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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씨책] 일본 명단편선 6](/img_thumb2/9791128856556.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전 일본소설
· ISBN : 9791128856556
· 쪽수 : 482쪽
· 출판일 : 2021-07-28
책 소개
목차
첫째 날 밤의 꿈(第一夜) ― 나쓰메 소세키 / 최재철
눈 오는 날(雪の日) ― 히구치 이치요 / 이부용
귀거래(帰去来) ― 구니키다 돗포 / 권정희
오세이 이야기(お倩女のはなし) ― 고이즈미 야쿠모 / 이정희
할아버지 할머니(ぢいさんばあさん) ― 모리 오가이 / 유진우
호색(好色)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김태영
소녀(少女) ― 와타나베 온 / 이남금
어설픈 천사(不器用な天使) ― 호리 다쓰오 / 장유리
불타는 뺨(燃ゆる頰) ― 호리 다쓰오 / 허호
사랑하러 간다(恋をしに行く) ― 사카구치 안고 / 김정희
비용의 아내(ヴィヨンの妻) ― 다자이 오사무 / 배가혜
예언(予言) ― 히사오 주란 / 전은향
저자소개
책속에서
1.
여자는 조용한 어조를 한층 높여,
“백 년 기다려 주세요”라고 각오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 년, 내 묘지 옆에 앉아 기다리고 있어 주세요. 꼭 만나러 올 테니까요.”
나는 그저 ‘기다리고 있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까만 눈동자 속에 선명하게 보였던 내 모습이 희미하게 무너져 내렸다. 고요한 물이 움직여 비치는 그림자를 흩트리면서 흘러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여자의 눈이 딱 닫혔다. 긴 속눈썹 사이에서 눈물이 볼로 떨어졌다. -이미 죽어 있었다.
나는 뜰에 내려가 진주조개 껍데기로 구덩이를 팠다. 커다란 진주조개는 매끄러운 가장자리가 예리했다. 흙을 파낼 때마다 조개 뒷면에 달빛이 비쳐 반짝반짝 빛났다. 눅눅한 땅 냄새도 났다. 구덩이는 얼마 안 되어 팔 수 있었다. 여자를 그 안에 넣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흙을 살짝 덮었다. 덮을 때마다 진주조개 뒷면에 달빛이 비쳤다.
-나쓰메 소세키, <첫째 날 밤의 꿈>
2.
그러자 세일러복을 입은 소녀는 돌연 얼굴을 들어 올려 이부카 군을 보았다. 마치 이부카 군이 거기 구경꾼들 사이의 뒤쪽에서 엿보고 있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처럼. (하지만 방 안은 밝고 밖은 어두워서 이부카 군이 봤다고 생각하더라도 상대 쪽에선 안 보였을 수도 있다. 더욱이 이부카 군이 그곳에 같이 있다는 걸 신경 써야 할 이유 같은 건 없지만 어쨌건 너무도 갑자기 두 사람의 눈이 딱 마주친 것이다.) 창백한 얼굴에다 눈 끝으로 길게 뻗은 속눈썹까지 눈물에 반짝이며 귀여운 윤곽을 지닌 얼굴이다. 이부카 군은 그때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만큼 놀랐다. 갑자기 자기를 쳐다봐서만이 아니다. 이부카 군은 거기서 그야말로 자신이 연모하는 소녀에 다름 아닌 소녀를 발견했던 것이다.
-와타나베 온, <소녀>
3.
저는 가게에 들어선 작업복 차림의 일행에게 웃는 얼굴로 인사하면서 주인아주머니에게 속삭였습니다.
“아주머니, 죄송한데 앞치마 좀 빌려주세요.”
“이야, 미인을 데려다 놓으셨네. 이거 보통이 아닌데?”
손님 중 한 사람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유혹하지 마십쇼. 돈이 걸려 있는 몸이니 말입니다.”
주인 남자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백만 불짜리 명마(名馬)다, 이 소린가?”
또 다른 손님이 저급한 농담을 던졌습니다.
“명마도 암컷은 반값이라면서요.”
사케를 데우면서 저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비용의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