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견딜 수 없는, 미쳐 버리고 싶은

견딜 수 없는, 미쳐 버리고 싶은

귀스타브 플로베르, 나딘 고디머, 너대니얼 호손, 도리스 레싱, 레이먼드 카버, 밀란 쿤데라,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이탈로 칼비노, 앨리스 워커,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지은이), 장석영 (옮긴이)
현실과미래
7,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알라딘 로딩중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11st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G마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서점 유형 등록개수 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책 이미지

견딜 수 없는, 미쳐 버리고 싶은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견딜 수 없는, 미쳐 버리고 싶은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88988017135
· 쪽수 : 336쪽
· 출판일 : 1999-06-25

책 소개

책에 실려있는 작품들은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작가들의 `사랑 이야기`다. 밀란 쿤데라, 도리스 레싱, 이탈로 칼비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네이딘 고디머, 앨리스 워커까지 유명 작가들을 망라하고 있다. 한국에는 이 작가들의 장편만 소개되어 있는 사정을 감안할 때,이 책의 주제인 ‘사랑’이란 말은 빼고라도 작가들의 단편을 한자리에서 읽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문화일보

목차

1. 견딜 수 없는, 미쳐 버리고 싶은 | 밀란 쿤데라
2. 호모 에로티쿠스 | 도리스 레싱
3. 기차가 멈출 때까지 | 이탈로 칼비노
4. 첫사랑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5. 애련 | D. H. 로렌스
6. 고귀한 집착 | 나다니엘 호돈
7.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애인 | 게일 가드윈
8. 이별... 열병 | 레이먼드 카버
9. 발견 | 네이딘 고디머
10. 죄 없는 여자의 일생 | 귀스타브 플로베르
11. 죽음을 이겨낸 사랑 | 앨리스 워커

