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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의 에세이

휴일의 에세이

(세계현대수필정선)

니코스 카잔차키스, J.M.G. 르 클레지오, 마르셀 프루스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알베르 카뮈, 앙드레 말로, 이광수, 린위탕, 린하이윈 (지은이), 이어령 (엮은이)
문학사상사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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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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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휴일의 에세이 (세계현대수필정선)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70126050
· 쪽수 : 358쪽
· 출판일 : 2003-10-10

책 소개

생 텍쥐페리, 카뮈, 프루스트, 루쉰, 린위탕 등 세계의 문인 56 명이 쓴 에세이를 가려 모았다. 일상의 작은 일에 관심을 기울인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글에서부터 서로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뒤돌아보게 하는 글, 낯선 곳을 여행하며 느낀 감회 등 유명 작가의 다양한 글을 만날 수 있다.

목차

1. 생활의 장
린하이윈 - 무말랭이의 맛
비자야 판디트 - 잊을 수 없는 충고
로버트 린드 - 철학자가 되지 않는 변
프리스틀리 -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
린위탕 - 나의 금연
나탈리아 진츠부르그 - 해진 신발
나도향 - 별호
두미트루 트세페네그 - 관찰
고트프리트 보만스 - 억눌렸던 풍선
최현배 - '사 주오' 두부 장수
이부세 마스지 - 어머니
로버트 벤틀리 - 내 얼굴
루쉰 - 연

2. 자연의 장
알라파이 - 산골 여행
마르셀 프루스트 - 바다
이광수 - 꾀꼬리 소리
고다 아야 - 가을비
예브게니 노소프 - 생명의 불꽃
김동인 - 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 자연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
카밀로 호세 셀라 - 도시의 새들
이육사 - 청란몽
부코프스키 - 수족관
마이타오 - 꽃에서 바람에서
르 클레지오 - 살라 있는 사물들
이양하 - 나무

3. 사상의 장
코를렌코 - 등불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 음악의 신비
앙드레 지드 - 괴로움을 벗어난 뒤
알베르 카뮈 - 편도 나무
계용묵 - 손
다카다 다모쓰 - 이웃
리히텐바움 - 서가 앞에서
이효석 - 청포도의 사상
헬무트 홀트하우스 - 어느 위대한 사람의 사후 명성
올더스 헉슬리 - 그리고 나머지는 침묵이다
마티야 베코비츠 - 자유에 대하여
마티야 베코비츠 - 민주주의에 대하여
로렌스 - 사랑

4. 문명의 장
베르투스 아폐스 - 네더란드 국경 예찬
앙드레 말로 - 그리스 송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 동양과 서양
노천명 - 향토 유정기
보르헤스 - 만리장성과 책들
엘윈 화이트 - 뉴욕
프리드리히 슈나크 - 어느 도시의 매혹

5. 기행의 장
잉게보르크 바흐만 - 사람에게 눈이 있는 까닭
보뢰스 파스테르나크 - 밝은 밤과 작은 광장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 화음이 있는 신들의 나라
프로스페르 메리메 - 나무가 없는 풍경화
올더스 헉슬리 - 이슬람 사막의 오아시스
로렌스 - 홍인종이 가르쳐 준 태양의 말
생텍쥐페리 - 신기루 저편에 풀밭이
알베르 카뮈 - 바다 앞의 화형대
알프레트 되블린 - 아마존 강의 여인 부락
네크라소프 - 1만2천 킬로미터를 날아서
최인호 - 우울한 천재들의 도시
김화영 - 짧고 행복한 지중해의 하루
앙리 미쇼 - 아직도 지구는 둥글지 않다
이어령 - 언어로 만든 그림엽서

