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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개의 달 시화집 봄 여름 가을 겨울 박스 세트 - 전4권

열두 개의 달 시화집 봄 여름 가을 겨울 박스 세트 - 전4권

윤동주 (지은이), 클로드 모네, 에곤 실레, 귀스타브 카유보트, 파울 클레, 차일드 하삼, 에드워드 호퍼, 제임스 휘슬러, 앙리 마티스, 카미유 피사로, 빈센트 반 고흐, 모리스 위트릴로, 칼 라르손 (그림)
  |  
저녁달고양이
2021-10-25
  |  
75,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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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개의 달 시화집 봄 여름 가을 겨울 박스 세트 - 전4권

책 정보

· 제목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봄 여름 가을 겨울 박스 세트 - 전4권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89217129
· 쪽수 : 1016쪽

책 소개

하루 한 편의 시와 그림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된 ‘열두 개의 달 시화집’ 계절에디션 박스 세트. 열두 달의 계절과 느낌을 그대로 답은 계절 에디션은 계절과 어울리는 화가의 그림과 시를 묶었으며, 한 계절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시와 그림이 가득하다.

목차

다정한 바람이 불어오는 봄의 세계를 그린 시화집
<열두 개의 달 시화집 봄>


3월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귀스타브 카유보트 / 윤동주 외
4월 산에는 꽃이 피네 파울 클레 / 윤동주 외
5월 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 차일드 하삼 / 윤동주 외

위대한 시인과 화가의 여름 시와 여름 그림으로 한여름밤의 세계를 그린 시화집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여름>


6월 이파리를 흔드는 저녁바람이 에드워드 호퍼 / 윤동주 외
7월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 제임스 휘슬러 / 윤동주 외
8월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앙리 마티스 / 윤동주 외

청초한 가을 하늘 같은 시와 그림을 함께 감상하는 시화집
<열두 개의 달 시화집 가을>


9월 오늘도 가을바람은 그냥 붑니다 카미유 피사로 / 윤동주 외
10월 달은 내려와 꿈꾸고 있네 빈센트 반 고흐 / 윤동주 외
11월 오래간만에 내 마음은 모리스 위트릴로 / 윤동주 외

차갑지만 평화롭고, 움츠러들지만 내면의 세계를 넓히는 겨울 시화집
<열두 개의 달 시화집 겨울>


12월 편편이 흩날리는 저 눈송이처럼 칼 라르손 / 윤동주 외
1월 지난밤에 눈이 소오복이 왔네 클로드 모네 / 윤동주 외
2월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에곤 실레 / 윤동주 외

