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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책읽기/글쓰기 > 글쓰기
· ISBN : 9791190216029
· 쪽수 : 304쪽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처음, 옮기다 ・ 5
김선형
분해되었습니다 ・ 11
아서 코넌 도일 지음, 이윤지 옮김
어떤 학회 ・ 39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민정 옮김
괴이의 천사- 우연, 그 남용에 대하여 ・ 69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정호수 옮김
쓰지 않은 소설 ・ 91
버지니아 울프 지음, 노현정 옮김
드라큘라의 손님 ・ 121
브램 스토커 지음, 김부민 옮김
마술가게 ・ 147
H. G. 웰스 지음, 최지원 옮김
아무도 죽지 않는다 ・ 17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송혜민 옮김
원고 안의 악마 ・ 203
너새니얼 호손 지음, 김충호 옮김
싸늘한 겨울 공작 ・ 221
D. H. 로렌스 지음, 조현 옮김
좌담회: 옮기고 나서 보이는 것들 ・ 255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에게 어떤 글을 번역한다는 건 그 글에 차라리 한번 빠졌다가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 읽는 일이다. 왜 여기서 이런 말을 써서 표현했을까, 이 말을 어떻게 옮기면 좋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사이 나는 어느 때보다 빽빽하게 생각의 결을 짜면서 글을 읽는다. 고민의 답이 쉬이 얻어지지 않으면 몹시 괴롭지만 글에 빠져 둥둥 떠다니는 동안에는 현실 세계로부터 자유롭다는 착각마저 든다. 힘들지만 때로는 묘하게 들뜰 정도로 즐겁다. 이번에도 소설을 앞에 두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나는 왜 이리도 이해력, 어휘력, 문장력이 종합적으로 부족할까, 나도 네머 분해기로 흔적도 없이 분해시켜 줬으면 등등. 동시에 “살짝 기름진 안개”처럼 부유하는 정신 상태를 하고선 홀로 몹시도 즐거워했다. 이런 고뇌와 즐거움이 이상하게 뒤범벅된 번역은 분명 어딘가 모자라고 못난 글일 것이다. 다만 있는 힘껏 고통스러워하고 즐겼다.
옮긴다는 것, 즉 번역이란 두 언어 사이의 간극을 줄여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내게 있어 언어는 항상 놀이 대상이었다. 언어가 좋았다. 언어에 따라 새로워지는 발음과 거기에 담긴 이야기가 좋았다.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완벽하게, 그대로 변환할 수 없다는 사실과 그 미묘한 차이점을 알아가는 과정은 지금도 나를 즐겁게 한다. 처음으로 작품을 옮기면서 새로 깨닫게 된 점은, 문학 번역은 그러한 놀이를 넘어선 복합적 재창작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나만의 즐거움을 넘어 그 감정을 표현하는 부분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실존인물인 포의 삶을 재해석해서 보여 준 무대 위 배우들처럼, 일종의 액팅(Acting)인 것이다.
전 세계 번역가들에게 왜 번역을 하냐고 물어보면 전부 “좋아서”라고 대답해요. 굉장히 유명한 번역가들에게 물어봐도 다 그래요. 왜 번역을 하냐고 물어볼 때 돈 때문에 한다는 사람은 없어요. 다들 좋아서 하죠. 미국의 스페인어 번역가인데 그 번역가가 “자기가 굉장히 사랑하는 외국인 애인을 말이 안 통하는 우리 집안에 소개시켜 주는 그런 연애가 번역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모두들 덕질에서 시작한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좋아서. 왜냐면 그 막노동의 보람으로, 하하. 다른 현실 제반 조건들이 말이 안 되거든요. 여기나 미국이나 마찬가지로 “좋아서”라는 게 중요한 팩터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