저자소개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21년 프랑스 북부 도시 루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외과 의사였고, 내과 의사의 딸인 어머니는 플로베르의 삶과 작품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바이런의 조숙한 독자이자 셰익스피어의 광적인 팬이었던 10대의 플로베르는 여행 중에 젊고 생기 있는 연상의 여인 엘리자 슐레징거를 만나게 된다. 슐레징거는 플로베르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완벽한 여인으로서 평생 그의 마음속에 있었고, 그녀에 대한 오랜 사랑은 그의 삶과 작품을 결정짓는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다. 열여덟 살에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떠났으나, 신경질환으로 인해 3년 뒤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 마을로 돌아와 홀로된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글쓰기에 전념했다. 초기작, 특히 『성 앙투안의 유혹』에서 그는 대담한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쳤으나, 이후에는 친구들의 조언에 따라 예술적인 객관성을 획득하고 산문 스타일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낭만주의적인 풍성함을 혹독하게 훈련했다. 이렇게 예술적 완전성을 갖추기 위한 노력은 그에게 커다란 고역임은 물론 생전에 제한된 성공만을 가져왔다. 1857년에 『보바리 부인』을 출간하고 나서는 대중적인 도덕률을 위반한다는 이유로 기소되었고, 이국적인 소설 『살람보』(1862)는 고고학적인 세부사항의 외형적 묘사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자기 세대의 도덕적인 역사를 다루려는 『감정 교육』(1869)은 비평가들의 오해를 샀으며, 정치적 희곡 『후보자』(1874)는 참담한 실패를 겪어야 했다. 『세 개의 우화』(1877)만이 완전한 성공을 이루었는데, 그것은 플로베르의 기분, 건강, 재정이 가장 밑바닥에 있을 때였다. 그의 사후인 1880년, 미완결 유작 『부바르와 페퀴셰』와 『서한집』이 출간되는 것을 기화로 그에 대한 평가가 서서히 힘을 얻고 명성 또한 높아지게 되었다. 관습적인 도덕과 사회적인 사실성의 차원을 넘어 진리에 도달하고 미를 창조하려 했던 ‘모더니티’의 대명사 플로베르. 그는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자연주의와 구조주의에 이르는 현대의 예술 사조를 이끌어내는 씨앗으로서 조르주 상드, 에밀 졸라, 기 드 모파상 등 동시대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19세기 위대한 프랑스 작가다.
펼치기
네이딘 고디머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세계 인권운동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넬슨 만델라가 28년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옥문을 나서며 “나는 나딘을 만나야 합니다”라고 했을 만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양심을 상징하는 작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가 백인과 흑인 모두에게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다수의 작품들을 발표했고, 199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위원회는 고디머를 수상자로 발표하며 “노벨의 유언처럼 그는 장엄한 서사적 소설들로 인류에 위대한 공헌을 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1923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하우텡주 요하네스버그 교외에 위치한 탄광촌 스프링스에서 유대계 이민자 집안의 딸로 태어나, 비트바테르스란트대학교에서 교양 과정만 이수한 후 중퇴했다. 그즈음 고디머는 인종차별에 기반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기이한 정치현실에 눈을 뜨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37년 첫 단편소설 〈금을 찾아서The Quest for Seen Gold〉를, 1949년 첫 단편집《얼굴을 대면하고Face to Face》를, 1953년 첫 장편소설 《거짓의 날들》을 발표했다. 이후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넬슨 만델라가 이끌던 흑인정치조직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가입하는 등 번번이 백인 정권과 마찰을 빚어《줄라이의 사람들July’s People》(1981) 등 책 세 권이 판매 금지되기도 했다. 노벨위원회가 고디머의 초기작 중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꼽은 《명예로운 손님A Guest of Honour》(1971)과 《보호주의자들The Conservationist》(1974)은 각각 제임스 테이트 블랙 기념상과 영연방 최고의 문학상인 부커 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도 《이방인들의 세계A World of Strangers》(1958),《가버린 부르주아의 세계The Late Bourgeois World》(1966), 《버거의 딸Burger’s Daughter》(1979) 등 15편의 장편소설과 《6피트의 시골 땅Six Feet of the Country》(1956), 《프라이데이의 발자국Friday’s Footprint》(1960) 《왜 당신은 쓰지 않았는가Why haven’t You Written》(1993) 등 21권의 단편집을 발표했다. 스미스 문학상, 프랑스 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1999년 남아프리카 국민훈장과 2007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훈했다.
