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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명단편선 8

일본 명단편선 8

(일상을 발견하다)

도쿠다 슈세이, 히구치 이치요, 나쓰메 소세키, 시마자키 도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다니자키 준이치로, 기쿠치 간, 아리시마 다케오, 시마키 겐사쿠 (지은이), 최재철, 이부용, 임태균, 최석재, 유미선, 우성아, 신영언, 신중관, 오현진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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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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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명단편선 8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일본 명단편선 8 (일상을 발견하다)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전 일본소설
· ISBN : 9791128856662
· 쪽수 : 546쪽
· 출판일 : 2021-07-28

책 소개

메이지부터 쇼와 전기, 그리고 전후의 작품까지, 일본 근현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명단편을 모았다. 주제별 단편집 출간은 그동안 한국 출판에 전례가 없는 일이다. 8권에서는 도쿠다 슈세이의 <욕조>를 비롯해 12편의 작품을 소개한다.

목차

욕조(風呂桶) ― 도쿠다 슈세이 / 최재철
처마에 걸린 달(軒もる月) ― 히구치 이치요 / 이부용
자전거 일기(自転車日記) ― 나쓰메 소세키 / 이남금
출발(出発) ― 시마자키 도손 / 임태균
코(鼻)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최석재
두 명의 아이(二人の稚児) ― 다니자키 준이치로 / 유미선
M 후작과 사진사(M侯爵と写真師) ― 기쿠치 간 / 우성아
물에 빠질 뻔한 남매(溺れかけた兄妹) ― 아리시마 다케오 / 우성아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子に送る手紙) ― 시마자키 도손 / 임태균
연말의 하루(年末の一日)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신영언
도모다와 마쓰나가의 이야기(友田と松永の話) ― 다니자키 준이치로 / 신중관
검은고양이(黒猫) ― 시마키 겐사쿠 / 오현진

