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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책] 처음, 옮기다 : 어느 영문학 번역 워크숍의 기록

[큰글자책] 처음, 옮기다 : 어느 영문학 번역 워크숍의 기록

(어느 영문학 번역 워크숍의 기록)

너새니얼 호손, 버지니아 울프, 브램 스토커, 에드거 앨런 포, 아서 코난 도일, 허버트 조지 웰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지은이), 김선형 (엮은이), 김부민, 김충호, 노현정, 송혜민, 이민정, 이윤지, 정호수, 조현, 최지원 (옮긴이)
  |  
엑스북스(xbooks)
2019-07-19
  |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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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책] 처음, 옮기다 : 어느 영문학 번역 워크숍의 기록

책 정보

· 제목 : [큰글자책] 처음, 옮기다 : 어느 영문학 번역 워크숍의 기록  (어느 영문학 번역 워크숍의 기록)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책읽기/글쓰기 > 글쓰기
· ISBN : 9791190216029
· 쪽수 : 304쪽

책 소개

출판문화공간 엑스플렉스에서 2기에 걸쳐 진행된 영문학 번역 워크숍을 통해 ‘번역을 하고, 번역을 놓고 말하고, 번역을 생각하며’ 서로 부딪혔던 기록을 엮은 책으로 영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의 작품과 함께 옮긴이 후기와 좌담회를 통해 초보 번역가 9인이 처음 번역에 도전하며 느낀 기쁨과 고뇌, 이야기와 언어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목차

책머리에: 처음, 옮기다 ・ 5
김선형

분해되었습니다 ・ 11
아서 코넌 도일 지음, 이윤지 옮김

어떤 학회 ・ 39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민정 옮김

괴이의 천사- 우연, 그 남용에 대하여 ・ 69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정호수 옮김