저자소개

윤동주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7년 12월 30일 윤영석과 김룡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925년(9세) 4월 4일, 명동 소학교에 입학했다. 1928~1930년(12세~14세) 급우들과 함께 《새명동》이라는 잡지를 만들었다. 1931년(15세) 3월 15일, 명동소학교를 졸업했다. 1932년(16세)은진중학교에 입학했다. 1934년(18세) 12월 24일, 「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시 작품을 쓰다. 이는 오늘날 찾을 수 있는 윤동주 최초의 작품이다. 1935년(19세)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로 편입. 같은 해 평양 숭실중학교 문예지 《숭실활천》에서 시 「공상」이 인쇄화되었다. 1936년(20세)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숭실학교를 자퇴, 광명학원 중학부에 편입했다. 간도 연길에서 발행되던 《카톨릭 소년》 11월호에 동시 「병아리」, 12월호에 「빗자루」를 윤동주란 이름으로 발표했다. 1938년(22세) 2월 17일 광명중학교 5학년을 졸업하고 4월 9일 서울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했다. 1939년(23세) 산문 「달을 쏘다」, 시 「유언」을 발표했다. 1941년(25세)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77부 한정판으로 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43년(27세)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되고 작품, 일기가 압수되었다. 1944년(28세) 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되었다. 1945년(29세) 해방되기 여섯 달 전, 2월 16일 큐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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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클레 (그림)    정보 더보기
독일 화가. 현대 추상회화의 시조. 베른 근처 뮌헨부흐제 출생. 어려서부터 회화와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바이올린 연주에 뛰어났다. 21세에 회화를 선택한 후에도 W. R.바그너와 R.슈트라우스, W. A.모차르트의 곡들에 심취하여 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898~1901년 독일의 뮌헨에서 세기 말의 화가 F. 슈투크에게 사사하기도 하였다. 1911년 칸딘스키, F. 마르크, A. 마케와 사귀고, 이듬해 1912년의 ‘청기사’ 제2회전에 참가하였으나 1914년 튀니스여행을 계기로 색채에 눈을 떠 새로운 창조세계로 들어갔다. 청기사파, 바우하우스 등과 관계를 맺었으나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기 때문에 특정 미술 사조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클레는 작품에서 엄격한 입방체와 점묘법, 그리고 자유로운 드로잉을 실험했으며, 그가 접했던 모든 미술 사조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1914년에 그는 동료 화가들인 루이 무아예와 아우구스트 마케와 함께 아프리카 튀니지로 여행을 떠났다. 클레는 여행 중에 느낀 감상을 “색채와 나는 하나가 되었다. 나는 화가다.”라고 표현했다. 클레는 일찍부터 음악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는 그의 미술 작품의 형식에 영향을 주었다. 그는 〈빨강의 푸가〉(1921)와 〈a장조 풍경〉(1930) 같은 많은 작품들을 음악적인 구조로 정돈했는데, 마치 악보 위에 음표들을 배열하듯이 색채들을 정확히 배열했다. 대표작으로는 《새의 섬》 《항구》 《정원 속의 인물》 《죽음과 불》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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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그림)    정보 더보기
인상주의가 표현주의가 되는 변화의 지점, 정확히 그 과도기의 그림을 그렸기에, 선구자로서 필연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었던 화가.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브라반트의 쥔더르트에서 개신교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화랑을 운영하던 큰아버지 덕분에 일찍 미술계에 발을 들여놓지만, 목회자가 되려고 화랑을 그만두고 교사, 서점 직원, 전도사 등의 직업을 전전한다. 결국 27세에 뒤늦게 화가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동생 테오에게 생활비를 지원받으며 그림 공부에 열중한다. 데생을 제외하고도 유화를 900여 점이나 그렸는데, 안타깝게도 관리 부실로 많은 작품이 사라졌다. 