저자소개

기쿠치 간 (지은이)    정보 더보기
다이쇼에서 쇼와시대에 걸쳐 활약한 소설가, 극작가, 저널리스트, 실업가이다. 가가와현(香川県) 출신으로 제일고등학교를 거쳐 교토제국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구메 마사오(久米正雄) 등과 제3, 4차 <신사조(新思潮)>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1918년 「무명작가의 일기(無名作家の日記)」, 「다다나오경행장기(忠直卿行狀記)」로 데뷔하였으며, 희곡 「아버지 돌아오다(父帰る)」(1917), 「은혜와 원수의 저편에(恩讐の彼方に)」(1919) 등을 발표하였고, 「진주부인(真珠夫人)」(1920)을 비롯한 50편에 이르는 장편 통속소설에 의해 신현실주의 문학의 새 방향을 열었다. 종합지 <문예춘추(文藝春秋)>를 창간하고 일본문예가협회를 설립하였으며, 아쿠타가와상(芥川賞)과 나오키상(直木賞), 기쿠치간상(菊池寛賞)을 설치하였을 뿐 아니라, 영화사 다이에이(大映)의 초대사장으로 영화사업에도 관여하는 등 ‘문단의 거물’로 불리었다. 또한,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요코미쓰 리이치(横光利一),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 등 신진문학자를 원조하며 신인의 발굴, 육성 등에 공헌하였다. 태평양전쟁 중에는 문예총후운동을 발안하였으며, 1939년에는 조선예술상을 제정하여 조선의 작가나 총독부 관리와 접하면서 조선문단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 후에 공직 추방을 당한 상태에서 1948년 협심증으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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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지은이)    정보 더보기
나쓰메 긴노스케는 원치 않은 아이로 태어났다. 갓난아기 적에 시오바라 가문으로 입양되었다가 양부모의 이혼으로 다시 나쓰메 집안으로 돌아왔다. 부모한테서 인정받지 못한 불안한 환경 속에서도 면학에 전념하여 동경제국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친구에게서 '돌로 이를 닦는다'는 뜻의 소세키라는 호를 물려받았다. 그는 거의 평생 어디 한곳에 정착하지 못했다. 이곳저곳에서 영어교사 생활을 전전하다가 일본 정부의 명령으로 영국 국비유학을 떠났지만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신경쇠약에 시달리면서 자기의 본령을 찾느라 유학생활도 실패했다. 소세키는 뒤늦게 하늘이 내린 자기 재능과 자신이 가야 할 인생을 깨달았다. 도쿄로 돌아온 후 서른일곱 살이 돼서야 기분 전환 삼아 소설 한번 써보지 않겠냐는 친구의 권유로 단편을 하나 쓴 것이 소세키의 인생을 바꾸었다. 그것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였다. 그는 내면에 가득했던 세계를 한꺼번에 폭발시켰다. <도련님>, <풀배게>, <우미인초>, <산시로>, <그 후>, <문>, <마음>, <열흘 밤의 꿈>, <봄날의 소나티네>, <현대 일본의 개화>, <나의 개인주의> 등 소설, 하이쿠, 수필, 평론, 한시, 강연, 여러 장르에 걸쳐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일본인이 사랑하는 국민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국가와 권력을 멀리하였다. 문부성이 박사학위를 선사하자 그것을 거부하였다. "박사가 아니면 학자가 아닌 것 같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한다면 학문은 소수 박사들의 전유물이 되어 학자적인 귀족이 학문권력을 장악하는 폐해가 속출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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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86년 도쿄 니혼바시에서 태어났다. 제일 고등학교를 거쳐 도쿄 제국 대학 국문과에 입학하였으나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퇴학당했다. 1910년 『신사조(新思潮)』를 재창간하여 「문신」, 「기린」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했고, 소설가 나가이 가후로부터 격찬을 받으며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 1915년 열 살 어린 이시카와 치요코와 결혼했는데, 시인인 친구 사토 하루오가 그의 부인과 사랑에 빠지자 아내를 양도하겠다는 합의문을 써 『아사히신문』에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문화 예술 운동에도 관심을 가진 그는 시나리오를 써 영화화하고 희곡 『오쿠니와 고헤이』를 발표한 뒤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1924년 『치인의 사랑』을 신문에 연재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검열로 중단되었다. 1942년 그는 세 번째 부인이자 그가 희구하던 여성인 마쓰코와 그 자매들을 모델로 『세설』을 쓰기 시작했다. 간사이 문화에 대한 애정이 짙게 배어 있는 『세설』은 몰락한 오사카 상류 계츨의 네 자매 이야기, 특히 셋째인 유키코의 혼담을 중심으로 당시의 풍속을 잔잔하게 전하는 풍속 소설이다. 1943년 『중앙공론』 신년호와 4월호에 게재되었고 7월호에도 실릴 예정이었으나 <시국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발표가 금지되어 전후에야 비로소 작품 전체가 발표되었다. 훗날 마이니치 출판문화상과 아사히 문화상을 받았다. 1948년에는 제8회 문화 훈장을 받았고 1941년 일본 예술원 회원, 1964년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문학예술 아카데미의 명예 회원에 뽑혔다. 1958년 펄 벅에 의해 노벨 문학상 후보로 추천된 이래 매년 후보에 올랐으며 1965년에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 밖의 대표작으로는 『치인의 사랑』, 『만』, 『킨쇼』, 『열쇠』, 『장님 이야기』, 『미친 노인의 일기』 등이 있고,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 이야기』를 현대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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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자키 도손 (지은이)    정보 더보기
