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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과 19세기 여성 시집 : 찬란한 숲을 그대와

제인 오스틴과 19세기 여성 시집 : 찬란한 숲을 그대와

(고전 여성 문학의 향연, 개정판)

루이자 메이 올콧, 샬럿 브론테, 에밀리 디킨슨, 에밀리 브론테,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루시 모드 몽고메리, 메리 셸리,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앤 브론테, 크리스티나 G. 로세티, 마거릿 풀러, 엘라 휠러 윌콕스, 에이미 로웰 (지은이), 박영희 (옮긴이)
  |  
봄날에
2019-05-15
  |  
11,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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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과 19세기 여성 시집 : 찬란한 숲을 그대와

책 정보

· 제목 : 제인 오스틴과 19세기 여성 시집 : 찬란한 숲을 그대와 (고전 여성 문학의 향연, 개정판)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외국시
· ISBN : 9791196520120
· 쪽수 : 224쪽

책 소개

『제인 오스틴과 19세기 여성 시집』 개정판. 여성에겐 어떠한 권리도 없던 시대를 살았던 여성 시인들의 시를 엮고 삶을 담았다. 19세기에는 사회적인 편견과 제약 때문에 여성 작가 대부분은 가명으로 책을 출간해야 했고, 여성이라는 사실을 숨기기도 했다. 수많은 난관도 무색하게 글쓰기를 기어코 업으로 삼았던 19세기 여성 작가들의 시를 소개한다.

목차

제인 오스틴
연민에 부치는 시 / 두통으로 침대에 누우니 / 젊은 친구를 위한 찬사 / 두통이 심해요 / 이 쪼그마한 쌈지 / 봐요, 그들이 와요 /

에밀리 디킨슨
견디려 밤을 공유하고 / “희망”은 날개가 달린 것 / 고요한 화산의 생은/ 광폭한 밤 광폭한 밤! / 이것은 세상에 보내는 나의 편지다 / 나는 아무도 아니에요! 당신은 누구인가요?/ 나의 강은 그대에게로 흐르고 / 좋은 아침이에요 한밤중이여 / 작디작은 배 한 척이 / 고통엔 망각의 요소가 있어 / 날아가는 것이 있으니 / 가슴은 우선 기쁨을 갈구하며 / 상처 입은 사슴은 가장 높이 뛰어오르고 / 상처받은 가슴 하나 위로할 수 있다면 / 영혼이여, 당신은 다시 주사위를 던질 건가요? / 나는 아름다움을 위해서 죽었답니다 / 진실을 모두 말하되 에둘러서 말해주오 / 새 한 마리가 오솔길로 내려앉아 / 내가 죽음을 찾아갈 수 없었기에 / 언제나 사랑했다는 /

샬럿 브론테
삶 / 후회 / 정열 / 기쁨 / 앤 브론테의 죽음에 바치는 시 /

에밀리 브론테
해는 지고 / 과거, 현재, 미래 / 추모 / 사랑과 우정 / 희망 / 연민 / 오, 내가 잠든 동안은 / -에게 바치는 시 /

앤 브론테
어느 바람 부는 날 숲에서 / 오, 나의 희망을 훔쳐갔구나 / 갇힌 비둘기 / 호소 /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능숙하지 못함 / 기쁨 속에 고통이 /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냐고요? (소네트 43) / 그대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소네트 14) / 내 미래는 내 과거를 오롯이 따라 하지 않을 거예요 / 나는 환영을 친구삼아 살았어요 (소네트 26) /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주는 게 옳을까요? (소네트 9) / 다시 말해주세요, 한 번 더 (소네트 21) / 처음 키스하던 때, 그는 (소네트 38) /

크리스티나 로세티
노래 / 이브의 딸 / 기억해주세요 / 첫날 / 오르막길 / 바닷가에서 / 마침내 잠들었구나 / 생일 /

죠지 엘리엇
달콤한 결말이 왔다 가네요, 사랑이여 / 런던의 한 응접실에서 / 잃어버린 날을 꼽아보라 / 세상은 위대하네 / 두 연인 /

메리 셸리
부재 / 오 그대에게 노래할 테니 들어주세요 / 사랑이 충만한 그대의 진한 눈빛을 잊을 테요 / 오, 꿈으로 나에게 와주오, 내 사랑 /

