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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91166292323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25-06-20
책 소개
목차
서문―우리의 실패들에 대하여
1부·실패에 대하여 묻다: 실패의 인문학
실패의 정치·신학: 인류세 시대의 실패에 대한 종교철학적 성찰 / 박일준
들어가는 말
I. ‘더 나은 실패’
II. 인류세(the Anthropocene)라는 실패
III. 인류세의 실패와 라투르의 낙관주의를 넘어서: 실패를 품은 정치학
IV. 폐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사물들과 그 객체성
V. 더 잘 실패하기
나가는 말
인류의 실패인가, 지구의 진화인가: 인류세라는 실패에 대하여 / 이찬수
I. 인류세의 등장과 지구의 현실
II. 인류세 분석과 대안적 사상들
III. 인류세 신학의 가능성과 점선적(點線的) 경계
빼앗긴 이름과 이름 없는 하나님: 부정신학의 인문학적 성찰 / 황성하
들어가는 말: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소년
I. 부를 수 없는 하나님의 이름, 테트라그람마톤
II. 이름을 빼앗긴 사람들과 함께하는 하나님
III. 이름의 갈등과 화해: 24601과 장발장/ 윤동주와 히라누마 도주/ 첼란과 안첼
IV. 이름 짓기의 두 의미: 지배 혹은 회복
나가는 말: 다시 부르는 이름
욕망과 실패에 관한 정신분석학 / 강응섭
들어가는 말: 거리끼고 미련한 십자가
I. 성서의 표현: 젖음의 네페쉬 하야 vs 마름의 네페쉬 하야, 산 영(생령) vs 살려주는 영
II.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 이데아의 침대 vs 에이돌론(에이코네스-판타스마타)의 침대
III. 바울-아우구스티누스의 표현: 하나님의 모르페와 종의 모르페(케노시스) vs 하나님의 포르마와 종의 포르마
IV. 프로이트의 표현: 영혼(정신)의 장치에 관한 여러 표현들
V. 라캉의 표현: 언어처럼 구조화된 무의식 vs 언어처럼 구조화된 저항
VI. 요셉: 12번째 아들의 외밀한 장자권
나가는 말: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2부·실패가 한국사회에 묻다: 기독교적 성찰
실패의 세대: 청년세대 신조어와 기독교 청년 사역의 대안들 / 윤영훈
들어가는 말: 전환점에 선 청년 담론
I. ‘잉여’로 사는 법: 포기가 아닌 대안을 선택하기
II. ‘아싸’들이 사는 법: 나 홀로 세대를 대안 공동체로 이끌기
III. ‘꼰대’를 넘어 사는 법: 다음 세대가 아니라 다른 세대를 세우기
나가는 말: 새로운 신조어를 기대하며
안전의 실패: 반복되는 참사와 신자유민주주의 담론이 은폐하는 것들 / 박종현
들어가는 말
I.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10.29 참사: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
II. 대형 참사의 원인 규명 시도와 그 한계
III. 위험을 분산하라: 현대 자본주의의 사회적 위험 회피전략
IV. 신자유주의 정치의 위험한 정책
V. 원자력 발전과 위험 회피의 문제
나가는 말
평화의 실패: 한반도와 ‘핵 있는 평화’ / 이병성
들어가는 말
I. 한반도 평화와 핵무기
II. 핵무기와 안보 절대주의
나가는 말
교회의 실패, 한국 개신교의 ‘성공’과 ‘실패’에 관하여: 손원영 교수 ‘배제’ 사례를 중심으로 / 김종만
들어가는 말
I. 배타적 폭력성의 ‘성공’
II. 관계적 수용성의 ‘실패’
나가는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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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실패에 대한 통렬한 인식과 성찰은 아편으로서의 희망을 지양하고,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희망하며 나아가야 할지를 깨닫는데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그래서 미국 신학자 캐서린 켈러(Catherine Keller)는 ‘더 잘 실패하기’(a failing better) 혹은 ‘차라리 지금은 실패하는 게 낫다’(failing better now)는 논제를 제시하는데, ‘더 잘 실패하기’란 인류세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저질러 온 문명적 실패들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는 결코 실패를 위한 실패나 실패를 통한 악화의 심화와 연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희망이란 실패와 좌절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도래한다는 것을 명확히 말하는 것이다.
실패에 대한 통렬한 인식과 성찰은 아편으로서의 희망을 지양하고,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희망하며 나아가야 할지를 깨닫는데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그래서 미국 신학자 캐서린 켈러(Catherine Keller)는 ‘더 잘 실패하기’(a failing better) 혹은 ‘차라리 지금은 실패하는 게 낫다’(failing better now)는 논제를 제시하는데, ‘더 잘 실패하기’란 인류세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저질러 온 문명적 실패들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는 결코 실패를 위한 실패나 실패를 통한 악화의 심화와 연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희망이란 실패와 좌절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도래한다는 것을 명확히 말하는 것이다.
창세기에서 이름은 무엇인가를 소유한다는 의미도 아니고, 대상을 부름으로써 자신이 더 우월함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타자의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최초의 예술가이신 하나님의 창조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물의 존재를 드러내고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경탄했다. 다른 말로 신은 자신이 지은 존재들을 찬양했다. 이는 신성모독의 표현이 아니다. 바울은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을 향해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한다고 말했다. 성서에서 신의 이름을 알고 부른다는 말, 신을 찬양한다는 말은 놀랍게도 이름을 빼앗긴 이름들을 되찾는 것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는 예수의 말은 윤리적 레토릭이 아니다. 그것은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신과 이름을 빼앗긴 자들이 신비하게 얽혀 있음을 표현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