펼치기
네이딘 고디머의 다른 책 >
너새니얼 호손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세기 미국 문학의 거장이자 미국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소설가. 1804년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에서 태어났다. 17세기 신대륙 개척 시대에 건너온 청교도 가문의 후손으로, 그의 선조 중에는 세일럼 마녀재판을 주도한 판사가 있었다. 이로 인한 가문의 비극적 역사와 죄의식은 호손의 문학 세계를 형성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다. 보든 대학 시절 시인 헨리 롱펠로, 후일 미국 대통령이 된 프랭클린 피어스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졸업 후에는 12년간 고향집에서 은거하며 치열한 독서와 습작 생활을 이어갔다. 1837년 첫 단편집 『두 번 들은 이야기』로 에드거 앨런 포의 찬사를 받았다. 1839년부터 보스턴 세관 검사관으로 근무했고, 1842년 결혼 후 콩코드의 ‘낡은 목사관’에 머물며 에머슨, 소로 등 당대 지성인들과 교류했다. 1846년에는 단편집 『낡은 목사관의 이끼』를 발표했다. 같은 해에 세일럼 세관 검사감독관으로 임명되었으나 1849년에 정권이 바뀌며 강제로 해임되었다. 1850년, 46세에 발표한 『주홍글씨』는 그의 대표작이자 미국 문학이 유럽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개척했음을 선언하는 이정표가 되었다. 허먼 멜빌은 호손의 문학적 깊이에 경의를 표하며 『모비 딕』을 그에게 헌정했다. 이후 『일곱 박공의 집』(1851), 『블라이드데일 로맨스』(1852), 『대리석 목신상』(1860) 등을 통해 인간 내면의 어둠과 빛을 탐구했다. 말년에는 건강이 악화되어 고통받다가 1864년, 오랜 벗 피어스와의 여행 중 플리머스에서 생을 마감했다. 호손은 청교도적 도덕주의와 낭만주의적 상상력을 결합해 인간 영혼의 비극적 진실을 파고든 작가로 평가받는다. 특히 죄와 속죄, 은밀한 죄책감의 심리적 작용을 다룬 그의 작품들은 현대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펼치기
너새니얼 호손의 다른 책 >
도리스 레싱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9년 페르시아(현 이란)에서 영국인 부모 앨프리드와 에밀리의 딸로 태어나, 가족과 함께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남로디지아(현 짐바브웨)로 이주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십대 초에 학교를 그만두고 독학하면서 전화교환원, 타이피스트 등으로 일했다. 두 번의 이혼을 경험한 후 1949년 런던에 정착해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50년 첫 장편소설 『풀잎은 노래한다』 발표 이후, 『마사 퀘스트』 『금색 공책』 『19호실로 가다』 『다섯째 아이』 『런던 스케치』 등 50권이 넘는 책을 썼다. 레싱은 계급, 인종, 성별의 격차로 빚어진 인습과 폭력, 억압에 평생 저항해온 작가이자, 공산당에 가입하는가 하면 아파르트헤이트 저항 운동, 반핵 운동 등 현실 정치에도 목소리를 높인 지식인이었다. 서머싯 몸 상, 메디치상, 아스투리아스 왕세자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고 200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08년 <타임스> 선정 ‘전후 위대한 영국 작가 50인’에 이름을 올렸다. 2008년 발표한 『앨프리드와 에밀리』는 1990년대 후반부터 뇌졸중으로 투병하면서도 작품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그의 마지막 결실이다. 제1차세계대전을 거치며 돌이킬 수 없이 부서진 부모의 삶과 자신의 기억을 예리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해냈다. 무엇보다 백인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 내면의 삶을 작품화하여 “문학의 얼굴을 바꾼 작가”로 평가받는 레싱은 2013년 런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펼치기
레이먼드 카버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38년 5월 25일 엘라 비어트리스 케이시와 클레비 레이먼드 카버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가 다니던 제재소를 비롯해 약국, 병원 등에서 일했다. 1957년 메리앤 버크와 결혼해 이후 딸과 아들을 얻었다. 1958년 치코주립대학교에 입학해 이듬해 문학적 스승 존 가드너를 만나 문예창작 강의를 수강했다. 1963년 험볼트주립대학교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아이오와대학교의 작가 워크숍 대학원 과정에서 수학했다. 단편 「분노의 계절」(1961)이 문예지에 수록되면서 본격적인 작가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어 두 권의 시집 『클래머스 근처Near Klamath』(1968), 『겨울 불면증Winter Insomnia』(1970)을 출간했다. 