저자소개

니코스 카잔자키스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83년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를 받던 그리스의 섬, 크레타의 주도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크레타의 불안정한 상황 탓에 어릴 때 두 번이나 피난을 떠났다. 피난지인 낙소스에서 프랑스 가톨릭 학교에 다니며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프랑스 문학을 배웠다. 아테네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그 무렵 《병든 시대》를 비롯한 문학 작품을 몇 편 발표했다. 파리의 법학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법학보다는 니체와 베르그송의 사상에 심취했다. 1917년 친구 기오르고스 조르바와 갈탄 광산을 운영한 경험은 훗날 《그리스인 조르바》의 밑거름이 되었다. 평생 문학, 정치, 사회 등 다방면으로 왕성하게 활동했으며 끊임없이 여행을 다녔다. 수많은 문학 작품을 남겼는데, 일단 완성된 원고라도 몇 번 개작한 뒤 출판하곤 했다. 1938년에 대표작 중 하나인 《오디세이아》를, 1946년에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발표했다. 1947년 유네스코에서 근무하다 이듬해 그만두고 《미할리스 대장》과 《최후의 유혹》의 집필에 전념했다. 1953년 림프샘 이상으로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으나 문학 활동을 계속하며 《미할리스 대장》을 출판했다. 그리스 정교회는 이 책의 내용 일부가 신성모독을 범했다고 비판했다. 《최후의 유혹》도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양쪽에게서 비판당하고 로마 가톨릭 금서로 지정되었다. 1957년 6월, 중국을 여행하던 중에 전염병 백신을 맞고 생긴 후유증이 악화되어 10월 26일에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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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G. 르 클레지오 (지은이)    정보 더보기
‘현대 프랑스 문단의 살아 있는 신화’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로 일컬어지는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는 1940년 프랑스 남부 니스에서 태어났다. 영국 브리스틀대학교와 프랑스 니스대학교에서 수학했고, 1963년 스물셋의 나이에 첫 작품 『조서』로 권위 있는 문학상인 르노도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열병』 『홍수』 등 화제작을 잇달아 발표하며 천혜의 작가적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1967년부터 멕시코와 파나마 등지에 체류하면서 서구적 사유의 틀을 버리고 자연과 어우러진 새로운 존재를 추구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사상적 변모는 시적 산문의 정수인 『성스러운 세 도시』나 『황금 물고기』를 비롯해, 모로코인 아내와 함께 쓴 사막 기행문 『하늘빛 사람들』 등에 순도 높게 담겨 있다. 1980년 사막 민족의 문화와 역사를 웅숭깊고 아름답게 그린 소설 『사막』을 발표했고, 그해 아카데미프랑세즈가 수여하는 폴 모랑 문학 대상을 받으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여전히 산과 바다, 태양과 대지 사이에서 자발적 유배자의 삶을 살며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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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71년 프랑스 파리의 부유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병약한 유년 시절을 보내면서도 문학과 예술에 지대한 관심을 키워간다. 아버지의 권유로 파리대학교 법학과와 파리정치대학에서 공부하지만, 1895년 문학 학사학위를 취득하며 자신의 길을 걷는다. 한편으로 사교계에 활발히 드나들며 당대 예술가, 작가 들과 교유를 나누면서 19세기 귀족사회와 인간관계를 유심히 관찰한다. 1896년에 소설과 단편 등을 엮은 첫 책 『쾌락과 나날』을 출간하나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다.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에 들어선 그는 1913년 자비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1편 「스완네 집 쪽으로」를 출간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고, 1919년 선보인 2편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로 공쿠르상의 영예를 안는다. 이에 힘입어 이듬해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도뇌르훈장을 받는다. 이후 계속해서 건강이 악화되는 와중에도 집필에 몰두하여 1921년 4편 「소돔과 고모라」 첫 권까지 출간하지만, 1922년 폐렴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완간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부모님과 같은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 안장된다. 1927년 7편 「되찾은 시간」 출간으로 비로소 장대한 기념비적 소설이 집대성된다. 