평소에 우울증을 앓던 빈센트는 1888년 아를에서 고갱과의 협업이 실패로 끝나며 첫 번째 발작을 일으켰고, 이후 계속해서 졸도와 발작 증세에 시달리다가 1890년 오베르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형을 잃은 깊은 슬픔 때문인지 테오도 지병이 악화되어 반 년 후에 사망했다. 미망인이 된 테오의 아내 요안나 봉어르가 남편의 서랍장을 꽉 채우고 있던 두 형제의 편지들을 꺼내 읽다가, 이 글들이 빈센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먼저 작품전을 기획해 개최했고, 이후 668통(다른 지인들과 나눈 편지까지 합하면 900여 통)의 편지들을 직접 번역해서 1914년 《빈센트 반 고흐의 서신집》을 출간했다. 테오와 요안나의 아들이자 화가의 동명의 조카인 V.W.반 고흐가 새로 발견된 편지들을 추가하고 보강해서 《빈센트 반 고흐 탄생 100주년 기념판》을 출간했고, 이후에도 프랑스 갈리마르판 등 다양한 번역출간과 연구 및 편지 발굴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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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라르손 (그림)    정보 더보기
Carl Larsson. 1853~1919. 스웨덴의 사실주의 화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스톡홀름에서 태어났으며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3살 때 학교 선생님의 설득으로 스톡홀름 미술 아카데미(Stockholm Academy of Fine Arts)에 들어갔으며 1869년에는 엔티크 스쿨(antique school)에서 공부하였다. 이후 파리로 건너가 프랑스풍의 부드러운 빛깔로 두텁게 칠한 수채화 작품을 많이 그렸다. 스웨덴 왕립 미술아카데미에서 수학한 라르손은 1882년 파리 외곽에 있는 스칸디나비아 예술가들의 거주지 그레 쉬르 루앙(Grez-sur-Loing)에서 스웨덴 미술가 단체에 가입했다. 그곳에서 그는 장차 그의 아내가 될 미술가 카린 베르게를 만났다. 둘은 결혼해 여덟 명의 아이를 낳았다. 1888년 라르손은 장인이 순트보른의 리틀 휘트네스에 마련해준 집으로 가족을 데리고 이사했다. 1888년 순트보른으로 이주하면서 자신의 집을 예술가적인 취향으로 꾸며 그곳에서 가족들과 평화롭고 소박한 전원생활을 하였다. 작품도 전원생활을 주제로 한 아름답고 장식성이 강한 그림들을 그려 화제를 모았다. 그는 가정생활의 소박하고 평화로운 모습을 그린 그림들로 유명하며, 종종 자신의 가족을 그리기도 했다.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들고 출판계를 놀래게 했던 작품은 바로 책의 삽화로, 《해 뜨는 집》(1895)의 삽화가 가장 유명하다. 그러나 라르손은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공공건물에 그린 커다란 크기의 벽화들을 꼽았다. 그중에서도 〈한겨울의 희생〉(스웨덴어: Midvinterblot)은 자신 생애 최고의 작품이라고 했다. 스웨덴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과 인물들을 주제로 그린 이 그림은 스톡홀름의 국립미술관을 장식하고 있다. 작품을 통해 보여준 그의 개성은 스웨덴의 대표적인 가구 브랜드인 이케아(IKEA)의 정신적 모토가 되었고, 현재 미술시장에서 그의 작품은 5억 원을 호가하는 가치를 지니며, 시대를 뛰어넘어 높은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수많은 삽화들을 비롯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10월(October)>(1882), 〈커다란 자작나무 아래서의 아침식사(Breakfast under the big birch)〉(1894~1899) 〈한겨울의 희생(Midwinter sacrifice)〉(1914~15) 등이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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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 (그림)    정보 더보기
1890년 6월 12일 오스트리아 빈 근교 툴룬에서 태어나 1918년 10월 31일 28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어릴 때부터 회화에 두각을 드러내어 16세 때 빈 미술학교에 조기 입학허가를 받아 미술을 배우지만 보수적인 학풍과 교수들과의 갈등으로 3년 만에 중퇴한다. 이후 구스타프 클림트의 영향을 받아 시각적으로 화려하고 극적인 양식의 그림을 그렸고, 클림트의 영향에서 벗어나 죽기 전까지 새로운 형태의 표현법을 마련하며 표현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의 주요 주제는 ‘인간의 실존을 둘러싼 모든 것들’ 혹은 ‘나 자신을 찾아가는 투쟁’이었다. 실레는 회화가 사람이 가진, 생이 가진 진실만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1914년 발발된 1차 세계대전 중 에디트 실레와 결혼한다. 그녀의 도움으로 첫 전시를 성공적으로 마치지만, 그녀가 독감으로 인해 임신한 채 세상을 떠나고 곧 그도 사망한다. 대표작에는 ‘자화상Self-Portrait’(1910), ‘죽음과 소녀 Death and the Maiden’(1915), ‘가족 The Family’(191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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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 (그림)    정보 더보기
