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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책읽기/글쓰기 > 책읽기
· ISBN : 9791186846315
· 쪽수 : 176쪽
· 출판일 : 2018-06-29
책 소개
목차
기획자의 말: 책은 어쩌다 내 선생이 되었나 _ 임유진
내 선생이 된 소설 _ 김보영
(헤르만 헤세, 『데미안』)
나만의 속도 _ 황시운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 『달팽이 안단테』)
숨어 있기 좋은 책 _ 한지혜
(이주홍, 『못나도 울 엄마』)
최대한 오래, 깊게 _ 홍희정
(파트리크 쥐스킨트, 『좀머 씨 이야기』)
사랑하는 나의 책 나의 사람 _ 김중일
(『표준국어사전』)
얼음 행성으로 돌아가다 _ 듀나
(어슐러 르 귄, 『어둠의 왼손』)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 책의 모든 문장이 나를 위해 쓰인 것만 같았다. 사소한 일로 시작된 벼락 같은 세상으로부터의 격리, 고립감, 호소할 곳조차 없는 고통, 스승과의 결별과 신앙에 대한 회의, 죄 없이 겪는 끔찍한 죄책감까지.
헤세는 책 안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는 체험이 없다고들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내 생애를 통해 이때처럼 심각하게 체험하고 괴로워한 적이 없다.” 그건 내 마음에 쏟아져 내리던 빨갱이와 비겁자와 불효자와 배교자라는 비난의 폭격 속에서 처음 접한 어른의 위로였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만약 내가 지금 죽지 않고 산다면 어른이 되어 단지 그 말만을 하자고. 오직 그 말을 하기 위해 하루를 더 살아 보자고.
나만 빼놓고 저만치 앞서 달리는 세상을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점점 더 세상과 담을 쌓으며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그러니까, 문제의 시작은 세상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던 것이다.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일리가 달팽이를 보며 자신만의 속도가 중요함을 깨달았듯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의 속도에 집착하는 대신 나만의 속도를 찾는 데 몰두했어야 했다. 『달팽이 안단테』를 아주 느리게 읽는 동안, 나는 2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난독의 시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베일리가 달팽이에게서 느꼈던 연대감을 내가 그에게서 느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 내게 있어 책은 꿈이고 판타지였다. 책을 많이 읽으면 성공한다거나 책을 읽고 훌륭한 사람이 된다거나 하는 믿음을 가졌던 적은 없다. 그런 건 내가 모르는 세계였다. 오히려 나는 책에 있는 텍스트와 현실을 자주 혼동했다. 나는 『이솝우화』에 나오는 어떤 동물들처럼 현명할 것이고, 『십오 소년 표류기』의 소년들처럼 고난에 빠져도 맞서 싸울 것이며, 『작은 아씨들』의 베스처럼 끝내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의연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책에 있는 권선징악의 세계, 주인공은 끝내 승리하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미래는 마땅히 그런 모습으로 찾아올 거라고 믿었고, 그 믿음 속에서 나는 늘 안전했다. 그런데 미래가 결코 그런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면? 책이 처음으로 내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