을 죄다 불러 모아서, 미역국 한 사발씩을 못 먹여서 안달을 하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