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문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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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광주 출생.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15년형을 받고 비전향으로 만기 출소. 전 광주빛고을건강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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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경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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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신학교와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에모리대 신학부(B.D.), 드류대 대학원에서 학위(Ph.D.)를 취득하였다.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로 정년 퇴임한 후 목원대 대학원 초빙교수를 역임하였다. 아시아교회협의회(CCA) 신학위원회 위원과 세계교회협의회(WCC) 신앙과직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통일운동에 헌신하였다.
저서로 『민족통일과 기독교』, 『한국 민족과 여성신학의 과제』, 『통일신학의 고통과 승리』, 『통일신학의 여정』, 『통일신학의 미래』,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제1권 구약 편)』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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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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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경기도 안성 출생. 18세 때 국가보안법으로 소년원에 들어간 이후 국보법으로 7번 수감생활. 1987년 6월 항쟁 당시 '명동할아버지'로 이름을 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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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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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전남 무안에서 탄생했으며, 법호는 무주(無住), 법명은 청화(淸華)이다.
1947년 백양사 운문암에서 금타 대화상을 은사로 출가해 50여 년 동안 진불암, 사성암, 벽송사, 백장암, 상견성암, 상원암, 남미륵암, 칠장사 등 제방선원에서 하루 한 끼 공양(一種食)과 장좌불와(長坐不臥)의 청정지계로 염불수행에 매진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1985년 전남 곡성군 동리산 태안사에서 3년 결사를 입제하여 1995년까지 태안사 중창불사를 회향하여 신라 구산선문 중의 하나인 동리산문을 복원했다. 또한 미주포교를 위해 카멜 삼보사, 팜스프링스 금강선원 등을 건립하였으며 조계종 원로의원, 곡성 성륜사 조실을 역임했다. 2002년 5월 서울 도봉산 광륜사를 개원하고, 2003년 음력 10월 19일 성륜사 조선당에서 왕생극락하였다.
저서로 『금강심론』이 있으며, 법어집으로 『정통선의 향훈』, 『원통불법의 요체』, 『가장 행복한 공부』 등이 있으며, 역서로 『정토삼부경』, 『육조단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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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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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현은 1933년 충남 당진군 정미면 매방리에서 아버지 남세원과 어머니 이낙년 사이에서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을 일제 강점기에 보내고 5학년 때 팔일오 해방을 맞이했으며 17세 때에 육이오를 목격했다.
남정현이 소설가로 등단한 것은 1958년 9월 단편소설 <경고 구역>을 ≪자유문학≫에 투고해 소설가 안수길의 추천을 받고, 1959년 2월 <굴뚝 밑의 유산>으로 ≪자유문학≫에 추천 완료되면서였다. 그는 등단 이후 1965년 분지 필화 사건으로 구속되기 전까지 매해 중단편소설을 발표했다. 서구 문화의 유입에 의한 가치관의 전도 상황을 비정상적인 남녀 관계 중심으로 서술해 풍자했던 중편소설 <너는 뭐냐>는 1961년 제6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이다. <너는 뭐냐>의 결말에 등장하는 군중의 시위는 1960년의 사일구 혁명을 연상케 한다. <모의 시체>, <인간 플래카드>, <기상도>, <현장>, <부주전 상서> 등이 이 시기의 작품이다.
남정현은 초기부터 지금까지 체제 저항적이고 외세를 비판하는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약소국, 주변국의 일원으로서 한민족이 겪어왔던 외세 강압에 의한 영향을 한국 역사를 인식하는 기본 조건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의 소설에서 주로 형상화되어 나타나는 ‘민족적 양심’의 발현에 대한 희망, 자주에 대한 염원은 그러한 역사 인식에 기원을 두고 있다.
작가 이력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분지 필화 사건이라 불리는 <분지> 사건이다. <분지>는 남정현이 1965년 ≪현대문학≫ 3월호에 발표했던 작품이다. 북한에서 그 작품 전문을 당 기관지인 <통일전선>(5월 8일)과 <조국통일>(7월 8일)에 실은 것이 화근이 되어 남정현은 반공법(지금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재판에서 7년을 언도받았고 2년 동안 실형을 살았으며 1967년 선고유예 판결로 석방되었다. 당시 남정현은 “이 소설은 당신이 쓴 게 아니라 북괴의 어떤 인사가 써서 당신에게 건네주어 발표시킨 것이 틀림없으니 그 경위를 밝혀라”라는 심문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자세한 사항은 장석주, “반공법의 족쇄에 묶인 <분지>”,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3≫, 시공사, 2000. 234∼239쪽 참조). 남정현은 반공법 위반으로 우리 역사상 처음 구속 수감된 작가였다. 당시 공소장 작성자는 <분지>의 내용을 문제 삼으며 “북괴의 대남 적화 전략의 상투적 활동에 동조한 것이다”라고 결론지었다. 재판정에서 문학의 자유를 변호하고 증언했던 인사는 한승헌, 이항녕, 안수길, 이어령 등이었다.