쓰지 않은 소설 ・ 91
버지니아 울프 지음, 노현정 옮김

드라큘라의 손님 ・ 121
브램 스토커 지음, 김부민 옮김

마술가게 ・ 147
H. G. 웰스 지음, 최지원 옮김

아무도 죽지 않는다 ・ 17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송혜민 옮김

원고 안의 악마 ・ 203
너새니얼 호손 지음, 김충호 옮김

싸늘한 겨울 공작 ・ 221
D. H. 로렌스 지음, 조현 옮김

좌담회: 옮기고 나서 보이는 것들 ・ 255

저자소개

너새니얼 호손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04년 7월 4일에 미국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의 독실한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났다. 원래는 집안의 성이 호손(Hawthorne)이 아니라 헤이손(Hathorne)이었는데, 1659년 조상인 윌리엄 헤이손이 퀘이커 여신도들을 학대한 것을 수치로 여겨 호손 본인이 ‘w’자를 삽입했다. 그는 학창 시절에 학업에서는 탁월하지 못했으나 벌써 영국의 위대한 문학에 비길 만한 미국 문화 창조라는 야망에 불타서 열심히 집필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12년간 호손은 자기 방에 틀어박혀 광범위한 독서와 습작만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때 그는 뉴잉글랜드 지방의 청교도적인 배경과 그 정신적 기질을 탐구해 자신 속에 배어 있는 청교도 정신에 대한 비판 정신을 키웠다. 그의 데뷔작은 ≪팬쇼≫란 소설인데, 1828년 익명으로 자비 출판했으나 뒤에 미숙한 작품임을 깨닫고 모두 수거해 파기해 버렸다. 이후 한동안 단편에만 손을 대 초창기에는 주로 익명이나 가명으로 신문, 잡지 등에 기고했다. 1837년에 12년간의 은둔 생활 동안 쓴 단편들을 모은 우화적 단편소설집 ≪두 번 하는 이야기들≫을 친구인 호레이쇼 브리지의 주선으로 출간했다. 이 단편집이 롱펠로가 천재라고 극찬한 논평을 위시해 문학계의 호평을 받게 되어 바깥 세상에 작가로서의 명성을 처음으로 알렸다. 1850년에는 그의 유명한 ≪주홍 글자≫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은 호손에게 문학적·재정적 성공을 안겨 주었다. 이어서 1851년 ≪일곱 박공의 집≫을 출간했고, 이듬해에는 ≪블라이드데일 로맨스≫와 ≪눈사람과 다른 두 번 하는 이야기들≫을 선보였다. 1860년에 ≪대리석 목양신≫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이탈리아라는 이국을 배경으로 죄를 통해 지성과 양심의 깨달음을 경험하면서 성숙해 가는 한 인물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1857년 호손은 유럽 각지를 여행한 후 1860년에 귀국했다. 이후 1864년까지 웨이사이드에서 집필을 계속하면서 영국의 풍경, 생활 풍습 등을 스케치풍으로 그린 작품들을 발표해 호평을 얻었다. 그러나 점차 창작력과 건강이 쇠퇴해, 1864년 뉴햄프셔를 여행하던 중 5월 19일 플리머스에서 60세를 일기로 객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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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지은이)    정보 더보기
20세기 문학의 혁신을 이룬 영국의 작가. 잊을 수 없는 언어, 역사·정치·페미니즘·예술 문제에 관한 시대를 초월한 문제의식, 놀랍도록 왕성한 작품활동, 소설의 기존 형식을 깨부순 그녀의 실험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진로를 바꾸어 놓았다. 본명은 애들린 버지니아 스티븐(Adeline Virginia Stephen)으로 1882년 1월 25일 영국 런던의 중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은 저명한 문인이자 영국 국가인명사전의 초대 편집자로, 어렸을 적부터 문학적 재능을 보인 울프를 지도했다. 어머니 줄리아 덕워스는 빼어난 미모와 빅토리아 시대가 요구하는 자기희생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또한 19세기 최고의 인물 사진가인 줄리아 마거릿 카메론을 숙모로 둔 만큼 저명한 사회적, 예술적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1895년, 1905년 어머니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이때 발병한 울프의 신경질환이 평생을 괴롭힌다. 그녀가 회복하는 동안 네 남매(바네사, 토비, 버지니아, 아드리안)는 런던의 보헤미안적인 블룸즈버리 지역으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자유롭게 공부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고 즐겁게 지냈다. 곧 미술·문학·사회경제 분야를 아우르는 급진적인 젊은이들의 주간 모임 ‘블룸즈버리 그룹’을 주최하는데 거기서 교제한 레너드 울프와 1912년 결혼한다. 1917년 울프 부부는 인쇄기를 구입하고 ‘호가스 출판사’를 설립한다. “사람들을 조각과 모자이크로 드러낼 것입니다. 그들은 예전처럼 깨끗하고 획일적이며 일관된 전체가 아닙니다.” 그녀는 일기에 쓴 것처럼 현실을 “떨리는 조각들로 이루어진 전체”로 창조하고 “마음의 비행을 포착하는 데 전념”했다.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등 그녀 최고의 소설들은 깔끔한 해결책이나 명확한 구분 없이 인간의 내면과 외부 사이를 오가며 시간, 경험, 성격의 불확정성과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환경에 대한 미적 탐구로 우리를 초대한다. 또한 예술 이론, 문학사, 여성의 글쓰기, 권력의 정치에 관한 선구적 에세이 《자기만의 방》을 남겼으며 전기문과 일기, 서신도 썼다. 정신 질환이 재발하면서 1941년 3월 28일 서섹스 우즈강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향년 5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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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램 스토커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47년 11월에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센티미터 장신의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했지만, 어린 시절에는 병치레가 잦았으며 침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 병약한 아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어머니는 아일랜드의 동화나 민담, 전설과 같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었다. 