1882~1967.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 뉴욕 주 나이아크에서 출생, 뉴욕에서 사망했다. 1889년경 파슨스디자인스쿨의 전신인 뉴욕예술학교에서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로버트 헨리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에드워드 호퍼는 현대 미국인의 삶과 고독, 상실감을 탁월하게 표현해내 전 세계적으로 열렬하게 환호와 사랑을 받는 화가이다. 그의 여유롭고 정밀하게 계산된 표현은 근대미국인의 삶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시각을 반영한다. 희미하게 음영이 그려진 평면적인 묘사법에 의한 정적(靜寂)이며 고독한 분위기를 담은 건물이 서 있는 모습이나 사람의 자태는 지극히 미국적인 특색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미국 생활(주유소, 모텔, 식당, 극장, 철도, 거리 풍경)과 사람들의 일상생활이라는 두 가지를 주제로 삼았으며, 그의 작품들은 산업화와 제1차세계대전, 경제대공황을 겪은 미국의 모습을 잘 나타냈고, 그 때문에 사실주의 화가로 불린다. 1960년대와 1970년대 팝아트, 신사실주의 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평범한 일상을 의미심장한 진술로 표현하여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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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그림)    정보 더보기
Oscar-Claude Monet. 1840~1926. 프랑스의 화가. 파리 출생. 소년 시절을 르아브르에서 보냈으며, 18세 때 그곳에서 화가 로댕을 만나, 외광(外光) 묘사에 대한 초보적인 화법을 배웠다. 19세 때 파리로 가서 아카데미 스위스에 들어가, 피사로와 사귀었다. 1862년부터는 전통주의 화가 샤를 글레르 밑에서 쿠르베나 마네의 영향을 받아 인물화를 그렸지만 2년 후 화실이 문을 닫게 되자, 친구 프리데리크 바지유와 함께 인상주의의 고향이라 불리는 노르망디 옹플뢰르에 머물며 자연을 주제로 한 인상주의 화풍을 갖춰나갔다. 1874년 파리로 돌아온 모네는 바지유와 함께 작업실을 마련하여, ‘화가·조각가·판화가·무명예술가 협회전’을 개최하고 여기에 12점의 작품을 출품하여 호평을 받았다. 출품된 작품 중 《인상·일출(soleil levant Impression)》이라는 작품의 제목에서, ‘인상파’라는 이름이 모네를 중심으로 한 화가집단에 붙여졌다. 이후 1886년까지 8회 계속된 인상파전에 5회에 걸쳐 많은 작품을 출품하여 대표적 지도자로 위치를 굳혔다. 한편 1878년에는 센 강변의 베퇴유, 1883년에는 지베르니로 주거를 옮겨 작품을 제작하였고, 만년에는 저택 내 넓은 연못에 떠 있는 연꽃을 그리는 데 몰두하였다. 작품은 외광(外光)을 받은 자연의 표정을 따라 밝은색을 효과적으로 구사하고, 팔레트 위에서 물감을 섞지 않는 대신 ‘색조의 분할’이나 ‘원색의 병치(倂置)’를 이행하는 등, 인상파 기법의 한 전형을 개척하였다. 자연을 감싼 미묘한 대기의 뉘앙스나 빛을 받고 변화하는 풍경의 순간적 양상을 그려내려는 그의 의도는 《루앙대성당》 《수련(睡蓮)》 등에서 보듯이 동일주제를 아침, 낮, 저녁으로 시간에 따라 연작한 태도에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이 밖에 《소풍》 《강》 등의 작품도 유명하며 만년에는 눈병을 앓다가 86세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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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카유보트 (그림)    정보 더보기
1848~1894.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인상주의 화가들과 어울리며 그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1876년 제2회 인상파 전시회에 이 작품을 출품하고,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인상파전에 참여하며, 전시를 기획하고 재정적인 지원을 했다. 그가 도움을 주었던 가난한 인상파 화가들은, 마네, 모네, 르느와르, 피사로, 드가, 세잔 등이었다. 그가 소장하고 있던 67점의 인상파 작품을 사후에 프랑스국립미술관에 기증했으나 ‘주제넘은 기증’에 당황하여 수용 여부를 놓고 한바탕 논란이 있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 논란을 계기로 인상파 화가들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카유보트는 고전적인 규범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파리의 모습을 주제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길 위의 풍경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커다란 도로, 광장, 다리, 그리고 그 위를 걷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으며 19세기 새롭게 변화하는 파리의 풍경을 재현했다. 