루이자 메이 올컷
금빛 그림자는 밝게 빛나고 / 비누 거품의 노래 / 장미 가족 - Song II / 흰 곱슬머리 한 가닥 /

마가렛 풀러
/ 불완전한 사고 / 사랑의 부재 / 영국 문학의 비평 : 시인과 비평가의 대화(1846) /

엘라 휠러 윌콕스
세상의 방식 : 고독 / 당신을 사랑합니다 / 고단한 / 당신은 어느 쪽인가? / 후회 / 사랑이 오네요 / 운명의 바람 : 범선 /

루시 몽고메리
이리 와, 잠깐 쉬어요 / 황혼 / 그대 / 행복을 찾는 사람 /

에이미 로웰
고집스러운 생각 / 택시 / 꽃잎 / 막간 / 부재 / 역설 / 연인 / 중년 / 비율 / 눈은 내리고 /

저자소개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32년 11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저먼타운에서 태어나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 에이머스 브론슨 올컷은 저명한 초월주의 사상가이자 사회 개혁가였고, 어머니 애비게일 메이 올컷은 상상력이 풍부한 여성이었다. 올컷은 인내와 절제를 강요하는 아버지의 교육철학을 온몸으로 떠안고 성장하면서, 아버지의 벗이었던 초월주의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 여성주의자 마거릿 풀러 등의 영향을 받았다. 성인이 되기 전부터 어려운 가정 살림을 꾸려나가기 위해 바느질, 가사노동, 가정교습, 글쓰기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남북전쟁중인 1862년에 자원입대하여 북군의 야전병원에서 간호병으로 복무하다 장티푸스 폐렴을 앓은 뒤 평생 건강문제로 시달린다. 당시 야전병원에서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집필한 『병원 스케치』(1863)는 그에게 작가로서의 첫 성공을 안겨주었다. 그뒤 1863년부터 1870년까지 A. M. 버나드라는 필명 또는 익명으로 고딕풍의 선정소설들과 스릴러들을 발표했다. 여성주의적 관점과 노예해방사상 등 급진적인 사상이 여실히 담겨 있는 이 시기의 작품들은 이후 여성주의 문학연구자들에게 새로이 발굴되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1868년과 이듬해에 ‘소녀들을 위한 책’ 『작은 아씨들』 1, 2권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명성을 얻었다.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토대로 재구성한 이 작품이 굉장한 인기를 끈 덕분에, 올컷은 재정적인 안정을 확보하고 작가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후 『구식 소녀』, 『작은 신사들』, 『조의 소년들』 등의 아동문학과 『변덕』, 『일』 등의 성인문학을 펴냈다. 생의 말년까지 여성운동과 노예해방운동, 금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올컷은 1888년 3월 보스턴에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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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 브론테 (지은이)    정보 더보기
영국 요크셔주의 브래드퍼드에서 성공회 목사 집안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다섯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여덟살 때 네 자매가 함께 카우언브리지 기숙학교에 입학했으나, 극도의 열악한 환경으로 이듬해에 두 언니마저 폐결핵에 걸려 사망한다. 어린 샬럿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남긴 이 경험은 훗날『제인 에어』(1847)의 로우드 기숙학교로 재현된다. 남은 세 자매 샬럿, 에밀리, 앤 브론테는 자신들만의 가상세계를 창조해 놀이처럼 글을 쓰며 성장한다. 1831년 로헤드 학교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간 샬럿은 1835년부터 1838년까지 그곳에서 교사로 일한다. 1842년 자신의 학교를 설립하겠다는 꿈을 품고 벨기에 브뤼셀로 유학을 떠나, 에제 부인의 기숙학교에서 학생 겸 영어 교사로 2년간 지낸다. 이때의 경험이 『빌레뜨』(1853)의 바탕이 되었다. 1846년 에밀리, 앤과 함께 시집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의 시』를 펴내고, 1847년 『제인 에어』를 출간해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같은 해에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 앤의『아그네스 그레이』도 출판되어 1847년은 브론테 가족에게는 물론 문학사에서 기념비적인 해로 기록됐다. 