이때 들었던 이야기들이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의 문학적 상상력에도 불을 지폈다. 브램 스토커는 더블린 정부의 공무원으로 일하는 한편 바쁜 시간을 쪼개서 글을 썼고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와 연극 평론가로 활동했다. 이때 그가 썼던 연극 평론 하나가 그의 운명을 바꿔 놓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글을 우연히 읽은 당시 영국의 유명한 배우 헨리 어빙(Henry Irving)이 호기심에서 그를 식사에 초대했던 것이다. 1878년에 라이시엄(Lyceum) 극장의 감독으로 임명된 어빙이 스토커에게 극장 프로듀서 자리를 제안하자, 그는 추호의 미련도 없이 12년 근무했던 공무원 자리를 박차고 런던에서 그와 합류했다. 스토커는 극장을 경영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1897년 ≪드라큘라≫를 출간하기에 앞서, 그는 ≪뱀의 고갯길(The Snake’s Pass)≫이나 ≪샤스타의 어깨(The Shoulder of Shasta)≫ 등의 소설을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독자들의 별다른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고 더욱 창작에 박차를 가했다. ≪드라큘라≫는 그가 영국 국립도서관 등을 방문하면서 수많은 자료를 섭렵하고 6년 이상의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완성한 작품이었다. 출간과 동시에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오늘날 그가 쓴 많은 작품 가운데 ≪드라큘라≫만이 유일하게 계속해서 독자에게 읽히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드라큘라≫의 출간 이후로 어빙과 스토커에게 여러 악재가 뒤따랐다. 1898년에 런던 외곽에 있던 거대한 무대장치가 화재로 전소되었으며, 극장은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어빙과 스토커의 건강도 악화되었다. 그럼에도 스토커는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어빙이 사망한 이후로도 그는 ≪칠성의 보석(The Jewel of Seven Stars)≫이나 ≪흰 벌레의 소굴(The Lair of the White Worm)≫과 같은 모험소설과 방대한 ≪헨리 어빙에 대한 개인적 회상(Personal Reminiscence of Henry Irving)≫을 비롯해서, 역사적 사실에 추측과 성찰이 가미된 ≪유명한 사기꾼들(Famous Imposters)≫을 발표했다. 이 마지막 책에서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사실은 여장한 남자라는 대담한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생전에 문필가나 소설가로서 그의 존재는 미미했다. 1912년에 그가 사망했을 때도 동시대인들은 그를 다만 헨리 어빙의 조력자로서 기억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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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09년 보스턴에서 태어났으며, 두 살 무렵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세상을 떠나자 버지니아의 부유한 상인 존 앨런에게 입양되었다. 버지니아 대학에 입학해 고대어와 현대어를 공부했지만 도박에 빠져 빚을 지면서 양부와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1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가명으로 시집 《테멀레인 외 다른 시들》(1827)을 출간했으나 주목받지 못했고, 두 번째 시집 《알 아라프, 테멀레인 외 다른 시들》 역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웨스트포인트사관학교에 입학한 후 계속되는 양부와의 불화로 파양당하고, 학교에서도 일부러 퇴학당했다. 그 후 단편 집필을 시작, 1832년 필라델피아 신문에 처음으로 다섯 편의 단편이 실리고, 이듬해 단편 〈병 속의 수기〉가 볼티모어 주간지 소설 공모전에 입상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양부 존 앨런이 유산을 전혀 남기지 않고 사망하자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잡지사 편집자로 취직했고, 이 무렵 사촌여동생인 버지니아 클렘과 결혼했다. 음주 문제로 잡지사를 그만두고, 장편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이야기》(1838)와 단편집 《기괴하고 기이한 이야기들》(1839)을 발표했다. 새로운 잡지사에서 일자리를 구했으나 곧 해고당하고 아내 버지니아도 폐결핵에 걸리자 절망으로 폭음에 빠져들었다. 이 시기에 〈모르그 가의 살인〉, 〈검은 고양이〉, 〈황금 벌레〉 등 다수의 유명 단편들을 집중적으로 발표했고, 1845년 시 〈까마귀〉로 화제가 되면서 같은 해 시 창작에 관한 에세이 〈작법의 철학〉을 발표했다. 소설과 시뿐 아니라 비평 활동도 활발히 했으며, 신랄한 비판으로 문단과 마찰이 심했다. 1847년 버지니아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정신적으로 더욱 피폐해졌다. 1849년 10월 볼티모어 거리에서 인사불성 상태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4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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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코난 도일 (지은이)    정보 더보기