그의 작품은 치밀한 화면 구성과 화면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 간의 균형, 독특한 구도, 대담한 원근법의 사용 등을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다르게 남성이 작품의 주제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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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휘슬러 (그림)    정보 더보기
유럽에서 활약한 미국의 화가. ‘예술을 위한 예술’을 표방하고 회화의 주제 묘사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하여 차분한 색조와 그 해조(諧調)의 변화에 의한 개성적 양식을 확립했다. 매사추세츠주 로웰 출생. 어린 시절을 러시아에서 지내고 귀국 후 워싱턴에서 그림공부를 하다가, 1855년 파리에 유학하여 에콜드 보자르에서 마르크 가브리엘 샤를 글레르의 문하생이 되었다. 그러나 귀스타브 쿠르베의 사실주의에 끌리고 마네, 모네 등 인상파 화가들과 교유하면서 점차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했다. 젊었을 때는 군대를 동경하여 3년간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자유를 갈망하는 성격과 그림을 좋아하는 본성을 따라 미술을 시작하게 되었다. 파리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웠고, 1863년 파리의 낙선자 전람회에 〈흰색의 교향곡 1번, 흰 옷을 입은 소녀〉를 출품하여 화제를 일으켰다. 그러나 그 작품으로 촉발된 일련의 사건들로, 파리에 대한 혐오를 느껴 본거지를 런던으로 옮겼다. 〈회색과 검정색의 조화, 1번-화가의 어머니〉 외에 〈알렉산더 양〉등 훌륭한 초상화를 남겼으며 1877년부터 〈야경(夜景)〉의 연작을 발표했다. 휘슬러는 그의 작품을 회색과 녹색의 해조(諧調) 라든가, 회색과 흑색의 배색 등 갖가지의 첨색으로 그렸으며, 색채의 충동을 피하여 작품에 조용한 친근감을 주고 있다. 1877년 〈불꽃〉 등을 선보인 개인전을 런던에서 열었을 때 J.러스킨의 혹평에 대해 소송을 일으켜 승소하였지만, 이는 몰이해한 군중을 한층 더 적으로 만드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휘슬러는 또한 작가이자 평론가인 오스카 와일드와도 교유하여, 그의 강연집이 프랑스어로 출간했다. 그는 에칭에도 뛰어나 판화집도 출판했으며, 동양 문화를 모티프로 한 피코크 룸(현재 워싱턴의 프리미어 미술관으로 옮겨서 보존)을 설계하기도 하였다. 주요작품에 〈흰색의 교향곡 1번, 흰 옷을 입은 소녀〉 〈회색과 검정색의 조화, 1번-화가의 어머니〉 〈검정과 금빛 야상곡〉 〈녹턴 파란색과 은색-첼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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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그림)    정보 더보기
프랑스 북부의 카토에서 태어났다. 법학을 공부하고 법률 사무소에서 일했으나, 출근 전 이른 아침 미술학교에서 미술 수업을 듣곤 했다. 스무 살 무렵 맹장염으로 요양하는 동안 그림을 그리면서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1891년 파리로 가 그림 공부를 시작한 그는 1893년 국립미술학교에 입학해 상징주의 화가 귀스타브 모로의 제자가 되었다. 1904년 무렵부터 파블로 피카소, 앙드레 드랭 등과 함께 야수파 운동을 주도해 20세기 회화의 위대한 혁명을 이끌었다. 1925년에는 정부로부터 프랑스 최고의 영예인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1930년대 이후에는 조각과 판화, 직물 디자인, 유리 공예, 책 삽화, 성당 벽화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었다. “일이 모든 것을 치유한다”고 말한 마티스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림을 그렸고, 1954년 11월 3일 니스의 집에서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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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위트릴로 (그림)    정보 더보기