프루스트가 생전에 출간한 그 밖의 책은 비평적 산문을 모은 『모작과 잡록』(1919), 영국 비평가인 존 러스킨의 『아미앵의 성서』 『참깨와 백합』 번역서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과 인간의 본성, 사랑과 예술 같은 보편적인 주제를 실험적인 문체와 철학적인 사유로 그려낸 필생의 역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20세기 문학의 출발점이자 도달점으로 불리며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소설로 지금도 칭송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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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0년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고자 했으나 시험에서 실패하고 미술학교 건축과에 들어갔다. 1921년 공군에 입대해 조종사 면허를 땄고, 1926년 라테코에르에 들어가 아프리카 북서부와 남대서양 및 남아메리카를 통과하는 우편비행을 담당하게 되었다. 1930년대에는 시험비행사, 에어프랑스의 홍보담당, <파리수아르 Paris-Soir> 기자로 일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시절 모습은 『어린왕자』의 주인공과 너무나 흡사하다. 굽슬굽슬한 갈색 머리털을 가진 소년 생텍쥐페리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소한 일들을 경이와 찬탄으로 바라보았고, 유난히 법석을 떨고 잔꾀가 많은 반면, 항상 생기가 넘치고 영리했다. 감성이 풍부하고 미지에 대한 열정이 넘치던 그는 1917년 6월, 대학 입학 자격 시험에 합격한 후 파리로 가서 보쉬에 대학에 들어가 해군사관학교 입학을 준비하였으나 구술 시험에서 떨어져 파리 예술 대학에 들어가 15개월간 건축학을 공부했다. 『어린 왕자』에 생텍쥐베리가 직접 삽화를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이때의 공부 때문이다. 자동차 회사, 민간항공 회사에 각각 근무하다가 에르 프랑스의 전신인 라테코에르 항공사에 입사하여 『야간 비행』의 주인공인 리비에르로 알려진 디디에도라를 알게 되고 다카르-카사블랑카 사이의 우편 비행을 하면서 밤에는 『남방 우편기』를 집필하였다. 1929년 아르헨티나의 항공사에 임명되면서 조종사로 최고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야간 비행』를 집필했다. 1939년 육군 정찰기 조종사가 되었으며, 1940년 2차세계대전으로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자 미국으로 탈출했다. 1943년 연합군에 합류해 북아프리카 공군에 들어간 후 1944년 7월 31일 프랑스 남부 해안을 정찰비행하다 행방불명되었다. 2000년, 한 잠수부가 프랑스 마르세유 근해에서 생텍쥐페리와 함께 실종됐던 정찰기 P38의 잔해를 발견했고 뒤이은 2004년 프랑스 수중탐사팀이 항공기 잔해를 추가 발견했다. <남방우편 Courrier-Sud>(1929), <야간비행 Vol de nuit>(1931), <인간의 대지 Terre des hommes>(1939), <전투조종사 Pilote de Guerre>(1942), <어느 인질에게 보내는 편지 Lettre a un otage>(1943), <어린왕자 Le Petit Prince>(194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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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은이)    정보 더보기
구소련의 작가이자 역사가. 1918년 12월 11일 러시아 끼슬로보쯔끄의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난 솔제니찐은 로스또프 대학 수학과를 졸업하고, 모스끄바 철학.문학.역사학 대학의 통신 교육 과정을 이수했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포병 중대 장교로 참전해 두 개의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45년 2월, 솔제니찐은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에서 스딸린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8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모스끄바의 루비얀까 형무소에서부터 각지의 수용소를 체험했고, 형기가 끝난 1953년부터는 유형지에서 생활했다. 흐루쇼프의 집권과 스딸린 격하 운동의 영향으로 1956년 석방되었다. 랴잔에 정착한 그는 물리와 수학 교사로 근무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62년 첫 작품 『이반 제니소비치의 하루』를 발표하여 소련과 서방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흐루쇼프 실각 이후 분위기가 바뀌어 작품 출간이 거부당하고, 원고를 압수당했다. 197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으나 당시에는 소련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상을 받으러 가지 못했다. 1974년 2월에 체포되어 독일로 추방되었다. 스위스로 이주했다가 1976년 미국으로 망명한 그는 버몬트주 캐번디시에 살면서 『붉은 수레바퀴』의 집필에 매달렸다. 1994년 5월, 20년의 망명 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왔으며 2008년 8월 3일 모스끄바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수용소군도』는 솔제니찐 자신이 직접 등장하는 실명 작품인 동시에 200명이 넘는 다른 죄수들의 이야기와 기억과 편지들의 기록이다. 『수용소군도』 제1부와 제2부는 1967년에 이미 완성되었으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출판을 미루다가 원고 일부가 KGB에 발각되었다. 솔제니찐은 집필을 중단하고 남은 원고를 서방으로 밀반출시켰고 그 원고들은 1973년 12월에야 파리 YMCA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데 성공했다. 제3부와 제4부는 1974년, 제5부에서 제7부까지는 1976년 발표했다. 전 세계 35개 언어로 번역되어 3천만 부 이상 판매된 이 책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기록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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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3년 알제리의 몽도비(Mondovi)에서 아홉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포도 농장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대전 중에 사망한 뒤, 가정부로 일하는 어머니와 할머니 아래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1918년에 공립초등학교에 들어가 뛰어난 교사 루이 제르맹의 가르침을 받았고, 이후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알제 대학 철학과에 입학한다. 