캘리포니아대학교와 아이오와대학교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생활을 이어가다 1974년 알코올의존증과 가정 문제로 인해 사직했다. 1976년 첫 소설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가 출간되고, 이듬해 전미도서상 후보에 올랐다. 같은 해 11월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개최된 작가 회의에서 시인 테스 갤러거를 만나고, 1978년 아내와 이혼한 뒤 함께 살기 시작했다. 1983년 대표작 『대성당』을 출간하고, 미국예술문학아카데미로부터 밀드레드 앤드 해럴드 스트라우스 생활 기금의 수혜자로 선정되었다. 이듬해 『대성당』으로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다. 1987년에 암이 번진 왼쪽 폐를 일부 절제하는 수술을 받고, 이듬해 암이 뇌에서 재발해 7주에 걸친 방사선치료를 받았다. 기존의 작품들 중에서 고른 선집 『내가 전화를 거는 곳』(1988)이 출간되었으며, 같은 해 하트퍼드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6월 초 양쪽 폐 모두에서 암이 재발하고, 같은 달 갤러거와 결혼식을 올렸다. 8월 2일 포트 앤젤레스의 자택에서 5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펼치기
밀란 쿤데라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29년 체코의 브륀에서 태어났다. 야나체크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프라하의 예술아카데미 AMU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감독 수업을 받았다. 1963년 이래 「프라하의 봄」이 외부의 억압으로 좌절될 때까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운동’을 주도했으며, 1968년 모든 공직에서 해직당하고 저서가 압수되는 수모를 겪었다. 고국 체코에서 발표한 작품은 『농담』과 『우스운 사랑』 두 권뿐이었다. 『농담』이 불역되는 즉시 프랑스에서도 명성을 얻어 소련 침공과 ‘프라하의 봄’ 이후 역경을 겪고 1975년 체코를 떠나 프랑스로 이주했다. 이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생은 다른 곳에』, 『불멸』, 『이별』, 『느림』, 『정체성』, 『향수』 등의 작품을 썼으며, 메디치 상, 클레멘트 루케 상, 유로파 상, 체코 작가 상, 컴먼웰스 상, LA타임스 소설상 등 전 세계 유수의 문학상을 받았다. 미국 미시건 대학은 그의 문학적 공로를 높이 평가하면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2023년 7월 세상을 떠났다. 향년 94세.
펼치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9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귀족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부유하고 문화적으로 풍요롭고 자유주의적인 집안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나보코프 가족은 런던을 거쳐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1922년 아버지가 극우파 러시아인의 총에 맞아 살해되자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나보코프는 외국어, 테니스 강습 등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1923년부터 러시아어로 장편소설, 단편소설, 희곡, 시, 번역서를 내면서 중요한 러시아 망명 작가 중 하나로 명성을 얻다가 1940년 아내와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에 정착한 나보코프는 1941년부터 웰즐리 칼리지에서 강사로 지내다가 1948년 코넬 대학교 러시아문학 교수로 임용되어 1959년까지 재직했다. 1955년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롤리타』가 출간되었으며, 『프닌』(1957)은 『서배스천 나이트의 진짜 인생』(1941), 『벤드 시니스터』(1947), 『말하라, 기억이여』(1967), 『롤리타』와 함께 미국에서 출간된 작품이다. 1960년 미국을 떠나 스위스로 이주했고 1977년 몽트뢰에서 사망했다. 이 외에도 『창백한 불꽃』(1962), 『아다 혹은 열정: 가족 연대기』(1969), 『어릿광대를 보라!』(1974) 등 다수의 작품을 썼으며 미발표 작품으로 『오리지널 오브 로라』가 있다.
펼치기
이탈로 칼비노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23년 쿠바에서 농학자였던 아버지와 식물학자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부모의 고향인 이탈리아로 이주한 뒤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접하며 자랐는데 이러한 경험은 그의 전 작품에 녹아들어 있다. 칼비노는 부모의 뜻에 따라 이탈리아 토리노 대학교 농학부에 입학해 공부하던 중 레지스탕스에 참가했는데 이때의 경험이 초기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조셉 콘래드에 관한 논문으로 토리노 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했다. 레지스탕스 경험을 토대로 한 네오리얼리즘 소설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1947)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에이나우디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당시 이탈리아 문학계를 대표하던 파베세, 비토리니 등과 교제했다. 