Maurice Utrillo. 1883~1955. 프랑스의 화가. 평생을 몽마르트 풍경과 파리의 외곽 지역, 서민촌의 골목길을 그의 외로운 시정에 빗대어 화폭에 담았던 몽마르트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다작을 넘어 남작으로도 유명한데 유화만 3.000점이 넘는다. 인물화도 그리긴 했지만 5점 정도밖에 없고,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모델 출신으로 훗날 여류화가가 된 발라동의 사생아로 태어났지만 9살에 1891년에 스페인인의 화가 · 건축가 · 미술비평가인 미구엘 위트릴로(Miguel Utrillo)가 아들로 받아들여, 이후 모리스 위트릴로라 불리었다. 일찍이 이상할 정도로 음주벽을 보였고, 1900년에는 알코올 중독으로 입원하게 되었다. 그것을 고치기 위해, 어머니와 의사의 권유에 따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나 음주벽은 고쳐지지 않아 입원을 거듭했다. 그는 거의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고 화단에서도 고립되었고, 애수에 잠긴 파리의 거리 등 신변의 풍경화를 수없이 그렸다. 위트릴로의 작품은 크게 4개의 시기로 분류된다. 몽마니 등 파리 교외의 풍경을 그린 몽마니 시대(1903~1905), 인상파적인 작풍을 시도했던 인상파 시대(1906~1908), 위트릴로만의 충실한 조형세계를 구축해나간 백색 시대(1908~1914), 코르시카 여행의 영향으로 점차 색채가 선명해진 다색 시대(1915~) 등이다. 특히 백색시대 작품 중 수작이 많은데, 음주와 난행과 싸우면서 제작한 백색 시대 시절의 작품은, 오래된 파리의 거리묘사에 흰색을 많이 사용하여 미묘한 해조(諧調)를 통하여 우수에 찬 시정(詩情)을 발휘하였다. 그 후 1913년 브로화랑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열어 호평을 받았으나, 코르시카 여행(1912) 후 점차 색채가 선명해졌으며 명성이 높아지면서 예전의 서정성이 희박해지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1935년 위트릴로의 작품 찬미자인 벨기에의 미망인과 결혼하여 신앙심 두터운 평화로운 가정을 꾸려, 만년에 유복한 생활을 하며 파리 풍경을 계속 그려나갔다. 대표작으로 〈몽마르트르 풍경〉 〈몽마르트르의 생 피에르 성당〉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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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하삼 (그림)    정보 더보기
미국의 인상주의 화가. 미국의 도시와 해안을 주로 그렸다. 3,000점이 넘는 그림, 유화, 수채화, 에칭, 석판화 등을 제작했으며 20세기 초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미술품 및 공동품을 많이 소장한 성공한 사업가이며, 어머니는 미국의 소설가 너새니엘 호손의 후손이다. 1879년경부터 초기 유화를 만들기 시작했으나 선호하는 장르는 수채화였고 대부분 풍경화였다.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1886년 프랑스의 줄리앙 아카데미에서 구상적 드로잉과 회화를 공부했으며, 인상주의를 미국 미술계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국 인상주의의 선도적 역할을 했지만, 신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로 전환될 때 뒤늦게 인상주의에 합류했다. 후기 작품 중에 가장 독특하고 유명한 작품으로는 ‘깃발 시리즈(Flag Series)’로 알려진 30여 점의 그림이 있다. 1916년 뉴욕 5번가에서 열린 미국의 세계1차대전 참전 퍼레이드에서 영감을 얻어 연작을 만들었다. 그중 〈빗속의 거리〉는, 2009년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집무실을 재정비하면서 걸어놓아 화제가 되었다. 1960년대 미국에서 인상주의 화풍이 부활하기 전까지, 하삼은 ‘비운의 버려진 천재’로 남았으나, 1970년대에 프랑스의 인상주의 작품들이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거래되자, 하삼과 미국의 인상주의학파들은 다시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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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피사로 (그림)    정보 더보기
Camille Pissarro. 1830~1903. 서인도제도의 세인트토머스 섬 출생. 1855년 화가를 지망하여 파리로 나왔으며, 같은 해 만국박람회의 미술전에서 코로의 작품에 감명받아 그로부터 풍경화에 전념하였고, 수수하고 담담한 전원의 모습을 주로 작품에 담았다. 피사로는 폴 세잔과 폴 고갱에게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 두 화가는 활동 말기에 피사로가 그들의 ‘스승’이었다고 고백했다. 한편, 피사로는 조르주 쇠라와 폴 시냐크의 점묘법 같은 다른 화가들의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기도 했다. 1874년에 시작된 인상파그룹전(展)에 참가한 이래 매회 계속하여 출품함으로써 인상파의 최연장자가 되었다. 말년에 피사로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명성을 얻게 되는 것을 목격했고,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은 피사로를 존경했으며, 피사로는 인상주의 화가들 사이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붉은 지붕》 《사과를 줍는 여인들》 《몽마르트르의 거리》 《테아트르 프랑세즈광장》 《브뤼헤이 다리》 《자화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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