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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영화/드라마 > 한국영화
· ISBN : 9791192647265
· 쪽수 : 560쪽
책 소개
목차
■ 책을 펴내며
1부 Memoir
1 _ 하지만 그런 시대를 살았고, 나는 거기에 있었다: 1980년대, 그때 여기, 영화 | 정성일 |
2 _ 애도할 수 없는 1980년대 | 이효인 |
1980년대 한국영화, 역사의 실험실
1980년, 대학 풍경과 한국영화
1980년대의 영화청년들
1980년대 영화운동의 결절
애도할 수 없는 1980년대
2부 1980년대 한국/영화
총론_ 1980년대 한국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지도 | 정종화 |
3S 우민화 정책
영화정책과 영화계
지속과 변화 사이 | 활기와 위기 사이
영화문화의 변화
위기가 만든 극장의 변화 | 변화를 만든 동인들 | 시네마테크의 초보적 모색
장르 _ 에로물의 시대, 그래도 다양한 장르적 시도가 있었다 | 허남웅 |
에로물과 에로물 사이
신파여 다시 한 번
무덤에서 살아나온 공포
액션 몸으로 울었다
감독들이 종교로 간 까닭은
누구의 존재도 아닌 여성
어른들은 모르는 청춘
수렁에서 건진 사회물
다양성은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미학 _ 1980년대 작가주의 | 김영진 |
1980년대를 조망하며: 혼돈의 용광로 시대
이두용의 거두절미 미학
화면을 잡아채는 활기
이장호와 배창호의 시대
<바보선언>의 예술과 저항 | 대중영화감독에서 예술영화감독으로
미완의 작가주의, 그리고 코리안 뉴웨이브의 가능성
몰개성의 시대를 뚫으려는 의지의 감독들 | 코리안 뉴웨이브의 싹을 향해 | 형식주의자들
임권택이라는 고유명사
장인에서 국민감독으로
배우 _ 어둠 속에서 역동하다 | 김혜선 |
1980년대 최고의 배우 안성기, 미남스타 이영하
1970년대 트로이카와 김지미의 묵직한 동행
1980년대 중반 신 트로이카의 등장: 이보희·원미경·이미숙
에로의 범람 속에서: 나영희·안소영·이대근·마흥식
틀에 갇히지 않는 당당함: 이혜영·강수연
1980년대가 발견한 청춘스타: 박중훈·최재성
독립영화 _ 1980년대 비제도권 영화의 풍경 | 유운성 |
기원에 대한 의문
새로운 영화를 위하여
작은영화를 둘러싼 물음들
끝나지 않는 투쟁, 혹은 저항의 비디오그램
영화문화 _ 1980년대, 다양한 통로로 영화를 경험하기 시작하다 | 공영민 |
저마다의 기억 속 영화를 모으는 방법
1980년대 영화문화의 특징
극장 지형의 변화
심야극장의 등장 | 소극장의 등장과 새로운 영화문화에 대한 기대 | 영화법 개정과 복합상영관의 등장
흥행 · 배급 지형의 변화
매체 환경의 변화
컬러TV의 확산과 TV영화의 인기 | 비디오의 보급과 성장
1980년대, 영화가 일상의 문화가 되다
화보 _ 1980년대 극장 풍경 | 이수연 |
3부 한국영화계에 불어오는 자유의 바람
: 구술로 보는 1980년대 한국영화 | 이수연 |
1980년을 시작하며
영화 관람 환경의 변화: 컬러텔레비전 방송 시작과 소극장의 등장
누구나 영화 만들 수 있는 자유를!
미국의 무역 개방 요구 | 영화법 개정 요구와 제작자유화
창작의 자유를 달라!: 시나리오 사전심의와 검열 제도
시나리오 사전심의 문제: <최후의 증인>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특정 집단의 반대: <도시로 간 처녀>
와 <비구니>| 외국인 출연 제한: <LA용팔이>| 공연윤리위원회와의 정면 충돌: <허튼소리>와 <구로아리랑>
할리우드로부터 한국영화를 지켜라!: 수입자유화와 직배 저지 운동
한미경제협상과 제6차 영화법 개정 | UIP의 <위험한 정사>| 직배 저지 투쟁 2차전: 뱀 소동
장벽이 무너진 후: 1980년대를 마무리하며
■ 본문에 인용된 구술자 소개
부록 _ 1980년대 영화산업 주요 통계 | 이수연 |
극장 | 제작 ·수입 | 흥행순위
■ 참고문헌
■ 찾아보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장호는 문자 그대로 지금 여기, 라는 시간이 잘못이라고 교정한다. 서로 다른 몇 번의 만남을 인용하겠다. 이장호 앞의 세대. 유현목에게 이장호(의 영화)에 대해서 질문한 적이 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인상적인 말을 들었다.
당시로서는 기발한 크라우드펀딩을 시도한, “4천만 원을 훔치겠습니다. 나의 영화에 투자하는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신문광고로 투자를 받아 그해 흥행 1위를 기록한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이규형, 1987)는 1987년 민주화 열기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진행된, 지금은 잊힌 영화이다. 배창호가 1980년대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황진이>(1986) 등으로 자신만의 예술적 스타일 완성을 추구한 반면, 이장호는 <어우동>(1985), <이장호의 외인구단>(1986) 등으로 충무로 흥행 영화들과 경쟁하였다.
정부가 허가한 20개 영화사만이 영화를 제작하고 수입할 수 있는 폐쇄된 구조, 군사 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체제의 정부 비판적인 소재와 이야기의 무참한 사전검열, 억압과 폭거로 쌓여 가는 민중의 불만을 돌리기 위한 정부 주도의 프로스포츠 출범과 스크린과 비디오를 활용한 에로영화의 보급 등은 1985년 7월 영화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한국 극장가에 성性이 중심이 된 에로물과, 멜로드라마의 형태를 띠고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신파물이 성행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