『제인 에어』에서 마지막 소설인 『빌레뜨』까지 여성의 경제적, 정치적, 정신적 독립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던 그의 작품들은 당대에 ‘불온한 책’으로 취급되며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나, 오늘날엔 선구적인 페미니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밖에 장편소설 『셜리』(1849), 처음으로 집필한 장편이지만 사후에야 출간된 『교수』(1857) 등을 남겼다. 독신을 고집했던 샬럿은 1854년 아버지 교회의 부목사인 아서 벨 니컬스와 결혼하지만, 이듬해 봄 임신 중에 건강이 악화되어 서른여덟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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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디킨슨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30년 12월 10일 매사추세츠(Massachusetts)의 애머스트(Amherst)에서 변호사이자 정치가, 대학 이사였던 아버지 에드워드 디킨슨(Edward Dickinson)과 어머니 에밀리 노크로스(Emily Norcross)의 사이에서 세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녀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생애의 대부분을 애머스트에서 살았다. 또한 그녀는 외출을 극도로 자제하는 은둔 생활을 했는데, 1872년 이후로는 의사도 집으로 찾아와 약간 열린 문틈으로 걸어 다니는 그녀를 보며 진찰을 해야 했을 정도로 과도한 대인 기피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디킨슨이 은둔 생활을 하게 된 것은 그녀의 악화된 시력은 물론, 심한 신경통으로 고생하던 병약한 어머니를 돌보아야 하는 딸로서의 책임감, 종교 문제, 아버지와의 사고방식의 차이, 식구들 사이에서의 경쟁의식, 그리고 주 의원으로 활동하던 아버지로 인해 끊임없이 드나들던 손님들을 맞이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무의식적인 거부감 등에서 기인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이유로, 그녀의 생애에 걸쳐 몇 번 있었던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위기를 들 수 있다. 말하자면,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바깥세상과 점점 담을 쌓게 된 것이다. 특히 디킨슨을 “북극광처럼 빛나는” 존재로 여기던 로드 판사가 1884년에 죽자 실의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다가, 그녀 자신의 건강까지 악화되어 그녀조차 1886년 5월 15일에 세상을 떠남으로써, 그녀는 55년 5개월 5일간의 생애를 마치게 된다. 디킨슨은 초등교육 과정을 거친 후, 애머스트 아카데미(Amherst Academy)에서 희망하는 강좌를 선택해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과 문예 창작 훈련을 받았으며, 약 1년간의 신학교 교육을 받기도 했지만, 이 밖의 정규 학교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성서보다는 문학작품에 더 많은 흥미를 가졌던 그녀는 독서를 통해 자신의 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것과 창작에 대한 열의와 영감을 얻었다. 그녀는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책을 깊이 탐독하는 습성이 있었다. 그녀의 삶과 자아 탐색 정신이 세상과 단절된 것으로만 생각하는 독자들이 많지만, 사실 그녀는 실제로 만나 접촉을 하지는 않았어도, 서신을 통해 당대 최첨단의 정신을 가진 지식인들과 시를 교류하며 부단한 교우 관계를 가졌다. 그녀는 또한 자선 단체와 어린 시절의 절친한 친구이자 당시 유명한 작가이던 헬렌 헌트 잭슨(Helen Hunt Jackson)에게 출판을 권유받기도 했지만, 생전에 출판 자체를 인정할 수 없었던 그녀는 이를 거부했다. 그녀는 종교의 반항아로서 청교도 신앙에 대해 회의를 품었으며, 구원의 희망에 대해 강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친한 친구를 비롯한 많은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으로 인해, 일찍부터 기독교의 신에 대해 근본적으로 강한 회의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그녀로 하여금 전통의 사고방식과 기존 종교에 대한 불신과 전통적인 시 형식에 대한 반발로 나아가도록 했고, 이러한 사고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녀의 시에 혁신적인 요소를 불러오며 시의 내용과 형식에 있어 일찍이 선구자적 위치를 차지하도록 했다. 