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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문제 > 사회문제 일반
· ISBN : 9788965641704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15-07-06
책 소개
목차
기획의 말 - 6
김치녀와 벌거벗은 임금님들 : 온라인 공간의 여성 혐오 / 윤보라 ? 9
무언가 잘못되었다 | 거푸집 만들기 | 삭제된 여성들과 훼손된 ‘개념녀’ | ‘드립’의 정치학과 벌거벗은 임금님들
주체화, 호러, 재마법화 / 임옥희 ? 47
혐오, 주체화의 열정 | 참수냐 자본이냐 | 공포의 힘, 여신, 괴물성 | 약한 자여, 너의 이름은 여자? | 귀환하는 젠더 무의식 | 젠더의 재마법화
언어가 성별을 만든다 / 정희진 ? 89
말이라는 것 | 여성은 실재가 아니라 재현이다 | 표현할 말이 있는가? ― 표현의 자유라는 문제 | 페미니즘은 인식론 ― 지식 생산과 성별 | 말하는 자연, 여성에 대한 혐오
다른 목소리로 : 남성 피해자론 및 역차별 주장 분석하기 / 시우 ? 117
공간과 범주의 젠더 정치학 | 남성 피해자 정치학의 한계 | 경합하는 성평등 논의 | 어쩌면, 다시 페미니즘
혐오는 무엇을 하는가 : 트랜스젠더퀴어, 바이섹슈얼 그리고 혐오 아카이브 / 루인 ? 165
혐오라는 복잡하고 양가적인 감정 | 비트랜스 페미니즘의 트랜스 혐오, 동성애의 바이 혐오 ― 혐오로 조우하기 | 폭력의 예감 | 혐오의 체화 ― 결론을 대신하며
누군가의 삶에 반대한다? : 성소수자 운동이 마주한 혐오의 정치세력화 / 나라 ? 227
혐오의 시대 | 혐오가 파괴하는 삶들 | 우파 지배의 도구가 된 한국의 성소수자 혐오 | 혐오에 맞선 저항과 연대 | 충격과 공포를 넘어, 무기력에 맞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한때 여러 커뮤니티에서 칼로 절반씩 잘라놓은 도넛 여러 개가 상자 안에 담긴 사진 딱 한 장만이 실린 게시물이 이곳저곳 떠돌았다. 본문에는 어떤 설명도 없고 그저 “여직원들에게 도넛 한 판 사줬더니”라는 제목이 전부였다.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핑계로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않고, 사준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는 여직원들’을 힐난했다. 그러나 해당 도넛 사진을 구글 이미지 검색 서비스로 검색해보면, 사진의 출처는 엉뚱하게도 외국의 한 유머사이트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직원들에게 도넛을 사준 사람도, 도넛을 먹은 사람도 없다. 이 사건은 여성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댓글을 모아 “사진 한 장으로도 여성 혐오가 가능”이라는 게시물이 만들어지면서 폭로되었다.(27~28쪽, 윤보라, [김치녀와 벌거벗은 임금님들]에서)
그렇다면 여성은 메르스와 같은 바이러스적 주체여서,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남성 숙주를 변형시키는(여성화하는) ‘마법적’인 힘을 갖고 있는가? 혐오가 끔찍한 두려움에서 비롯하는 것이라면 여성에게 어떤 끔찍한 힘이 있길래 여성은 혐오의 대상이 되는가? 탈마법화된 시대임에도 여성들에게는 어떤 ‘마법적’ 힘이 남아 있기에 깔끔한 면역 주체가 되려는 남성을 감염시키는가? 거세되어 탈마법화된 시대를 구차하게 살아가는 자신들과는 달리 여성에게 신비하고도 마법적인 힘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남성의 공포심과 선망이 여성 혐오로 드러난 것은 아닐까? (69~70쪽, 임옥희, [주체화, 호러, 재마법화]에서)
여성 혐오 발화는 가부장제의 일상이지만 시공간적 맥락과 배경이 있다. 여성 혐오는 공기와 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화되었을 때만, 우리는 공기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문제는 여성 혐오 자체가 아니라 ‘지금, 여기’다. 남녀 간의 임금 격차, 빈곤의 여성화는 여전하지만 상대적으로 혹은 재현의 영역에서 성차별보다 남성과 남성, 여성과 여성의 격차가 가시화되자 일부 남성들은 자신의 계급적 처지를 젠더로 ‘해결(전가)’하기 시작했다. 그 편이 가장 쉽기 때문이다. (97쪽, 정희진, [언어가 성별을 만든다]에서)
대학에 있는 모두가 젠더화된 공간 질서에 연루되어 있음에도 상대새아는 직접적으로 여학생 휴게실을 들여다본 몇몇 남성을 예외적인 존재로 두면서 이들을 제외한 남성 전체를 피해자로 호명해낸다. 이에 직접적인 잘못을 한 남학생 몇몇을 배제하는 것을 통해 나머지 남학생들은 피해자의 모습으로 규범적 남성 범주에 속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교직원은 상대새아가 예외적인 존재로 배제한 이들과 무고한 존재로 재현한 그 외의 남학생의 구분선 그 자체를 질문한다. 교직원은 성적 가해를 여학생 휴게실을 들여다본 몇몇의 잘못이 아니라 여학생 휴게실에 접근한 남학생 모두가 연루되어 있는 젠더 상황으로 파악하면서, 적합한 남성과 탈락한 남성을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134~135쪽, 시우, [다른 목소리로: 남성 피해자론 및 역차별 주장 분석하기]에서)
[트랜스젠더퀴어가 자신의 몸에 대해 느끼는] 이 불편함과 자기혐오는 끊임없이 몸의 표면을 예리하게 인식하도록 하고, 내가 세계와 조우하는 방식을 민감하게 포착하는 감각/감정이다. 자기혐오를 통해 어떤 몸을 여성적 몸으로, 어떤 행동을 남성적 표현으로 받아들이는지를 날카롭게 포착한다. 혐오는 내가 세상과 조우하는 과정에서 내 몸이 어떤 모습으로 형상되고 인식되는지, 내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지를 첨예하게 사유하는 과정이다. (223~224쪽, 루인, [혐오는 무엇을 하는가: 트랜스젠더퀴어,바이섹슈얼 그리고 혐오 아카이브]에서)
오늘날 성소수자 혐오는 사회적 위기의 책임을 소수자에게 전가함으로써 우리가 서로를 미워하면서 각개 생존의 미로에 갇히길 바라는 자들을 위해 복무하고 있다. 성소수자 운동과 시민사회, 진보 진영은 성소수자 혐오의 정치적 구실과 효과를 이해하고 사회 변화의 전망을 함께 만들어나가야 한다. 혐오라는 괴물이 노리는 것은 단지 성소수자, 이주민, 여성, 또 다른 소수 집단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서로 미워하길 바라는 자들은 누구인가. 혐오가 파괴하는 누군가의 존엄은 나의 존엄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런 질문에 함께 답해야 할 때다. (255쪽, 나라, [누군가의 삶에 반대한다?: 성소수자 운동이 마주한 혐오의 정치세력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