시, 소설, 수필, 동화 등 문학의 전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해 일본문학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작가다. 1872년에 나가노현(長野縣) 니시지쿠마군(西筑摩郡) 미사카(神坂)에서 아버지 마사키(正樹)와 어머니 누이(縫)의 막내로 태어났다. 도손의 가문은 1513년에 선조가 기소(木曾)로 이주해 와서 대대로 촌장과 역참과 숙박업을 가업으로 이어 왔는데 바로 아버지 마사키가 본 소설 주인공 한조의 모델이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로부터 《천자문》과 《권학편》 등을 배웠고 열 살 때 도쿄로 유학을 가서 매형 집에서 기숙하며 다이메이(泰明)소학교를 다니게 된다. 그 후 여러 곳으로 전전하며 15세 되던 해에 시바(芝)에 있는 영어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정신적 스승인 기무라 구마지(木村熊二)에게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이해 11월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 본격적으로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메이지(明治) 학원 본과에 입학한다. 한때 정치에 뜻을 두고 있었으나 18세 되던 해에 동경대 교양학부의 전신인 제1고등학교 입학시험에 실패를 계기로 문학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21세인 1892년부터 잡지 《여학(女學)》에 습작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학의 길에 들어선다. 22세에는 《문학계(文學界)》 창간 동인으로 참가하고 거기에 작품을 발표하며 필명인 도손(藤村)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26세 되던 해에 발표한 《새싹집(若菜集)》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일약 무명에서 스타덤에 오른다. 특히 그 안에 수록된 〈첫사랑(初戀)〉이라는 7·5조의 정형시가 독자들을 단숨에 매료한다. 이 시는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며 국민적 시인이라는 명성을 얻는 계기가 된다. 그는 연이어 네 번째 시집 《낙매집(落梅集)》까지 간행하지만 시로는 만족을 하지 못하고 산문으로의 전향을 염두에 두고 습작 삼아 수필 《지쿠마가와강 스케치(千曲川のスケッチ)》를 발표한다. 이 작품도 명작으로 명성을 얻는다. 31세에는 〈옛 주인(舊主人)〉이라는 첫 단편소설을 발표하는데 풍기 문란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발매를 금지당하고 만다. 33세에는 결연한 각오로 자비 출판을 계획하고 장인에게 자금 원조를 부탁하는데 이 작품이 1906년 35세에 출간되는 《파계(破戒)》다. 천민 계급의 차별 문제를 픽션으로 다룬 것으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출세작이며 일본 자연주의 작품의 기념비적 작품이라 일컬어진다. 1908년, 과거 22세 때 제자를 사랑한 나머지 학교를 사직하고 여행을 떠났던 자신의 사건을 소설로 《아사히 신문》에 연재하고 간행한 것이 바로 《봄(春)》(1908)이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이른바 사소설 글쓰기가 유행하며 이 흐름이 일본 자연주의의 주류가 되었다. 39세에는 《집(家)》(1910)을 《요미우리 신문》에 연재하는데 출가한 누이의 가문과 친정의 두 가문의 가부장제하의 퇴폐와 붕괴의 과정을 그린 누이의 생애를 그린 자전적 소설이다. 47세에는 상처하고 혼자 지내던 중 집안일을 돌보러 온 조카를 임신시킨 사실을 소설로 써서 발표하게 된다. 《신생(新生)》(1918)은 작가 자신의 치부 고백의 완결편이지만 “노회한 자기변명에 불과하다”라는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혹평을 듣기도 한다. 58세부터는 본 작품인 《동트기 전》 집필을 시작한다. 그동안 축적해 온 작가적 역량을 총동원한 비장한 글쓰기였는데 이 작품은 그가 평생 동안 일관되게 추구해 왔던 “자아정체성 찾기”의 일환으로 아버지를 추적한 것이며 그 아버지라는 메타포에 자신의 내적인 성찰과 고뇌도 함께 상감해 넣었다. 그와 동시에 프랑스에 도피 도중 우연히 목격한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전쟁 참화와 그에 따른 국가의 존재를 절감하면서 정치 시스템까지 아우르는 역사 소설을 써야겠다는 문학적인 사명감을 이 소설을 통해 실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4세에 이 작품을 완결한다. 그리고 72세에 소설 《동방의 문》을 집필하던 중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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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구치 이치요 (지은이)    정보 더보기
본명은 히구치 나쓰(樋口奈津). 1883년 12세에 세이카이(靑海) 소학교 고등과 4년급(초등학교 5학년에 해당) 수석 졸업이 최종 학력이지만, 에도 하급 무사였던 아버지의 도움으로 1886년 15세에 하기노샤에 들어가, 동문인 미야케 가호와 가깝게 지내며 훗날 소설가로 등단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큰오빠인 센타로(泉太郞)가 폐결핵으로 사망하자 1888년 17세에는 이치요가 히구치 집안의 호주가 되었고, 이듬해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하였다. 1890년에 어머니, 언니와 함께 혼고 기쿠사카초(本鄕菊坂町)로 이사했다. 빨래나 바느질로 생계를 꾸려갔는데, 미야케 가호가 소설 『덤불 속 꾀꼬리』로 인정받아 신진여류작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것에 자극받아 소설을 쓸 생각을 하였던 듯하다. 1891년부터『가레오바나(枯尾花: 마른 참억새꽃)』를 비롯한 5편을 동인지에 게재하다가 1892년에 미야케 가호의 소개로 『우모레기(うもれ木: 매목)』를 발표하며 원고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 후 2편의 소설을 발표하고, 혼고(本鄕)에서 류센지초(龍泉寺町: 속칭 다이온지 앞, 大音寺前)로 이사하여 철물·완구·과자 등을 파는 작은 가게를 시작하였지만 잘되지 않았다. 2편의 소설을 또 발표하고, 1893년에는 장사를 그만두고 혼고 쪽으로 다시 이사하였다. 그 후 『오오쓰고모리(大つごもり: 섣달 그믐날)』를 비롯하여 『다케쿠라베(키재기)』, 『주산야(十三夜: 십삼야)』, 『니고리에(にごりえ: 탁한 강)』등 14개월 동안 무려 11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 후에도 소설과 수필, 일기를 집필하고, 와카 8수를 발표하였다. 