그녀 생전에는 그녀의 요구에 의해 그녀의 시가 익명으로 일곱 편밖에 출간되지 못했지만, 그녀 사후에 44개의 시 꾸러미가 여동생 러비니아 노크로스 디킨슨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리고 평생에 걸쳐 그녀의 문학 상담 역할을 해왔던 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 작가인 토머스 웬트워스 히긴슨(Thomas Wentworth Higginson)과 토드 부인(Mrs. Todd)의 주선으로 1775편의 시가 세 권의 시집으로 1890년, 1891년, 1896년에 연속 출간되고, 두 권의 서간집이 1894년에 출간되었다. 시인으로서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하던 디킨슨은 1920년대에 이르러서야 시인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1955년 토머스 존슨(Thomas H. Johnson)에 의해 그녀의 시선집이 출판됨으로써 그녀는 오늘날 위대한 시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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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브론테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제인 에어』를 쓴 언니 샬럿, 『애그니스 그레이』를 쓴 동생 앤과 함께 영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브론테 자매〉 중 한 명이다. 에밀리 브론테는 1818년 잉글랜드 북부에 위치한 요크셔 근교 손턴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1남 5녀 중 4녀로 태어났다. 1821년 어머니를 암으로 잃고 영국 국교회 신부인 아버지의 슬하에서 자라다 1824년 세 언니가 다니던 기숙 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열악한 학교 환경으로 인해 언니 둘이 결핵으로 사망하면서 반년 만에 자퇴하고, 그때부터 가정 내에서 아버지에게 직접 교육을 받는 한편, 스콧, 바이런, 셸리의 문학 작품을 읽으며 홀로 교양을 쌓는다. 성인이 된 후 잠시 샬럿이 교사로 있던 학교에 입학하기도 하고 외지에서 교사 생활을 하기도 하지만 모두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으며, 평생 대부분의 시간을 아버지의 사제관에서 살림을 돌보며 독학으로 공부한다. 1846년 샬럿, 앤과 함께 시집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의 시』를 성별이 모호한 필명으로 공동 출간하나 거의 판매되지 않는다. 다음 해인 1847년 샬럿의 『제인 에어』,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 앤의 『애그니스 그레이』가 차례로 출간된다. 언니의 『제인 에어』가 즉각적인 성공을 거둔 데 비해 『폭풍의 언덕』은 바로 주목받지 못하고 1848년 에밀리가 폐결핵으로 사망한 후 반세기가 지나서야 비로소 위대한 명작으로 인정받는다. 『폭풍의 언덕』은 잉글랜드 북부 황량한 들판을 배경으로 거칠고도 격렬한 영혼을 지닌 이들이 두 세대에 걸쳐 펼치는 사랑과 배신, 복수 그리고 구원에 관한 이야기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허먼 멜빌의 『모비 딕』과 함께 영문학 3대 비극으로 꼽히며, 현대에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이야기로서 영화나 연극, 음악 등으로 끊임없이 변주되고 재해석되는 불후의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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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775년 12월 16일 영국 햄프셔 주 스티븐턴에서 교구 목사인 아버지 조지 오스틴과 어머니 커샌드라 사이에서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였고, 열두 살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스무 살이 되던 1795년에는 《엘리너와 메리앤》이라는 첫 장편소설을 완성했는데, 1797년 이 소설은 개작되어 《이성과 감성》으로 재탄생한다. 1796년에는 직접 경험한 사랑의 아픔을 바탕으로 《첫인상》을 집필하였는데, 소설 집필에 소질이 있다고 느낀 그녀의 아버지는 《첫인상》을 한 출판사에 보냈으나 거절당했다. 하지만 오스틴은 이후에도 습작과 초기 작품의 개작을 계속했다. 1805년 1월 아버지가 사망한 후에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3년간 형제, 친척, 친구의 집을 전전하다가 아내를 잃은 셋째 오빠 에드워드의 권유로 햄프셔 주의 초턴이라는 곳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1811년 《이성과 감성》을 익명으로 출판하였고, 《첫인상》을 《오만과 편견》으로 개작하여 1813년에 출판했다. 1814년 《맨스필드 파크》, 1815년에는 《에마》를 출간하여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으나 다음 해 《설득》을 탈고한 이후 급격하게 건강이 악화되어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다. 1817년 《샌디션》을 집필하고 있었으나 건강 악화 때문에 중단해야 했고, 작품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같은 해 7월 42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사후에 《노생거 수도원》과 《설득》을 비롯해 개작된 작품이나 생전의 습작품, 편지 등이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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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엘리엇 (지은이)    정보 더보기