카뮈는 이 시기에 장 그르니에를 만나 많은 가르침을 받는다. 1934년 장 그르니에의 권유로 공산당에도 가입하지만 내적 갈등을 겪다 탈퇴한다. 1936년에 고등 교육 수료증을 받고 교수 자격 심사에 지원해 대학 교수로 살고자 했지만 결핵이 재발해 교수직을 포기했다. 이후 진보 일간지에서 기자 생활을 한다. 알베르 카뮈는 1942년에 《이방인》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으며, 같은 해에 에세이 《시지프 신화》를 발표하여 철학적 작가로 인정을 받았다. 또한 1944년에 극작가로서도 《오해》, 《칼리굴라》 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1947년에는 칠 년여를 매달린 끝에 탈고한 《페스트》를 출간해 즉각적인 선풍을 일으켰으며 이 작품으로 ‘비평가상’을 수상한다. 1951년 그는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반항하는 인간》을 발표했다. 이 책은 사르트르를 포함한 프랑스 동료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1957년에 카뮈는 마흔네 살의 젊은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며 이때의 수상연설문을 초등학교 시절 자신을 이끌어준 선생님에게 바쳤다. 삼 년 후인 1960년 겨울 가족과 함께 프로방스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낸 후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파리로 돌아오던 중 빙판길에 차가 미끄러지는 사고로 숨졌다. 사고 당시 카뮈의 품에는 발표되지 않은 《최초의 인간》 원고가, 코트 주머니에서는 사용하지 않은 전철 티켓이 있었다고 한다. 《이방인》 외에도 《표리》, 《결혼》, 《정의의 사람들》, 《행복한 죽음》, 《최초의 인간》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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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말로 (지은이)    정보 더보기
프랑스의 소설가, 예술가, 정치가. 1901년에 태어났다. 서구 문명에 대한 회의주의와 이국주의적 호기심에 사로잡혀 스무 살에 인도차이나로 향했다. 고대 크메르 왕국의 조각상을 밀반출하려다 체포되어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프랑스 지식인들의 구명운동으로 석방되었다. 하지만 감옥에서 느낀 식민당국에 대한 혐오감으로 열렬한 반식민주의자이자 사회 변혁의 옹호자가 되었다. 인도차이나 피식민지 국민들의 각성을 촉구하며 신문을 발간하기도 하고, 중국 땅에 들어가 사회주의 혁명이란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를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스페인 내전에는 민간 항공군 대장으로 반파시즘 전선에 참여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는 레지스탕스 대원으로 적극 가담했다. 결국 혁명활동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지난날의 열정을 버리고 예술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드골 장군의 첫 번째 내각에서 공보장관을, 1958년 드골이 재집권한 후 10년 동안 제5공화국 초대 내각의 문화부장관을 지내며 강력한 문화 행정을 펼쳤다. 1976년 생을 마쳤고 1996년 서거 20주기를 맞아 파리 팡테옹 사원에 유해가 안장되었다. 주요 작품으로 <서구의 유혹>(1926), <왕도>(1930> <인간의 조건>(1933, 공쿠르상 수상) <상상 박물관>(1954) <침묵의 소리들>(1951) <신들의 변신>(1957) 등의 예술 비평서가 있다. 사후 1977년에 <덧없는 인간과 예술>이 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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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지은이)    정보 더보기
한국 현대소설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매우 중요한 작가이면서, 일제강점기의 소설가이자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조선왕조의 국운이 기울어가던 구한말에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하여, 일찍 부모를 여의고도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유학을 통하여 근대사상과 문학에 눈뜨고 이를 한국적 사상 및 문학 전통에 접맥시켜 새로운 문학의 시대를 열어나갔으며, 한국전쟁 와중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붓을 놓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놀라운 창작적 삶을 이어간 작가였다. 그는 『무정』, 『재생』, 『흙』, 『유정』, 『사랑』 등으로 연결되는 본격 장편소설들을 통하여 한국 현대소설의 ‘제1형식’을 창출하였고, 『매일신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의 한글 신문과 『조선문단』, 『동광』 등의 한글 잡지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문필 활동을 펼침으로써 현대 ‘한국어 문학’의 전통을 수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나아가 그는 『마의태자』, 『이차돈의 사』, 『단종애사』, 『이순신』, 『세조대왕』, 『원효대사』, 『사랑의 동명왕』 등 삼국시대로부터 조선왕조에 이르는 시대적 사건과 인물을 소설화함으로써 민족적 위기의 일제강점기에 역사의 기억을 소설의 장에 옮겨 민족적 ‘자아’를 보존하고자 했다. 요컨대, 그는 한국 현대소설의 성립을 증명한 『무정』의 작가요, 도산 안창호의 유정 세계의 꿈을 이어받은 사상가요, ‘2·8 유학생 독립선언’을 주도하고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에 가담한 민족운동가요, 민족적 ‘저항’과 ‘대일협력’의 간극 사이에서 파란만장하고도 처절한 생애를 살아간, 험난한 시대의 산증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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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위탕 (지은이)    정보 더보기