1896년 9월 9일에는 하기노샤의 와카 모임(歌會)에 출석하였으나, 11월 23일 폐결핵이 악화하여 25세로 사망하였다. 다음 해에『이치요 전집(一葉全集)』이 간행되었으며, 살아생전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생한 이치요가 아이러니하게도 2004년에는 5000엔권 지폐 속 인물로 채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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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시마 다케오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0년대 낙관적 이상주의를 구가했던 ‘시라카바(白樺)파’의 동인으로 기독교와 톨스토이,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홋카이도의 삿포로 농학교 시절 금욕적 청교도 생활을 실천하며 완벽한 영적 생활을 추구했지만, 더욱 강하게 솟구치는 성욕으로 인해 그의 내면은 영과 육으로 분열되어 갈등하게 된다. 미국 유학 시기, 영육을 모두 긍정하는 휘트먼에 공감하고 크로폿킨의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한다. 귀국 후 사회 속에서 자신의 사상을 실천하지 못하고 극도의 갈등을 겪게 된다. 마침내 교회를 탈퇴하고 부모에게 상속받은 홋카이도의 방대한 농장을 소작인에게 나눠 주고 문학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펼쳐 나가는 데 매진한다.아리시마는 시라카바파 중에서도 계급적 모순과 여성의 해방 등 사회 문제에 주목했다. 선과 악, 영과 육을 동등하게 긍정하며 자유인을 지향하고 ‘본능적 삶’을 갈구했다. ‘남녀의 사랑이 절정인 순간에 죽는다’고 했던 아리시마는 1923년 유부녀 하타노 아키코(波多野秋子)와 동반 자살한다. 대표작으로 <어떤 여자의 초상(或る女のグリムプス)>(1911∼1913), <선언>(1915), <카인의 후예>(1917), <돌에 짓눌린 잡초(石にひしがれた?草)>(1918), <어린 것들에게>(1918), <태어나려는 고뇌>(1918), ≪어떤 여자≫(19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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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2년 일본 도쿄의 시타마치에서 태어났다. 1913년 도쿄제국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해 차석으로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14년 기쿠치 간, 구메 마사오 등과 함께 동인지 《신사조》를 발간하고 〈라쇼몬〉, 〈코〉 등을 발표했는데, 〈코〉가 나쓰메 소세키로부터 극찬을 받으면서 문단에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합리주의와 예술지상주의의 작풍으로 시대를 풍미했으나 말년에는 자신의 삶을 조롱하는 자조적인 작품들을 많이 썼다. 서른다섯 살 되던 해인 1927년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은 일본 근대사에서 관동대지진과 견줄 만큼의 사회적 충격이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1935년 일본 출판사 문예춘추의 사주이자 아쿠타가와의 친구였던 기쿠치 간이 아쿠타가와 상을 제정, 현재까지도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으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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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키 겐사쿠 (지은이)    정보 더보기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학교를 중단하고 은행에서 일했다. 도쿄 생활과 병으로 고생한 경험, 간토 대지진의 상처로 귀향하기까지 7년간의 경험이 작품에 녹아 있다. 그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인물은 농민 운동가 미야이 신이치(宮井進一)로 그로 인해 농민 운동가로서의 삶을 산다. 도호쿠 지방 농민 운동 조직의 주최자를 맡게 되고 마르크스주의를 익히고 학생운동에 가담했다. 1927년 공산당에 입당하고 구속되지만 전향해 석방되고 그 이후에는 소설가로 활동한다. 대표작으로는 ≪감옥(獄)≫, ≪여명(黎明)≫, ≪생활의 탐구(生活の探求)≫(1937), ≪어느 작가의 수기(或る作家の手記)≫(194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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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다 슈세이 (지은이)    정보 더보기
23세에 하쿠분칸(博文舘) 편집부에 취직 후, 이즈미 교카의 소개로 오자키 고요의 문하생이 되어 1896년 처녀작을 발표했다. 1900년 <구름의 행방(雲のゆくへ)>(≪요미우리 신문≫ 연재)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후, 서민의 생활과 여성 묘사에 능했다. 대표 작품은 ≪신세대(新世代)≫, ≪곰팡이(黴)≫, ≪짓무름(爛)≫, ≪거친 사람(あらくれ)≫, ≪가장 인물(仮装人物)≫ 등이 있다. 단편 소설에서도 재능을 인정받아 몇 권의 단편집이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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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철 (옮긴이)    정보 더보기
≪일본 명단편선≫(지식을만드는지식, 2015∼2021) 주제별 전10권을 기획했다. 한일비교문화연구소 소장. 한국외국어대학교 및 동 대학원(일본문학) 수료, 도쿄대학 대학원(비교문학비교문화) 박사과정 수료.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일본연구소장, 외국문학연구소장, 도서관장, 일본어대학장과 세계문학비교학회장, 한국일어일문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사회 봉사로는 한국문학번역원, 대산문화재단, 대한민국학술원 등의 심사 위원을 역임하고, 서울시교육청동대문도서관과 협력하여 시민인문대학을 개설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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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언 (옮긴이)    정보 더보기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와세다대학 대학원을 수료하고, 오차노미즈대학 대학원 문학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성신여자대학교 명예교수다. 