본명은 메리 앤 에번스로, 1819년 영국 워릭셔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병약했던 탓에 어려서부터 여러 기숙학교를 돌며 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정통 기독교인 복음주의를 포기하고 보편적 인간성에 입각한 비국교도 교리를 택했다. 1854년 급진적 자유사상가인 유부남 조지 헨리 루이스와의 동거로 런던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다. 루이스의 격려에 힘입어 서른일곱 살에 소설을 쓰기 시작하지만, 1878년 루이스의 사망과 더불어 그녀의 작품 활동은 끝났다. 엘리엇은 예술의 위대한 기능은 ‘공감을 확대하고 개인적 운명의 경계를 넘어 경험을 증폭하고 다른 인간들과의 접촉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비평가 F. R. 리비스가 역설했듯, 엘리엇의 심리적 사실주의 미학은 삶에 대한 진지한 윤리적 감수성의 결실이고, 이런 미학을 통해 엘리엇은 19세기 영국 소설을 도덕적, 철학적, 윤리적 문제를 탐구하는 진지한 장르로 발전시켰다. 엘리엇은 이십여 년의 집필 기간 동안 슈트라우스의 『예수의 생애』와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을 번역했고, 《웨스트민스터 리뷰》의 부편집인으로서 많은 에세이를 발표했다. 1857년 세 편의 단편을 모은 『성직 생활의 단면들』을 조지 엘리엇이라는 필명으로 출판한 뒤, 대표작 『미들마치』와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을 비롯해 『애덤 비드』, 『사일러스 마너』, 『로몰라』, 『급진주의자 펠릭스 홀트』, 『다니엘 데론다』 등의 장편 소설과 『스페인 집시』 등의 시집을 출간했다. 1880년 12월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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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은이)    정보 더보기
자신을 닮은 사랑스러운 캐릭터 ‘앤’의 이야기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작가. 《빨강머리 앤》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1874년 캐나다 동부 지역인 프린스에드워드 섬에서 태어났다. 캐나다 여성 최초로 문학예술왕립학회 회원이 되었고, 대영제국 훈장(OBE)을 받았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캐나다 세인트로렌스 만에 위치한 프린스에드워드 섬에서 나고 자랐다. 생후 21개월만에 어머니를 잃고 외조부모의 손에 맡겨져 자랐는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뛰놀며 섬세한 감수성과 작가적 재능을 키웠다. 이 시골 마을에서 몽고메리는 앤과 같은 감수성을 키우고 지역 신문에 시를 발표하며 작가로서 재능을 키워갔다. 10세부터 창작을 시작하였으며, 15세 되던 해에는 샐럿타운 신문인 ‘패트리어트’에 시 <케이프 르포르스 위에서>가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이후 샬럿타운에 있는 프린스 오브 웨일스 대학과 핼리팩스에 있는 댈하우지 대학에서 공부한 후 교사가 되었으나, 스물네 살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외할머니를 위해 캐번디시로 돌아와 우체국 일을 도왔다. 틈틈이 글을 써 잡지에 시와 소설을 발표했으며 신문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18개월 만에 완성한 《빨강머리 앤》 원고를 여러 출판사에 보냈지만 거절당하고, 2년 뒤 다시 수정해 보스턴 출판사에 보내 비로소 출간했다. 열한 살에 우연히 이웃 독신 남매의 집에 어린 조카딸이 와서 사는 것을 보고 짧은 글을 썼던 것이 훗날 《빨강머리 앤》의 모티브가 되었다. 재혼한 아버지와 잠시 함께 살았지만, 계모와의 불화와 향수병으로 캐번디시로 돌아왔다. 1908년에 출간된 《빨강머리 앤》의 희망적이고 명랑한 고아 여자아이의 성장 이야기는 캐나다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이듬해인 1908년 미국에서 출간된 후 세계적인 인기를 끌어서 《에이번리의 앤》, 《레드먼드의 앤》 등 10여 편의 속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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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셸리 (지은이)    정보 더보기