『반쪼가리 자작』(1952), 『나무 위의 남작』(1957), 『존재하지 않는 기사』(1959)로 이루어진 ‘우리의 선조들’ 3부작처럼 환상과 알레고리를 바탕으로 한 작품과 『우주 만화』(1965)와 같이 과학적인 환상성을 띤 작품을 발표하면서 칼비노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1959년부터 1966년까지 비토리니와 함께 좌익 월간지인 《일 메나보 디 레테라투라》를 발행했다. 1964년 파리로 이주한 뒤 후기 대표작인 『보이지 않는 도시들』(1972)을 발표했으며 이 작품으로 펠트리넬리 상을 수상했다. 1981년에는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1984년 이탈리아인으로서는 최초로 하버드 대학교의 ‘찰스 엘리엇 노턴 문학 강좌’를 맡아 달라는 초청을 받았으나 강연 원고를 준비하던 중 뇌일혈로 쓰러져 1985년 이탈리아의 시에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펼치기
앨리스 워커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44년 미국 조지아주 이턴턴에서 소작농 부부의 여덟째 아이로 태어났다. 1961년 애틀랜타의 스펠먼대학교에 입학했고, 역사가이자 사회운동가인 하워드 진과 스토턴 린드의 영향을 받아 흑인민권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년 뒤 뉴욕의 세라로런스대학교로 편입했으며, 졸업 후 인권운동을 위해 남부로 귀향했다. 1968년 첫 시집 『한때』를 발표하고 1970년 첫 장편소설 『그레인지 코플랜드의 세번째 인생』을 출간했다. 웰즐리대학교와 매사추세츠대학교 등 여러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했으며, 단편집 『사랑과 고통』, 시집 『혁명하는 피튜니아』, 장편소설 『머리디언』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1980년대에는 여성주의 저널 『미즈』의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1982년 『컬러 퍼플』을 출간해 이듬해 미국도서상과 흑인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열정적인 사회운동가로서 다양한 분야에 목소리를 내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펼치기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85년 9월 10일 잉글랜드 중부 지방 노팅엄 근교 탄광 지대에서 아버지 존 아서 로렌스와 어머니 리디어 비어즐 로렌스의 3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탄광 광부로서 교육을 받지 못한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중산층 출신의 교사였다. D. H. 로렌스는 문학을 좋아하고 교양이 있으며 엄격한 청교도였던 어머니 덕분에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고 고학으로 1908년 노팅엄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되었다. 교사로 재직하면서 간간이 시를 발표하던 그는 26세가 되던 1911년 폐렴에 걸려 요양을 하게 된다. 이듬해 그는 교사직을 사임하고 그보다 네 살이 위였던 독일인 프리다 부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그녀는 노팅엄 대 은사의 부인이었다). 이미 세 자녀의 어머니였던 그녀는 로렌스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함께 독일과 이탈리아로 사랑의 도피 행각을 했으며 로렌스는 1913년 장편 『아들과 연인』을 발표한다. 그는 1914년 프리다 부인과 함께 영국으로 돌아왔고 부인이 전 남편과의 이혼에 성공하자 정식으로 결혼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입대를 지원했으나 폐병 때문에 거부당했다. 그해 그는 최초의 단편집 『프러시아 장교들과 다른 사람들』을 발간한다. 이어서 그는 1915년에 장편 『무지개』를 발간했고, 1920년 이탈리아 피렌체로, 이어서 1922년 독일을 거쳐 미국으로 갔다. 그동안 그는 『사랑에 빠진 여인들』을 비롯해 다수의 작품들을 미국에서 발표해 호평을 받았으며 1925년 다시 이탈리아로 가서 『채털리 부인의 연인』 집필을 시작한다. 이 작품 발표 후 그는 병세가 악화되어 베니스 요양원에 입원했다가 1930년 3월 2일 사망했다.
펼치기

책속에서

"누가 내 옷을 벗겼죠?"

피할 수 없는 시선이 그의 얼굴을 향했다.

"내가 그랬어요. 정신을 차리게 하려구요."

여자는 겁먹은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건가요, 그럼?"

그는 자리에 선 채로 넋을 잃고 그녀를 마주 보았다. 갑자기 영혼이 녹아 내리는 듯한 강렬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메이블이 무릎을 꿇고 앞으로 기어와 두 팔로 그의 다리를 감싸 안았다. 잭은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녀는 잭의 무릎과 허벅지에 자신의 가슴을 문질러댔다. 묘하고 충동적인 확신이 그녀로 하여금 남자를 꼭 붙들게 했다.

메이블은 잭의 허벅지를 자신의 몸으로 감싸고 얼굴을 그의 목에 묻었다. 그녀의 눈은 부끄러운 듯하면서도 뜨겁게 불타 올랐다. 그녀는 무엇인가를 처음 소유했다는 정복감에 취해 그를 올려다보았다. - 본문 139쪽, 「애련」중에서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이 포스팅은 제휴마케팅이 포함된 광고로 커미션을 지급 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