논문은 <二葉亭四迷 研究>, <Charles Dallet 저 ≪한국천주교회사(韓国天主教会史)≫(1874)의 일본에서의 수용>(≪일본언어문화≫ 제21집) 등이 있다. 저서는 ≪일본단편소설 해설 감상≫(진명출판사), 번역은 ≪세계문학 전집≫ 14, 15권 일본문학 편 ≪백인(白人)≫ 외(삼성출판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전집≫(조사옥 편) I, III권 ≪무도회≫ 외(제이앤씨), ≪오타 쥴리아≫, ≪남편 엔도 슈사쿠를 말한다≫, ≪아름다운 사람에게≫ (이하 성바오로출판사)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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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균 (지은이)    정보 더보기
중앙대학교 일어일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오사카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결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한국일본학회 편집이사 및 편집위원, 한국일본문화학회 근대문학분과이사, 한국일본기독교문학회 총무이사 등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포인트 일본 문학사』『일본 근현대문학과 연애』『일본문학 속의 기독교』(이상 공저), 『일본 근현대소설의 이해와 감상』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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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용 (옮긴이)    정보 더보기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비교문학·비교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 및 동 대학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학(東京大學)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에서 ≪겐지 이야기(源氏物語)≫에 나타난 교육에 관한 연구로 학술석사 및 학술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강원대학교 강원문화연구소에서 전임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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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선 (옮긴이)    정보 더보기
동국대학교 대학원 졸업(문학박사/일본근현대문학 전공) 현, 극동대학교 일본문화관광컨텐츠학과 교수 역서 『신과 인간 사이』 『다니자키 준이치로 단편집』 『春琴抄』 『오사카 재일조선인 시지 진달래·가리온』 (1-5권) 저서 『일본근현대문학과 전쟁』 『문형으로 배우는 일본어/일본어문형』 『日本語ワークブック1』 『日本語ワークブック2』 『日本語ワークブック3』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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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재 (옮긴이)    정보 더보기
시가 나오야 문학을 전공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박사, 일본에서 문학박사를 받았다. ‘21세기 강원도정 기획위원회’ 연구위원이며, 제3회 아시아국제하이쿠제 심사위원 장려상을 수상했다. 강릉원주대학교 문화연구소 소장, 강릉원주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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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관 (옮긴이)    정보 더보기
도쿄대학 총합문화연구과(비교문학 비교문화전공)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일어일문학과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는 <모래의 여자> 등으로 잘 알려진 작가 아베 고보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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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진 (옮긴이)    정보 더보기
중앙대학교에서 일본 근현대문학을 전공,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의 동시대성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연구하고 있다. 발표 논문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연구-인물들의 지진 후 심리 상태를 중심으로>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고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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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는 요즘 무엇을 보아도 길지 않은 자신의 생명을 재는 척도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좋아하는 화초를 봐도 내년 이맘때가 되어야 같은 꽃이 핀다고 생각하니 그걸 기다리는 마음이 쓸쓸했다. 1년에 한 번밖에 없는 제철의 죽순이나 송이버섯을 먹어도 같은 의미로 왠지 마음이 쓸쓸해졌다. 평소 산책 다니는 길의 가로수 나무줄기가 눈에 띄게 굵어진 걸 보면, 옮겨 심었을 때로부터 벌써 10년쯤의 세월이 흐른 것이라 또 그만큼 자신의 생명이 단축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쓰시마와 같은 나이가 되면 죽음에 직면해 있는 폐병 환자가 통상 죽음의 관념 반대쪽에 멀찍이 피해 있을 수 있는 것처럼, 비교적 나이의 관념에서 벗어나 지내기 쉬웠다. 먹구름에 길을 재촉하는 듯했던 젊을 때의 초조가 낡은 용수철처럼 느슨해지고 느낌이 무디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는 생명의 연속인 아이들의 성장을 기뻐하는 마음과 애달파하는 마음이 자신의 걱정을 용인해 주고 있는 것이었다.
-도쿠다 슈세이, <욕조>