중국이 낳은 세계적 석학(碩學)으로 ‘세계의 지성(知性)’이며 ‘자유사상가’로 일컬어지는 린위탕은 도량이 넓은 문인이다. 그는 동서양의 문화를 하나의 도가니에 용해(溶解)해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생겨난 사상과 문학의 세계를 향해 열정적으로 쏟아 낸 대인이었다. 불혹의 나이일 때 쓴 자서전에 “두 다리로는 동서(東西)의 문화를 밟고 한마음으로 우주의 문장을 평(評)한다”라고 말한 그는 한적 생활과 중용의 길을 기조(基調)로 한 인간에게 가장 근본적이고 불가피한 문제, 즉 ‘한번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값진 삶이 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한 답(答)을 현실을 떠나지 않은 범주에서 제시하고 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코즈모폴리턴의 운명을 지녔는지도 모른다. 조부대부터 목사인 크리스천 집안으로 미션스쿨을 졸업하고 외국에서 유학한 후 중국에서 대학교수를 하는 등 성공의 발판을 다졌으나 고국에 뿌리내릴 수 없어 국제 사회로 나가 생애(生涯) 전반을 사람의 영혼에 감동을 주는 작품을 발표해 세계적 문인으로 인정받지만 안주할 곳을 찾지 못하고 유리표박(流離漂泊)의 고독감 속에서 생애를 마쳐야 했던 문인이었다. 린위탕은 1895년 중국 푸젠성 장저우 핑허에서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10월 10일 태어났다. 샤먼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친 후에 상하이 세인트존스 대학 졸업 후 베이징 칭화 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1919년 미국 하버드 대학에 유학하여 언어학을 공부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1921년 독일로 가서 예나 대학과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공부하고 1923년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고 고국으로 돌아와 베이징 대학과 베이징 여자 사범대학 영문과 교수를 역임하고 1926년 진보파 교수에 대한 군벌(軍閥) 정부의 탄압으로 북경을 떠나 샤먼 대학 문학장으로 취임했다. 그때 루쉰과 고힐강 등 저명한 학자를 학원에 초빙하지만 부패한 환경으로 모든 교수가 이직하고 린위탕도 사직했다. 1927년 우한(武漢) 정부 외교부장 비서로 일하며 영문 주간지와 신문에 날카로운 논진(論陣)을 펼치자 너무 급진적이고 반봉건적 사상을 옹호해 온 사람으로 알려졌다. 그 후 우한 정부가 무너지고 자신이 정치적 체질이 아님을 깨닫고 ‘나는 육식동물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정계(政界)를 떠나 상하이 국제 출판물 교환소 소장을 맡고 문필활동에 전념했다. 1948년 유네스코 예술부장으로 삼 년간 파리에 주재하고 1953년 UN 총회 중국(타이완) 대표 고문으로 참가했다. 1954년 싱가포르 난양 대학 창립에 참여하고 1966년 타이완으로 이주 후 1967년 홍콩 중문대학 교수를 지내고 1976년 82세의 나이로 홍콩에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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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하이윈 (지은이)    정보 더보기
현재 대만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리는 작가이다. 10년 동안 '롄허바오'紙의 문화부 주간을 지냈으며, '순문학 출판사'를 창설하여 출판계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소설뿐만 아니라 산문도 여러 권 냈으며, 지금은 좋은 작품을 쓰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1960년에 출간된 '북경 이야기'는 그녀의 걸작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보석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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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엮은이)    정보 더보기
1933년 11월 13일(음력, 호적상 1934년 1월 15일)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능소(凌宵)이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문학평론가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이화여대 교수, 『서울신문』 『한국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 신문사 논설위원, 88올림픽 개폐회식 기획위원, 초대 문화부장관, 새천년준비위원장, 한중일 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2021년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예술 발전 유공자로 선정되어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대표 저서로는 『이어령의 강의』 『눈물 한 방울』, 논문·평론 『저항의 문학』 『공간의 기호학』 『한국인 이야기』 『생명이 자본이다』 『시 다시 읽기』, 에세이 『디지로그』 『젊음의 탄생』 『지성에서 영성으로』 외 수십 권, 일본어 저서 『축소지향의 일본인』 『하이쿠의 시학』, 소설 『장군의 수염』 『환각의 다리』와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날게 하소서』를 펴냈으며, 희곡과 시나리오 「기적을 파는 백화점」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 등을 집필했다. 2022년 2월 26일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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