셜록 홈즈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의 미스터리 작가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탐정 캐릭터에 심취했다. 예수회 학교에서 교육받았는데, 훗날 셜록 홈즈 이야기의 많은 등장인물들이 이 학교 시절의 교사 및 친구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1884년 루이스 호킨스와 결혼했고, 1885년 에든버러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된 뒤 햄프셔에서 안과의로 개업했다. 1887년 첫 소설 『주홍색 연구』를 출간했고 1891년부터 『셜록 홈즈의 모험 』을 《스트랜드 매거진》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도일의 작품들은 곧 대중적인 호응을 얻었고 그는 1920년대에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고료를 받는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러나 홈즈 소설에 싫증을 느끼게 되어 『마지막 사건』에서 홈즈를 죽임으로써 그 시리즈를 끝내게 된다. 남아프리카 전쟁(1899~1902)에 야전병원의 군의관으로 복무했는데, 그 동안 『위대한 보어 전쟁』을 써서 조국의 입장을 방어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자 영국으로 돌아와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다. 그 후 『빈집』에서 오래 전 죽은 주인공을 교묘한 방법으로 다시 살려냄으로써 홈즈 시리즈를 재개했다. 1906년 하원의원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다음해 그의 아내가 지병으로 사망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진 레키와 재혼했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그의 아들이 솜 전투에서 입은 부상 후유증으로 사망하자 큰 실의에 빠졌다. 1927년 그의 마지막 책 『셜록 홈즈 사건집』이 출간되었고, 1930년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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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버트 조지 웰스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66년 영국 켄트주의 브롬리에서 가난한 상인이자 크리켓 선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 살 때 아버지가 부상을 입는 바람에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어머니는 가정부 일을 시작했다. 웰스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포목상에서 도제로 일하기도 했지만, 학업에 대한 열의를 꺾지는 못했다. 이후 장학금을 받으며 입학한 런던의 사범학교에서 생물학자인 토머스 헉슬리를 만나 학문으로서의 과학에 빠져들었다. 과학뿐만 아니라 정치와 문학으로까지 관심을 넓혀간 웰스는 교지에 기사와 짧은 소설을 기고하며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르포 기사에서 대중 과학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글을 쓰면서 1895년 한 해에만 대표작인 《타임머신》을 포함한 네 권의 저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모로 박사의 섬》(1896), 《투명 인간》(1897), 《우주 전쟁》(1898)을 연이어 출간하면서 천재적인 재능을 인정받았고, 조지프 콘래드, 조지 버나드 쇼, 헨리 제임스 같은 유명한 작가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1904년에 출간한 《신들의 양식은 어떻게 세상에 왔나》는 먹으면 몸집이 거대해지는 ‘신들의 양식’이란 물질이 개발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따라가는데, 다소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와 장면 속에서도 인간이 이 세상에서 계속 살아갈 의지가 있는지 철학적으로 되묻는 작품이다. 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는 《킵스》(1905), 《세계사 대계》(1920) 등이 있다. 1946년 영국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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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현재의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 사이를 두었고, 여섯 남매 중 장남이었다. 평생을 낚시와 사냥, 투우 등에 집착했으며, 다방면에 걸쳐 맹렬한 행동을 추구하고, 행동의 세계를 통해 자아의 확대를 성취하려 했다. 그러한 인생관은 그의 작품 전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고등학생 때 학교 주간지 편집을 맡아 직접 기사와 단편을 썼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917년 [캔자스시티 스타]의 수습기자로 일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복무하기도 했으며,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고 귀국했다. 휴전 후 캐나다 [토론토 스타]의 특파원이 되어 유럽 각지를 돌며 그리스-터키 전쟁을 보도하기도 했다. 1921년, 해외 특파원으로 건너간 파리에서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등 유명 작가들과 교유하는 등 근대주의적 작가들과 미술가들과 어울리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23년 『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詩)』를 시작으로 『우리들의 시대에』, 『봄의 분류(奔流)』,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했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소설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그후 1920년대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피츠제럴드’와 ‘포그너’와 함께 3대 작가로 성장하였다. 그의 첫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를 1926년에 발표했는데, 헤밍웨이의 대다수 작품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중반 사이에 발표되었다. 전쟁 중 나누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전쟁문학의 걸작 『무기여 잘 있거라』(1929)는 그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는 데 공헌했으며, 1936년 『킬리만자로의 눈』,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1940)는 출판되자마자 수십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다. 