1797년 8월 30일 런던, 영국의 소설가이자 정치사상가인 윌리엄 고드윈과 여성학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 직후 어머니가 사망하고 아버지는 재혼했는데, 부녀간의 돈독한 관계를 시기한 계모와 불화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서재에서 수많은 책을 읽고 아버지의 영향 아래 당대의 문인, 지식인과 교우하며 성장했다. 열다섯 살에 아버지의 제자이자 촉망받던 시인인 퍼시 비시 셸리를 만나 서로 사랑에 빠진다. 유부남인 퍼시 셸리와 세간의 이목을 피해 프랑스와 스위스로 도피 여행을 하던 중 열아홉 살이 되던 1816년 제네바 호수 근처에 머물던 시인 바이런 경을 만났다. 괴담을 한 편씩 써보자는 바이런의 제안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해 이듬해 장편소설을 완성하고, 1818년 익명으로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를 출간했다. 그 무렵 퍼시 셸리의 아내가 자살하고 메리와 퍼시는 런던에서 결혼식을 올렸다(이후 ‘메리 셸리’로 불리게 되었다). 네 아이를 낳았지만 그중 셋이 병으로 일찍 죽었고, 남편인 퍼시 셸리는 1822년 항해를 떠났다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오던 중 익사했다. 1823년 역사 소설 《발페르가》를 출간하고, 이듬해에는 남편의 시를 모아 《유고 시집》을 출간했다. 이후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가며 인류 멸망을 그린 소설 《최후의 인간》(1826), 모험담 《퍼킨 워벡의 행운》(1830) 등의 작품을 발표했고, 1831년에는 《프랑켄슈타인》을 개작해 재출간했다. 1837년 마지막 소설인 《포크너》를 출간하고, 1844년에는 메리 셸리의 유작이 된 여행기 《1840, 1842, 1843년 독일과 이탈리아 산책》을 출간했다. 1851년 2월 1일, 지병인 뇌종양이 악화해 런던에서 5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유언에 따라 부모님 곁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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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지은이)    정보 더보기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여류 시인들 중 한 사람이며, 빅토리아기에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작가인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Elizabeth Barrett Browning)은 1806년 3월 6일 영국의 더럼에서 아버지 에드워드 몰턴 배럿(Edward Moulton Barrett)과 어머니 메리 그레이엄 클라크(Mary Graham Clark) 사이에서 열두 명의 형제자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는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남동생들의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존 밀턴과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열 살이 되기도 전에 읽었으며, 곧 고전문학과 형이상학에 지적으로 심취하게 되었다. 여섯 살인가 여덟 살 때 처음으로 시를 썼으며, 열네 살이던 1820년에 그녀의 아버지는 생일 선물로 그녀가 쓴 네 권으로 된 서사시집 ≪마라톤에서의 전투(The Battle of Marathon)≫를 출간해 주었다. 정식으로 출간된 그녀의 첫 번째 시집은 1826년 ≪마음에 관한 에세이와 기타 시들(An Essay on Mind, with other poems)≫인데, 이 시집의 출간으로 인해 그녀는 그리스 문학을 전공한 학자들과 서신 왕래를 하게 되었고, 그리스 문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1844년에 출간된 ≪시≫로 인해 그녀는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의 대열에 들어섰고 당시 무명 시인이었던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의 열렬한 구애 편지를 받게 된다. 스무 살이 될 무렵부터 당시로서는 진단을 내릴 수 없는 희귀병으로 인해 병마와 싸워 온 엘리자베스는 처음에 로버트의 구혼을 거절했으나 결국 로버트의 진심에 감동하여 부친의 반대를 피해 이탈리아로 도망쳐 결혼한다. 엘리자베스는 1861년 6월 29일 15년간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마치고 죽었다. 