그 후작의 농담에, 유쾌함에, 성급하고 단순한 스기우라가 다짜고짜 달려든 것입니다. 세상에 사탕발림에 넘어간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스기우라는 완전히 그것을 문자 그대로 실행한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빈말로 한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여 제시간에 집사를 협박하면서까지 찾아온 스기우라를 상대로, 후작이 마지못해, 아마도 미간을 찡그리면서 자라 요리를 먹는 광경이 우스꽝스러운 캐리커처같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이렇게도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후작, 서민적인 후작은, 후작을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스기우라에게 말한 것 같은 빈말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기쿠치 간, <M 후작과 사진사>


시게조의 남편 마쓰나가라는 사람과 도모다 사이에는, 최초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깊은 관계가 숨어 있는 듯한 인상이 있다. 왜냐하면 시게조의 편지에 의하면 마쓰나가라는 사람이 두 번째로 고향에 돌아온 것은 1915년 가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은 1918년 여름까지는 시골에 있다가 다시 가출했다고 한다. 그러나 딱 그 기간, 1915년 가을부터 1918년 여름에 이르는 사이에 나는 도모다를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다. 내 쪽에서도 역시 햇수로 4년 사이에 도모다를 만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에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엄청나게 호기심이 일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 <도모다와 마쓰나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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