이후 10년 만에 소설 한 편을 발표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52년 인간의 희망과 불굴의 정신을 풀어낸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여 큰 찬사를 받았으며,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이 해에 두 번의 비행기 사고를 당하는데, 말년에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고, 집필 활동도 막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행동의 규범에 철저한 만큼이나 죽음과 대결하는 삶의 성실성과 숭고함을 작품에 투영하려 노력해왔다. 1959년에는 아이다호 주로 거처를 옮겼고, 1961년 여름, 헤밍웨이는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1961년 케첨의 자택에서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대표작으로는 1929년 『무기여 잘 있거라』,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52년 『노인과 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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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85년 9월 10일 잉글랜드 중부 지방 노팅엄 근교 탄광 지대에서 아버지 존 아서 로렌스와 어머니 리디어 비어즐 로렌스의 3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탄광 광부로서 교육을 받지 못한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중산층 출신의 교사였다. D. H. 로렌스는 문학을 좋아하고 교양이 있으며 엄격한 청교도였던 어머니 덕분에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고 고학으로 1908년 노팅엄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되었다. 교사로 재직하면서 간간이 시를 발표하던 그는 26세가 되던 1911년 폐렴에 걸려 요양을 하게 된다. 이듬해 그는 교사직을 사임하고 그보다 네 살이 위였던 독일인 프리다 부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그녀는 노팅엄 대 은사의 부인이었다). 이미 세 자녀의 어머니였던 그녀는 로렌스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함께 독일과 이탈리아로 사랑의 도피 행각을 했으며 로렌스는 1913년 장편 『아들과 연인』을 발표한다. 그는 1914년 프리다 부인과 함께 영국으로 돌아왔고 부인이 전 남편과의 이혼에 성공하자 정식으로 결혼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입대를 지원했으나 폐병 때문에 거부당했다. 그해 그는 최초의 단편집 『프러시아 장교들과 다른 사람들』을 발간한다. 이어서 그는 1915년에 장편 『무지개』를 발간했고, 1920년 이탈리아 피렌체로, 이어서 1922년 독일을 거쳐 미국으로 갔다. 그동안 그는 『사랑에 빠진 여인들』을 비롯해 다수의 작품들을 미국에서 발표해 호평을 받았으며 1925년 다시 이탈리아로 가서 『채털리 부인의 연인』 집필을 시작한다. 이 작품 발표 후 그는 병세가 악화되어 베니스 요양원에 입원했다가 1930년 3월 2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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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형 (엮은이)    정보 더보기
엘리너 파전의 “황금빛 먼지와 오래된 책이 가득한 작은 방”을 꿈꾸며 살아가다 보니 어느 순간 구제불능성 픽션중독자가 되어 버린 스스로를 발견했다. 읽고 쓰고 상상하는 일 말고는 별로 세상에 쓸모가 없다는 걸 깨달았을 무렵에 이미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살고 있었다. 영원한 덕질의 대상 셰익스피어를 공부하기 위해 르네상스 영문학을 공부했고, 그 공부의 내공으로 그럭저럭 문학번역자로 버티고 있다. 실비아 플라스, 토니 모리슨, 수전 손택, 더글러스 아담스, 닉 혼비, 시리 허스트베트, 분에 넘치게 좋은 작가들의 목소리를 한글로 옮길 수 있었다는 걸 진심으로 행운이라 여기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며 일하고 있다. 힘들수록 뿌듯한, 깊은 독서의 보람을 전하고 나누는 문화를 조성하는 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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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민 (옮긴이)    정보 더보기
경제서, 과학서, 역사서를 즐겨 읽는 번역가다. 경영학으로 학사 학위를, 재무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최근에는 논리가 살아 있는 책을 아름답게 번역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정상성의 종말』, 『지옥에서 온 여왕』, 『셧다운』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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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호 (옮긴이)    정보 더보기
딸 가윤이에게 예쁜 동화를 선물해 주려고 참여한 프로젝트에 어린이와 거리가 먼 장르의 단편소설을 번역하게 되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소설을 접하고 번역을 하는 과정 중에 인간의 다양한 모습 중에 한 조각을 마주치게 된다. 등장인물들에게 투영되어 있는 모습을 한글로 이어나가는 작업이 쉽다 할 수 없었다. 직장인으로 퇴근 이후 시간과 주말에 도전한 프로젝트로 결과물을 가지게 되어 기쁘게 생각하며 앞으로도 다양한 도전을 하는 멋진 아빠이자 남편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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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현정 (옮긴이)    정보 더보기