엘리자베스가 로버트를 만났을 때 그녀는 이미 그보다 훨씬 많은 작품을 쓴 상태였지만, 그와 만난 이후 ≪포르투갈어에서 옮긴 소네트(Sonnets from the Portuguese)≫와 ≪오로라 리(Aurora Leigh)≫라는 유명한 작품들을 쓰게 되었다. “포르투갈어(Portuguese)”는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부르던 애칭이기도 했다. 엘리자베스의 사랑시 소네트는 남편인 로버트의 주장에 따라 다음번 시집에 포함되어 출간됨으로써 시인으로서의 그녀의 지위는 더 높아지고 확고해졌다. 워즈워스가 죽은 후인 1850년에 그녀는 계관시인 승계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계관시인의 영예는 테니슨에게로 갔다. 1856년에 출간된, 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오로라 리≫는 그녀의 야심적인 장시 작품으로 인기가 많았다. 1860년에는 이탈리아인들의 정치적 사건에 관한 ≪의회 이전의 시(Poems before Congress≫라는 시집을 남편에게 헌사하며 출간했다. 그녀의 마지막 시집은 ≪악기(A Musical Instrument)≫로, 그녀가 죽은 후에 남편이 출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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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브론테 (지은이)    정보 더보기
필명이 액턴 벨(Acton Bell)인 앤 브론테는 1820년 1월 17일, 잉글랜드 북부 요크셔 주의 손턴에서 패트릭 브론테와 마리아 브론테의 딸로 출생했다. 위로는 언니 마리아, 엘리자베스, 샬럿, 에밀리와 오빠 브랜월이 있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고, 손위 이모가 집안일을 돌봐준다. 다섯 살 때 마리아와 엘리자베스 두 언니가 사망한다. 1834년, 언니 에밀리와 함께 첫 번째 자전적인 글을 완성하는데 이 글에서 처음으로 곤달이 등장한다. 1835년, 샬럿이 하워스를 떠나 로헤드 학교 교사가 되고, 에밀리는 학생으로 같은 학교에 들어간다. 그러나 에밀리는 향수병으로 곧 집에 돌아오고, 대신 앤이 로헤드 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에밀리와 함께 두 번째 자전적인 글 완성하지만 심각한 병으로 2년 후 로헤드 학교를 떠난다. 1839년, 19세의 나이에 머필드의 블레이크 홀로 이주하여 잉햄 집안에서 가정교사 생활을 시작한다. 그해 12월 가정교사 일을 그만두고 하워스로 돌아와 곧바로 요크 근교의 토프 그린 홀에서 다시 가정교사 일을 시작한다. 1844년, 브론테 자매는 고향 하워스에 학교를 설립할 계획을 세우고 하워스에서 가족이 재결합한다. 1846년, 샬럿, 에밀리와 함께 쓴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의 시집(Poems by Currer, Ellis, and Acton Bell)>에 21편의 시를 발표, 1847년 10월에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가 출간되고, 이어 12월에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과 앤의 <아그네스 그레이>가 함께 출간된다. 1848년 앤 브론테는<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을 출간했다. 그해 9월에 브랜월, 12월에 에밀리가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그 다음해인 1849년, 앤 브론테도 29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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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 G. 로세티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30년 12월 5일 영국 런던의 샬럿 가 38번지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이탈리아 중부 지방인 아브루초에서 런던으로 정치 망명한 이탈리아 시인 가브리엘레 로세티였고 모친은 바이런과 셸리의 친구이며 내과 의사이자 작가인 존 윌리엄 폴리도리의 여동생 프랜시스 폴리도리였다. 막내딸인 그녀에게는 두 명의 오빠와 한 명의 언니가 있었는데, 오빠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는 빅토리아조 후기 예술가들의 문예 운동인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를 결성하고 이를 주도적으로 이끈 화가이자 시인이었고, 또 다른 오빠 윌리엄 마이클 로세티와 언니 마리아 프란체스카 로세티는 작가였다. 