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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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에 경기도 개풍군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소학교 입학 전 어머니, 오
빠와 함께 서울로 상경했다. 숙명여고를 거쳐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6‧25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1953년 결혼해 평범한 주부로 살며 1남 4녀를 두었고, 1970년 《여성동
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불혹의 나이로 문단에 데뷔했다.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롭지만 따듯한 시선과 진실된 필체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박완서는 삶의 곡절에서 겪은 아픔과 상처를 반드시 글로 쓰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고통의 시기를 살아냈다. “이것을 기억했다가 언젠가는 글로 쓰리라.” 숙부와 오빠 등 많은 가족이 희생당했으며 납치와 학살, 폭격 등 죽음이 너무나도 흔한 시절이었다. 이름 없이 죽어간 가족들을 개별적으로 살아 숨 쉬게 하는 것이 처음 글을 쓴 목표였다. 그러나 막상 글을 통해 나온 건 분노가 아닌 사랑이었다. 그는 글로써 자신을 치유해나갔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덕분에 그는 자신의 이야기에만 갇혀 있지 않고 당대의 전반적 문제, 가부장제와 여권운동의 대립, 중산층의 허위의식 등을 수면 위로 끄집어 올려 직간접적으로 의식을 환기시켰다. 그러면서도 문학에 대한 열정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은 보기 드문 문인이었다. “죽을 때까지 현역 작가로 남는다면 행복할 것”이라는 말대로 그는 마지막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2011년 1월 담낭암으로 타계할 때까지 40여 년간 80여 편의 단편소설과 15편의 장편소설
을 쓰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으며, 이외에도 동화‧산문집‧콩트집 등 다양한 분야의 작
품을 두루 남겼다. 특히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는 에세이스트로서의 박완서의 면모를 발견하도록 하는 작품이다.
한국문학의 거목으로서 한국문학작가상(1980), 이상문학상(1981), 대한민국문학상(1990), 이산문학상(1991), 중앙문화대상(1993), 현대문학상(1993), 동인문학상(1994), 한무숙문학상(1995), 대산문학상(1997), 만해문학상(1999), 인촌문학상(2000), 황순원문학상(2001), 호암예술상(2006) 등을 수상했으며, 2006년에는 서울대학교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타계 후에는 문학적 업적을 기려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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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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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작가이자 여행가. 지금껏 105개국을 누볐으며, 11권의 책을 썼다. 25년 차 국제구호 활동가이자 국제학 박사로 대학교수로 활동하며 현장과 강단을 연결 중이다.
30대에 6년에 걸쳐 세계 일주를 했고, 40대에는 한국 월드비전 긴급구호 팀장으로 일했다. 50대부터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가르치며 60대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18년 전 ‘우리는 지구촌이 아니라 지구집에 사는 세계시민’이라는 믿음으로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를 만들었다.
잠은 못 자도 산에는 가야 하는 산쟁이이자,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한 글쟁이. 무엇이든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영원한 학생이다. 비빔국수 한 그릇, 짭짤한 과자 한 봉지에도 기분이 몹시 좋아지는 자가발전형 인간 에너자이저이기도 하다. 변함없는 인생 모토는 ‘즐겁고 자유롭게, 기왕이면 남 도와주면서!’ 8년 전 국제구호 전문가이자 ‘왕보스’였던 안톤 반 주트판과 결혼해 한국과 네덜란드를 오가며 살고 있다.
저서로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1, 2, 3, 4》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그건, 사랑이었네》 《1그램의 용기》가 있으며, 남편 안톤과 함께 쓴 《함께 걸어갈 사람이 생겼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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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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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수의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임상수의학을 전공하여 수의학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래 수의산과학 및 생물공학 분야의 연구와 교육을 해왔다. 지은 책으로 <동물유전공학> 외 8권이 있으며, 논문으로 '핵이식 송아지 생산' 외 85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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