영어가 좋아서 영어교육을 공부했지만 하면 할수록 영어를 뺀 교육만 좋아졌다. 그렇게 세계 시민교육을 업으로 삼아 지속가능한 세상과 진정한 행복을 고민하며 산다. 그런데 더 넓은 세계를 품고 싶어질수록 영어를 잘 하고 싶어졌다. 더 많은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어질수록 글을 잘 쓰고 싶어졌다.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는 것이 번역이라 생각하고 덤벼들었다. 결과적으로 정답이었지만, 그 시작이 문학이라는 점은 다시 생각해도 행운이자 무리수였다. 덕분에 쉽게 내 것이 될 수 없는 번역에 더 큰 매력을 느꼈고, 요즘은 출판 번역을 배우고 있다. 언어 능력과 번역 실력은 별개임을 매일같이 깨닫는다. 오늘은 남이 쓴 글을 재미있게 번역하고 내일은 나를 오롯이 담은 글을 쓰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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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민 (옮긴이)    정보 더보기
좋아하는 것이 많아야 인생이 즐겁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이유로 이것저것 해보는 것이 취미이다. 약간은 무료한 일상에서 돌파구를 찾다가 영문학 번역을 만나게 됐다. 여행, 영화, 책으로 세상 들여다보는 걸 즐기며 배움으로 내 세계를 넓힐 때 느끼는 두근거림이 삶의 원동력이랄까? 언젠가는 요가 선생님도 하고 싶은, 본업은 어쩌다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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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정 (옮긴이)    정보 더보기
관심 있는 분야의 글을 찾아 읽다 다른 사람들과도 좋은 글을 나누고 싶어 번역을 시작했다. 재수 시절, 입시가 끝나고 붕 떠버린 시간에 뭔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싶어 고깃집 알바비로 문학 번역 워크숍에 등록했다. 워크숍에 다니던 중 합격 소식을 들었고, 현재는 대학에서 통번역을 공부하고 있다. 글을 통해 더 넓은 세계를 만날 수 있음을 축복이라 여긴다. 그리고 그 세계에 더 많은 사람이 다가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는 번역은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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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지 (옮긴이)    정보 더보기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영어번역학과를 수료했다. 단편소설 모음집 『처음, 옮기다』와 카멀라 해리스 자서전 『우리가 가진 진실』을 번역했다. 지금은 공연 관계 일과 번역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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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수 (옮긴이)    정보 더보기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는 것과 아는 척하기를 좋아하던 아이가 성장해서 여전히 어리지만 소심한 성인이 되었다.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늘 언어와 관련된 교양성적이 더 좋았고, 외국어로 말하고 쓰는 순간이 행복했다. 언어마다 톡톡 튀는, 그만의 개성이 있다는 점과 그 사이에서 존재하는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 번역이란 작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언어 간의 차이점을 찾아서 그 틈을 메꾸고 그에 대한 설명을 하는 작업이 재미있어서 워크숍에 참여했다. 언젠가는 무대 위의 언어를 번역해 보여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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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옮긴이)    정보 더보기
스무 살에 중국을 여행하던 중 30시간짜리 기차 안에서 원서 읽기에 입문했다. 이후 통근 지하철에서 시간 보낼 요량으로 읽던 원서가 예상외로 너무 재밌어져 번역 워크숍 등록에까지 이르렀다. 지금은 다시 영어와 하등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작은 책방들과 북클럽과 이런저런 모임들을 열심히 찾아다니면서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늘려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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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원 (옮긴이)    정보 더보기
그 무렵 어문계열 신입생답게(?) 복수 전공으로 경영학을 선택하지 않고 영문학을 선택했고 대학 생활의 종착지가 고작 사무실은 아닐 거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현실의 파도를 피하지 못하고 회사에 다니다 익사 직전에 탈출을 감행, 결국 나대로 살겠다며 영상 번역에 몸담았는데, 알고 보니 원하는 건 문학 번역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은 나이 많은 도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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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나에게 어떤 글을 번역한다는 건 그 글에 차라리 한번 빠졌다가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 읽는 일이다. 왜 여기서 이런 말을 써서 표현했을까, 이 말을 어떻게 옮기면 좋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사이 나는 어느 때보다 빽빽하게 생각의 결을 짜면서 글을 읽는다. 고민의 답이 쉬이 얻어지지 않으면 몹시 괴롭지만 글에 빠져 둥둥 떠다니는 동안에는 현실 세계로부터 자유롭다는 착각마저 든다. 힘들지만 때로는 묘하게 들뜰 정도로 즐겁다. 이번에도 소설을 앞에 두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나는 왜 이리도 이해력, 어휘력, 문장력이 종합적으로 부족할까, 나도 네머 분해기로 흔적도 없이 분해시켜 줬으면 등등. 동시에 “살짝 기름진 안개”처럼 부유하는 정신 상태를 하고선 홀로 몹시도 즐거워했다. 이런 고뇌와 즐거움이 이상하게 뒤범벅된 번역은 분명 어딘가 모자라고 못난 글일 것이다. 다만 있는 힘껏 고통스러워하고 즐겼다.