주로 낭만적인 시, 종교적인 시, 동시를 쓴 크리스티나 로세티는 어려서부터 문학에 조숙한 감상력을 나타냈으며, 오빠처럼 시인 기질을 타고 났는데, 열두 살인 1842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빠 단테는 일찍이 그녀의 천재성을 인정해 시를 발표하도록 권고했는데, 열여덟 살인 1848년에 그녀는 ≪아테나 신전(Athenaeum)≫에 첫 번째 시를 발표했고, 그 후에는 “엘렌 앨런”(Ellen Alleyne)이라는 필명으로 라파엘 전파가 간행하고 오빠 윌리엄이 편집을 맡은 문학잡지 ≪기원(The Germ)≫에 여러 편의 시를 발표했다. 그리고 서른한 살 때인 1862년에는 그녀의 첫 시집이자 가장 유명한 시집인 ≪고블린 시장과 기타 시들(Goblin Market and Other Poems)≫을 출간했다. 이 시집은 많은 비평적 찬사를 받았으며 그녀를 당대 주요 여류 시인으로 확고히 서게 해 주었는데, 1861년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이 죽고 그 이듬해에 나온 이 시집은 곧바로 그녀를 엘리자베스의 계승자로 열렬한 환호를 받도록 했다. 또한 환상적인 시, 동시, 종교시, 설교문, 논설문에 뛰어난 재주를 보인 그녀에게 홉킨스, 스윈번, 테니슨 등도 찬사를 보냈으며, 후에 암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테니슨의 뒤를 이을 계관시인 후보로 거론되기까지 했다. 1870년대 초부터 그녀는 고통스럽고 보기 흉한 그레이브스병(안구가 돌출되는 갑상선 기능 항진증)에 걸려 고생했다. 그리고 1893년에는 유방암에 걸려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지만, 그 이듬해에 재발해 결국 1894년 12월 29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생전에 미국 남부의 노예제도, 동물을 실험에 이용함으로써 학대하는 것, 미성년자를 창녀로 이용해 노동 착취하는 것 등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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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 로웰 (지은이)    정보 더보기
브루클린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덕분에 어려서부터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집에 약 7,000권의 도서가 있었으며, 이 덕분에 일찍부터 문학에 눈을 뜨고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녀는 당시 가난했던 많은 시인들의 경제적 후원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미국시를 부흥시키기 위해 많은 에세이를 썼고, 두 권 분량의 존 키츠 문학 전기를 써냈으며, 영국에서 시작된 이미지즘 운동을 미국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시어의 장황함을 피하고 풍성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힐다 두리틀Hilda Dolittle의 시를 보고 이미지즘을 연구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가 수많은 이미지스트들의 작업을 미국에 소개했다. 당시 비평가들은 시인으로서 그녀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남자처럼 셔츠를 입고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비만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작품을 깎아내렸지만, 《몇 시입니까What’s O’Clock》(1925)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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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지은이)    정보 더보기
홍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한 번의 여행으로 이탈리아에 매료되어 어느 날 그곳으로 떠나 살게 된다. 그 후 언어 공부에 빠져 지금은 영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를 구사한다. 식물과 고양이를 키우고, 3개국어와 인디자인 강의를 한다. 봄날에 출판사 대표이며 언어와 디자인 그리고 여성주의 고전문학 책을 만들고 있다. 『고딕 픽션, 섬뜩하고 달콤한 로맨스』 『영어 공부의 기술』 『소소한 근육과 슬기로운 식사가 필요합니다』 『인디자인CC 책 한 권 뚝딱 만들기, 편집 디자인 실무』 『소중한 첫 여행 3개국어 -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그뤠잇! 넘 쉬운 여행 영어』 『겁없이 잉글리시 20일 동사편』 『두근두근 이제 영어로 말해요』 등의 책을 펴냈으며, 『제인 오스틴과 19세기 여성 시집-고전 여성 문학의 향연』 『제인 오스틴과 19세기 여성 시집-찬란한 숲을 그대와』 『어린왕자 - 치유하는 고전 낭독』 등을 엮고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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