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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문명/문명사
· ISBN : 9788952119100
· 쪽수 : 352쪽
· 출판일 : 2016-12-30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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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량치차오와 ‘혁명’은 친연성이 높은 관계가 아니다. 1900년을 전후한중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량치차오는 캉유웨이와 함께 ‘보황당(保皇黨)’ 혹은 ‘입헌파’를 대표한다. 그 ‘보황당’ 혹은 ‘입헌파’는 ‘혁명당’ 혹은 ‘혁명파’와 대비되어 그 의미가 도드라지는 명명이었다. 그들이대립하던 시기의 ‘혁명’을 다룬 기존의 연구들은 당연히 ‘혁명파’와그 기관지인 <민보>에 집중되었다. 그런데 량치차오에 초점을 맞추면서 혁명과의 관계를 다룬 연구도 있다. 량치차오와 혁명에 관한 연구는 대부분 타이완에서 이루어졌으며, 혁명에 대한 량치차오의 옹호를 조명하고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근대 계몽운동에서 전방위적인 역할을 했던 량치차오는 실제로 번역어 革命’, 즉 근대적인 의미의 ‘혁명’을 중국에서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이기도 하다.
동아시아에서 한자어 ‘혁명’은 근대 시기에 ‘revolution’의 번역어로서 등장했다. 근대의 정치적인 의미에 한정하더라도 ‘revolution’ 은 다의적인 개념이다. 그런데 그 한자어 ‘혁명’은 ‘revolution’을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중국 고전에도 등장하며 자체의 역사를 갖는 중국 고유의 개념이었다. 이미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던 ‘revolution’이 한자문화권에 들어와 ‘혁명’으로 번역되면서 한자가 갖고 있던 의미가 덧보태져 더욱 복잡하게 되었다.
이런 사정도 가세해서 량치차오가 처음 사용했다는 근대적 번역어 ‘혁명’ 개념은 넓은 외연을 가진 것이었다. 그 무엇보다 량치차오의 ‘혁명’ 개념 사용에 가장 두드러진 영향을 준 것은 사회진화론이다. 당시 여느 중국인처럼 량치차오 역시 사회진화론을 변혁의 이론으로 받아들였고, 진화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으로서 ‘혁명’을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그가 처음 사용한 ‘혁명’은 ‘진화’만큼이나 긍정적인 것이었다. 량치차오의 ‘혁명’적 성향을 적극적으로 평가했던 기존의 연구들은 량치차오가 일정한 시기 ‘민주공화’를 주장했다고 강조하는데, 실제로 그 연구들이 전거로 삼는 것은 대부분 량치차오가 ‘진화’의 의미로 사용한 ‘혁명’이다.
- 제7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