옮긴다는 것, 즉 번역이란 두 언어 사이의 간극을 줄여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내게 있어 언어는 항상 놀이 대상이었다. 언어가 좋았다. 언어에 따라 새로워지는 발음과 거기에 담긴 이야기가 좋았다.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완벽하게, 그대로 변환할 수 없다는 사실과 그 미묘한 차이점을 알아가는 과정은 지금도 나를 즐겁게 한다. 처음으로 작품을 옮기면서 새로 깨닫게 된 점은, 문학 번역은 그러한 놀이를 넘어선 복합적 재창작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나만의 즐거움을 넘어 그 감정을 표현하는 부분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실존인물인 포의 삶을 재해석해서 보여 준 무대 위 배우들처럼, 일종의 액팅(Acting)인 것이다.


전 세계 번역가들에게 왜 번역을 하냐고 물어보면 전부 “좋아서”라고 대답해요. 굉장히 유명한 번역가들에게 물어봐도 다 그래요. 왜 번역을 하냐고 물어볼 때 돈 때문에 한다는 사람은 없어요. 다들 좋아서 하죠. 미국의 스페인어 번역가인데 그 번역가가 “자기가 굉장히 사랑하는 외국인 애인을 말이 안 통하는 우리 집안에 소개시켜 주는 그런 연애가 번역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모두들 덕질에서 시작한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좋아서. 왜냐면 그 막노동의 보람으로, 하하. 다른 현실 제반 조건들이 말이 안 되거든요. 여기나 미국이나 마찬가지로 “좋아서”라는 게 중요한 팩터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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