남정현은 석방 이후 장편 ≪코리아 산책≫을 연재했으며 풍자연작소설 <허허 선생>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허허 선생>은 일제 때는 일제에, 해방 후에는 미국에 동조해 부를 축적했던 물신주의자를 허허 선생이라 명명해 풍자한 소설이다. 허허 선생은 남정현의 용어로 말해 ‘민족적 양심’이 없는 인물이다. 남정현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긴급조치 해제로 석방되었다. 그는 감옥 생활과 기관의 심문 과정에서 받았던 고통의 후유증으로 말미암아 신경안정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정신 집중이 되지 않아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정치권력과 관계된 그의 작가 이력은 1960년대 이후의 한국 정치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창작집으로 ≪너는 뭐냐≫(1965), ≪굴뚝 밑의 유산≫(1967), ≪준이와의 삼 개월≫(1977), ≪허허 선생≫(1978), ≪허허 선생 옷 벗을라≫(1993)가 있다. 장편소설로 ≪사랑하는 소리≫(1978)가 있다. 작가 이력을 배제하고 작품을 읽는다면 우리는 외설과 풍자의 경계선상에서 독특한 문학 세계를 이루고 있는 남정현 소설의 미학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극단적인 상황 설정과 과장된 인물 행동, 의외의 결말이 등장하는 점은 초기작부터 후기작까지 일관되는 특징이다. 남정현은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의 고문과 펜클럽 이사를 역임했으며 2020년 12월 21일 향년 87세로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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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형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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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11월 10일(음력 9월 26일) 함남 함주에서 태어나 함흥고보를 졸업하고, 일본대학 예술부 창작과를 수학했다. 아호는 여민與民.
1943년부터 해방 직전까지 ‘지하협동단사건’, ‘학병거부사건’ 등 항일투쟁 혐의로 수차례 피검되어 약 1년 동안 복역했다. 1945년 해방 이후 한때 <동신일보> <중외신보> 등의 기자로 활동했으며, 1947년 <민주조선>에 최초로 시를 발표했다. 1947년 7월에 정신적 지도자로 모시던 몽양 여운형이 암살당하자, 창작 및 사회활동을 중지했다.
1980년 3월 절필 33년 만에 시 창작을 재개하여 1982년 6월에 첫시집 『망향』을 간행하고, 1983년 무크 『실천문학』제4권 <삶과 노동과 문학>에 「파문」「단풍」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1989년 ‘시집 『지리산』 필화사건’에 연루되기도 했으며, 1999년 ‘사월혁명상’을 수상했다.
등단 이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족문학작가회의, 한국작가회의, 한국문학평화포럼,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등의 ‘고문’과 바른정치실현연대의 ‘상임공동대표’로서 문단과 재야에서 통일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2013년 6월 12일 타계한 후 <민족시인 이기형 선생 통일애국장>이 치러졌다.
시집으로 『망향』 『설제雪祭』 『삼천리 통일공화국』 『별꿈』 『산하단심山河丹心』 『봄은 왜 오지 않는가』 『해연이 날아온다』 『절정의 노래』 등이 있으며, 실록연작시집으로 『지리산』, 서사시집으로 『꽃섬』이 있다. 전기 및 평전으로 『몽양 여운형』 『여운형 평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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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남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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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2009)
전라북도 김제 생. 한국신학대학 대학원 졸업. 목사.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초대 의장, 1989년 남한(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고문, 1980~1984년 한국기독교농민회 이사장.
저서로 『우리 민족 정리된 상고사』(2008), 『새번역 환단고기』(2008), 『동북 3성을 가다』(2003), 『민중주의』(2001), 『력사 속의 실존』(1989)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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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익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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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출신으로 전주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신문대학원을 수료했다. 동아일보 기자 시절 박정희의 유신체제에 항거하다 신문사에서 쫓겨난 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의장, 월간 『말』 발행인을 지냈으며, <사월혁명회> 상임의장,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협의회> 의장, <한국출판문화운동협의회> 회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감사,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의장직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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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섭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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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해 경기도 파주군 천현면의 산마을에서 태어났다. 휴전선까지 직선거리 15Km, 임진강까지는 그 절반 정도 떨어진 최전방 접경지역이다. 눈에 익숙한 풍경은 미군부대 철조망과 미군을 상대로 한 홀이었다. 가끔 홀 앞에서 술 취한 미군병사가 10원짜리 지폐를 공중에 뿌렸는데, 그것을 한 장 주운 날은 만화방에서 귀신 잡는 따이한이 주인공인 만화책을 실컷 읽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독서목록의 99%는 만화책이었다.
강원도 38사단에서 제대한 후 미군부대 군무원 함석공으로 취직해 일하다 정년 퇴임한 아버지는 미군 철수 소문이 돌기 시작한 직후인 1969년 몇몇 동네 사람과 함께 서울로 이사했다.
전두환이 군사쿠데타로 집권하고 2년 뒤 입대했는데, 군대 복이 많아 강원도 3군단 직할대에 배치됐다. 여름과 겨울에는 21사(양구), 12사(인제, 고성)의 철책과 DMZ 안에서 경계 근무 섰고, 22사 해안 철책에도 두어 달 지원 근무 나갔다. 고성 통일전망대와 금강산 사이의 DMZ 철책 안에서 심야 매복 작전에 투입됐을 때 대북 확성기에서 들리던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노래가 귓가에 생생하다.
젊은 시절엔 1995년에 통일을 이루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다 국가보안법의 포로가 되어 철창 안에서 수십 개월 지내며 별을 관측하기도 했다.
2021년 6월 15일, 강화도 북단 한강하구에서 가까운 동네에 평화책방 서점을 열었고, 여전히 철책을 가까이하며 지내고 있다. 《분지》를 쓴 소설가 남정현을 인터뷰했을 때 “작가란 최일선의 초소에서 민족의 이익을 지키는 초병, 시대의 맨 앞자리에 서서 정신의 영토를 지키는 초병의 역할을 해야 한다.”라는 말을 들은 필자는 “아무래도 내가 본의 아니게 ‘초병으로 말뚝을 박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월간 말 기자, 월간 좋은엄마 발행인, 오마이뉴스 교육사업팀(강화도) 본부장으로 일했고, 지금은 홀로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 《한총련을 위한 변명》,《한국 언론의 미국관》,《뼈로 누운 신화》, 《법정콘서트 무죄》, 《사진, 평화를 상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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